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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인재 (1)
#준비된 인재 (1)
힛이라면 HIT 엔터테인먼트를 칭하는 말이었다. 케이케이의 소속사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사촌 누나의 권유로 오디션에 나가게 되는 거구나. 강도욱이 순순히 나가겠다고 했던 건가?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건가?’
수긍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힛에서 오디션?”
“그래! 나가 보자,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거기 몬스터 멤버들이랑도 좀 친해지고?”
강서현의 연설에 가까운 설명이 이어졌고, 보명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강서현은 몬스터의 광팬이었다. 벌써 이 년째 열병 아닌 열병을 앓고 있었다. 특히 몬스터 멤버 중 한 명인 권지형을 향한 서현의 맹목적인 팬심은 서현을 그야말로 몬스터로 만들기 직전이었다.
권지형을 가까이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서현은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 만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진지했다. 사촌 동생인 강도욱이 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그게 목적···.”
“아니, 아니! 거기 밀키웨이도 있잖아!”
HIT 엔터는 아이돌 남자 그룹인 ‘몬스터’와 여자 그룹인 ‘밀키웨이’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엔터 업계에 이천 년대 초반부터 떠오른 라이징 기획사였다. 이후에는 솔로가수와 케이케이를 포함한 아이돌 몇 그룹의 이름을 알리며 탄탄한 중견 기획사가 된다.
‘그래, 힛에 밀키웨이도 있었지.’
강서현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까 황급히 말을 이었다.
“너도 밀키웨이 보고 싶을 거 아냐! 아냐?”
“보고 싶긴 하지.”
“그래! 너 어차피 다른 꿈 있는 것도 아니고 오디션 봐서 되면 좋잖아?”
“오디션······.”
“요즘엔 아이돌 되면 돈도 많이 벌잖아. 너 어차피 공부해서 대학 갈 생각도 없다며. 한번 해보자!”
어떻게든 도욱을 설득하려 서현이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진짜 강도욱이라면 설득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게 강도욱이 아이돌이 됐는지 고민하던 보명으로서는 서현의 제안이 반갑기만 했다.
“근데···.”
“응, 뭐, 말만 해!”
도욱이 힛 엔터에 들어가 몬스터의 멤버들과 친해져 서현에게 소개시켜줄 수만 있다면, 서현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어 보였다.
정신적으로 보명의 나이는 서른셋이었고, 기획사에서 일하다 보니 종종 서현같이 소속 연예인들의 사인을 받아다 달라는 어린 친인척들이 흔히 있었다. 서현의 이런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근데 나.”
“응, 근데?”
“나 노래 못하잖아.”
“······.”
“······.”
“야! 뭐 그런 걸 걱정해!”
무슨 큰 걸림돌이라도 있는 줄 알았던 서현이 파안대소했다. 도욱이 영 마음이 없는 것 같지 않자 그제야 안심하며 햄버거를 한입 입에 물었다.
“넌 이게 있잖아, 이게.”
서현이 검지로 도욱의 얼굴 정중앙을 쿡쿡 찌르듯 가리켰다.
“이거?”
“얼굴에 몸도 그만하면 됐고. 와꾸가 되잖아!”
보명은 잠시 벙쪘다. 하긴 아이돌의 세계에선 외모도 재능이었다.
몬스터의 권지형을 좋아하면서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보려던 서현은 이번 오디션 공지를 보자마자 사촌동생인 강도욱을 떠올렸다.
강도욱은 양아치는 아니지만 날라리로 학교는 등하교만 겨우 하며 허송세월하는 고딩이었다. 연예인이 가져야 할 다른 재능은 없어 보이지만, 아이돌로선 최고의 선천적 재능인 외모가 있지 않은가. 제 사촌인 도욱이 오디션 1차는 거뜬히 통과할 거라 서현은 자신했다.
“아 맞아, 나 잘생겼지.”
조금 전 제 모습을 확인했는데도 보명에게는 여전히 어색한 일이었다. 존재감 없이 평범 이하의 인생을 수십 년 살아왔으니 당연했다.
멍하게 중얼대는 보명에 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야, 재수 없게 자기 입으로···!”
“······.”
“아냐, 맞아. 너 잘생겼어! 최고지, 강도욱 최고!”
“그래서 오디션 언제라고?”
“어, 10월 15일 토요일이야. 노래, 랩, 춤 중에 하나 고르고 특기는 있으면 하라니까. 대충 노래 한 곡 골라서 연습하면 되겠지?”
“특기?”
“음···. 뭐 더 어필할 거 있으면 하라는 거겠지. 넌 얼굴이 어필거리니까 괜찮지 않을까?”
“되려나.”
“성대모사라도? 아님 악기 다룰 줄 아는 거 없··· 지?”
강서현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강도욱 정도면 우선은 연습생으로 뽑을 정도는 됐다. 엉망으로 하지만 않으면, 대충 트레이닝 시켜 적당히 비주얼 멤버로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전에 강도욱은 그런 식으로 케이케이의 멤버가 됐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강도욱의 삶 그대로겠지.’
보명이 아는 강도욱의 삶이 나쁜 건 아니었다. 연예계에 뜨고 지는 수많은 인물들 중에 어쨌든 이름 정도는 알릴 수 있었던 거니까.
이후에도 집안의 돈과 자신이 번 돈을 합쳐 건물도 사고, 상가 세를 받아 나름 잘 살고 있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기회가 온 이상, 보명이 원하는 건 그것보단 조금 더 컸다.
‘서강준······.’
시간상으로 내년 초, 1월이면 서강준의 그룹 맨투맨이 데뷔한다. 맨투맨은 데뷔곡 ‘너는 너무 예뻐’로 단번엔 아이돌 팬덤을 뒤흔들 것이다.
그리고 6월 케이케이의 데뷔.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겠지만, 데뷔 준비를 하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대충 곡만 소화하는 수준으로 데뷔할 수 있을 터다.
“노력해야지.”
“앗, 뭐··· 뭐?”
“노력, 한다고.”
강 씨 집안 내력인 커다란 눈이 더 커다랗게 떠졌다. 서현은 사촌동생인 도욱의 입에서 ‘노력’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연예인이 될 맘이 있었던 것도 아닌 앤데 덥석 노력을 하겠다고 하니 더 놀라웠다. 어찌 됐든 서현으로서는 땡큐였다.
“좋아, 좋아. 이렇게 생겼는데 노력까지 하면 오디션은 껌이네!”
“그렇지.”
“그래서 무슨 노력을 하게?”
***
늦은 밤, 집에 돌아온 강도욱의 부모님을 거실에 불러 두고 보명, 아니 도욱은 저녁에 서현에게 들었던 오디션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오디션 준비를 하기 위해서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적극적인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다는 이전 강도욱의 인터뷰대로 부모님은 반색을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배운 게 많고 젊은이들과 대화도 많이 하다 보니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수적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앞으로는 더 좋은 직업이 될 거라는 나름의 식견도 가지고 있었다.
강도욱 부모의 입장으로서는 강도욱이 무언가 미래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할 지경이었다. 이전에 강도욱이 노는 것 외에는 무기력하고 무의욕적인 자세로 생활해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좋은 부모님들이구나.’
강도욱의 어머니는 선뜻 지갑에서 신용카드 한 장을 내밀며 등록하고 싶은 학원에 마음껏 등록하라며 도욱을 독려했다.
보명은 다시금 강도욱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사고로 자신이 죽게 된 거라면, 그래서 영혼이 이 몸에 들어오게 된 거라면 지금쯤 부모님은 보명을 잃고 슬픔에 잠겨 계실 거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왔다. 그렇다고 보명이 달리 무언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없었다.
보명의 부모님도 좋은 부모님이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보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나 때문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으셨지.’
조용한 교장실, 피해자는 보명이었음에도 고개 숙이고 있었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카드를 들고 방 안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보명은 입술을 꽉 깨물고 보명은 다시금 바뀐 영혼처럼, 무언가 바꿔보리라 다짐했다.
***
보명은 게임을 하러 가자는 윤진성을 두고 혼자 길을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신사역 7번 출구 근처였다.
<별 아카데미>
출구에서 나와 몇 번을 꺾어 들어간 골목에서야 보명은 아카데미 간판을 발견했다. 창문마다 조악하게 붙여놓은 시트지 끝이 너덜너덜했다.
‘김우연. 조금만 지나면 우리나라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되는 인물이 이곳에 있다!’
그는 현재도 1집 앨범을 낸 가수였다. 그러나 소형기획사에서 발매된 앨범이라 제대로 된 홍보도 해보지 못했다. 그의 앨범은 발매한 지 한 달도 안 돼 소리 소문 없이 묻힌 앨범이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소속사를 옮기고, 예능 출연으로 노래를 알리게 되면서 1집도 길이 남을 명반으로 재평가 받는다.’
김우연이 옮긴 소속사가 보명이 다니던 큐 엔터였다. 보명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노래 ‘꿈이었으면’의 가수이기도 했다. 때문에 보명은 김우연의 이력을 꿰고 있었다.
그러나 잘되는 건 모두 2년 뒤의 일일 뿐. 1집 앨범의 실패로 김우연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가수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게 되었다. 다음 앨범 준비도 아직까진 불확실한 상태.
“무슨 일로 오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간 학원 내부에는 다섯 개 정도의 연습실이 있었다. 한 곳은 사용 중인지 허술한 방음벽을 뚫고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데스크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문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보명을 향해 물었다.
“저 보컬 레슨을 받으려고···!”
여자는 노란색 염색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있었다. 레슨 얘기를 하려던 보명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 옆의 점이 인상적인 여자는, 인디밴드 ‘레인보우’의 키보드 김숨이었다.
‘김숨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김숨이 속한 밴드는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호평을 받는 밴드였다. 김숨이 유명한 건 밴드 멤버로서가 아닌 작곡가로서였다. 김숨은 발라드 곡 작곡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김우연의 3집 타이틀곡도 김숨이 작곡한 곡이었지. 이곳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거구나.’
보명은 몰랐던 인연에 감탄했다.
“보컬 레슨? 에이, 아쉽네요. 키보드 레슨 받을 생각은 없어요?”
원래는 없었다. 그러나 김숨 같은 사람에게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김우연에게 보컬 레슨을 받는 일만큼 흔치 않은 기회였다. 눈 떠 보니 세계가 뒤바뀌어 있던 건 어떤 식으로든 하늘이 보명에게 준 기회인 게 분명했다.
“원장님은 이번 주에 안 나오시고, 보컬 선생님은 아직 출근 안 하셨어요. 삼십 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아요? 보컬 선생님이랑만 말씀 나누시면 등록은 문제없어요.”
노란 머리나 자유분방해 보이는 옷차림과는 별개로 김숨은 예의바르고 사근사근한 말투를 사용했다.
“기다리겠습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소개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신기해서요.”
“···길 가다가 간판 보고.”
“아아.”
보명은 김숨이 손짓하는 대로 데스크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저기.”
데스크 위에 놓인 컴퓨터에 집중하고 있던 김숨의 고개가 보명에게 향했다.
“키보드 말고 혹시 작곡레슨은 안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