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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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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8시.
눈에 띄는 선글라스보다는 요즘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형태인, 큰 마스크를 쓰고서 얼굴을 거의 다 가린 두 사람은 영화관으로 뛰어갔다.
특히, 중간 빈 시간을 최소화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거의 딱 시간에 맞춰 팝콘과 콜라를 샀고, 그런 뒤에 두 사람으로 상영관으로 아주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맨 뒤쪽 좌석에 앉게 된 두 사람.
특히, 이 좌석은 계단식 극장의 아주 넓은 공간을 한눈에 다 볼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뒤쪽 좌석이 두 사람에겐 가장 부담감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오늘 조조 상영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새벽부터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게 여러모로 큰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물론 이런 흐린 날씨 속에서 가을비가 내리면 은근히 사람을 축 처지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또한 이런 날 남녀가 영화관을 같이 찾게 되면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달리는 차 창 너머로 보이는 비 내리는 광경, 우산을 쓰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축 가라앉게 하고, 또한 좀 더 자신과 주변에 대해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음. 인영씨 괜찮아요? 여기 자리가 좀 안 좋죠?”
“아뇨. 전 괜찮아요.”
“그래도 오늘따라 사람이 많지 않아, 부담도 좀 없고···.”
“네.”
“하하, 여기 팝콘 드세요.”
“네.”
현수가 그렇듯 팝콘을 건네자, 살며시 손을 뻗어 달콤한 팝콘을 집어 먹는 그녀.
그런데 극장에 들어온 뒤부터 그녀는 유난히 말수가 적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내 초롱초롱하게 눈을 반짝이며 그녀는 잠시 후 영화에 집중했고, 현수 역시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영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그리고 한 번씩, 그리고 어떤 때는 조금 더 길게, 그때마다 은근히 느껴지고 있는 상대에 대한 존재감. 특히, 팝콘을 먹다가 자연스레 손이 부딪히거나,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어쩌다가 아주 우연히 서로의 어깨가 한 번씩 닿을 때마다, 서로에 대한 존재감은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씩 고개를 살짝 돌리며 조용히 현수를 바라보는 그녀. 이때, 현수가 마주 바라보면, 그녀는 흠칫 놀란 듯 움찔했다가 이내 조용히 눈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 순간,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가고 있는 현수.
그리고 한편으로 현수는 자신의 옆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무척 시원하면서도 무척 감미로운 그 향수 향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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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어요? 영화?”
“아, 보긴 봤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인영씨는 어땠어요?”
“흡, 전 재밌던데. 로맨틱 코미디라 제가 좋아하는 장르라서··· 아, 현수씨는 액션, 이런 거 좋아하세요?”
“아, 아뇨. 로맨틱 코미디도 좋아합니다.”
“치, 거짓말하지 마세요. 남자들은 액션 쪽을 더 좋아한다던데?”
“아. 그게.”
“그래도 저는 액션 장르에 완전히 관심 없는 건 아니에요. 혹시 모멘텀이란 영화 봤어요? 올가 쿠릴렌코 주연의 모멘텀. 그 영화를 보면, 정말 멋지잖아요? 전 아직 액션 연기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언젠가 한 번 꼭 그런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아! 그 영화는 저도 본 것 같은데··· 하하, 인영씬 그 여자 주인공 역할을 해도 아무튼 아주 잘 할 겁니다.”
“진짜 그럴까요?”
“네!”
그러고는 아주 환하게 웃는 두 사람.
“참, 우리 이제 어디로 가죠?”
“아, 아침 식사는 하셨죠?”
“네. 현수씨는요?”
“네. 저도 간단히 시리얼 먹고 나왔어요. 음. 그럼 곧 백화점 오픈 시간인데, 비도 오니까 백화점 좀 돌아다니다가, 커피라도···.”
“음. 아뇨. 현수씨.”
“네?”
“우리 좀 걸으면 안 될까요?”
“네?”
“비도 오니까 우산으로 가리면 더 좋잖아요?”
“아. 그래요? 그럼 그럴까요?”
“네.”
“근데 비 때문에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제 직업이 배우잖아요. 이런 감수성 넘치는 비, 저도 좋아해요.”
“네. 그럼 그러죠.”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각자 우산을 펼친 뒤 잠깐 걷다가, 이때 최인영은 현수의 우산이 아주 넓고 크다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씩 웃더니, 자신의 핑크빛 우산을 얼른 접었다.
“아, 차가워.”
그러고는 곧바로 현수의 옆으로 뛰어드는 그녀. 오늘은 평범한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어 현수보다 키가 작아진 그녀는 현수의 우산 속으로 쏙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현수는 움찔했다가 이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렇듯 두 사람은 좀 더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걷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리고 웃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작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는데···. 한편, 쏟아지는 빗줄기가 땅에 부딪히며 쏟아내는 소리들이 무척 유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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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일 월요일 아침.
이날은 개천절 공휴일이라 회사가 비록 쉬는 날이지만, 이날 현수를 비롯한 일부 임원들과 팀장들은 일찍 회사에 출근했다.
즉, 김주연 전무, 강세훈 상무, 국내인수합병팀 장동형 팀장, 국내주식팀 정민경 팀장, 선물옵션팀 조진웅 팀장, 종목분석팀 박시연 팀장 등이 오늘 아침 일찍부터 회사에 출근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시작된 첫 회의는 현수가 주도적으로 회의를 주관했고, 그리고 곧 이어진 실무진 회의 때부터는 김주연 전무가 주도하면서 그 회의는 하루 내내 쉴 새 없이 열리게 되었다.
그렇듯 KHS컴퍼니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일들이 앞으로 계획되고 있어, 오늘 공휴일 상황과 상관없이 아주 바쁘게 모든 세부 계획들과 업무 조정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오후 3시쯤 되자, 이때, 대명그룹 전략기획본부 실장 겸 대명그룹 구조조정팀 팀장인 최학진 실장이 현수를 찾아왔다.
즉, 대명그룹 전략기획본부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최학진 실장. 그는 현재 50대 후반의 나이이지만, 오랫동안 회장 비서실 실장 일을 맡았던 터라, 명실공히 정진태 회장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KHS컴퍼니 김현수입니다.”
“하하, 저도 처음 뵙겠습니다. 음. 무척 젊으신 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보니까 더 젊으시군요. 하하,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러고는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최학진 실장. 사실, 나이도 많고, 또한 사회적 위치도 아주 높은 그가 그렇게 머리를 숙이자 현수는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해져, 결국 그 역시 아주 정중하게 마주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현수는 그에게 한쪽 소파 자리를 권했다.
“자, 그럼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 공휴일임에도 출근을 한 비서팀 직원이 따뜻한 녹차를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두었고, 그때부터 드디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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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리면, 저희 회장님께서 요즘 무척 편찮으십니다. 직접 이곳을 오실 수도 있으나 오시지 못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워낙 그룹 일들이 많다 보니 그간 피로가 누적되신 것들도 있고, 또 연세도 많으셔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음. 쾌차하시면 언제 한번 약속을 잡도록 하지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듯 대명그룹 정진태 회장의 건강 이야기부터 꺼낸 최학진 실장은 곧이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 부분도 사실 저희 회장님의 신경을 많이 쓰이게 하는 부분인데, 즉 그룹 후계 구도 문제입니다. 물론, 그거야 시간이 되면 저절로 풀릴 일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몇 년 전에 알게 된 그 청천벽력같은 사실 때문에··· 음, 회장님께선 이 후계 구도와 관련해서 좀 더 고민이 많아지신 게 사실입니다.”
그러고는 이때 현수를 향하는 최학진 실장의 두 눈이 약간 더 강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음. 그래서 저희들은··· 몇 번이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습니다. 저희가 듣기로 그분께서는 경영권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으음. 김 대표님이 보시기에 그 부분이 맞습니까?”
그렇듯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진 최학진 실장은 이때 안경알 너머로 그 눈빛이 약간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막씨밀리아노 헤수스가 대명그룹 지분을 은밀하게 사 모아, 그 지분율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내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일은 대명그룹 쪽에는 아주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즉, 국내 최고 그룹, 대명그룹의 지분이 외국계 헷지 펀드 쪽에 잠식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결과적으로 대명그룹의 명예는 아주 큰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물론, 대명그룹에 대한 큰 기대감을 품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아주 크게 경악하게 될 것이다.
다만, 상대가 경영권에 일절 관심이 없는,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저 대명그룹 경영진들은 한숨 돌리고 있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최학진 실장은 그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네. 맞습니다. 경영권과 전혀 무관하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하하하, 그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그리고 그 순간, 최학진 실장의 표정은 바로 밝아지고 있었고, 그의 웃음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지금 이 순간, 현수는 자신이 대명그룹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하하, 김 대표님, 잠시만 제가 지금 바로, 회사로 문자 하나만 보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전 괜찮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최학진 실장은 일을 마친 뒤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고, 곧이어 두 사람의 대화는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아, 죄송합니다. 요즘 특히 더, 중요해진 일이라···.”
“네. 괜찮습니다.”
“음. 그리고 사실, 김 대표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요즘 외국계 자본들의 공격이 더 은밀해진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물론 현재 기준, 저희들로서는 그 점이 무척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대다수 그룹들 역시 이런 위기에서 절대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아직 한국은 금융 강국이 아니다 보니, 이런 위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고, 또 앞으로도 이런 식의 위기가 언제든 발발할 수 있다고···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최학진 실장은 좀 더 세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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