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0화 (20/225)

# 20

전조 (2)

#전조 (2)

서른 명 참가자들의 무대는 빠르게 지나갔다. 각 무대가 끝나기 전에 관객들은 부여받은 리모컨을 통해 참가자들의 점수를 평가했다.

중간 중간 심사위원의 평가 멘트가 감초처럼 더해졌고, 이색적인 참가자들의 인터뷰도 진행됐다.

그렇게 서른 명의 무대가 모두 끝나고, MC 허깨가 특별 공연을 소개하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마침내 시즌1 참가자 세 명이 무대에 올랐다.

카메라가 세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잡자 다들 함성을 내질렀다. 관객 대부분이 <학생 래퍼>의 팬이었기 때문에 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다. 특히 당연하게도 전 시즌 우승자의 인기가 높았다.

전 시즌 우승자의 경우, 얼마 전 솔로로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10, 20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길거리마다 전 시즌 우승자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정도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윤기 형! 헤이, 브로~!”

김원이 신나서 무대 위에 선 정윤기를 불렀다. 전주가 흘러나오기 직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정윤기를 부른 터라 김원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무대 바닥을 보며 서 있던 정윤기가 김원의 목소리를 듣고 김원과 도욱이 있는 쪽을 보았다. 긴장 같은 거 모른다더니 역시 본 무대에 서려니 떨리는 게 분명했다. 굳어 있던 입꼬리가 그나마 김원을 보고 풀렸는지 정윤기가 픽 웃는 게 보였다.

김원을 보고 웃은 정윤기가 그 옆의 도욱과 눈이 마주쳤다. 도욱이 응원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정윤기도 알아챘는지 마주 끄덕였다.

곧 조명이 켜지고 합동 무대가 시작되었다.

원래 준비했던 한 명이 비는 무대였지만, 정윤기는 거뜬히 빈 자리를 채웠다. 원래도 합동으로 공연을 해 보았던 곡이라 어색함도 없었다.

예선 무대의 쟁쟁한 참가자에 엄지를 세운 관객들이었지만, 역시 전 시즌에 이미 경쟁을 거쳐 TOP 4 안에 들었고, 이후에도 노력한 세 사람의 공연을 보고 나자 무언가 확실히 나은 느낌을 받았다.

그다음 무대가 곧바로 정윤기의 솔로 공연이었다. 두 사람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 자신의 공연을 준비할 동안 정윤기를 곧장 공연을 진행해야 했다. 아무래도 두 사람보단 순위가 낮았던 정윤기라 순서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정윤기는 이전 무대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자신의 랩을 시작했다.

정윤기가 선택한 건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의 곡이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의 곡이기도 했고, 청춘의 고민을 담은 곡이라 <학생 래퍼> 무대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오 실장과 상의해 선택한 곡이었다.

물론 테크닉적으로는 엄청나게 빠른 래핑을 소화해야 하는 파트가 중간에 섞여있는 터라 방송 때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도 함께였다.

정윤기는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손바닥에서 땀이 새어나오는 듯했다.

데뷔 직전, 자신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라는 것을 정윤기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쩐다! 개쩔었다!”

“쟤 누구야?!”

“지난 시즌 정윤기잖아!”

“정윤기가 저렇게 잘했나? 미쳤는데?”

“이 정도면 완전 쇼유더머니 나가도 바르겠는데?”

정윤기의 무대가 끝나자 장내가 술렁였다. 정윤기도 최후의 4인에 든 만큼 실력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대가 시작되자 모두 정윤기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무대였다.

반주가 끝나는 것을 들으며 정윤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를 눈을 감고 느꼈다. <학생 래퍼> 마지막 공연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 이 느낌이다! 나를 보는 시선, 나를 향한 환호! 이걸 느끼려고, 더 큰 무대에 서고 싶어서 연습생을 시작했다.’

정윤기는 최대한 이 느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이후 반주가 모두 끝나자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술렁이며 정윤기를 칭찬하는 목소리에 김원과 도욱은 제 일처럼 뿌듯함을 느꼈다.

“와우······!”

김원이 입을 벌린 채 감탄사를 뱉었다. 자신과 매일 같이 연습해온 동료였지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윤기 형, 굿잡이네~ 완전!”

“하하. 그러게요.”

“빨리 나도 무대 올라가 보고 싶다. 너도 그렇지?!”

“······당연하죠.”

도욱은 정윤기의 무대를 본 김원이 어떠한 의지를 갖게 된 것을 지켜보았다. 정윤기의 무대는 큰 어려움 없이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데뷔를 앞둔 김원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 듯했다.

‘좋다. 정윤기는 역시 믿음직스러운 인물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고의 래퍼로 성장해나가겠지. 당장 가사 문제만 잘 해결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도욱이 생각하는 동안 준비된 공연이 모두 끝났다. MC 허깨의 엔딩 멘트를 들으며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장을 빠져 나왔다.

도욱의 생각은 기우일 뿐이었다. 더는 정윤기의 가사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무대에서 내려온 정윤기는 곧장 대기실로 달려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기도 전에 가방에 들고 다니는 노트와 펜을 꺼냈다.

“윤기야 잘했······.”

정윤기를 칭찬해주기 위해 다가갔던 오백호는 이내 입을 닫았다. 정윤기의 손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대에서 받은 기운과 영감을 정윤기는 노트에 쏟아내고 있었다. 손이 생각을 따라오지 못해 직직, 펜을 그으면서도 정윤기는 짜릿함에 웃고 있었다.

오백호는 정윤기가 집중할 수 있도록 정윤기의 마이크 및 의상을 체크하러 온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조용한 대기실에 정윤기가 발로 리듬을 맞추며 가사를 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

공연장을 나와 도욱과 김원은 타고 온 6인승 차량이 주차된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공연이 끝나 한 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상당했다. 인파 속에는 VJ 세 명 정도가 카메라를 나눠 들고 눈에 띄는 관람객들에게 예선과 공연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래퍼 둘로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건장한 체격의 학생도 있었다.

“오늘 참가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었나요?”

“둘로 형! 둘로 형! 랩신랩왕!”

카메라의 등장에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둘로 형을 외친 남학생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어···, 오늘 최고점을 받을 것 같은 참가자 말해주세요. 참가자요. 참가자 중에서.”

여자 VJ가 ‘참가자 중’에서 뽑으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VJ들의 질문은 세 가지 정도였다. 오늘 공연 후기,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 최고점을 받을 것 같은 참가자.

<학생 래퍼>는 점수제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합격자와 탈락자를 가르는 점수는 물론이고 매회 공연에서 누가 최고점을 받을지에 대한 예상도 관심이 뜨거웠다.

“둘로 형이··· 제 마음속의 최고이지만, 참가자 중에선 1번이······.”

남학생이 뽑은 건 역시 첫 번째 참가자였다.

다른 인터뷰 학생들도 대부분 기억에 남는 참가자로 1번 학생을 최고점으로 뽑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게 20번 참가자였다.

1번이 모든 대중이 좋아할 만한 랩을 구사했다면, 20번은 조금 음울한 기운을 뿜어냈다. 앞머리가 거의 눈을 가리고 있어 얼굴만 봐도 우울한 기분이 들 정도였는데 그가 하는 랩의 톤도 그랬다.

그러나 상반되게도 직접 써온 가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주와 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대중성과 떨어지긴 했어도 예술성 면에선 최고에 가까웠다.

최고점에 있어선 거의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1번을 선택했다. 20번을 말하려던 이들도 이내 자신의 선택이 너무 대중적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고민 때문에 1번을 말하게 됐다.

“백호 형, 윤기 형~ 늦네.”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주차장 입구 쪽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김원이 시간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정윤기가 대기실에서 가사를 쓰느라 늦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챙기고 나오느라 그럴 거예요.”

도욱이 지루함에 몸을 꼬는 김원을 달랬다.

그때 조금 전, 남학생을 인터뷰하던 여자 VJ가 도욱과 김원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학생! 혹시 인터뷰 괜찮아요?”

카메라를 들고 다가온 여자 VJ가 경쾌한 어조로 물었다. 김원의 귀가 쫑긋 서는 것처럼 흥미로운 상황에 반응했다. 동시에 주차장 쪽을 지나며 도욱을 힐끔거리던 여학생들이 대놓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인터뷰요?”

“네. 인터뷰 한 장면 따고 싶은데. 간단한 질문만 몇 개 할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꼭 해줬으면 좋겠네. 페이스가 워낙 좋아야지.”

도욱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VJ가 얼른 카메라를 들어 도욱의 얼굴을 화면에 잡았다.

VJ는 역시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화면을 보고 느꼈다. 옆에 선 김원도 나쁘지 않았다. 시선을 끌 만큼 잘생긴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준수한 외모였다.

‘백호 형에게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될 뻔했네. 하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까···. 어쨌든 잘됐다!’

사실 도욱이 매니저인 오백호에게 부탁했던 게 이 인터뷰였다.

어차피 인터뷰만 하고 편집될 수도 있겠지만, 관객 후기 인터뷰를 녹화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오백호는 잠시 생각하다 오케이를 했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어차피 방송 노출이 목표였으니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욱이 인터뷰로 말실수를 할 타입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흔쾌히 오케이 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오히려 자신보다도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것 같아 오백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그러나 진짜는 인터뷰 출연 자체가 아니었다. 그 내용도 포함이었다.

***

“일단 이름이 뭐예요?”

사실 이름까진 묻지 않아도 됐는데, VJ의 사심이 섞인 질문이었다. 괜히 이름이라도 알아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강도욱입니다.”

“이름까지 멋있네.”

VJ가 혼잣말처럼 진심을 내뱉고는 그다음 질문을 했다.

“오늘 참가자 중 기억에 남는 참가자 있어요?”

“음······. 20번이랑 26번이 기억에 남습니다.”

도욱은 일부러 모두가 언급한 1번 참가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1번이 우승 후보라는 건 오늘 공연을 본 모두가 느끼는 바였다.

26번이라는 말에 VJ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위해 참가자들에 대해서 미리 숙지를 해둔 상태였는데도 기억에 희미한 참가자였다. 랩을 못하진 않았지만, 너무 무난해서 오히려 보는 이들의 기억에 남지 못했다.

“26번 참가자의 기본기가 아주 튼튼해 보였어요. 실력이 있는 래퍼 같은데 앞으로의 무대에서 좋은 결과 기대해 봅니다.”

도욱이 덧붙이자 주변에서 인터뷰를 구경하던 학생들은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신뢰가 가는 말투라 도욱이 그렇다고 하니, 우습게도 다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이들 중에는 도욱을 휴대폰 영상으로 촬영하고 있는 여학생도 있었다. 몇몇은 사진을 찍었다.

“무슨 연예인 같아. 너무 잘생겼다.”

“누구지? 참가자 아닌 게 더 이상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도욱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럼 오늘 공연의 최고 점수는 누가 받게 될 것 같은가요?”

도욱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도욱은 <학생 래퍼> 시즌2의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당시에도 워낙 인기 프로그램이어서 방송이 끝나면 매일같이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20번이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꼭 최고 점수를 받게 되지 않더라도 저한테는 이미 최고 점수입니다. 하나의 완성된 예술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인 무대였습니다. 20번 분, 오늘 처음 봤는데 계속 응원하고 싶습니다.”

도욱의 말을 끝으로 여자 VJ는 어깨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말도 청산유수였다. 또 다른 인터뷰어와 조금 다른 답변이라 방송에 쓰기도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인터뷰 해줘서 고마워요, 학생.”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되레 감사 인사를 받은 VJ가 기분 좋게 웃었다. 김원은 도욱의 옆에 서 있었던 덕분에 자신도 카메라에 제대로 잡혔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관객으로 오는 연습생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VJ가 혹시 연습생들이냐고 물으려던 때였다. 때마침 오백호와 정윤기가 주차장으로 왔다. 오백호가 VJ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아아~! 혹시 오 실장님이 말씀하신 친구가 이 친구예요?”

“네, 맞습니다.”

“이미 인터뷰 다 따버렸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얼굴이던데요?”

“아, 그렇습니까. 하하.”

오백호가 도욱을 칭찬하는 말에 웃었다.

정윤기를 알아 본 주변인들이 카메라를 들고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정윤기다, 정윤기. 윤기를 찾는 목소리들이 심상치 않았다. 원래도 십 대들 사이에서 얼굴을 알린 정윤기였지만, 오백호나 도욱은 예감할 수 있었다.

‘방송만 나가면 더 많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건 시간 문제겠구나!’

지하철역으로 가려던 이들도 정윤기와 도욱이 있는 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자 호기심에 이끌려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오백호는 얼른 VJ와의 자리를 정리하고 멤버들을 차에 태웠다.

그리로 방송 이후, 정윤기뿐 아니라 도욱의 인터뷰는 인터넷상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욱은 빠르게 인터넷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