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떠오른 태양 (3)
#떠오른 태양 (3)
“10위.”
하루 만에 음원 순위가 10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말없이 놀라기도 잠깐, 이번엔 모든 사람들이 용수철을 향해 박수를 터뜨렸다.
“너무 들뜨지는 말고, 이제 시작이니까요. 다들.”
자리를 정리하며 신인개발팀 임성안 팀장이 말했다. 흥겨운 분위기를 깨려는 의도보다도 걱정과 격려가 담긴 말이었다.
다들 그 뜻을 알아서 진심으로 임 팀장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도욱은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10위. 내일부터 전국에 풀릴 음반 판매도 기대해볼 만하겠다.’
MP3 플레이어가 유행하고, 음원 사이트가 생겨나면서 음반 판매량은 예전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제는 스마트폰까지 생겨 앨범을 직접 듣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 판매량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음반 판매량은 실구매력 있는 팬덤의 크기를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또 음반 판매 수익은 유통사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음원과는 달리 저작권자에게 가장 많은 정산액이 돌아가는 구조이기도 해서 금전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일단 이번 주는 전 방송사의 음악 방송들을 돌게 될 건데······. 사인 씨디 돌리고 해야 하니까, 내일 사인할 준비들 해.”
오백호의 사인이라는 말에 멤버들이 입을 벌렸다. 박태형이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사인 없어서 그래?”
얼어 있는 박태형에게 도욱이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안형서가 사인 만드는 것은 금방이니 자신만 믿으라며 자신만만해했다. 다른 멤버들은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사인 하나 정도는 만들어 둔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막상 도욱 자신도 사인이 아직 없었다. 사인을 만들 생각을 하니 뭔가 ‘연예인’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팀 소개나 앨범 소개 멘트 나눠준 건 각자 잘 숙지했죠?”
앞으로의 라디오 및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염두에 둔 임 팀장의 물음에 멤버들이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케이는 King’s Key의 약자로······. 세대를 선도하는 보이 힙합 그룹······. 앨범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아티스트 그룹이기도······.”
팀명과 함께 전체적인 팀 색깔 소개 등의 멘트를 맡은 정윤기가 강박적으로 중얼거렸다.
“용감한외동 프로듀서님이 작곡하신······.”
타이틀곡 소개를 맡은 안형서도 자판기처럼 외운 멘트를 뱉어냈다. 팀장들과 오 실장이 흡족해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멘트 외우기를 마칠 수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연습실을 나설 때였다. 심준 팀장이 도욱을 따로 불렀다.
“도욱 군, 잠시 나 좀 볼까?”
“저 말씀이십니까?”
“어. 같이 용 피디님 작업실에 올라가서 대화 좀 나누자.”
도욱이 주변을 둘러보자 오 실장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인 듯 다른 멤버들을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는 다른 멤버들만 궁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최근 사이에 벌어진 일 중에서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도욱이 심 팀장을 따라 이동하는 걸 보며 멤버들은 호기심과 함께 불안함을 느꼈다.
***
본래는 회사 공용 작업실이었으나, 이제는 용수철의 개인 작업실이 된 곳으로 세 사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몬스터의 멤버 권지형이 있었다.
권지형은 노란색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작업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곤 권지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권지형이 왜 여기에?’
도욱은 반사적으로 선배인 권지형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같은 소속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는 앨범 활동을 접고 휴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둘이 처음 보지? 여기는 알다시피 몬스터 멤버 지형이고.”
심 팀장의 소개에 도욱이 다시 한 번 제대로 권지형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네가 그 유명한 신인인가? 잘생겼네. 듣던 대로.”
“예?”
권지형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심 팀장이 웃으며 도욱을 소개했다.
“내가 워낙 도욱 군 자랑을 많이 해놔서 그래. 여긴 케이케이 도욱이.”
몬스터는 벌써 4집을 낸, 아이돌로서는 중견 가수급이었다. 권지형의 나이 스물다섯. 젊은 나이였지만, 이 역시 아이돌로서는 젊지만은 않은 나이였다.
권지형이 장난스럽게 내민 손을 도욱이 잡았다.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을 심 팀장이 자리로 이끌었다.
권지형과 도욱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용수철과 심준 팀장이 앉았다.
“용 피디님이 얼마 전부터 몬스터 5집 앨범 준비 중이시거든.”
심 팀장의 설명에 그제야 도욱은 왜 권지형이 용수철의 작업실에 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권지형은 몬스터의 리더로 몬스터 멤버들 중 유일하게 작곡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에 지형이가 쓴 곡이 앨범 수록곡이 될 거야. 편곡은 피디님이 하시겠지만.”
“아···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도욱이 진심으로 권지형을 칭찬했다.
“대단하긴. 너도 작곡 할 줄 안다며? 용 피디님이 칭찬하시던데.”
권지형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권지형은 도욱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이제 겨우 열아홉. 권지형은 자신이 열아홉일 때를 생각해봤다. 그땐 데뷔 준비에 급급했고, 활동할 땐 활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3집 활동을 하고 나서야 작곡에 관심이 생긴 권지형이었다.
화려한 것에 정신이 팔리기 쉬운 열아홉. 궁극적으로야 음악인으로서 작곡만 한 분야가 없지만, 남들한테 드러나는 분야도 아닌 ‘작곡’에 도욱이 관심을 갖는다는 게 권지형으로선 흥미롭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할 줄 안다고 하긴 부끄럽습니다. 이제 배우는 초보 단계예요.”
“초보라기엔 벌써 곡도 썼잖아요. 도욱 학생, 센스가 대단하니까 더 빠르게 배울 거예요.”
겸손한 도욱의 답에 용수철이 나서서 도욱을 격려했다.
김숨에게 배우면서 써 놓은 연습곡이 있었다. 김숨에게 들려주자 그녀는 무척이나 놀라며 이 정도면 웬만한 신인 작곡가의 곡보다도 나을 것 같다고 했지만, 도욱은 아직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더 조언을 받고자 용수철에게 바쁜 와중에도 작곡한 곡을 메일을 보내놨었다. 그 메일에 대한 이렇다 할 피드백이 없어 용수철이 너무 바쁘거나, 무어라 코멘트 해줄 정도가 되지 않는 거라 여겼었는데 이렇게 용수철이 언급할 줄은 몰랐다.
도욱이 고개를 저으려는데 심준 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래. 그래서 부른 거야, 도욱 군. 외부에서 작곡을 배우기엔 이제 활동하느라 힘들잖아?”
“아···. 아무래도 그렇죠.”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도욱도 고민이었다. 활동 기간에는 따로 스케줄을 빼 레슨을 받으러 가긴 어려울 것 같았다.
“여기 용 피디님이랑 같이 작업해 보는 건 어때? 작곡도 더 배우고 겸사겸사.”
도욱은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심 팀장과 용수철 피디를 번갈아봤다. 권지형이 휘파람을 불었다.
“제가 폐가 되진 않을까요?”
“뭐······. 나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가르치진 못할 거고. 그냥 같이 얘기 나누면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요······.”
용수철이 어쩐지 쑥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어물어물한 말투였다.
혼자만 작업하던 용수철은 도욱이 준 아이디어로 곡에 대해 이야기하고, 곡에 대한 영감을 나누는 일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때문에 심 팀장이 도욱에게 작곡 선생님을 붙여줄까 한다는 얘기에 선뜻 자신이 먼저 나선 것이었다.
또 심 팀장에게 도욱이 작곡 쪽에 단지 관심만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곡을 작곡할 능력도 있다는 걸 말한 것도 용수철이었다.
“저야 영광입니다.”
그렇게 도욱은 활동 중 틈틈이 시간을 내어 용수철 프로듀서와 함께 곡 작업을 하게 되었다.
용수철과 권지형은 남은 작업을 하기로 하고, 도욱은 심 팀장과 함께 작업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탄 후에야 도욱은 뒤늦은 깨달음에 아, 하고 탄식했다.
“왜 그래?”
심준 팀장이 의아해하자 도욱은 아닙니다, 하고 정중히 답했다. 별거 아닌 일이기는 했다.
‘권지형 사인을 받았어야 하는데.’
사촌 누나인 강서현이 뒤늦게 생각난 탓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용수철 피디의 작업실에서 종종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여러모로 자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아, 심 팀장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도욱이 심준 팀장을 붙잡았다. 심준 팀장이 흔쾌히 무엇이든 물으라고 답했다.
“혹시 저희 응원 도구 같은 건 제작 안 되나 해서요.”
“······응원 도구?”
“네.”
오늘 데뷔 무대에 올라 케이케이를 응원하는 팬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직까진 응원 도구로 각자의 팬들은 팀별로 색이 다른 풍선을 들거나 일회용 야광봉을 흔드는 게 전부였다. 직접 제작해온 플래카드와 현수막도 공연에 많이 사용되긴 했지만 제각각이라 통일감을 주는 응원 도구는 아니었다.
‘케이케이만의 응원 도구를 만들면 케이케이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특별함이 부여된다. 특권과 같은 느낌으로······.’
그저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풍선이나 일회용 야광봉이 아닌, 회사에서 직접 제작한 고급 응원 도구를 만들어 제공하면, 팬들은 아이돌 팬덤 내에서 다른 팬덤과는 다른 특별한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케이케이의 이미지 향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거고······.’
뿐만 아니었다. 홍보팀에 있을 때, 홍보팀 내에서도 큰 사업 중 하나였던 게 바로 ‘굿즈’ 사업이었다. 응원 도구를 제작하는 건 그러한 굿즈 사업의 시작이 될 터였다.
“글쎄? 그건 팬-마케팅팀 일이라. 아직 풍선 색도 안 정해졌으니까. 데뷔한 날부터 응원 도구 생각부터 하는 거야? 좋아, 좋아. 그런 미래지향적인 생각!”
이미 도욱에 대해서라면 긍정적인 해석만 하게 된 심준 팀장이 도욱의 어깨를 두드렸다.
“관련해서 생각한 게 있어서요. 괜찮으시면 나중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음. 어차피 팬카페 개설하고 그러면서 그 팀 담당자 만날 일 있긴 할 거야. 내가 팬-마케팅팀 팀장한테도 미리 말해둘게.”
“아,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는 무슨.”
심준 팀장은 다시 한 번 도욱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생각에 놀라며 도욱을 향해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