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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기상캐스터
-21-
“이번엔 연체 안 됐죠?”
저번에 빌린 책들을 내밀자, 힐끔 현수를 쳐다보는 도서관 사서. 곧 그녀는 실미소를 보이며 웃는다.
잠깐의 미소였지만, 현수의 눈길을 끌었다.
“네. 처리했어요. 계속 책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 분요.”
사실, 도서관 입구 쪽 도서 반납함 대신에 여기서 책 반납 절차를 마친 현수. 한 번 더 그녀의 눈도장을 찍은 셈인데, 하지만 자신의 뒤로 쭉 이어진 대기열 때문에 그는 곧바로 옆으로 물러났다.
‘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조금 전 자신을 한번 쳐다볼 뿐,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은 그녀. 결국, 현수는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더 말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경제 서적들이 모여 있는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잡념을 지운 뒤, 그는 여러 책들을 두루 살피며 다음번에 공부할 책들을 엄선해 봤다.
사실 이런 도서관 방문은 현수에게 작은 즐거움이 된다.
회사 생활을 하지 않다 보니, 투자 일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많이 남게 되는 게 현실. 그래서 새벽 일찍 헬스장에 가는 것이고, 또 투자 일이 끝난 뒤에는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찾게 된다.
물론, 해외선물이나 해외옵션거래를 하게 되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다행히 이번 천연가스 선물은 거의 장투(장기투자)나 다름없어 좀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 오늘은 이것들을 빌려 가자.’
「신주인수권과 전환사채의 이해」
「옵션 투자와 헷지 응용」
「집중 금융공학 분석」
그렇듯 현수가 읽는 책들의 난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이렇듯 특정 주제에 대한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자신한테 딱 맞는 일을 찾았기에 그는 이런 공부들이 무척 즐거운 것이다.
잠시 후, 현수는 3권의 책들을 대출한 뒤,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현재 바깥은 땡볕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견딜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현수가 막 나온 도서관 쪽으로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총총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아가씨는 그대로 현수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현수 쪽을 슬쩍 쳐다보는 여자.
투명한 듯 맑은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살짝 이채가 나타났으나 곧 사라지고 있었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현수가 앞만 보고서 그저 자기 갈 길을 가 버렸기 때문이다.
“어··· 저 오빠는···.”
이때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녀. 그러나 이내 그녀는 다시 속도를 내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도서관 2층, 제1 자료실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
- 신혜야!
한편, 거의 목소리가 나지 않게 입 모양으로 외치는 도서관 사서 김상희. 때마침 자료실 입구 쪽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친구 박신혜를 발견하고는 그녀는 그렇게 반가워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 두 사람. 서로 가볍게 손을 잡았고, 이때 도서관 사서 김상희는 자신의 데스크에 「도서 정리 중,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팻말을 놓고서 나란히 자료실 밖으로 나갔다.
“신혜아, 왜 이렇게 빨리 왔어?”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그냥 나왔어. 참, 조금 전, 나, 혜정이 전 남친 본 것 같은데?”
“아? 그 사람? 하긴, 너 봤을 수도 있겠다. 여기 방금 왔다가 갔거든.”
“아, 진짜? 근데 보기보다 괜찮아 보이던데? 얼굴도 괜찮고···.”
“하긴, 저번보다 좀 나아진 것 같아. 그래도 아직 취업도 못 한 것 같고. 이 시간에 도서관에 나오는 걸 보면···.”
도서관 통로 한쪽 작은 휴게실. 그곳에서 아주 목소리를 낮춰, 안부 겸 대화를 하던 두 사람. 그리고 그녀들은 이내 화제를 바꾸었다.
“난, 네 일 끝날 때까지 열람실에서 책 보면서 기다릴게. 끝나면 바로 나가자.”
“정말 맛있는 거 사주려고?”
“야!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어렵게 합격한 건데, 한턱내는 게 당연하잖아. 그리고 다음주 부턴 입사하면 바쁠 테고. 상희야, 대신에 빨리 일 끝내.”
“알았어. 기상캐스터 합격자님. 난 공시 실패했지만, 넌 성공해서 너무 좋다.”
“야, 그런 말 그만하고 그만 들어가자. 너 이렇게 오래 비우고 있으면 안 된다며?”
눈이 유난히 크고 새하얀 얼굴을 가진 박신혜. 긴 갈색 머리카락에 하얀 반팔 상의와 몸매가 약간 드러나는 얇은 핑크색 치마를 입은 그녀의 모습. 단발머리에 검정 여름 정장과 셔츠 차림인 김상희의 모습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그래서 박신혜의 모습은 저절로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실제로 두 사람이 제1 자료실로 들어가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남자들의 시선이 곧바로 박신혜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른 척하며 박신혜는 자료실 내를 이리저리 누비다가 국내 소설 코너 쪽으로 가서 책 한 권을 고른 뒤, 한쪽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그런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한편, 도서관 사서 김상희는 데스크에서 그런 박신혜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는다.
‘확실히 신혜가 이쁘긴 하지.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이쁘고, 또 지금은 제일 잘 됐고. 그러고 보면 은근히 독한 면도 있단 말이야.’
사실, 그녀는 작은 지방대 출신이다 보니 그녀를 비롯하여 그녀의 친구들 역시 대다수가 취업을 잘 못 한 상태다. 그 때문에 일찍 공시 공부를 했던 그녀는 결국 아쉽지만, 공시 공부를 접게 되었고, 대신에 서울 사는 가까운 친척의 추천을 받아서 이곳 도서관 계약직 사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친구 박신혜는 졸업한 뒤 1년 만에 기어이 케이블방송국 기상캐스터 공채에 합격한 것이다.
자신이 봐도 아주 대단한 친구임이 틀림없다.
‘참, 혜정이한테 모처럼 카톡이나 한번 보내볼까?’
그래서 잠시 후 조금 한가해지자, 김상희는 휴대폰 카톡창을 열고 남몰래 톡을 시작했다.
→ 혜정아 잘 지내?
그리고 2분 뒤.
← 어머! 상희야 내가 톡 보내려고 했는데
→ 어? 너도? 무슨 일 있어?
← 축하해 줘. 나 잘 되면 올가을에 결혼할 수도 있어.
→ 어머? 진짜? 어떻게? 선 봤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 선은 뭐, 소개팅 겸···
→ 진짜 잘 되고 있나 보네?
← 응. 좀.
→ 야, 너 시집가면 부러워서 어떡해
← 몰라. 근데 넌 어때? 계속 서울에 살 거야?
→ 우선은 그러려고. 참, 오늘 박신혜 여기 도서관에 놀러 왔어.
← 박신혜?
→ 응.
← 걔 기상캐스터 됐다던데? 맞지?
→ 응. 근데 넌 어떻게 들었어?
← 그냥 어쩌다가··· 흠. 근데 누군 좋겠다. 누군 직장도 생기고, 또 부럽고.
→ 넌 곧 결혼할 거라며?
← 직장 있으면, 이 나이에 결혼을 왜 해?
→ 야, 너 그러지 말고 담에 서울 한번 놀러 와. 신혜랑 같이 밥이나 먹자.
← 나, 신혜랑 좀 안 좋잖아
→ 그러니까 성질 좀 죽여. 친구 사이인데 이제 좀 풀어도 되잖아
← 그게, 그게 다···
→ 알아. 진짜 사소한 일이었잖아. 어쨌든, 서울 살다 보니까 신혜랑 많이 친해졌거든. 그러니까 나중에 꼭 화해하자. 괜찮지? 신혜도 너한테 안 좋은 감정 다 사라진 것 같던데···
← 음. 그래 뭐.
→ 참, 너, 네 남친 언제 소개시켜줄 거야? 옛날처럼 애매하게 보여주거나 괜히 숨길 생각 마. 이젠 결혼도 생각한다며?
← 그건 그때··· 아, 아니다. 미안.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속이 좁아. 난, 내 오빠가 다른 사람 보는 게 좀 싫어서···
→ 그거 병이다, 병. 이번엔 절대 그러지 마.
← 알았어. 미안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톡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을 무렵, 이때 김상희는 인기척을 느끼며 바로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책을 빌리려고 데스크 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총 5권인가요? 그럼 도서대출카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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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근 주차장에 도착한 현수는 자신의 BMW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동을 거는 현수.
강남에 살면서 멀리 이곳까지 온 이유는 사실 이곳 도서관이 익숙한 것도 있겠지만, 도서관 사서에게 약간의 흑심(?)이 있는 게 원인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떤 틈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도서관 사서. 결국, 현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곧 자신의 차량을 몰고서 주차장에서 나왔고, 곧 큰 도로로 진입했다.
‘역시 차가 있으니까 편하단 말이야.’
빵빵한 에어컨 바람, 아주 시원하고 너무나도 좋다. 또한, 실내에 가득한 신차 냄새는 은근히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한다.
잠시 후, 현수는 연남동 핫플레이스에 도착했다. 먼저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댄 뒤, 현수는 요즘 핫하다는 카페에 들렀고, 향이 짙은 커피에 크림치즈 케익을 즐기며 잠깐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더 늦은 저녁이 되면 이곳에 연인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좀 더 이른 시간에 여기 카페에 들렀고, 싱글로서 이 분위기와 여유를 조용히 만끽하는 것이었다.
‘참, 선글라스도 하나 사야겠어.’
이제는 작은 부자 축에 들어가는 현수. 그는 조금씩 멋을 내고 싶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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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시간쯤 뒤, 청담동에서 유명하다는 피자 맛집에서 피자 한 판을 포장 주문해서 받은 현수는 그 길로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사실, 오늘은 따로 약속이 없어, 집에서 혼자 피자를 먹을 생각이다. 물론 그 전에 현수는 아주 중요한 일, 즉 천연가스 선물 차트를 다시금 확인해 봤다.
현재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2.925 포인트. 기대만큼 큰 폭의 상승은 더 이상 없었다. 즉, 더 오르지도 못하고 더 떨어지지도 않고, 계속 소폭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모습인 것이다.
‘음. 결국, 더는 무리인가 보다.’
현수가 확인한 내일 새벽 종가는 2.910포인트. 그래도 중간에 갑자기 고점이 나올까 싶어 계속 기다렸지만, 별다른 반응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아까 전 피자 맛집에 들를 때도 휴대폰 창을 열어놓고서 틈틈이 확인했는데, 그럼에도 그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기다릴까 아니면 이대로 익절청산을 할까 망설이던 현수. 그런데 피자 한 조각을 베어서 먹던 중, 결국 현수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확실히 더는 무리야.’
결과적으로 현수는 더 기다리지 않고, 천연가스 선물 투자를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오전, 오후 아주 흥미진진했던 대신정밀화학 주가 차트보다는 좀 더 무료하게 천연가스 투자를 마무리하게 되어 좀 시원섭섭한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큰 수익을 얻은 터라 현수는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곧바로 현수는 평균 2.923포인트에서 익절 청산을 마쳤다.
그리고 얻어진 수익.
즉, 0.633포인트(= 2.923-2.290 포인트) X 420계약 X 10,000달러! 이 식의 계산 값은 무려 2,658,600달러다.
물론 여기에 거래수수료가 빠지고 해외 파생상품 수익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나중에 별도로 나가게 되겠지만, 원화 30억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익을 현수는 얻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해외선물·옵션계좌 잔고는 15억 3천만 원에서 45억 3천만 원으로 늘어났고, 아까 대신정밀화학 주식으로 거둔 수익 덕분에 국내 주식계좌 잔고는 이미 43억 3천만 원이 늘어난 상태다.
그래서 종합한다면 현수의 현금 자산은 무려 88억 6천만 원이나 된다.
이건 정말 미치고 팔짝 뛸만한 수익이 아닌가.
“······!!!”
비록 예측은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 현수의 눈과 입은 저절로 한없이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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