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7화 (17/225)

# 17

Sonata : 울려 퍼지다 (4)

#Sonata : 울려 퍼지다 (4)

***

“이거 받아요.”

비어있는 있는 연습실 중 하나로 안형서를 따로 불러낸 도욱이 안형서에게 크림빵이 한 아름 들어있는 봉지를 건넸다.

“이게 뭐야?”

“아까 사무실 앞에서 만난 형 팬이 전해주라고 하더라고요. 이거 형이 좋아하는 빵 맞죠?”

아직 데뷔 전인 케이케이였지만, 각 멤버들 중에는 팬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사무실 앞에서 몬스터의 팬이거나 일부러 인기가 아직 없는 연습생들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케이케이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선물을 주곤 했다.

연습생 생활을 오래한 안형서나 학생 래퍼 출신 정윤기는 얼굴이 익은 고정적인 팬 두어 명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 어, 그러네. 고··· 고마워.”

괜히 혼자서 도욱과 어색해진 안형서가 굳은 동작으로 빵 봉지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팬이 줬다니 조금 표정이 편안해졌다. 물론 평소라면 더 좋아서 맛있는 빵이라고 방방 뛸 안형서였다.

정말로 팬들이 선물을 줄 때도 많았지만, 사실 이 빵은 도욱이 부탁해서 사온 빵이었다. 요즘 안형서가 밥을 잘 먹지 않아 얼굴이 조금 퀭한 상태여서 걱정되는 마음에 도욱은 오백호에게 빵을 사달라 부탁했었다.

“나는 왜 찾았어?”

“형.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던데···.”

“아··· 아냐. 그냥··· 혼자 그런 거야. 신경 쓰지 마!”

안형서도 나름대로 형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도욱에게까지 걱정을 사고 싶진 않았다. 도욱은 그런 안형서의 마음도 헤아렸다.

“저도 요즘 고민이 있거든요.”

“네가? 무슨 고민?”

모든 완벽한 것 같은 도욱이 고민이 있다고 하자 의아해진 안형서였다.

“노래가 생각만큼 잘 안 돼서요.”

“뭐?! 네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

안형서가 울컥해서 외쳤다.

“형이 어떡하다뇨?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형. 제가 처음 케이케이 멤버가 됐을 때 형이 있는 걸 알고 노래는 걱정 없겠다 얼마나 안심했는데요.”

“네가 그랬다고?”

“당연하죠. 노래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로선 최고의 재능인 여러 끼를 가졌잖아요. 물론 조금 나중에는 그룹 내에서 보컬 자리를 두고 싸우려면 피곤한 상대라는 생각도 사실 했지만······ 그렇지만 일단은 내부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도욱의 진중한 분위기가 안형서를 압도했다.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또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을지도.

“팀이 중요한 거잖아요. 우리 팀이 데뷔해서 어떻게 될지.”

안형서는 멍해졌다. 도욱의 말이 모두 맞았다. 자신은 너무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전히 화가 나기도 했다. 도욱이 노력파라는 것은 알지만, 안형서도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도욱 앞에서는 땀 흘려온 노력의 시간들이 모두 헛된 것 같았다.

“형. 저는 형 믿어요.”

도욱이 연습실 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것을 안형서는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

안형서는 도욱이 했던 말들을 곱씹으며 밤새 침대에서 뒤척인 상태였다. 한참을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철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안형서는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베개 맡의 휴대폰을 확인하자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척도 없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누구지···?’

어차피 다시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서 안형서는 사다리를 타고 침대를 내려왔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가자 욕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도욱이었다.

‘아, 도욱이 새벽 운동 나가고 있었지.’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아직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 도욱이 새벽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형서도 몇 번 따라 간 적 있었다. 그러나 도욱의 코스는 형서가 따라잡기엔 너무 갭이 컸다. 그 반 정도라도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형서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물론 연습까지 하고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운동이 필수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힘든 연습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도욱은 매일 계속해서 새벽 운동을 따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컴컴한 거실, 형서는 소파 위에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욕실에서 씻고 나온 도욱은 그런 안형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식탁으로 가 불을 켜곤 노트북을 부팅시켰다. 헤드폰을 귀에 꽂고서 도욱은 열심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안형서는 식탁 쪽으로 다가갔다. 노트북 화면에는 작곡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강좌 동영상이 실행되고 있었다.

‘······!’

안형서는 집중하고 있는 도욱이 방해되지 않게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다시 누워 안형서는 눈을 깜박였다. 며칠 동안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았다. 도욱은 자신이 몇 년간 해왔던 노력을 뛰어넘는 노력을 몇 달 넘게 해오고 있었다.

기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도욱에겐 밀려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도욱이 말이 맞아. 지금은 같은 멤버를 견제할 때가 아냐.’

마음이 조금 편해지자 그간 못 잔 잠이 쏟아졌다.

‘저런 멤버가 자신과 같은 그룹이라는 걸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멍청하게 굴었다. 나도 더 열심히 하진 못할망정······.’

도욱처럼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로 하며 안형서는 깊은 잠에 들었다.

***

해가 바뀌기 직전, 12월 31일.

케이케이 1집 앨범 타이틀곡의 편곡 방향과 함께 전체적인 짜임새를 한 방에 결정짓기 위해 이사실에는 힛 엔터의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케이케이를 기획한 신인개발팀 임성안 팀장,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 제작이사 권흥조 그리고 작곡가인 용수철까지. 이사실 한편에 마련된 회의용 탁자에 네 사람이 둘러앉자 그야말로 포스가 느껴졌다.

팀장들은 각 팀원들이 올린 의견들은 취합해 온 상태였고, 권 이사는 권 이사대로 사장과 부사장의 지시를 받아온 상태였다.

“먼저 용수철 작곡가님, 편곡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다 완성된 것도 아니고······.”

“두 가지 버전 모두 훌륭했지만, 하나는 소나타 피아노 샘플링이 추가됐더군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게다가 조화롭고, 아무튼 놀랐습니다. 놀랐다는 말만 계속 했어요. 저희 팀원들도 모두!”

심 팀장이 편곡된 ‘Sorry(가제)’의 이야기를 꺼내며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용수철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권흥조 제작이사도 거들었다.

“위에 계신 사장님, 부사장님 모두 반응들이 대단했습니다. 도입부 듣자마자 1절이 끝나기도 전에 이건 길이 남을 명곡이라고 하셨어요. 좋은 작곡가 데려왔다고 심 팀장 치하하라는 얘기가 벌써 나왔을 정도입니다.”

“하하, 정말입니까? 사실 용 작곡가님 데려온 건 제가 아니라 케이케이 멤버이긴 한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심 팀장이 용수철과 강도욱의 인연을 소개했다. 권 이사는 도욱을 떠올리며 ‘역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용수철이 입을 열었다.

“도입부 편곡 아이디어를 준 것도 그 친구입니다.”

권 이사뿐 아니라 팀장들도 모두 놀라 용수철을 보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용수철의 설명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도욱 군이 그런 쪽까지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

임 팀장이 순수하게 감탄하며 중얼댔다. 오디션에서 도욱을 뽑은 일은 어쩐지 평생에 남을 일이 될 것만 같았다. 사실 임 팀장이 아닌 누구였어도 도욱은 뽑혔겠지만 말이다. 조금 생각하던 권 이사가 제안했다.

“정말 놀랍군. 멤버들의 앨범참여도가 높을수록 홍보나 이야깃거리도 많아지는 법이니까······.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더 전문적으로 작곡도 가르쳐 보면 좋을 것 같군요.”

“오, 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준 팀장이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용수철도 권 이사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심 팀장이랑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번 편곡을 듣고서 더 확신하게 됐습니다. 이번 케이케이 데뷔 앨범 총 프로듀싱을 용수철 씨가 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제가 말인가요?”

자신의 곡만 프로듀싱 하게 될 줄 알았던 용수철은 뜻밖의 제안에 놀라 물었다. 권 이사가 다시금 용수철에게 앨범 전체 프로듀싱을 부탁했다.

어차피 싱글 앨범이라 곡은 용수철의 곡 ‘Sorry(가제)’와 ‘You’만 들어갈 예정이었다. 전체적인 색을 ‘Sorry(가제)’에 맞춰가야 할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용수철도 잠깐의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했다. 용수철로선 거절할 이유 없는 제안이었다.

“제안 감사합니다. 이사님. 길바닥에서 구르다 이게 무슨 횡재인지······.”

용수철은 작곡가로서의 새 길을 가기 위해 나이트 DJ 자리도 얼마 전 그만두었다.

“이거, 이거. 이제 피디님이네. 용수철 피디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용수철 아니고 ‘용감한외동’ 피디예요.”

“하하. 네, 네. 용 피디님!”

진심 반 장난 반으로 정색을 하는 용수철에 심준 팀장이 웃으며 화답했다. 다들 용수철의 정색에 웃음이 터졌다.

살짝 풀어진 분위기에서 회의가 계속됐다. 내용만은 중대했다. 앨범의 전체 방향성과 컨셉을 확고히 했다. 이에 따라 스타일리스트로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가장 잘나가는 신진 디자이너를 섭외하기로 결정됐다.

***

해가 바뀌고 용수철은 곧바로 케이케이 멤버들을 전원 소집했다. 타이틀 곡 파트 분배가 있는 날이었다.

“용 피디님, 이렇게 또 뵙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백호가 먼저 용수철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작업실로 들어오며 멤버들도 줄줄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실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평범한 인사였지만 체인형으로 된 금목걸이를 한 용수철이 하자 뭔가 의미심장한 인사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무쌍하게 생겼는데 이름까지 ‘용감한’외동이라니. 용수철의 프로듀서명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멤버들 중 기가 약한 편인 안형서와 박태형은 슬금슬금 오백호의 뒤로 티 나지 않게 뒷걸음질 쳤다. 아직까진 인사만 겨우 할 뿐 용수철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얼마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할 듯했다.

“오늘 편곡된 곡 들려주신다고요.”

“네. 파트 배분도 어느 정도 할 생각입니다.”

오백호에게 대답하는 것이었지만, 멤버들 모두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원래도 노래가 좋았는데 과연 편곡된 버전은 어떨지 기대가 됐다.

“일단은 노래부터 듣고 시작하죠.”

용수철이 부스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버튼을 조작했다. 모두 소파에 앉아 무릎에 손을 가만히 얹고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아무런 비트 없이 피아노 연주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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