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0화 (10/225)

# 10

케이케이의 시작 (1)

#케이케이의 시작 (1)

“맨투맨? 맨투맨이 누구야?”

“무슨 신인이 시상식에서 무대한다고 난리던데, 그 그룹인가 봐.”

안형서의 물음에 정윤기가 답했다.

쿵, 쿵, 딱-! 쿵, 쿵, 딱-!

경쾌한 리듬에 맞춰 맨투맨의 멤버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서강준이 있었다. 카메라가 서강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서강준···!!!’

도욱의 시선이 흔들렸다.

“와, 점마 뭐 저리 잘생긴나.”

정윤기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서강준의 이목구비는 감탄스러울 만했다. 핀조명까지 받으니 더욱 잘생겨 보였다.

“아, 혀엉~ 저게 뭐가 잘생겼어요~! 도욱이가 훨 낫구만!”

안형서가 괜히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정윤기를 나무랐다.

“하긴 도욱이도 역대급이지, 다 잘하고 사기캐 아이가.”

혹시라도 비주얼 멤버의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정윤기가 도욱의 눈치를 보며 도욱을 치켜세웠다. 진심이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욱은 맨투맨의 무대를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도욱이 되어 보는 서강준의 무대.

‘이전에도 이 무대를 봤었지······.’

왕따를 겨우 벗어난 때였다. 다시는 그림자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서강준을 브라운관에서 보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보명으로서는 십여 년이 지난 시점이어서인지, 벌써 두 번째 보는 무대여서인지 처음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저 서강준을 다른 이의 몸을 빌려 꺾으려고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로 이상했다.

“어!!! 저 사람···?!”

안형서가 별안간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맨투맨 멤버들의 뒤편에서 춤을 추고 있는 백댄서 한 명에게로 향했다. 그곳에는 모두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조정민이었다.

“와, 연습생 그만두더니··· 왜 저기에···.”

놀란 안형서가 중얼거렸다.

댄스 평가 이후, 조정민으로선 자신이 얕보던 상대가 자신보다 낫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 했더라면 더 좋은 발전의 기회였겠지만, 애초에 조정민의 그릇이나 인성이 부족한 탓이었다. 때문에 이후 불량한 태도를 보이며 분풀이를 해댔고, 결국 인성 문제가 붉어져 데뷔 멤버에서 제외됐다.

조정민은 케이케이 데뷔 멤버가 확정된 후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연습생을 그만두었다. 소식은 들은 안형서가 당시에 도욱에게 그 사실을 알렸었다.

도욱은 그가 안타깝지 않았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연습해온 시간까지 헛되게 만든 건 모두 조정민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도욱은 시비를 걸려고 찾아온 조정민을 향해 말했다. 모든 일의 결과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자만했던 자신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으라고.

모두가 놀란 가운데 도욱만 덤덤했다. 그런 도욱을 보던 윤기가 물었다.

“···니는 알았나? 저놈 백댄서 된 거?”

“아니요, 몰랐어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는지까진 도욱도 알 수 없었지만, 조정민은 백댄서부터 시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춤은 잘 추는 사람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다만, 하필이면 맨투맨의 백댄서가 된 것이 기이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게 할 뿐이었다.

“흠···.”

동갑내기 조정민의 행보에 생각이 많아진 듯 정윤기가 한숨을 쉬었다. 무대를 보던 박태형도 마찬가지였다.

3분 동안 유연하고 세련된 무대를 선보인 맨투맨이 인사를 하며 무대를 내려오고 있었다. 무대를 시작할 때는 없었던 커다란 함성과 함께였다.

“그나저나 노래 정말 좋네.”

“와, 진짜 세련됐어요. 팝이랑 견주어도 손색없을 듯요.”

“다섯 명 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멤버들이 한 명씩 맨투맨 무대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역시 이대로면 맨투맨은 다음 해 신인상을 모두 휩쓸 대스타가 되고, 서강준도 큰 인기를 얻게 될 터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더 지체해선 안 되겠어.’

도욱은 이어지는 시상식 무대는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어? 도욱아 어디 가?”

“···아, 오늘 집에 좀 다녀오게.”

박태형의 물음에 도욱은 캡모자를 눌러쓴 채 답했다. 숙소 생활을 하는 멤버들의 외출과 외박은 회사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멤버들이 나이가 어린 점을 감안, 연습이 없는 주말 하루 정도는 본가에 다녀오는 것이 허락됐다. 숙소 생활을 시작한 이후, 자주는 아니었지만 종종 도욱도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도욱이 집에 간다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멤버들은 다시 시상식 무대에 집중했다.

문을 나서는 도욱의 뒷모습이 결의에 차 있었다.

곧 케이케이도 데뷔곡을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맨투맨의 데뷔보다 더 강렬한 곡.

‘데뷔곡은 ‘그 곡’이 되어야 해. 반드시 그 곡을 받아와야 한다!’

숙소를 나와 도욱이 향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도욱은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보컬 선생인 김우연에게서 숙소를 나오기 전 도착한 문자였다.

-어, 여보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됐고. 아무튼 용수철? 그 DJ 일하는 데는 알아내긴 했는데. 연락처까진 몰라.

얼마 전 도욱은 김우연에게 도움을 청했다. DJ-아마도 나이트 DJ-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고등학생이 나이트 DJ를 찾아달라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부탁이었음에도 김우연은 한두 마디 투덜거리고는 선뜻 부탁을 승낙했다. 쓸데없는 부탁이라고 치부하기엔 평소 도욱의 진중한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김우연이 의아하게 여길 걸 알면서도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도욱으로선 아직 연습생인 데다 미성년자인 자신보단 김우연이 수소문 하는 게 빠를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은 비록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어쨌든 김우연은 데뷔까지 한 실력 있는 가수였다. 방송과 기획사 쪽에 아는 인물이 꽤 있었다. 나이트 밤무대와 연예계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도욱의 판단대로 김우연은 나이트 밤무대 행사를 주로 뛰는 후배를 통해 삼 일도 되지 않아 도욱이 부탁한 DJ의 일자리를 알아냈다. DJ가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빠르게 찾아내는 데 한몫했다.

“괜찮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지금 어디서 일하시나요?”

-평일은 모르겠고, 주말엔 강남역 황제나이트?

“황제나이트···.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그 DJ는 왜 찾는 거냐니까?

김우연이 이제는 좀 알려달라는 듯 전화기 너머로 도욱을 닦달했다. 처음 부탁할 때부터 궁금해했던 김우연이었지만, 도욱은 대답하기 힘들었다. 사실 용수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래를 안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차도로 나온 도욱은 저 멀리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짓하며 답했다.

“그··· 싸삼월드에서 봤습니다!”

-뭐? 싸삼월드? 거기에서 봤다고?

당연히 못 봤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 하니까 용수철도 싸삼월드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어서 던진 말이었다.

-근데 너 설마 찾아갈 건 아니지?

“나중에,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용수철이 일하는 곳은 나이트였다. 차마 당당하게 찾아가겠다고 할 순 없어서 보명은 황급히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감사합니다만 연신 남발하는 도욱에 김우연도 더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도욱은 나중에 김우연을 직접 만났을 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할 생각이었다.

우선은 DJ 용수철을 찾아가는 게 급했다.

“아저씨, 강남역으로 가 주세요.”

***

이전의 시간에서 케이케이의 데뷔곡의 제목은 ‘You’.

케이케이의 데뷔곡은 소위 말해 중박, ‘신인치고는 괜찮았다.’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이돌 팬덤 내에 이름을 알리고 떠오르는 신인 대접은 받았지만, 맨투맨에 대항하기엔 턱없는 정도였다.

케이케이가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 건 그다음 해 발표한 싱글 앨범인 ‘Sorry, but I love you’ 덕분이었다. 이 곡으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케이케이는 떠오르는 신인이 아닌 인기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맨투맨이 아이돌 팬덤 지분의 절반 이상을 흡수한 후였다.

맨투맨이 모든 인기를 가져가기 전에 케이케이도 팬덤 지분을 확보하고, 대중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케이케이가 인기를 얻게 되는 시점이 더 빨라야 했다.

‘데뷔곡부터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고 인기를 얻어야 한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나가는 것처럼 인기를 얻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지름길을 아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게 도욱의 생각이었다.

정상까지 걷는 것보단 뛰는 게 나았고, 뛰어서 안 된다면 택시라도 잡아타야 했다.

“여기, 여기 앞에서 내려주세요.”

“이 앞? 6800원이야, 학생.”

도욱의 말에 기사가 백미러를 힐끔거리곤 차를 세웠다. 도욱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택시비를 지불했다.

강남역 사거리.

자정 가까이 된 시간이었음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연말이라 더욱 정신없는 풍경이었다.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온갖 전단지며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간판들이 빼곡했다.

모자를 더욱 깊숙이 눌러쓰며 도욱은 황제나이트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쿵! 쿵! 강남 거리를 모두 메울 듯 울려댔다.

도욱은 더 헤맬 것도 없이 곧장 황제나이트를 발견했다. 높이 솟은 스카이댄스 간판에 ‘황/제/나/이/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양쪽에 세워진 스카이댄스 간판 옆으로 검은 정장 차림을 한 떡대들이 입장하는 손님들을 가드했다.

‘들어가는 건 역시 무리겠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따르는 부분들이 있었다.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스무 살 정도인 척하고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데뷔 전 연습생 신분에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뭐든 조심하는 게 좋다.’

도욱은 나이트 건너편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대충 껌 하나를 골랐다. 추가로 잡화 매대의 청테이프를 산 뒤, 유리창 쪽에 붙어 섰다. 옆에는 술에 약간 취한 듯한 남자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유리창으로 나이트 입구가 잘 보여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바깥에서 용수철을 기다릴 뻔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눈총을 피하느라 괜히 음료수 한 캔을 더 사 먹고도 유리창 앞에 서 있기를 한참. 새벽 두 시가 지나자 종일 연습을 하느라 고단했던 도욱의 눈 깜박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도 교대 시간인지 다른 아르바이트생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무작정 기다려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도 잠시였다.

‘용수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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