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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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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인영씨, 그때 닉네임 알려준다고 하셨는데, 궁금해서요. 저의 인터넷 주식 중계, 많이 보셨나 보죠? (오후 11:46분)
어느덧 밤늦은 시각이다.
긴 소파에 나른한 자세로 누워서 카톡을 하고 있던 최인영.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긴 소파에 바른 자세로 앉고 있다.
얇은 잠옷을 입고 있는 그녀. 그리고 그 표정은 무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다. 눈빛마저 깊어지며 살짝 아랫입술까지 깨물고 있다.
‘내 닉? 아, 맞아. 내가 알려주겠다고 했지···.’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심경은 갑자기 백팔십도로 변해버린 것 같다. 조금 전 카톡을 하며 웃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싹 굳어진 것이다. 사실, 저번에 자기 스스로 자신의 닉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그 질문을 되돌려 받게 되자, 그녀의 마음은 좀 이상해지는 것이다. 그때 가볍게 건넸던 그런 느낌과는 달리, 현재는 또 무언가 변한 상태라서···.
‘강남미녀··· 근데 알려줘도 괜찮을까?’
왜냐하면, 개미군단의 인터넷 댓글 중계 때마다 뾰족한 악플을 남겼던 그 악플러,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물론 자신한테는 선플만 남겼던 또 다른 아이디가 있긴 하다.
와런바피.
‘근데 진짜 괜찮을까?”
즉, 지은 죄가 있으니 그녀는 지금 내적 갈등을 하는 것이다. 결국, 소파 위에서 팔짝팔짝 뛰기도 하고, 또한 괜한 악플러 행세를 했다는 생각에 작은 주먹으로 이불킥이나 다름없는 힘없는 주먹질을 하다가, 결국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휴대폰을 잡는다.
→ 음. 죄송한데 제가 다음에 이야기해 드리면 안 될까요? (오후 11:51분)
그렇게 카톡을 남긴 그녀는 이내 두 눈을 크게 떴고, 또 바짝 긴장하면서 답톡을 기다렸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나도 바로 답톡이 오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순식간에 5분이 지났는데, 그 5분은 그녀에게 있어서 거의 두 배 혹은 세 배 이상의 시간 같았다.
점점 더 최인영의 미간에는 선명한 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설마 삐졌어?’
사실, 그러고 보면 몇 달 전 그녀가 개미군단이라는 인터넷 주식 전문가를 처음 접했을 때, 그때 그녀는 그를 대략 40대, 50대 꼰대 아저씨로 생각했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잘난 체하며 주식 예측이나 하는 그런 꼰대 아저씨로 그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감정도 없이 그녀는 악플을 달게 되었고, 그때마다 연예인인 자신을 겨냥했던 수많은 악플러들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자 또한 한편으로 작은 응징(?)으로써, 그녀는 약간의 대리만족형 카타르시스를 맛본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은 곧 달라지고 말았다.
개미군단의 놀라운 호가 예측들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 그녀는 완전히 그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개미군단 덕분에 그녀는 쉴 새 없이 행복한 경험들을 했고, 온몸에 엔돌핀이 넘쳐 나며, 세상 스트레스를 다 벗겨낼 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바닥에 머물던 호가가 무섭게 치솟아 올라 하늘 높이 치솟는 그 아름다운 호가급등의 광경!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녀의 몸과 마음마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런 환상적인 경험을 자신에게 만들어준 남자, 그게 바로 개미군단이었고, 잘 생기고 친절한 김현수라는 남자였다.
‘아, 어떡해? 그냥 이야기해? 내가 강남미녀라는 거.’
하긴, 자신은 악플러이긴 해도, 그래도 갱생한 악플러가 아닌가.
개미군단의 팬클럽을 처음 만든 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또한, 다가오는 토요일, 첫 번째 오프 모임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도 바로 자신이다!
비록 연예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모임에 직접 참가하지 않더라도, 부운영자 삐딱소녀 김민지가 자신을 대리하여 이 모임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그 모든 것들을 그녀는 짰고 또한 계획하기도 했다.
← 이런;;;; 인영씨, 정말 죄송합니다ㅜㅜ (오후 11:56분)
이때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최인영. 그녀의 두 눈은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비록 늦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에게서 카톡이 날아온 것. 한참 근심이 쌓였던 그녀의 표정은 금방 밝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 죄송합니다. 제가 하던 일이 있어서;;;; (오후 11:57분)
←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ㅜ (오후 11:57분)
그런데 무슨 하던 일?
대체 무슨 일일까?
얼굴에 바로 호기심이 나타난 그녀.
그래도 그의 카톡 덕분에, 그녀의 표정은 한층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오후 11:57분)
← 아뇨. 이제 막 끝났습니다 (오후 11:57분)
→ 혹시 무슨 중요한 일? (오후 11:58분)
← 네. 아까 투자하던 게 남아 있어서··· (오후 11:58분)
→ 네? 투자??? 지금 투자를 하신다고요??? (오후 11:58분)
← 아, 인영씨, 주식 투자가 취미라고 하셨죠? 저는 투자 범위가 좀 넓은 편인데, 해외옵션 투자를 하려면 일부 종목은 밤에 해야 합니다 (오후 11:58분)
→ 네? 옵션? 와! 그 옵션이 설마 그 옵션인가요? (오후 11:58분)
← 네 (오후 11:59분)
→ 우와, 저도 파생상품 쪽이 궁금한데 (오후 11:59분)
‘앗! 인영씨, 그건 안 됩니다. 일반인들이 그 투자를 하다간 다 개털··· 아차차!’
이때,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카톡을 보내던 현수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개털’이라는 글자를 빠르게 지워나갔다. 그러고는 다시 글자를 입력한 뒤 그는 엔터를 눌렀다.
→ 앗! 인영씨, 그건 안 됩니다. 일반인들이 그 투자를 하다간 집 한 채 날리는 건 금방입니다 (오후 11:59분)
← 네에? 정말로요??? (오후 11:59분)
→ 옵션은 너무 변수가 많아요. 공부도 많이 필요하고, 어쨌든 전 투자회사에 있으니까··· (오후 11:59분)
← 아, 그렇군요. 전문가님?!? (오후 11:59분)
바로 날아온 그녀의 그 톡을 보며 현수는 저절로 씩 웃고 만다. 그런데 지금 그는 한 눈으로는 카톡창을 쳐다보면서도, 다른 한 눈으로 계속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시스템 인디펜더스 개별주식옵션, 즉 풋옵션 관련 추가 매수를 막 마친 터라 이제부터는 시스템 인디펜더스의 주가가 무척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 근데 인영씨, 벌써 12시네요. 오늘은 일찍 안 주무세요? (오전 00:00분)
← 네. 피곤해서 자야 돼요. 새벽 촬영도 했었고, 또 내일도 아침에 촬영이 있거든요ㅠ (오전 00:01분)
→ 많이 바쁘시군요 (오전 00:01분)
← 네 (오전 00:01분)
→ ㅇㅇ (오전 00:01분)
← 참, 현수씨. 제가 원래 하려던 이야기··· 마저 할게요 (오전 00:01분)
→ 네? 무슨? (오전 00:02분)
← 제 닉네임··· (오전 00:02분)
→ 아! 잠시만요. 인영씨! (오전 00:02분)
← ??? (오전 00:02분)
→ 제가 한 번 맞춰볼게요. 어쩌면 제가 인영씨 닉을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전 00:02분)
← 네??????? (오전 00:02분)
→ 혹시··· 음··· 인영씨 닉은··· 혹시 처녀귀신, 처녀귀신 아니세요? (오전 00:03분)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카톡창을 보고 있던 최인영.
그녀는 눈이 동그래졌다가, 곧바로 풉! 소리를 내며 입안 공기를 모두 터트리고 말았다.
“뭐? 내가 처녀귀신이라고?”
결국, 참지를 못한 그녀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닉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팬클럽 블로그를 오픈했기 때문에 그때 블로그 회원으로 가입한 삐딱소녀, 처녀귀신, 연수엄마, 처녀무당 등 여성형 닉을 가진 사람들한테 따로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즉, 자신이 여자 연예인이기 때문에, 남성 회원보다는 여성 회원을 부운영자로 삼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알게 된 사실! 처녀귀신은 알고 보니 50대 중년 아저씨! 그는 좀 센 느낌이 드는 닉네임을 찾다가, 결국 으스스한 처녀귀신을 택하게 된 거라고 했다.
→ 개미군단님!!! 처녀귀신은 남자예요!!! (오전 00:04분)
← 네??? 남자요??? (오전 00:04분)
→ 네 (오전 00:04분)
← 근데 그걸 인영씨가 어떻게 아시고? (오전 00:04분)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최인영은 그 카톡을 보고는, 곧바로 당황하고 말았다. 너무 재밌어서 바로 그 사실을 알렸는데, 그 바람에 상황이 좀 묘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일. 결국, 그녀는 더 늦지 않게 자신의 정체를 실토하기로 마음먹었다.
→ 사실, 제가··· 개미군단님 팬클럽 개설자이고··· 또 운영자입니다 (오전 00:05분)
그러고는 그녀는 곧이어 더 용기를 내어 자신의 닉도 공개했다.
→ 저··· 강남미녀··· 강남미녀입니다 ㅠㅠ (오전 00:05분)
그리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귓불이 아주 발갛게 상기되고 있는 그녀. 또한, 너무 부끄러워 그녀는 얼른 카톡창을 닫았다. 순간, 얼굴까지 화끈거리는데, 그 바람에 저절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만다.
그리고 한참 뒤, 아주 조심스럽게 검지, 중지, 양 손가락을 좌우로 벌리며 새카만 동공을 드러내며 주변을 살피고 있는 그녀.
그러고는 얼굴에서 두 손을 내린 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휴대폰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 그녀. 그녀의 가늘고 긴 손끝은 많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카톡창을 켰다.
콩닥콩닥.
이때,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요란하다.
그럼에도 뒤늦게 답톡을 확인하던 그녀는 이때 새카만 동공에 작은 태풍이 분 듯 흔들거렸다가, 곧 동공의 긴장감이 풀렸고, 이내 그녀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우하하하, 하하하하! 그랬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강남미녀님 (오전 00:07분)
개미군단 김현수의 답톡.
그 답톡이 그렇게 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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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수는 정말 오밤중에 요란하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때로는 도도하면서도 때로는 귀엽고 또한 때로는 섹시미를 가진 스타 여배우 최인영. 그녀가 자신에게 악플을 달았던 바로 그 강남미녀였다니!
거기다가 그녀는 자신의 팬클럽 개설자이자 운영자라고 한다.
세상에 놀랍게도 연예인이 자신의 팬클럽 회장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뭇 남성들이 선망하는 대상이기도 한, 바로 저 최인영이 말이다.
그렇게 신나게 웃은 뒤, 현수는 최근에 그녀가 자신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다시 확인해 봤다.
「야! 개미군단! 너! 진짜! 진짜! 삐졌냐??? 강남미녀」
2022년 6월 28일자 이메일.
그걸 다시금 확인한 뒤, 현수는 또다시 답톡을 보냈고, 잠시 후, 무척 부끄러워하는 강남미녀 최인영으로부터 톡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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