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떠오른 태양 (6)
#떠오른 태양 (6)
<인생가요 방송 사고 ‘아찔’... 생방송 도중 무대 붕괴, 엠씨 설레임 부상!>
도욱이 봤던 기사 헤드라인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설레임이 4주 정도 입원해야 할 만큼의 다리 부상을 입었고, 넘어지는 설레임을 피하다가 계나리까지 잔부상을 당했었다는 것이 이 방송 사고의 전말이었다.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상황이 모두 전국에 중계됐고, 해당 동영상이 온라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더 화제가 된 대형 방송 사고였다. 도욱도 이후에 그 영상을 보고 크게 놀란 기억이 있었다.
내용을 떠올림과 동시에 도욱의 눈이 옆에 선 설레임을 향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카메라를 보고 있는 설레임, 그리고 설레임이 서 있는 무대 바닥.
그 순간 타일 모양의 합판을 붙여 놓은 바닥이 밑으로 꺼지며 설레임의 상체가 기울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설레임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고꾸라지려 할 때였다.
“조심해―!!!”
외침과 동시에 도욱이 거칠게 설레임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그제야 앗, 하고 설레임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설레임이 도욱의 손에 끌려 무너지듯 도욱의 품에 안긴 사이, 설레임이 직전까지 서 있던 바닥이 반동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저 자리에 설레임이 그대로 있었다면, 도욱이 1초라도 늦게 설레임을 잡아 당겼다면, 설레임은 무대 아래의 바닥으로 곧장 추락할 뻔했다.
바닥을 보며 상황을 깨달은 설레임의 몸이 덜덜 떨렸다.
무대 위에 서 있던 출연진들도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바닥에서 비켜선 왼쪽으로 몸을 물린 안형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관객석이 크게 술렁였다. 다들 놀라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스태프들은 우왕좌왕하며 현장 총 책임자인 현주혁 피디의 지시를 기다렸다. 상황실에서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현주혁 피디는 아찔함에 머리를 감쌌다.
다행이 도욱이 조심하라고 소리쳤을 때는 마이크가 꺼져 있을 때라 음성이 나가진 않았다. 그러나 설레임의 짧은 비명은 이미 방송을 탄 상태였다.
화면은 다음 주 예고 영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정지 화면으로 15초가량이 흐른 상태였다.
···대형 방송 사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주혁 피디는 오늘의 방송 사고가 이 정도로 끝난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했다.
바닥이 무너져 설레임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현주혁 피디의 지시로 다음 주 예고 영상이 한 번 더 재생되었다. TV로 예고 영상이 송출되는 동안, 무대 스태프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임시방편으로 남아 있던 색이 다른 합판을 갖다대 꺼진 무대를 막았다.
“괜찮습니까?”
“······아.”
마이크가 다시 꺼진 것을 확인 한 도욱이 설레임의 어깨를 잡고 세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레임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 채 마이크 쥔 손을 떨고 있었다. 이대로는 방송 진행이 불가능할 듯 보였다.
‘무대 아래로 내려 보내야겠는걸.’
그러나 도욱의 생각보다 빠르게 스태프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한 번 더 재생된 영상마저 끝이 나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숨 고르고, 다음 멘트 제가 하겠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세요.”
도욱의 말에 설레임이 겨우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밝고 유쾌하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욱이 보기에 설레임은 겨우 열아홉이었다. 자신보다 열 살 이상 더 어렸다. 많이 놀란 설레임을 보며 도욱은 마음이 안타까워졌다.
정중앙 1번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잠시 현장에 사고가 있어 방송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도욱이 작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에 따라 설레임과 안형서도 고개를 숙였다. 무대 위의 가수들은 얼떨떨함을 숨기지는 못한 채였지만, 그래도 많이 안정이 된 상태였다.
“그럼 오늘의 1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레임의 멘트를 대신해 도욱이 말하자 화면이 1위 후보인 케이케이와 계나리를 잡는 이분할 화면으로 바뀌었다. 안형서가 화면의 그래프가 움직일 때마다 멘트를 쳤다.
“음반점수···, 음원점수······! 인터넷 투표와 생방송 문자 투표를 집계한······ 오늘의 1위는!”
시간 차를 두고 점수가 하나씩 화면에 나타났다.
방금 전 무대 사고와는 별개로 케이케이 멤버들은 손에 땀이 찰 만큼의 긴장감을 느꼈다.
무려 1위였다. 이 정도면 데뷔와 동시에 첫 1위를 차지하는 셈이었다. 소위 3대 대형기획사라 불리는 아라 같은 곳에서 데뷔한 것도 아닌 중소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계나리도 저력 있는 솔로였다. 봄비라는 노래가 워낙 계절과 잘 맞아 떨어졌다.
‘1위 후보도 의미가 있다. 케이케이에겐 다음 주에도 기회가 올 테니까··· 우선은 방송 진행에 집중하자.’
도욱은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최종 1위 발표 역시 본래는 설레임이 하기로 했던 부분이었다. 도욱이 힐끔 설레임의 상태를 확인했다. 도욱과 눈이 마주친 설레임이 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를 다잡은 설레임이 입을 열었다.
“1위는······!”
설레임의 청아한 목소리가 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
“아··· 암 데드······.”
피곤에 절은 채로 김원이 중얼거렸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김원이 소파에 널브러졌다. 평소라면 옷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하라고 한마디했을 오백호였지만, 오백호조차 그런 김원을 그저 내버려두었다.
오백호는 안형서와 도욱을 격려했다.
“너희가 수고 많았다.”
“도욱이가 다했죠. 저야 뭐······.”
안형서가 도욱을 올려다 보았다. 지난번 키를 쟀을 때보다 어쩐지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도욱은 활동을 하면서도 가능한 날에는 여전히 새벽 운동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푹 쉬는 등 체력 관리에 힘 쓰고 있었다. 덕분에 안형서가 본 대로 1센티미터 정도 더 키가 자랐다.
“아니에요. 형도 수고 많으셨어요. ···다들.”
도욱이 오백호와 멤버들을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정윤기가 거실 바닥에 주저 앉으며 도욱에게 말했다.
“후··· 너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지.”
1위 후보 발표의 순간을 생각하면 모두 아찔했다.
정윤기가 거실에 두었던 자신의 노트북을 켜 자신들의 오늘자 인생가요 무대를 다시보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그 앞으로 모여들었다.
한편에선 안형서가 공용으로 쓰는 거실 컴퓨터의 전원을 켜며 중얼거렸다.
“팬 카페에 글 써야겠어···.”
중얼거리는 안형서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팬 카페에 글을 올리라고 말하려던 오백호는 안형서의 자발적인 행동에 흡족스러워졌다.
케이케이의 공식 팬 카페에는 멤버들이 모두 가입되어 있었다. From. K.K 메뉴에 인사글 정도만 올린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케이케이를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
안형서가 거기까지 쓰고 엔터를 누를 때였다.
“흐··· 흐윽···.”
이상한 소리에 안형서가 뒤를 돌아보았다. 노트북 앞에 모여 있던 멤버 중 하나인 석지훈의 신음이었다.
“1위는······! 케이케이!!! 케이케이 여러분 축하합니다~!”
노트북에선 설레임이 1위를 발표하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폭죽이 터져 나왔다.
“케이케이 여러분 수상 소감 부탁드려요~!”
설레임이 자리를 옮기며 케이케이 멤버들을 가운데로 불렀다. 얼떨결에 설레임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정윤기가 수상 소감을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저희가 이렇게 1위를 하게 될 줄 몰랐는데··· 감사드리고······ 저희를 위해 노력해 주신 회사분들과 저희 케이케이 멤버들, 낳아주신 부모님··· 무엇보다 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케이케이가 되겠습니다.”
1위 후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정윤기가 준비해 온 멘트였다. 하지만 본인조차도 자신이 준비한 멘트를 정말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두 번째로 소감을 말하게 된 도욱이 감격에 차선, 그러나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삼키며 덤덤하게 말했다.
MC를 볼 때와는 다른 진중한 목소리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도욱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가슴이 먹먹해져 잠시 시선을 올려 천장을 보았다. 눈이 시릴 만큼 밝은 조명이 도명의 머리 위에 있었다.
피아노 반주와 함께 ‘Sorry but I Love You’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안형서는 이미 펑펑 울고 있었고, 안형서를 달래던 정윤기도 울컥한 상태였다. 발로 박자를 타고 있던 박태형도 눈이 그렁그렁했다. 김원은 울고 있진 않았지만, 감격에 차올라 무대 위를 달려 다니고 있었다.
석지훈만이 무감한 표정으로 안형서의 파트를 대신 부르고 있었다.
“엄마아아아···. 어흑, 흑···.”
그랬던 석지훈이 지금 숙소에서 엄마를 부르며 엉엉 울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석지훈이 제일 어른스러웠다고 다른 멤버들을 놀리듯 석지훈을 칭찬했던 오백호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만큼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확실히 어른스러워 보여도 석지훈은 열여덟 어린아이였다. 뒤늦게 눈물이 터진 석지훈을 지켜보며 멤버들도 가슴 한편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어린 나이부터 알게 모르게 해온 고생들이 석지훈을 서럽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1위를 했을 뿐인데 그간 가슴에 서렸던 한 같은 게 눈물과 함께 조금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막내는 막내네. 마, 고마 울어라!”
정윤기의 말에도 석지훈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멤버들이 모두 한 번씩 석지훈을 위로하며 등을 토닥였다. 서로를 위로하며 동시에 1위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나누었다.
그렇게 첫 1위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
이른 아침 일어나, 변함없이 새벽 운동을 다녀온 도욱은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인생가요 관련 기사들을 검색했다.
기사 검색은 홍보팀 직원으로 일할 때 매일 아침마다 하던 주요 업무여서 지금도 버릇처럼 기사를 찾아보곤 했다.
메인 기사 아래로 각 언론에서 몇 개나 기사를 파생시켰는지, 그리고 각 기사의 조회수, 추천수, 댓글수 등을 보면 대중들의 반응을 파악하기 용이했다.
물론 무슨 기사가 나도 안 좋은 댓글을 다는 이가 있었고, 그런 악플러에게 분위기를 장악당한 기사에는 댓글도 전체적으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기사와 실제로 반응이 안 좋은 기사 정도는 도욱이 충분히 분별 가능했다.
<데뷔 후 첫 1위, ‘케이케이’ 돌풍>
<3주 만에 1위를 차지한 신인 케이케이는 누구?>
<음원, 음반 모두 강자! 범상치 않은 신인!>
포털 연예 뉴스 카테고리에는 어제 있었던 주요 소식이 메인 기사로 떠 있었다. 다섯 개 정도의 메인 기사 중 하나가 케이케이의 인생가요 1위 소식이었다.
아래로 힛 엔터 마케팅팀에서 보낸 보도 자료를 참고한 케이케이 관련 기사들이 파생되고 있었다.
도욱은 그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기사를 클릭해 전문을 읽었다.
데뷔 후 3주 만의 1위로 말 그대로 특급 신인이라는 내용과 함께 스페셜 MC에 대한 칭찬이 들어 있는 기사였다.
도욱이 생각했다.
‘댓글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네.’
그리고 아래로 뜨는 연관 기사들을 훑었다. 인생가요 방송 사고에 관한 일이었다.
<인생가요 생방송 중 사고, 화면 정지...>
내용은 1위 발표를 기다리던 무대 MC석 쪽에 발생한 무대 장치 문제로 인해 VCR 영상이 멈춘 상태로 있다가 같은 영상이 한 번 더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날 무대 바닥이 함몰되어 무대 위에 있던 출연진이 당황하는 사이...-
사실 화면이 정지됐었던 것보다 무대 바닥 문제가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큰 문제였지만, 관련해서는 기사에서 크게 다뤄지고 있진 않았다.
‘하긴 어차피 큰일은 없었으니까······.’
방송이 끝난 후, 인생가요 측에서 설레임에게 사과를 하고, 도욱에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설레임이나 출연진들이 크게 놀란 것 외엔 다친 것도 아니니 그 정도로 일단락하면 될 문제이긴 했다.
<케이케이 1위, 1위 후보 계나리 태도 논란>
하지만 그 밑으로 연관 기사를 눌러보던 도욱이 눈을 찌푸렸다.
‘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