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2화 (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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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 태양 (2)

#떠오른 태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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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가요 본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새벽부터 샵에 들러 머리를 하고, 루카스와 루카스의 조수들로 이루어진 스타일리스트팀으로부터 의상을 받아 입은 채 두 번의 리허설을 마친 멤버들은 약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물론 리허설은 훌륭하게 해냈다. 인생가요 PD부터 시작해서 무대 설치를 담당하는 스태프까지 케이케이의 무대를 본 이들은 모두 ‘괴물 신인’의 탄생을 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이 패닉 상태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너무 떨렸기 때문이었다.

도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신의 나이가 아무리 서른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 날짜를 살아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도욱의 생은 처음이었다. 무대에 서는 것 말이다.

“구호를 정하는 건 어떨까요.”

주목받는 신인이라지만, 신인은 신인이었다. 케이케이는 이름 모를 밴드와 또 다른 신인 여자 아이돌 그룹과 함께 대기실 하나를 나눠 쓰고 있었다.

간이 칸막이로 막아 놓은 탓에 비좁은 공간을 멤버 여섯과 회사 스태프들이 써야만 했다. 덕분에 도욱이 작은 목소리로 내놓은 의견까지 모두가 듣고는 귀를 세웠다.

“구호?”

리더로 자리 잡은 정윤기가 되물었다.

무대 올라가기 전 파이팅의 의미로 외치는 구호는 그 그룹의 특색에 따라 결정되곤 했다. 처음부터 모든 팀이 구호를 가진 건 아니었다. 한 아이돌 그룹이 독특한 구호를 큰 소리로 방송가 내에서 외치고 다니면서 그 그룹과 함께 구호까지 유명해졌고, 팀 색깔을 보여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되기도 했다.

방송을 하기 전 구호를 외쳐주면 방송 스태프들 머릿속에 그룹명을 남기기 좋기도 했다. 도욱이 긴장감을 풀 방법을 생각하다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좋다, 좋아!”

안형서가 신나서 구호를 정하자며 의견을 내보라고 닦달했다. 의상을 정리하고 있던 루카스에게까지 안형서는 아이디어를 종용했다.

결국 구호는 김원이 낸 아이디어 중 하나로 정해졌다.

***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케이케이의 무대는 방송의 끝무렵이었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스태프의 호명에 멤버들은 오백호를 따라 무대로 연결되는 복도로 들어섰다. 멤버들이 스태프에게 몸을 맡긴 채 마이크 등을 체크하고 있을 때, 조금 전 무대를 마친 신인 여자 아이돌 그룹이 똑같은 무대 의상을 입고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와우.”

예쁘장한 여자 멤버를 보고 작게 감탄사를 내뱉던 김원이 오백호의 무서운 기세에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자유분방한 힙합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기존 명품을 활용한 옷이었지만, 루카스의 스타일링으로 재해석되어 새로워 보였다.

“리허설 때처럼만 해라, 얘들아.”

오백호의 말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 직전, 여섯 명이 손을 모은 채 외쳤다.

“아이 케이, 유 케이! 가자, 케이케이!”

무대로 달려 나가는 여섯 명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힘찼다.

그리고 무대에 선 여섯 명은 입을 벌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케이케이의 등장에 어마어마한 함성이 고막을 울렸다.

인터넷으로 반응을 접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자신들의 무대를 기다리는 관객이 실재한다는 것에 멤버들은 정신을 놓칠 뻔했다.

쏟아지는 함성과 조명, 그 속에서 ‘Sorry but I Love You’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용한 소나타의 선율이 무대 위를 가르자 어떤 경이로움까지 스며들었다. ‘원, 투, 쓰리’ 하고 박자를 맞추는 정윤기의 랩과 함께 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무대였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안형서가 고음을 내지르는 부분에서 안형서는 자신을 향해 모이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욱의 파트에 이르자 관객들은 이미 음원으로 듣고 온 ‘Sorry but I Love You’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아······!’

그 순간 도욱에게 어떤 전율이 일었다. 도욱은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지금 이 순간이 아주 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 여전히 하곤 했다. 꿈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좋은 꿈이었다.

절대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꿈이 이루어지는 꿈. 도욱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성공적. 성공적이라는 말밖엔 할 수 없는 데뷔 무대였다.

오백호는 무대 아래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 생중계 페이지에서 실시간 반응을 살폈다. 칭찬 일색이었다. 도욱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뜨거워지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백호는 포털사이트의 기사를 확인했다. 아직 무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배포된 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인터넷 기사가 벌써 떠 있었다. 댓글들의 반응도 무척 좋았다.

마지막으로 음원 사이트를 한 번 더 확인했다.

‘15위?’

방송 효과는 아직인 상황이었다. 자정부터 온전히 뮤직비디오 홍보 효과와 노래만의 힘으로 15위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오백호는 심상찮은 음원 차트의 기운을 느끼며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보았다. 최선을 다한 멤버들은 모두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수고했어. 잘했다. 얼른 대기실 들어가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오백호의 격려를 받으며 스태프들에게 배운 대로 감사 인사를 하며 대기실로 들어가던 그때였다.

도욱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맨투맨의 멤버들과 서강준이 도욱의 눈앞에 있었다.

서강준.

맨투맨으로 데뷔하면서 서강준은 ‘서준’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연기자로 데뷔하던 때부터 서강준이라는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때문에 후에는 서강준이라는 이름이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데뷔를 준비하면서도 언젠가 만날 것이라 생각해 왔고, 당장 지난주 인생가요 MC들의 멘트만으로도 충분히 지금의 만남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어두운 무대 아래, 도욱과 서강준의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다음 차례로 맨투맨이 등장할 거라는 기대감만으로 방청석에서는 케이케이가 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케이케이는 두어 달 정도뿐이었지만, 가요계에서 맨투맨의 후배였다. 심지어 연도로 따지면 한 해 뒤에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다른 스태프들과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했듯 케이케이 멤버들이 맨투맨 멤버들과 스태프 쪽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며 지나갔다.

도욱도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이렇게 지나치기만 하지만, 앞으로 자주 부딪히게 될 거다.’

당장이라도 서강준을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기도 했다. 더는 예전의 화장실 바닥에서 주저앉아 울던 ‘김보명’이 아니었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도욱은 주먹을 꽉 쥔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맨투맨은 전형적인 신비주의 위주의 그룹이었다. 각각 멤버들은 절대적으로 정해진 컨셉 안에서 움직였다.

아라 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기획사의 기획력이 한데 모아진 그룹이었고, 아이돌 팬들이 원하는 이상향의 집결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맨투맨은 신인이었지만, 신인이라고 불리기 민망할 만큼의 팬덤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그 중심이 되는 서강준은 차가우면서도 도시적인 외모로 더욱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손에 닿지도 않을 천상 연예인인 이미지였다.

신비주의 컨셉으로 싸매고 있는 데다 예명까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진 서강준의 학교나 가족사항 같은 개인 정보들이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같은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도 있을 테니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서강준의 학교를 알아내면, 기억이 찢겨 나갔더라도 이 세계에서의 김보명을 찾는 것이 수월해지겠지.’

도욱은 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슴이 떨리는 걸 느꼈다.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이전에도 서강준은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자가 나뿐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쉽게 무마되고 말았지. 서강준 아버지의 힘, 기획사의 힘, 그리고 이미 서강준을 좋아해 버려서 그럴 거라 믿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에 글을 올렸던 작성자는 오히려 무고죄와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뻔했다. 그때 도욱은 또 한 번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무력감을 다시는 느끼지 않으려면 도욱도 힘을 가져야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할 참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서강준이 높은 곳에 올라가게 내버려둘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야 더 제대로 벌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대기실로 들어가는 케이케이 멤버들, 그리도 맨 뒤의 도욱을 보던 서강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작게 욕을 지껄였다.

“뭐야 저 새끼······?”

“왜 그래, 준아!”

서강준의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놀라서 물었다. 매니저는 서강준의 입단속을 하려 매일같이 전전긍긍이었다.

서 이사의 특별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맨투맨의 매니저는 서강준을 거의 전담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아니. 눈깔이 기분 나쁜 새끼가 있잖아.”

“시··· 신경 쓰지 마! 얼른 무대 올라가야지!”

때마침 무대에 올라갈 타이밍이었다. 매니저가 다급한 손길로 서강준의 등을 떠밀었다.

***

“아악, 대박이다!”

안형서의 호들갑 가득한 외침에, 다른 때라면 조금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했을 정윤기였지만 기분이 좋은 건 정윤기도 마찬가지였다.

멤버들의 입꼬리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도착한 멤버들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케이케이의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나온 신인개발팀과 앨범제작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용수철 프로듀서도 자리에 함께했다.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우선, 오늘 방송된 무대를 함께 시청했다.

“와우, 나 쟤 본 적 있어!”

케이케이의 무대를 응원하는 현수막을 든 팬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을 때, 김원이 외쳤다. 기획사 앞에서 본 적 있는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팬이라며 안형서가 어깨를 으쓱하곤 뿌듯해했다.

무대를 본 뒤, 긴장한 탓에 어떤 것이 어색했는지 등 단점을 지적하는 시간도 가지긴 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고, 일단은 오늘의 기쁨을 나누는 데 주력했다.

조촐하게 제과점에서 사온 케이크를 다 같이 자르고 나눠 먹으며 사람들은 그동안 함께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형, 형! 이제 실시간 순위!”

안형서의 재촉에 오 실장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자정이 넘어가고 차트 순위가 바뀔 시간이었다.

“······!”

“뭔데, 몇 위인데 그래요?”

“그러게. 몇 위예요?”

신인개발팀 안영미까지 오백호의 답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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