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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데뷔, 전격 교체 (1)
#본격 데뷔, 전격 교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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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이는 곧 데뷔한다.
원래대로라면 데뷔는 무리 없이 이루어질 터였다. 그러나 ‘원래대로’여서는 몸이 바뀌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의미가 희박하다.
벌써 두 달여가 지나 날이 추워지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곧 맨투맨의 데뷔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 거지?’
‘어떻게······? 이전의 강도욱보다 가수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정도로는 턱없다.’
‘어떻게 해야 케이케이와 강도욱이 서강준을 이길 수 있지?’
떠다니는 생각들을 갈무리하며 도욱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요즘 댄스 시간에는 조를 꾸려 커버 댄스를 연습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조별로 둘러앉아 자리를 잡았다. 내일 있을 정규 평가 때문에 평소보다 분위기가 붕 떠있었다.
“어, 어, 왔어?”
같은 A조, 박태형이 도욱을 향해 인사해왔다. 오디션에서 함께 붙은 강도욱을 볼 때마다 박태형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딱 가지고 싶은, 탐나는 외모였다. 적당히 잘생겼으면 질투라도 해볼 텐데 너무 급이 달라 부럽기만 했다.
“일찍 왔네?”
“으··· 으응.”
힛 엔터에서는 이제 데뷔조를 꾸리고 있었다. 대충 윤곽이 나온 상태로, 댄스 평가 A조에 속한 멤버들이 데뷔조가 될 거라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A조에 속한 멤버들이 평균 실력도 뛰어난 편이었고, 연습생 기간이 긴 연습생이 많았다. A조는 총8명이었는데 그중 강도욱과 박태형만 지난 오디션에서 붙은 2개월짜리 초짜 연습생이었다.
함께 연습하는 동료이지만 데뷔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연습생들의 관계는 결국 경쟁자였다. 때문에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텃세도 꽤 있었다. 신입 연습생들이 그 대상이 됐다. 도욱같이 척 보기에도 레벨이 다른 연습생이면 모를까, 박태형 같은 인물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박태형은 순하게 생긴 데다 말도 어물어물하게 하는 편이라 괴롭힘의 타깃이 되기 딱 좋은 스타일이었다. 그런데다 A조에 속하게 되면서 시기까지 더해졌다.
덕분에 박태형의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는 인물은 도욱 하나뿐이었다. 연습생들의 견제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다들 연예계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이라 폭력까진 가하고 있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폭력도 엄연한 폭력이었다.
“박태형! 처 앉아있지 말고 등X 새꺄, 물 떠와!”
태형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 쪽을 향했다. 도욱은 태형 쪽을 한 번, 물을 떠오라고 시킨 조정민 쪽을 한 번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태형이 빠르게 종이컵에 물을 받아왔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조정민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씨X, 물이 너무 미지근하잖아. 시원하게 다시 떠와.”
어차피 정수기에서 나오는 똑같은 물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태형이 다시 정수기로 향했다.
“모자란 새끼. 완전 병X이야.”
태형의 등 뒤로 들으란 듯이 조정민이 빈정댔다. 다른 연습생들이 몸을 사리며 은근히 괴롭히는 반면, 조정민은 노골적으로 사람을 괴롭혔다.
도욱은 태형을 보며 예전의 자신, 김보명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정도나 상황은 달랐지만 박태형이 김보명이라면, 조정민이 서강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그러한 관계는 존재한다는 것에 도욱은 씁쓸해졌다.
조정민은 힛 엔터에서만 4년 정도 연습한 오래된 연습생으로 나이도 21살로 가장 많은 편에 속했다. 다부진 체격까지 갖추고 있어 연습생들 사이에선 우두머리 격이었다. 이후 케이케이의 멤버가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전에 보명이 기획사를 다닐 때 종종 조정민의 안 좋은 소문을 듣곤 했었다.
‘데뷔를 하기 전이라고 인성이 좋았을 리 없지.’
떠오르던 아이돌 그룹이었던 케이케이가 정체기에서 하락세를 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조정민이었다. 조정민은 3집 활동 이후 공백기에 음주운전 및 폭행 사건에 휘말려 케이케이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역시, 케이케이가 맨투맨을 이기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멤버 구성부터 달라져야 한다. 조정민부터 해결하는 게 맞겠다.’
그게 김보명 자신이든, 이후 케이케이의 멤버들이든 누구를 위해서든 옳은 선택일거라는 확신이 섰다. 차가운 물을 다시 떠오는 박태형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랬다.
“내일 평가받고 나면 데뷔 거의 확정이겠죠, 형?”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하자 조정민의 눈치를 보며 옆에 앉아있던 연습생, 안형서가 중얼거렸다.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 섞인 목소리였다.
조정민이 으스댔다.
“당연하지. 몬스터 이제 퇴물 다 됐는데 뭐, 빨리 새로운 그룹 데뷔시켜야 한다고 위에서 난리랬어. 데뷔시키면 누구겠냐, 우린 무조건이야.”
같은 기획사 선배 그룹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건 금기에 가까운 행위였음에도 조정민은 스스럼없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도욱이 입을 열었다.
“누가 그래요? 몬스터 퇴물이라고?”
“뭐? 강도욱, 너 말투가 띠껍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데뷔라도 했잖아요. 여긴 못 한 사람들이고.”
시끌시끌하던 연습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데뷔는 역시 모든 연습생들을 가장 쉽게 자극하는 단어였다. 특히 조정민과 같이 연습생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치명적이었다.
“몬스터 빠돌이, 뭐 그런 거야? 오냐오냐해줬더니 기어오르네?”
조정민이 발끈하며 덤벼들었다.
“그리고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데뷔를 못 하긴 왜 못 해, 내일 모레면 데뷘데.”
확실히 조정민은 자신이 반드시 데뷔한다는 자만에 물들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인성과 별개로 원래라면 데뷔를 하게 될 만큼의 실력은 있었으니까 조정민의 말도 맞았다. 연습생 풀이 충분하지 않은 힛 엔터에서 지금 데뷔조를 꾸린다면 조정민과 몇몇이 최선이었다.
“데뷔. 정말 자신 있으세요?”
“뭐? 이 새끼가, 진짜.”
도욱의 도발에 바로 조정민의 팔이 올라왔다. 주변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때 폭행사건이 터진 것도 늦게 터진 거였군. 벌써 이 정도면 폭행 전적이 여러 번 있을 게 뻔하다.’
실제로도 조정민은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학창시절에는 여러번 정학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조정민의 뒤에서 물 컵을 들고 있는 박태형과 도욱의 눈이 마주쳤다. 기가 죽은 박태형이 걱정되는 얼굴로 도욱을 보고 있었다.
‘자기나 걱정하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 해보고, 착하기만 한 박태형에게 도욱은 또 한 번 김보명을 읽어내곤 속이 답답해졌다.
원래대로라면 케이케이에 박태형은 없었다. 몰랐던 것뿐일 수도 있지만, 보명이 사고를 당하던 날까지도 박태형이라는 이름은 데뷔한 적도 없다.
‘왜 박태형이 데뷔를 못했는지 알겠다.’
박태형은 딱 보기에도 심약했다. 본격 연예계에 들어가면 더하지만, 연습생 내부도 정글과 같은 곳이었다. 쉽게 지쳐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떨어져 나가기엔 너무 아쉽지···. 조금만 칭찬해주고, 도와줘도 재능을 꽃피울 스타일이다.’
오디션 날, 박태형은 도욱이 속한 조의 마지막 번호였다. 덕분에 도욱은 박태형의 오디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박태형이 붙을 것임을, 알지 못하는 사실임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기획사 홍보팀에서 나름의 시간을 보내온 사원 김보명으로서의 감이기도 했다.
박태형이 준비한 건 노래가 아닌 춤이었다. 준비해온 음악에 맞춰 박태형은 1분가량 짧게 춤을 선보였다. 쭈뼛쭈뼛하며 앞으로 나선 것과 달리 음악이 나오자 박태형은 돌변했다. 남다른 몸짓이었고, 손짓 하나 하나에 그루브가 느껴졌다.
연습생이 되어 댄스 수업을 받으면서, 도욱은 박태형이 정말로 잘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훨씬 오래 연습해온 이들보다 박태형은 뛰어나게 곡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소화해냈다.
다름 아닌 춤 실력 때문에 박태형은 A조에 속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묻잖아요. 자신 있냐고.”
조정민이 눈을 부라리며 하려던 말을 도욱이 가로챘다.
“자신 있으면 박태형 이겨 봐요.”
서 있던 박태형의 눈이 더 커다래졌다. 박태형으로선 도대체 갑자기 자신을 두고 강도욱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내일 평가 때 박태형보다 점수 잘 나올 자신 있어요?”
“뭐라는······!”
“설마 이제 연습생 2개월 한 태형이도 못 이기면서 데뷔한다 어쩐다 하는 거 아니죠?”
모두가 듣고 있는 자리였다. 아니라고 하는 대답은 조정민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일이었다.
때마침 연습실 문이 열리며 댄스 수업 담당 강사가 들어왔다. 모여져 있던 시선이 흩어졌다. 연습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며 대열을 갖추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수선해?”
무언가 이상한 듯 강사가 찌푸리며 물었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강사는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수업을 준비했다.
“두고 보자. 강도욱.”
“저를 왜 두고 봐요. 박태형을 이겨야 하는데.”
이게 진짜, 하는 조정민의 목소리에 욕지거리가 섞여 있었으나 도욱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뒤로 가 섰다. 거울에 비친 박태형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
“저··· 도, 도욱아.”
댄스 수업이 끝나고, 조정민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는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수업을 받으면서도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어 모두 조정민의 눈치를 봐야 했다.
챙겨 온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가방을 챙기는 도욱에게 태형이 다가왔다. 도욱은 말없이 태형을 보았다.
“아까 그, 그··· 정민 형이랑···.”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박태형이 입을 다물었다. 도욱 멋대로 박태형을 걸고넘어진 것이니 박태형으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수도 있었다.
“내일 잘해. 춤 잘 추잖아, 너.”
“나, 나는··· 못···.”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래야 데뷔하지.”
“어··· 으응?”
“무슨 걱정하는 줄 아는데. 그러지 마. 평소처럼만 해. 그러면 잘하는 거야.”
이기든, 지든 조정민한테 해코지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박태형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두려움 때문에 숨거나 물러서서는 영영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 박태형을 향해 도욱은 단언했다.
“그래야 네가 데뷔하는 거야. 조정민 말고, 네가.”
박태형은 데뷔만 한다면, 수많은 아이돌 중 춤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재능이 있었다.
도욱은 이번 일을 통해 조정민의 데뷔를 막고, 박태형의 자신감을 키워 데뷔로 이끌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어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