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화 (1/225)

# 1

눈 뜨기 전 인생

#눈 뜨기 전 인생

이름 김보명. 나이 서른셋. 겨우 평범의 언저리를 겉돌며 살고 있다.

그도 처음부터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날 때야 아무것도 몰랐고, 사고라는 걸 시작했을 무렵엔 다들 그렇듯 야무진 꿈도 꾸게 되었다.

식상하게는 대통령, 과학자, 의사가 되고 싶었고 텔레비전을 보면서부터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 꿈은 좀 더 커져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외양은 평범했으나 노래는 제법 불렀으니 더 커서는 어떻게 될지 모를, 그렇게 허무맹랑하기만 한 꿈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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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보명은 작년에서야 대리 직급을 겨우 단 회사원이 됐다.

큐 엔터테인먼트의 홍보팀에서 일한 지 5년, 가수는 못 되고 가수들의 수발을 드는 삶은 고단하고 지루했지만, 어쨌든 취직이라도 해서 다행인 세상이었다.

“보명 씨, 보명 씨! 거기서 뭐 해요!”

“예, 예?”

“이 상자들 좀 같이 옮겨주세요. 왜 또 멍을 때리고 있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실시간 검색어. 비슷한 제목과 내용으로 정신없이 화면을 채우고 있는 기사들. 보명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기인 예진의 부름에 보명이 얼른 일어나 예진의 곁으로 갔다. 예진은 얼마 전 제작한 소속가수의 홍보용 판촉물을 옮기던 중이었다.

판촉물이 잔뜩 든 상자는 예진의 몸보다도 더 커다랬지만, 예진은 인쇄소에서 도착한 상자들을 거뜬히 제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이 정도 노가다는 기획사 홍보팀 직원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하필 인턴과 신입직원들이 부장에게 불려간 터라 예진이 직접 일해야 한다는 게 예진으로선 짜증 날 뿐.

남은 상자 두 개를 보명이 예진의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뭘 그렇게 보고 있었어요?”

“인터넷 기사를 좀······.”

매일 하는 일이 인터넷 기사 모니터링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상자의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부욱, 찢겨 나가는 테이프 소리를 들으며 보명이 예진의 곁에 엉거주춤 섰다. 할 말이 있으면 하지 옆을 서성이는 보명이 예진은 답답했다.

김보명은 홍보팀 내에서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으로 통했다. 사람 만날 일이 잦은 홍보팀 일에는 영 맞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회사에 남아 있었다.

어쨌든 조직에 보명 같은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야 조직이 굴러가는 법이었다. 궂은일 처리에 제격인 그런 사람 말이다. 그게 홍보팀 사람들의 전체적인 생각이었다.

기실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보명의 묵묵한 성격을 예진처럼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뭐 할 말 있어요?”

“그··· 서강준 씨 말입니다.”

“서강준 씨요?”

“헐리우드에 진출한다는데··· 정말일까요?”

서강준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톱, 톱, 톱! 스타였다. 매일의 행보가 기록이고, 기적인 인물.

아이돌로 데뷔해 대상 가수가 되었고, 솔로 앨범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연기자로서의 도전도 성공적이었다. 이제는 배우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나아가 할리우드 진출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보명이 읽고 있던 기사였다.

예진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가 이내 평상시의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요즘 서강준의 상승세를 떠올려 보면 놀랄 일도 아닌 듯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어낸 것은 물론 65퍼센트는 서강준 본인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34퍼센트는 서강준의 기획사, 대형 기획사인 아라 엔터의 기획력과 어마어마한 푸시 덕이다.

서강준이 ‘아라 엔터’ 이사의 아들이라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아들이 능력도 인기도 있으니 더 밀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라 엔터가 요즘 해외 쪽으로도 사업을 넓히고 있다더니 역시는 역시였다.

“우리 소속사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아라 엔터 쪽에 아는 분이 많으셨던 것 같아서···.”

“아마 사실이겠죠. 대대적으로 기사까지 낸 거라면. 무슨 영화래요?”

“크리스토퍼 눌란 영화라던데.”

“와, 작정을 했네. 어디까지 올라갈라나.”

크리스토퍼 눌란이라면 헐리우드에서도 이름 난 감독이었다. 주연인지 조연인지는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출연 자체가 센세이션일 것이다. 예상 이상이라는 듯 예진이 헛웃음을 지으며 감탄했다.

보명은 조용히 뒤돌아섰다. 부욱― 등 뒤로 포장 뜯는 소리가 요란했다.

‘서강준··· 헐리우드까지 가는구나.’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었다.

서강준과의 악연만 아니었다면, 보명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서강준을 부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

쾅!

문 닫히는 소리에 보명이 몸을 더 움츠렸다. 보명은 화장실 구석 칸의 변기 옆에 내팽개쳐졌다. 구전중학교 본관 5층의 복도 끝 화장실은 건물의 노후로 폐쇄된 상태였다.

사용되지 않는 화장실은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의 차지가 됐다. 여기저기 버려진 담배꽁초는 아무도 치우지 않아 바닥에 검게 쌓여 있었다. 멋대로 갈겨 놓은 오줌 지린내가 코를 찔러왔고, 방금 명치에 가해진 타격으로 인해 숨 쉬기는 더욱 힘들었다.

“야, 보명아~! 거기가 느이 집이라구 생각하고 쉬었다 나와라~!”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거기서 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저희들끼리 한마디씩 남기고 무리가 낄낄대며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교생 선생에게 해코지를 하라는 무리의 말을 듣지 않자 쉬는 시간, 무리가 보명을 끌어내 구타한 후 이 화장실로 끌고 왔다.

보명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담뱃불에 짓이겨진 손등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캄캄하고 더러운 화장실.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에 몸서리쳤다.

벌써 일 년째 계속된 왕따, 가혹행위에 보명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보명을 구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보명 하나 키우려고 생고생을 하는 부모님에게 더 걱정을 끼칠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특출난 부분이 없는 보명에게 무관심했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가 내일은 눈뜨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기 위해 듣는 조용한 노래의 가사가 유일한 위로였다.

연인과의 헤어짐을 노래한 가사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보명의 상황에도 들어맞아 마음을 파고들었다.

***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보명은 종일 멍하게 굴다 결국 팀장에게 깨지고 말았다. ‘보명 씨 도대체 왜 그래요?’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러게.’

보명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강준이 이제 와 헐리우드에 진출한다 한들 놀라울 것도 없었다.

서강준이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그것도 한때는 보명의 꿈이었던 가수로서 서강준이 무대에 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보명의 처참한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진다? 그런 종류의 충격과는 달랐다.

‘하늘’이란 건 김보명에게 없었다. 애초에. 보명이 그 어둡고 긴 터널, 영겁처럼 느껴지던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도 없었고 그날에도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노래를 조금 잘하고 축구를 조금 못하는 것 외엔 크게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던 보명이 전학 온 서강준의 눈에 띄게 되고,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생기를 잃어가는 시간 동안. 보명은 왜 하필 제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하늘에 여러번 물었지만, 하늘은 답해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서강준이 지나던 길에 보명이 있었을 뿐이다. 마침 보명이 서강준과 그 무리를 이겨낼 힘도 능력도 없었을 뿐이고.

“보명 씨!!!”

헉헉, 뒤쫓아 온 예진이 보명의 어깨를 잡아챘다.

“오늘 진짜 왜 그래요? 큰일 날 뻔했잖아요!!!”

큐 엔터 사옥 앞, 퇴근 후 보명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무심코 다리를 움직이던 보명을 예진이 붙잡은 것이다.

보명의 인생은 달라졌다. 보명의 꿈은 더는 가수 같은 게 아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게 보명의 꿈이었다. 남들처럼,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지 몰라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덜덜 떨며 거리를 다니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가수가 되지 못한 것을 서강준이나 왕따를 당한 일 때문이라 탓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해서 백 프로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가수가 된 서강준을 보는 일이란···. 다시 지옥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예?”

멍한 보명에 예진이 한숨을 쉬며 신호등을 가리켰다.

“빨간불이잖아요!”

“아······.”

보명이 신호를 보며 탄식했다. 분명 파란불이었는데 생각에 빠진 사이 신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아? 조심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보명이 예진에게 인사했다. 열을 내던 예진이 걱정스럽다는 듯 보명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아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무슨 일···.”

서강준이 헐리우드에 진출한다네요. 제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았던 서강준이 말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보명은 어설프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 없어요.”

또 괜찮아질 것이다. 괜찮아야 했다. 자신도 계속 살아가야 했으니까.

서강준이 승승장구하여 브라운관이며 스크린을 넘나드는 동안 보명도 나름대로 제 인생을 꾸려 나갔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나름 괜찮은 서울권 대학에 진학했다.

아무튼 유명 기획사에 취직도 했다. 큐 엔터는 보명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던 노래의 가수가 소속된 곳이기도 했다.

“진짜 괜찮은 거죠?”

“네.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시 파란불이 켜졌다. 예진의 인사를 받으며 보명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쾅!!!

또 갇힌 건가? 사방이 캄캄했다.

‘아,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보명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1퍼센트는 물론 천운이다.

그리고 그 천운이 김보명에게도 왔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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