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오버헤드 캐스팅 (3)
#오버헤드 캐스팅 (3)
아직 박태형이 가져올 안무가 어떤 수준일지 알 수 없었지만, 도욱은 이 정도면 박태형이 제 몫 이상의 것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묵묵히 연습을 하고, 무대에서는 놀라운 열정을 보여 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제 몫을 다 한 상태였다. 그런데 무언가 팀에 기여하려는 생각까지.
‘당장은 몰라도 그런 마음가짐은 날이 갈수록 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도욱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연습을 시작한 박태형을 보며 뿌듯해졌다.
‘역시, 함께할 멤버로 선택하길 잘했다.’
그리고 동시에 노래나 작곡에 이어 춤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케이케이라는 배는 그야말로 순항 중이었다.
인생가요 2주 연속 1위. 무대를 마치고 차에 올라탄 케이케이 멤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이대로라면 다음 주까지도 계속 1위를 할 수도 있겠어······.”
“어메이징~!”
오백호가 조심스럽게 내놓은 전망에 김원이 환호했다. 다른 이들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음원에 강한 가수가 컴백한다 해도 컴백주 1위는 힘든 상황이었고, 현재 케이케이의 성적이 너무나도 좋았다.
음원차트도 계속 1위 유지 중이었다. 앨범도 초동 판매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잘 팔리고 있었다.
시상식에서 데뷔한 초대형 신인, 맨투맨의 1위 기록이 4주 연속 1위였다. 3주까지만 따라잡아도 맨투맨에게 밀린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4주 연속까지 해주면 좋겠지만······.’
도욱은 기억을 짚어 보았다. 사실 해볼 만한 싸움이기도 했다.
도욱의 기억에 다음 주 컴백하는 중견 여가수의 앨범은 그 여가수의 앨범 중에서는 중박 정도의 앨범이었다. 당시에도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긴 했지만, 케이케이의 ‘Sorry But I Love You’와 붙어서 1위를 했던 것이 아니어서 정확히 우위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와우, 저거 다 우리 팬?”
김원이 차창 밖을 보며 물었다. 방송국 주차장 입구에 여학생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벌써 케이케이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번호를 외우고 있었던 팬들은 차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더욱 앞으로 전진하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방송국 경비들이 막고 있어도 한계가 있었다. 하나둘 빠져나와 차 옆으로 바짝 붙어 섰다.
“아, 이거 또 시작이구만.”
몬스터의 매니저 시절 많이 겪었던 상황이었다. 오백호 실장이 인상을 팍 쓰며 운전대를 꽉 붙들었다. 잘못하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다.
방송국을 빠져나가는 차를 팬들이 달려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저 다른 차와 똑같은 차일 뿐 짙게 썬팅이 되어 있어 케이케이의 머리카락 한 올 볼 수 없는데도 쫓아오는 팬들을 보며 멤버들은 놀라움에 입을 벌렸다.
“창문이라도 열 걸 그랬나?”
마음 약한 안형서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오백호가 엄격한 말투로 안형서를 다그쳤다.
“그러다 도로에서 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래?!”
“아니 진짜 연다는 건 아니고요······.”
아직 인기를 제대로 실감한 적 없는 멤버들이었다. 공개 방송에 와주는 팬석의 팬들을 본 게 다였다. 팬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그 마음은 도욱도 같았다.
“다음 주에 1위하면 방송 끝나고 미니 팬미팅이라도 하는 게 어때요, 형? 팬들이 중요한 건데.”
“맞아! 팬들이 1위 시켜준 거잖아요! 우리 오늘 투표율 봤으면 알잖아요. 진짜 쩔었던 거.”
도욱의 제안에 안형서가 신나서 맞장구쳤다.
“오 실장님이 팬 서비스 잘하라면서요.”
가만히 있던 석지훈까지 거들자 오백호의 미간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알았다, 알았어. 팬-마케팅팀이랑 얘기해 볼게.”
“오예~!”
오백호가 운전하는 차는 신나게 도로를 달려 곧 회사 앞에 도착했다. 다시 또 연습이었다.
***
멤버들이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연습실로 돌아왔다. 후속곡 안무를 지도할 노윤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박태형이 도욱에게로 다가왔다.
‘생각해 냈구나!’
도욱의 얼굴이 밝아졌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긴 한데······.”
“봐 보면 알겠지. 얼른 보여줘 봐, 태형아.”
도욱의 채근에 박태형이 준비 자세를 취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냐며 안형서가 둘 쪽으로 오고, 다른 곳에 퍼져 있던 멤버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졸지에 멤버 전원 앞에서 자신이 짠 안무를 보여주게 된 박태형이 머뭇거렸다.
“다들 보면 더 좋지. 걱정 말고 해.”
도욱은 진심으로 박태형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 신뢰가 박태형에게까지 닿았다.
박태형은 구간 반복을 설정한 후 노래를 틀었다. 박자를 세곤 안무를 시작했다.
그래, 좋아, 네가, 난- 그래, 좋아, 네가, 난-
그래, 좋아, 네가, 난- 그래, 좋아, 네가, 난-
처음 두 번은 원래의 안무였다. 고개를 까딱이며 포스텝을 밟는 형태였다. 앞뒤좌우로 약간의 움직임만 있어 아주 간단했다.
그 뒤의 두 번을 통해 박태형은 자신이 짠 안무를 선보였다. 팔과 다리를 동시에 뻗는 동작과 오므리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네가, 난’ 부분에서 턴을 하며 총을 쏘는 듯한 동작이 가미되어 있었다.
“오, 뒤에 안무 뭐야? 처음 보는데?”
노래를 끈 박태형에게 안형서가 물었다. 원래 알고 있던 안무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더듬더듬 자신이 짠 안무라고 박태형이 답하자 모두들 놀라며 박태형을 칭찬했다. 역시 춤 천재라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모든 멤버가 그렇게 태형을 칭찬하는 동안 도욱은 아무런 평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박태형이 도욱의 마지막으로 도욱의 대답을 기다리며 도욱을 쳐다보았다.
“음. 태형아, 좋긴 한데······. 내 생각엔.”
박태형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이들의 반응도 중요했지만, 박태형에겐 누구보다 도욱의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박태형이 도욱의 말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얘들아! 이것 봐라!”
연습실로 노윤태와 함께 들어온 오백호의 손에는 쇼핑백 한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쇼핑백을 보고 몰려든 케이케이 멤버들을 본 오백호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나로선 정말 전해주기 싫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오백호에 멤버들의 눈이 번뜩였다. ‘매니저 형이 전해주기 싫은 거라면, 우리한테는 좋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모든 멤버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 받아라.”
오백호가 건넨 쇼핑백을 빠르게 건네받은 정윤기가 쇼핑백 속에 들어 있는 상자들을 하나씩 꺼냈다. 상자에는 최신 휴대폰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상자는 총 6개. 케이케이 멤버 수와 동일했다. 휴대폰 상자를 하나씩 나눠 가진 후, 정윤기가 조금 흥분해서 중얼거렸다.
최신 출시된 휴대폰은 이전의 휴대폰과는 다른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여러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휴대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데뷔 후 얼마 정도는 개인 휴대폰 사용 금지라는 회사 지침 때문에 새 휴대폰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 몬스터, 밀키웨이까지 포함해서 여러 아이돌 단체로 휴대폰 로고송 부른 거 알지?”
“광고 본 것도 같은데···.”
오백호의 말에 정윤기가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애들한테도 최신형으로 제품이 들어왔는데, 거기서 너희 것까지 챙겨줬다.”
“베리 카인드, 맨!”
김원이 환호하다 못해 울먹거리며 외쳤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외국에 있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영상 통화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원은 스마트폰이 정말 필요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팬-마케팅 팀에서 너희가 직접 업데이트할 계정 만들 거라고도 하고, 여러모로 휴대폰이 필요할 것 같아서 주는 거야. 쓸데없는 짓 하라고 주는 거 아니고.”
“네네, 그럼요!”
안형서가 냉큼 대답했다. 미심쩍다는 듯 오백호가 덧붙였다.
“함부로 폰 번호 알려주지 말고, 연락하지 말고.”
다들 오백호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눈은 이미 휴대폰에만 가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휴대폰을 개봉할 시간도 없었다. 그사이 안무 지도 준비를 마친 노윤태가 거울 앞에서 멤버들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안무를 직접 시연해줄 댄서팀도 우르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멤버들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휴대폰 상자를 연습실 한편에 두곤 노윤태 쪽으로 달려갔다.
“영상들 보고 좀 눈에 익혀 놨지?”
노윤태가 물었다. 모두 몇 번씩은 돌아가며 봐 놓은 상태였다. 노윤태가 그러면 시연을 해볼 테니 각자의 위치를 잘 확인하라는 설명을 할 때였다. 도욱이 손을 들었다.
“그··· 같이 안무 연습하면서 장난치다가 나온 안무가 있는데······.”
도욱은 최대한 안무가 안 좋아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주려 말을 골랐다.
“안무?”
“네. 후렴 안무 부분이요. 태형이가 해 본 건데.”
사람에 따라서는 안무 수정에 예민한 사람도 있었지만, 노윤태는 꽤 오래 소속사에서 일해 온 사람이었다. 회사 측의 의견으로 수정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무대에 설 멤버가 내는 의견이니 크게 거리낄 것도 없다는 게 노윤태의 입장이었다.
“그래? 태형이가 안무 창작에도 재능이 있었어? 나와서 한번 해봐.”
박태형은 아직 도욱의 의견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도욱의 반응이 ‘좋긴 한데···.’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박태형은 그다음 말이 부정적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머뭇거리다가 박태형은 앞으로 나왔다.
‘노윤태 선생에게 보여주라는 것은 내가 만든 안무가 괜찮다는 이야기겠지?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박태형은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렴 부분의 동작을 선보였다.
그래, 좋아, 네가, 난- 그래, 좋아, 네가, 난-
무반주 상태에서 입으로 노래를 부르며 선보인 안무에 노윤태와 댄서팀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태형아, 너무 좋은데?”
노윤태가 놀라하며 방금 전 박태형이 선보였던 안무 동작을 따라했다.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역시 선생은 선생이었다. 이렇게 맞지? 하며 노윤태가 박태형에게 되물었다. 칭찬을 받은 박태형이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해 다들? 이걸로 수정해도 난 좋을 것 같은데.”
“좋아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노윤태의 물음에 댄서팀원들이 답했다. 멤버들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다고 동의했다.
“저도 좋은데, 그······.”
도욱이 답을 하다 말을 멈췄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 노윤태가 턱짓했다.
“총을 쏘는 듯한 동작에서 앞으로 한 번 했다가, 두 번째는 원 만들어서 중앙을 향하는 건 어떨까요? 그다음에 간주가 나오니까 그때 타이밍 맞춰서 태형이가 백텀블링을 하면 확 눈을 사로잡을 것 같은데. 어때 태형아?”
도욱이 노윤태에게 말하다, 박태형에게 물었다. 박태형이 눈을 끔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