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35화 (35/225)

# 35

한 번 더 Ok?! (5)

#한 번 더 Ok?! (5)

“기··· 기쁜 소식이요?”

가장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정윤기가 얼떨떨해하며 오백호를 향해 물었다.

오백호는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인생가요 1위를 마지막으로 데뷔앨범의 활동은 마무리가 됐다.

3일간의 휴가도 주어졌다. 멤버들은 다음 앨범을 준비하러 들어가기 직전, 3일의 휴가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달콤한 고민을 하며 대부분 늘어지게 늦잠을 자던 중이었다.

물론 직접 작곡을 하고, 정규 1집 앨범에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 도욱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그러나 늦잠을 자고 있던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 스케줄도 없는 첫 휴가일 아침, 모두가 무방비한 상태일 때 오백호가 팬-마케팅팀 도라희를 사전 고지 없이 숙소로 데려온 건 다른 뜻이 아니었다.

‘비활동기 때도 절대로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되지!’

그러한 교훈을 오백호는 멤버들에게 주고 싶었다.

오백호는 멤버들에게 휴가라고 해도 간단히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카페에 가는 것만 허락할 뿐, 성인 멤버들 또한 술이나 담배를 철저히 금지할 예정이었다.

특히 술자리에 괜히 잘못 끼었다간 사달이 나기 십상이었다.

물론 그 방침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오백호의 몸이 여섯 개가 아닌 이상, 케이케이 멤버들 여섯 명을 모두 24시간 일대일로 붙어서 감시할 순 없었다.

그러나 오백호는 현재의 케이케이 멤버들이 자신의 방침을 잘 따라와 줄 것이라 믿었다. 지난 활동을 통해 그 정도의 신뢰는 쌓인 상태였다.

“그래. 기쁜 소식. 일단 다들 모여 봐라.”

도라희가 머리는 새집이 된 채 상의는 늘어난 티셔츠, 하의는 허름한 추리닝 바지 등을 입은 멤버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여기 이분은 회사에서 본 적 있을 수도 있겠지만, 팬-마케팅팀 도라희 사원이다.”

“안녕하세요, 도라희입니다. 모두 잘 부탁드려요!”

도라희의 인사에 다들 엉거주춤 마주 인사했다.

도라희는 직원보단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 같은 첫인상을 주었다. 멤버들은 눈을 비비며 도라희의 얼굴을 다시금 확인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확실히 귀여웠다.

오백호의 어깨에도 오지 않는 작은 체구의 도라희가 멤버들과 마주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눈웃음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그냥 오 실장님 통해서 전달 드리려다가 직접 보고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요!”

옆에 든 쇼핑백에서 도라희가 꺼낸 건 푸른색 상자였다.

“그리고 팬클럽 이름은 내부 회의 끝에 키링(Key Ring)으로 결정됐어요!”

“우리가 열쇠니까, 흐흐.”

“조······ 좋아요.”

안형서와 박태형이 답하자 도라희가 웃으며 상자들을 멤버들에게 나눠 주었다. 푸른색 상자에는 케이케이의 로고가 박혀 있었고, 각각의 상자마다 멤버들의 이름이 포스트잇에 적혀 있었다.

멤버들은 자신의 이름이 붙어 있는 상자를 열었다.

“오옷!”

안형서가 신나서 소리쳤다. 상자는 케이케이의 공식 팬클럽에게 주어질 응원도구와 팬 카드, 포토 카드 등이 든 팬클럽 키트였다.

“쏘 큐트~!”

“오, 까리한데?”

다들 상자를 열어보고는 감상을 말했다. 모두의 마음에 쏙 드는 정성스러운 팬클럽 키트였다.

게다가 팬클럽 카드에는 각자 멤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팬클럽이 생기다니······.”

팬클럽 카드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쩐지 감격스러워진 정윤기가 중얼거렸다.

팬클럽은 현재 모집 중이었다. 공개방송 참여 등 오프라인 팬 활동을 위해서는 팬클럽 가입이 필수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모집 첫날부터 많은 인원이 몰렸다.

꼭 오프라인 팬 활동이 아니더라도, 팬클럽 가입자에게는 이후 팬미팅 초대나 콘서트 선예매 등의 혜택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또 시안으로 공개된 팬키트 구성을 보고 팬클럽 가입을 결심한 팬도 적지 않았다.

“이제 팬클럽도 생기고,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도 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저랑 더 얘기할 일이 많아질 거예요.”

도라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조애나 팀장만 아니면 팬-마케팅팀의 누가 와도 상관없을 것 같았는데, 귀엽게 생긴 데다 상냥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도라희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팬분들이 좋아하겠는데요?”

도욱의 말에 도라희가 맞장구를 쳤다.

“그 응원도구 아이디어 주신 거 도욱 군이라면서요.”

“아, 네.”

“추가로 전달 주신 아이디어대로 다른 멤버별 굿즈도 준비 중이에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응원도구 디자인 아이디어 짜내느라 회사 디자인 팀이랑 같이 고생하긴 했는데, 결과물 보니까 얼마나 맘에 드는지 몰라요! 숙소에 건전지 있어요? 건전지 넣고 켜 봐요!”

도라희의 말에 오백호가 서랍장에서 건전지를 꺼내 왔다.

모두들 대문자 케이 모양이 디자인된 응원봉에 건전지를 넣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와······. 예쁘다······.”

박태형이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예뻤다.

저마다 응원봉을 켜고 어두운 공연장, 푸른빛의 물결을 상상했다.

“그리고 오 실장님이 말씀하신 기쁜 소식은!”

“이게 기쁜 소식이 아니에요?”

되묻는 안형서에 도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백호가 대신 답했다.

“진짜 기쁜 소식은 따로 있어, 인마.”

“호호, 케이케이 멤버들한테 광고 제의가 왔어요.”

광고라는 말에 다들 무슨 광고인지 말해 보라는 듯 도라희를 보았다. 도라희는 여섯 명의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눈빛 때문에 등에 땀이 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꼈다.

“교복 광고예요! 엘리트룩!”

다들 오오, 하는 환호와 함께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교복 광고는 핫한 아이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와 같은 광고였다. 교복은 타깃이 분명한 사업이었다. 십 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만이 교복 광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엘리트룩만 해도 이전까지는 밀키웨이와 다른 남자 아이돌 그룹이 맡고 있었다.

아이돌 판의 세대교체는 교복 광고 모델 교체와 한 궤를 이루었다. 얼마 전 스마트클럽 모델이 맨투맨이 된 것만 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쁜 소식도 있다.”

신이 나서 포즈를 잡아 보기까지 하는 멤버들을 향해 오백호가 말했다. 순식간에 멤버들의 표정이 굳었다.

“나쁜··· 소식이요?”

“그래. 휴가가 하루 짧아졌다. 광고 촬영 전까지 몸 만들려면 수요일부터는 몸 관리 들어간다!”

오백호가 말하는 몸 관리란 운동뿐 아니라 식이 조절도 포함한 것이었다. 데뷔 전 닭가슴살과 벌였던 사투가 아직도 모두의 기억 속에 또렷했다.

그 자리에 굳은 멤버들을 두고 오백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도라희를 배웅했다.

“다들 충격 때문에 인사는 힘들 것 같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아하하, 아니에요.”

도라희가 멤버들의 상태를 살피려 했지만, 오백호는 어서 가시라며 현관문까지 열어주었다. 어쩐지 남은 멤버들이 걱정되는 도라희였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멤버들이 도라희를 향해 인사했다.

“그럼 라희 씨, 조심히 돌아가시고, 나중에 뵙지요.”

“네. 또 연락드릴게요, 오 실장님.”

두 사람의 인사 광경을 지켜보던 김원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도라희가 돌아간 후, 김원이 오백호에게 물었다.

김원은 휴가가 이틀뿐이고, 그 뒤엔 몸 관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부정 중이었다. 다른 화제로 생각을 전환하고 싶었다.

“백호 형, 도라희 누나랑 으흐흥~?”

도라희를 대하는 오백호의 태도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게다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후크선장과 팅커벨 같았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묘하게 잘 어울렸다.

“으흐흥? 으흐흥은 무슨 으흐흥이냐.”

“왜요. 잘 어울리는구만.”

괜히 오백호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진 정윤기가 거들었다.

오백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희 씨랑?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라희 씨 나이가 몇인데.”

“몇인데요?”

“스물 넷.”

“헐. 그냥 어려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어리기도 한 거였네!”

안형서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도라희는 대학 졸업 후 팬마케팅-팀에 스카우트 되어 입사한 인물이었다. 2년제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사실 엔터테인먼트 회사나 마케팅과는 전혀 관련 없는 공부를 한 인물이었지만 스카우트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열여덟부터 모 아이돌 그룹의 열렬한 팬으로 활동하며 팬 카페 지기, 팬클럽 임원 등을 거쳐 스무 살에는 팬 매니저 활동을 했다.

팬 매니저는 자격 조건은 까다롭진 않지만, 현장에서 팬과 맞닥뜨리며 활동하다 보니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는 자리였다.

그러나 도라희는 현장에서 정말이지 ‘도라이’ 같은 기질을 보이며 팬들을 제압하고, 일말의 잡음 없이 작은 체구로 척척 일을 해나갔다. 게다가 공사 구분도 잘해 괜히 아이돌에게 질척대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일 잘하는 팬 매니저라는 소문이 금세 나게 되었고, 알음알음 지인들을 통해 힛 엔터의 팬-마케팅 팀에까지 스카우트될 수 있었다.

“그리고 행여라도 그런 소리 마라, 너네. 저래 보여도 무서운 사람이니까.”

“저 누나가요?”

“그래. 다들 라희 씨한테 잘해. 괜한 소리 말고.”

오백호는 일전에 들었던, ‘도라희, 어떻게 현장 팬 40여 명 단번에 제압했나?!’와 관련한 일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

얼마 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실내 농구 경기장에 교복 광고 촬영을 위해 케이케이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모였다.

이전에 이미 미팅을 통해 촬영 내용에 대해 전달받은 상태였다. 의상은 하복 교복이었고, 컨셉은 농구 코트 위에서 농구를 하며 청춘을 불태우는 소년들이었다.

왜 오백호가 몸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반팔 셔츠로 된 하복을 입자 아무래도 상체의 굴곡이 다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또 몸이 좋을수록 핏이 잘 사는 게 사실이었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정윤기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며 소품으로 준비된 농구공을 튕겼다.

멤버들은 이번 촬영을 위해 회사 근처의 한강 공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농구 게임을 하며 어떻게 하면 더 멋진 폼으로 슛하는 장면을 찍을지 고민해 왔다. 다행이 농구를 영 못하는 멤버는 없었다.

정윤기는 학창시절 농구부로 활동하며 농구 선수의 꿈까지 키웠다면서 자신만만해했다. 물론 키가 더는 자라지 않아 접은 꿈이었다.

또 김원도 유학 시절 농구를 많이 해 와 농구가 익숙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박태형이나 안형서도 워낙 몸을 잘 쓰는 멤버이다 보니 농구도 곧잘 배웠다. 도욱도 운동 신경이 있는 데다 키까지 커 덩크슛까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걱정이라면, 석지훈 정도였다. 석지훈은 드리블하는 폼부터 어색했다. 그러나 실제 경기하는 것도 아니니 표정 연기로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노래예요?”

“마, 너 이 노래 몰라?”

석지훈의 물음에 정윤기가 충격을 받고 손에 쥐고 있던 농구공을 떨어뜨렸다.

몇 살 차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면 세대차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충격을 받고 멈춰 선 정윤기를 석지훈이 무심한 얼굴로 스쳐 지나갔다.

농구 코트에서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대기실 같은 것을 제대로 갖춰놓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촬영 의상인 하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도욱은 복도 옆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화장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욱은 복도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 씨X 새끼야, 그 따위로 꼰질러?”

“죄,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하면 다야? 이 XX년아, 하여튼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김 감독이 예뻐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복도 앞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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