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1화 (11/225)

# 11

케이케이의 시작 (2)

#케이케이의 시작 (2)

새벽 세 시가 가까워진 시각, 용수철을 발견한 도욱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를 기다린 지 세 시간여만의 일이었다.

황제나이트 입구 밖으로 장신의 사내가 나오고 있었다. 190cm가 넘어가는 큰 키로 농구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한 장신이었다. 한겨울임에도 징이 잔뜩 박힌 검은색 라이더 재킷 하나만을 걸친 채였다.

‘역시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군.’

DJ 용수철. 그는 케이케이를 인기 그룹 반열에 올린 곡, ‘Sorry, but I love you’를 쓴 작곡가이자 그 앨범의 프로듀서였다.

자신의 본명을 드러내길 꺼려해 ‘용감한외동’이라는 예명을 곡마다 사용했고, 때문에 이후 대중들은 모두 그를 ‘용감한외동’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본명이나 과거 이력은 그가 히트곡을 기계처럼 뽑아내고, 유명세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되었다.

용수철은 다른 작곡가들처럼 정식적인 작곡 교육을 받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길바닥 출신이라 소개할 만큼 이색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용수철은 본래 나이트 웨이터였다. 웨이터로 일하며 나이트 음악에 심취한 그는 디제잉을 배우게 되고, 나이트 DJ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곡까지 쓰게 된다.

뛰어난 재능 앞에 가방끈의 길고 짧음이나 과거의 직업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가 써낸 곡들에 대중들은 수년 동안 열광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Sorry, but I love you’였다.

케이케이가 데뷔도 하기 전에 썼던 곡이라고 했으니까, 분명 곡은 지금 용수철에게 있을 것이다.

도욱은 용수철에게 곡을 받아 원래의 데뷔곡인 ‘You’가 아닌 ‘Sorry, but I love you’로 케이케이가 데뷔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

‘그 곡이면, 분명히 맨투맨만큼의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며 데뷔할 수 있을 거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도욱은 쥐고 있던 캔을 드디어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선 도욱은 씩 웃으며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방금까지도 모자를 쓴 채 편의점 안에 죽치고 있는 도욱의 뒷모습을 의심의 눈길로 보고 있던 여자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와, 무슨 연예인 같아······.”

아르바이트생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까지 중얼거렸다.

편의점의 상황을 알 리 없는 도욱은 오로지 용수철을 뒤쫓는 일에만 집중했다.

주말 황금 시간대의 나이트 밤무대 디제잉을 마친 용수철은 퇴근을 하던 중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구 하나 손봐주러 가는 듯한 인상이었지만 실제로 용수철은 기분이 좋아 남모르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 반응도 또 좋았지, 후후···.”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자신의 디제잉 실력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말이다.

토요일 밤이니 술을 먹자 부르는 곳이 많았지만, 용수철은 모두 거절했다. 용수철은 요즘 멜로디가 잘 떠올라 곡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곡을 잘 뽑아낸 후 다듬어 내년엔 작곡가 공모전에 지원해볼 참이었다.

용수철은 그렇게 작업 중인 곡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여념이 없어 몇 발짝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소년의 존재는 까맣게 눈치채지 못했다.

***

황제나이트에서 도보로 2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용수철의 자취방 겸 작업실이 있었다. 그가 먹고 자고 생활하며 끊임없이 곡 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도욱은 용수철이 주택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뒤돌아 골목을 빠져 나왔다.

용수철이 평범한 작곡가였다면, 연락처나 메일을 알아내 곡을 받는 일이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용수철이 작곡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이는 아직 없는 상태였다. 용수철의 지인들도 용수철이 디제잉을 시작하게 된 것만 알 뿐, 작곡과 프로듀싱까지 욕심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무작정 찾아가 곡을 달라고 해봤자 의심만 사겠지. 집 컴퓨터에만 저장되어 있을 곡을 아는 건 너무 이상하니까.’

때문에 도욱은 용수철에게 곡을 받을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어서오세요~!”

골목을 나온 도욱은 오는 길에 봐 두었던 사거리의 피씨방으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기 게임의 효과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도욱은 게임을 하며 카운터를 보고 있는 허름한 차림의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 프린터 쓸 수 있습니까?”

“···프린터? 어, 됩니다. 흑백은 장당 100원이고, 컬러는 500원이고. 저~쪽 10번 컴퓨터 쓰세요!”

아르바이트생은 게임에 정신이 팔려 도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대답했다.

도욱은 카운터에서 멀지 않은 10번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

부팅을 하고, 도욱은 자연스럽게 워드 프로그램을 찾아 켰다. 미리 다운 받아 메일로 보내놓은 이미지를 배경으로 깔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작성을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몸이 바뀐 이후로 컴퓨터는 인터넷 서핑을 하는 일 외에는 써 본 적이 없었다.

탁, 타다닥, 탁.

그러나 한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자 막힘없이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래도 몇 년을 홍보팀 직원으로 일해 왔다. 게다가 새로운 기획안을 쓰는 것도 아니라 양식에 맞게 내용만 채워 넣으면 될 일이니 도욱으로선 쉬운 일이었다.

······소속 가수 타이틀곡 공모···.

타닥, 탁! 마지막으로 써 넣은 것은 메모해 온 메일 주소였다.

인쇄하기 버튼을 클릭하자 카운터 쪽 프린터가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

서른 장 정도의 공고문을 컬러로 프린트한 도욱은 방금 전 알아낸 용수철의 집 앞으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편의점에서 산 청테이프를 꺼낸 도욱은 용수철이 사는 주택을 중심으로 벽마다 공고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에 기대 어둠 속에서 공고문을 거의 붙였을 때쯤엔 벌써 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문 바로 옆에 마지막 공고문을 붙이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조용한 새벽 골목, 철제문 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문을 열고 나온 건 거구의 사내, 다름 아닌 용수철이었다.

공고문을 붙이던 도욱과 용수철의 눈이 딱 마주쳤다.

“······?”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인 데도 순간적으로 왠지 모를 위협감을 느낀 도욱이었다. 그만큼 용수철의 인상은 험악,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밤새 곡작업을 하느라 피곤에 절어 있어 얼굴이 더 좋지 못했다.

용수철은 새벽 공기로 머리 환기를 시킬 겸 집 앞에 나온 참이었다. 용수철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도욱을 노려보았다. 주변을 보니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없었던 전단지들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남의 집 앞에 지저분하게 뭘 붙이는 거요?”

“아···, 그게.”

용수철과의 만남은 계산에 없었기 때문에 도욱이 머뭇거렸다. 성큼성큼 용수철이 도욱의 앞으로 다가오자 도욱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이게 뭐야?”

사실 용수철은 평범하게 물어본 것뿐이었지만, 누가 듣더라도 화를 내는 듯했다. 용수철은 도욱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빼앗듯 가져갔다.

-HIT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타이틀곡 공모-

학력, 연령, 경력에 제한 없이

힙합/일렉트로닉/댄스 팝 장르의 재능 있는 신인 작곡가를 찾습니다

당선 시 소속 가수 앨범 타이틀 음원 즉시 발매

.

.

용수철이 종이를 꽉 쥐는 게 보였다. 도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직 용수철이 보게 하기 위해 전단을 만들어 그의 집 주변에 붙인 것이었다.

주말 동안 용수철이 활동할 시간에만 붙여놓고, 이후에는 또 떼어낼 생각이었다. 내내 이 앞에 진을 칠 생각이었는데, 마침 용수철이 나와 즉시 발견해준 것이다.

케이케이의 데뷔곡을 위해 HIT 엔터에서도 곡 공모를 인터넷에서 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공식 홈페이지에 팝업을 띄우는 정도일 뿐이라 활발하게 작곡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이가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 공모는 형식 정도에 불과했고, 내부에서는 역시 유명 작곡가 컨택을 통해 곡을 받는 일에 힘쓰고 있었다.

때문에 HIT 엔터에서 띄운 형식적 공모 내용과 도욱이 작성한 공고문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학력과 경력에 제한이 없다는 부분도 하필이면 일렉트로닉, 댄스 팝 장르를 써 넣은 것도 모두 용수철을 겨냥한 내용이었다.

인기 작곡가가 되기 전 용수철은 여러 번 공모전에 응모했다고 했었다. 그러니 이런 자신에게 꼭 맞는 공고문을 본다면 용수철이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도욱에겐 있었다.

“이런 걸 왜 여기에 붙이지? 것도 이 새벽에.”

공고문의 내용을 다 본 후에도 용수철이 조금 미심쩍다는 듯 도욱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홍보를 위해 공고문을 붙이기엔 이곳은 너무 한적한 주택가였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서···.”

“그럼 저쪽 대로변에 붙이거나 인터넷에 올리는 게 빠르지 않나? 이거 진짜 맞는 거요?”

“인터넷에는 이미 올라가 있습니다. 홈페이지 찾아보시면 될 거예요. 그리고···.”

도욱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모자를 벗자 도욱의 훤한 이목구비가 대번에 들어났다.

모자 아래 눈만 보고도 좀 생긴 편이라고 여기던 용수철은 조금 놀랐다. 나이트에서 일하며 웬만한 잘생긴 얼굴들은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모자를 쓴 탓에 약간 눌린 머리조차도 자연스럽고, 괜히 더 멋스러웠다.

“사실은 제가 자발적으로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는 거라··· 어디에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낮이나 저녁엔 일이 있어서 새벽에 밖에 시간이 안 납니다. 집 앞에 이런 걸 붙여서 기분 상하셨을 줄로 압니다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싫으시다면 지금이라도 다 떼겠습니다!”

용수철은 사납게 이마를 향해 솟은 굵은 눈썹을 긁적거렸다.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린 게 분명한데 너무 정중한 어투로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해오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그렇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 공모가 사실이라면, 용수철에겐 말 그대로 ‘문 앞’으로 굴러들어온 기회였다.

“아니! 내버려두세요. 사람 민망하게 왜 이래···. 근데 왜 시키지도 않는데 이런 걸 붙이고 다닌 거요? 여기 직원?”

도욱은 진지하고 간절한 눈으로 용수철을 보았다.

“직원이 아니라 사실은 HIT 엔터에서 데뷔 준비 중인 가수입니다.”

“뭐?! 어쩐지 생긴 게···! 아니 근데 그러면 더 이상하네. 가수가 왜 이러고 있는 거요?”

“데뷔하기 위해선 곡이 정말 필요한데···. 곡이···, 제가 데뷔를 할 수 있는 곡이 없어서요······. 이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약간의 거짓말이 섞였지만, 진심이었다.

좋은 곡 없이 데뷔를 해 그저 그런 가수가 되어 잊힌다면, 그건 데뷔를 해도 한 게 아닐 거다.

간절함이 뚝뚝 떨어지는 도욱을 보며 용수철은 절로 안타까운 표정을 짓게 됐다. 스치듯 본 도욱의 손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순진한 친구네. 이런 데다 붙인다고 곡이 들어오겠어요? 붙일 거면 차라리 작곡가들 많이 사는, 그 신사동 쪽? 거기 붙이든가. 아니, 회사가 HIT이면 작은 데도 아닌데 돈도 좀 더 쓰라 그러고···.”

“혹시 이쪽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요?”

도욱에게서 느껴지는 간절함 때문인지 용수철은 저도 모르게 충고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도욱의 질문에 용수철이 헛기침을 두어 번했다.

용수철은 아직 자신이 덜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내년 공모전을 노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잘생긴 소년이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했다. 사실은 음치일지도 모를 이 소년이 자신의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생각하면 막연한 기대감이 생길 정도였다.

덥석, 도욱이 용수철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무례하다기보단 절실한 손짓이었다.

“아는 분 계시면, 꼭 좀 얘기 전해주시겠어요? 노래, 기다리고 있다고.”

자신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를 텐데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같아서 용수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