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떠오른 태양 (5) <1권 끝>
#떠오른 태양 (5)
***
월요일 아침.
신인개발팀 임성안 팀장은 오늘도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해 포춘 쿠키 뚜껑을 열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3월 둘째 주. 지금은 너무나도 봄이었다. 쿠키 안에는 가끔씩 이렇게 터무니없는 글귀가 들어 있곤 했다.
‘뭐 어쨌든 결실을 맺는다는 거겠지.’
나름대로 해석을 하며 임 팀장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오늘은 케이케이의 앨범이 오프라인 매장에 발매된 지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발매 후 일주일간의 앨범 판매 기록, 흔히들 말하는 국터차트 ‘초동’이 집계되는 시점이었다. 이는 케이케이의 스타트 라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지표였다.
이 차트 확인 및 분석이 신인개발팀의 마지막 케이케이와 관련된 공식 업무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앨범제작팀과 팬마케팅팀 내에서 케이케이를 전담하는 이들이 그룹을 키워 나가게 되고, 신인개발팀은 본래대로 연습생 발굴 및 개발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이게 뭐야?!”
국터차트 사이트에 들어가 메뉴를 클릭한 임 팀장이 눈을 찌푸렸다.
앨범이 발매된 이후 간간이 일간차트를 보며 반응이 좋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임성안 팀장은 여러 번 모니터를 확인하며 숫자를 다시 세기를 반복했다.
‘음악방송만 한 주 돌았을 뿐인데 4만 장?’
‘팬덤’이라 불릴 만한 확실한 팬 확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임성안 팀장의 생각이 맞았다. 케이케이는 이제 데뷔 일주일 차였지만, 이미 어느 정도 확실한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학생래퍼를 통해 케이케이의 두 멤버인 정윤기와 강도욱의 팬이 된 이들이 이미 많았고, 맨투맨 외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 아이돌이 없었던 터라 방황하고 있던 아이돌 팬들이 케이케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기대되는 신인이던 케이케이의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보다 더 괜찮아 팬들이 빠르게 붙은 것이다.
그때 신인개발팀 막내 안영미가 사무실로 들어서며 임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영미 씨, 케이케이 판매량 봤어?!”
“팀장님 확인하셨어요? 금요일 일간까지 봤을 때 2만 장 정도 됐······.”
요즘같이 음반 시장이 죽어 있는 상태에선 2만도 이미 대단한 수치였다. 그런데 주말 사이 하루에 만 장씩, 총 2만 장을 더 팔아치운 것이다.
“4만이야.”
“예?”
안영미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음원 순위는 오늘로 2위가 되어 있었다.
“이거 이 정도면······.”
조심스러운 말투로 안영미가 입을 열었다. 임 팀장은 안영미가 하려는 말을 곧장 알아차렸다.
“그래. 이 정도면 1위가 코앞이지.”
***
초동 집계를 전달 받은 멤버들이 놀라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오백호가 새로운 사실을 함께 알렸다.
“그리고 또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뭡니까?”
“뭔데요?! 와, 이제 형이 뭐 말하겠다고 하면 하나도 안 무서워, 막 기대돼!”
정윤기와 안형서가 나서서 물었다.
멤버들은 빈 회의실에 둘러 앉아 다음 주에 잡힌 라디오 녹음 때 돌릴 CD에 직접 사인을 하고 있었다.
‘잘 나올 줄은 알았지만 점점 더 상상 이상인걸.’
도욱은 생각하며 오백호가 할 말을 기다렸다.
“너희가 이번 주 인생가요 스페셜 MC고······.”
“그건 이미 알죠! 도욱이랑 밤마다 옛날 인생가요 방송 보면서 연습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설레임과 함께할 생각에 안형서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오백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1위 후보다!”
“네?”
“마, 말도 안 돼······.”
“뭐라고요, 오 실장님?”
각자 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석지훈이 오백호에게 되묻자 오백호는 다시 한 번 더 기쁜 사실을 말해주었다. 케이케이가 1위 후보라고.
현재 음악 방송 프로그램들은 파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음원 사이트들의 등장으로 더는 팬이 아닌 이상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없었고, 음반으로 집계하는 순위 방식에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래서 방송사들은 대책으로 순위 집계방식에 음반 판매량 비율을 줄이고 음원을 포함시켰지만 여전히 대형 기획사 아이돌들에게 순위를 후하게 준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점점 떨어져 바닥을 기는 시청률까지.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만한 포맷을 짜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방송사들은 급기야 순위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방송사의 이권 문제 등으로 얼마 안 가 부활하지만, 현재로선 공중파 음악방송 중 순위를 매기는 곳은 인생가요. 단 한 곳뿐이다!’
도욱은 사인을 하려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곤 기쁨을 곱씹었다.
‘1위 후보. 신인이 거의 2주 안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성과야.’
케이케이는 도욱의 바람대로 차근차근,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성큼성큼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도욱은 쥐고 있는 펜을 더욱 꼭 손에 쥐며 다시금 맨투맨을 꺾고 일어설 결의를 다졌다.
***
인생가요 방송 당일.
다른 음악방송 스케줄보다 도욱과 안형서는 배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리허설도 무대 리허설, MC 리허설 두 번에 걸쳐 진행해야 했고, 의상도 계속해서 갈아입어야 했다.
“두 분 처음 같지 않아요~! 정말 잘하시는데요?”
“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레임 씨.”
MC 엔딩 멘트까지 리허설을 모두 마친 후, 설레임이 도욱과 안형서에게 말했다. 아직 비어있는 무대 앞쪽 관객석에는 오백호와 설레임의 매니저가 각각 화면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또 케이케이 멤버들도 관객석 구석에 앉아 같은 멤버인 둘의 MC 연습 현장을 지켜보았다.
안형서가 몸을 꼬며 답하자 설레임이 큐 카드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잘한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사실 안형서는 긴장했기 때문인지 조금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설레임의 칭찬은 안형서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인생가요 피디인 현주혁이 무대 위로 올라 생방송 전 마지막 디렉팅을 봤다.
“그래. 다들 첫 호흡치고 꽤 좋아! 엔딩 할 때 셋이 한가운데 화면에 같이 잡혀야 하니까 딱 좀 붙어. 여기 테이프 붙여놓은 자리에 딱 레임이가 서면, 양옆으로 둘이 서고. 똑바로 기억해둬.”
“네. 알겠습니다.”
어물거리지도 않고 바로바로 깍듯하게 답하는 강도욱이 현주혁 피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멘트도 한 번 씹지 않고 발음도 아주 정확해서 정말로 차기 MC로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1위 후보들이니까 이쪽 MC 옆으로 서 있으면 돼. 알겠어?”
마침 관객석에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보고 현 피디가 외쳤다.
인생가요 1위 후보가 발표된 이후, 멤버들은 스태프들의 휴대폰을 빌리고, 또 온 가족의 명의를 빌려 인생가요 인터넷 투표에 참여 중이었다. 투표를 하고 있던 멤버들이 깜짝 놀라선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네!”
케이케이 멤버들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스튜디오 안에 울렸다.
“아, 오 실장. 뭘 또 애들 군기를 이렇게 잡아놨어?”
현 피디가 나름 기분이 좋았는지 실실 쪼개며 묻자, 오백호도 자신이 애들 군기 좀 잡았다고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아직도 1위 후보가 자신들인 것이 얼떨떨한 채로 케이케이는 방송에 들어갔다. 일이 너무 잘되기만 하니까 도욱은 불안할 정도였다.
스페셜 MC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설레임의 오프닝 멘트로 방송이 시작됐다.
“네~! 오늘 1위 후보곡을 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떤 곡이죠, 도욱 씨?”
“먼저 2주 연속 1위를 하며 봄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솔로 여가수 계나리의 <봄비>입니다!”
도욱은 평소의 목소리와 달리 한 톤 높여 멘트를 했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은 경쾌한 목소리 톤에 헤드폰으로 방송을 체크하고 있는 현 피디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도욱은 계나리를 소개하며 생각했다.
‘계나리? 봄비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인기곡을 내지 못했다. 1위 후보가 달라진 상태라 누가 1위가 될지까지도 알 수 없고··· 그런데 계나리 관련해서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고, 생방송 도중이어서 깊이 생각할 순 없었다. 설레임이 멘트를 이었다.
“정말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곡이죠~! 그리고 이에 맞서는 1위 후보곡은 제 옆에 계신 분들! 슈퍼 신인 케이케이의 입니다!”
“모두 오늘의 1위 기대해주시고요! 첫 무대입니다!”
안형서가 윙크를 하며 설레임의 멘트를 받아쳤다. 생방송에 들어가자 오히려 제대로 끼를 발휘하고 있었다.
윙크하는 애 누구냐는 인터넷 반응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케이케이와 계나리까지 무사히 무대를 마치자 모든 가수들의 무대가 끝이 났다. 중간에 안형서가 멘트를 더듬긴 했지만, 오늘 스페셜 MC는 큰 실수 없이 훌륭하게 MC를 본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1위 후보 발표뿐이었다.
전 출연진들이 1위 후보 발표를 보기 위해 무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설레임은 프로답게 리허설 때 테이프가 표시돼 있었던 곳 위에 정확히 섰다. 그리고 양옆에 안형서와 도욱이 붙어 섰다. 안형서의 옆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서고, 도욱의 옆에 계나리가 섰다.
도욱은 정중앙에 놓인 1번 카메라를 보며 다음 주 예고 VCR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 사고!’
섬광처럼 언젠가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케이케이의 약진으로 인해 조금씩 상황이 달라져 있어 눈치채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상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3월 둘째 주 인생가요에서는 사고가 발생한다!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