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4화 (24/225)

# 24

떠오른 태양 (4)

#떠오른 태양 (4)

***

숙소에서 도욱을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은 도욱이 도착하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묻기 바빴다. 오백호에게 물어도 될 일이었지만, 어쩐지 두려운 마음에 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수철 피디와 함께 곡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에 멤버들은 놀라움에 입을 벌렸다.

부러워할 것도 없었다. 도욱의 너무 다른 레벨에 멤버들은 고개만 저었을 뿐이었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음악 방송을 하느라 케이케이 멤버들과 케이케이를 담당한 스태프들 모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공중파 3사를 비롯해 케이블 방송국의 음악 방송까지 합하면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음악 방송이 있었다.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샵에 들러 머리를 하고, 오전과 오후 내내 리허설을 하며 대기를 하다가 저녁에 방송을 하는 스케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Sorry but I Love You’의 음원 순위는 매일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었다.

길거리에선 이제 심심치 않게 ‘Sorry but I Love You’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매일 사무실과 숙소, 방송국만 다니는 멤버들이 그러한 반응을 실감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었다. 멤버들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음원 순위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일요일.

모든 방송사에서의 데뷔 무대를 마치고, ‘인생가요’의 두 번째 무대를 서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케이케이는 다른 가수들과 대기실을 나눠 쓰며 무대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두 번째 오는 곳이라고 첫날만큼 긴장한 멤버들은 없었다. 김원은 구석 의자에서 졸고 있기까지 했다.

“이제 몇 위예요?”

안형서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본 후, 코디를 붙잡고 물었다. 시간마다 물어오는 안형서에 코디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외쳤다.

“4위, 4위! 4위라고!”

“누나는 안 기뻐요? 왜 화를 내고 그래.”

안형서가 투덜대자 옆에 앉아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박태형이 희미하게 웃었다.

“안형서, 강도욱!!!”

인생가요 담당 피디를 만나러 나갔던 오백호가 들어오며 안형서와 도욱을 불렀다. 오백호가 가끔씩 무척 화가 나거나, 중요한 일을 전할 때 내는 기백 넘치는, 기합 같은 소리로 둘을 부르자 안형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네?”

한편에 앉아서 용수철과의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도욱의 시선도 오백호를 향했다.

“너희 둘 준비 좀 해야겠다!”

그리고 오백호의 뒤로 국민여동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생가요의 MC 중 한 명인 설레임이 고개를 내밀며 들어왔다. 현재로선 케이케이와 비교할 수도 없는 인기 스타의 대기실 방문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SVS 방송국 인생가요 회의실.

본래 설레임과 호흡을 맞추던 남자 MC가 갑작스러운 해외 스케줄로 다음 주 녹화 불참이 확정되자 인생가요 제작진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당장 다음 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맨투맨만 활동 중이었어도 서강준을 쓰면 딱인데 말이야! 우리 레임이랑 세워 놓으면 딱일 것 같지 않아? 딱!”

인생가요 피디가 한탄하듯 말했다. 웬만한 아이돌이 활동을 쉬고 있는 요즘은 아이돌 비수기였다. 마땅한 인물을 찾기 힘들었다.

최근 몇 주간의 출연진 목록과 신인 남자 배우들 목록을 찾던 작가진 중 하나가 눈치를 보다 피디에게 스페셜 MC로 케이케이는 어떻겠냐고 물었다. 케이케이의 방송 반응이나 음원 순위 상승세가 놀라울 정도였다.

“케이케이? 완전 초짜 아냐?”

“쌩신인이긴 한데 요 며칠 반응이 워낙 좋아서. 크게 될 것 같아요. 어중간하게 인기 없는 애들 쓰느니 아예 신선한 얼굴 보여주고, 미리 화제성 끌어 놔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으음······.”

마침 케이케이의 데뷔 무대를 리허설부터 지켜보며 페이스부터 실력까지 괜찮은 그룹이라고 생각했던 인생가요 피디였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이제 갓 데뷔해 MC로서의 능력이 하나도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 멤버를 MC로 세울 순 없는 일이었다.

“말하는 거라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것밖에 들은 게 없는데. 그런 애들을 생방에 세워서 되겠어? 김 작가. 이거 생방이야, 생방.”

“어? 피디님, 학생래퍼 영상 안 보셨어요?”

피디의 말에 작가진 중 다른 하나가 물었다. 그녀는 이미 학생래퍼를 통해 반쯤은 케이케이의 팬이 된 상태였다.

“학생래퍼? 그 팀에 학생래퍼 출신이 있었나?”

“네. 학생래퍼 출신도 있고, 그 인터뷰 영상 봐보세요. 강도욱이라는 애가 말을 엄청 잘해요. 나중에 인기 많아지면 정규 MC를 시켜도 될 정도예요.”

작가들이 칭찬하자 피디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작가 중 하나가 얼른 도욱의 인터뷰 영상 풀버전을 인터넷에서 찾아 피디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다 본 피디가 곧장 물었다.

“얘네 회사 어디지?”

“힛 엔터요.”

“아, 오 실장네 애들? 그럼 또 믿을 만하지, 딱. 이따 얘네도 오지? 오면 바로 오 실장 불러서 조율하자. 아무리 그래도 한 명만 세우면 불안하니까 하나 더 잘하는 애 끼워서 MC 세 명으로 가.”

“예, 알겠습니다!”

“너희가 불러서 연습도 좀 시키고. 사고 안 나게.”

“네!”

그렇게 인생가요 다음 주 스페셜 MC로 케이케이 멤버가 결정되었다.

***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오백호가 기쁜 마음으로 한달음에 멤버들이 있는 케이케이의 대기실로 향했다. 오백호는 대기실 앞에서 설레임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서··· 설레임?”

설레임의 등장에 안형서는 저도 모르게 설레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난주 무대 정말 잘 봤어요~!”

“아···! 안녕하세요.”

말끝마다 웃음 이모티콘이라도 달린 것 같은 설레임의 발랄한 인사에 안형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낯을 가리는 박태형은 아예 입만 벙긋거렸다. 각자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모여들어 어색하게 설레임에게 인사를 했다.

같은 소속사가 아닌 연예인과 일방적인 인사가 아닌 쌍방 인사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것도 국민여동생 설레임이었다.

설레임은 이제 열아홉이었다. 작년에 드라마 <오직 한 사람>의 여자주인공 학생시절 역할로 데뷔했는데 4화까지밖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탁월한 눈물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설레임은 옆집 여동생 같은 친근한 이미지이면서도, 동시에 옆집에선 절대 찾을 수 없는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발랄한 실제 성격까지 더해져 10대 남학생부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사람 절반이 설레임의 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저 귀여운 국민여동생이지만 십 년 후에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성공해 칸까지 진출하게 된다.’

도욱은 설레임의 미래를 보고 있었다. 지금에야 예능 프로그램 MC도 보지만, 몇 년만 지나도 대작 드라마나 충무로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어지는 인물이었다.

갑작스러운 설레임의 등장에 얼떨떨해하는 멤버들을 향해 오백호가 설명했다.

“도욱아, 형서야. 너희 다음 주에 스페셜 MC를 하기로 됐다. 여기 레임 양이랑 같이 하는 거니까 인사들 해둬. 레임 양, 이쪽이 안형서고 이쪽은 강도욱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도욱이 정중하게 설레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는 앞머리를 내리고 다니지만, 현재 도욱은 무대용으로 머리를 모두 넘기고 있는 상태였다.

드러난 반듯한 이마와 콧날, 선을 그리는 입매까지 완벽한 모습으로 도욱이 인사하자 설레임조차 조금 얼굴을 붉혔다. 방송가에서 잘생긴 얼굴은 충분히 봐 왔는데도 뭔가 달랐다.

도욱에겐 도욱만의 깊이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실 지난번 케이케이의 무대를 MC 석에서 지켜보면서도 도욱이 참 눈에 들어온다고 생각했던 설레임이었다.

“···그런데 스페셜 MC요?”

도욱이 오백호를 향해 물었다.

“그래. 당장 다음 주인데 잠깐밖에 연습할 시간 없을 거야. 그래도 미리미리 얼굴 정도 익혀 둬야 같이 멘트 맞추기 좋을 것 같아서······ 사실 우리가 레임 양 대기실로 가는 게 맞는 건데.”

오백호가 설레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인생가요 피디에게 스페셜 MC 소식을 들은 오백호는 곧장 회사 측과 상의해, 인생가요 피디가 지정한 멤버인 강도욱과 함께 MC로 내보낼 나머지 멤버를 정했다.

길게 상의할 것도 없이 오백호의 의견대로 끼가 많은 안형서가 MC를 맡을 멤버가 되었다.

오백호가 둘을 데리고 설렘임에게 인사를 하러 가자고 하려던 차에 설레임을 대기실 앞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백호의 말에 설레임이 웃으며 덧붙였다.

“안 그래도 인사하러 오실 것 같아서요~! 여러 명이 움직이는 것보단 한 명인 제가 움직이는 게 편하잖아요.”

외모도 외모지만 심성까지 정말로 고운 소녀였다. 모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다음 주에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이쪽에서 해야 될 말이었다. 오백호가 손사래를 치며 답하려는데 대기실 문이 다시 한 번 열리며 오백호나 용수철 뺨칠 우락부락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설레임을 데리러 온 매니저였다.

“설레임 씨, 팬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매니저와 함께 돌아가는 설레임의 등 뒤에 대고 안형서가 외쳤다. 정윤기가 그런 안형서를 창피하다고 말렸다.

“와우, 천사, 쉬즈 어 에인~절!”

안형서 하나만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김원이 방방 뛰며 설레임을 찬양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나 진짜 설레임 팬이거든!”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긴 하네요.”

안형서의 말에 석지훈까지도 동조했다. 정윤기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술렁이는 멤버들을 오백호가 단번에 진압했다.

“너희!”

그 뒤에 할 말은 뻔했다. 오백호는 숨 쉬듯 ‘휴대폰, 여자, 술’은 아이돌 활동 동안 앉으나 서나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왔었다. 특히 신인 아이돌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멤버들은 ‘너희!’라는 말 한마디에도 뒷말을 다 들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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