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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1)
-13-
‘혹시 찌라시 때문일까?’
4월 30일 토요일 아침 10시.
현수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뒤, 7권의 책을 한 아름 가득 안고서 고시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인근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주가 폭등은 세력 주도도 있겠지만··· 적어도 찌라시도 퍼졌을 거야. 어제저녁, 기사 나온 것도 하나도 없었고, 공시도 감감무소식이고.’
사실, 현수는 과거에 찌라시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공시생 친구가 증권가 찌라시를 학원에 가져온 것인데, 그때 서로 돌아가면서 그걸 본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는 연예 쪽 가십 기사에만 주목했다.
‘하긴, 금요일 날 저녁에 호재 기사를 터트리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일명 trash day, 매주 금요일은 악재 기사를 버리는 날이다. 특히, 이날 악재 기사를 조용히 터트리고 나면, 주말이 지나면서 그 악재는 조용히 묻히게 된다. 정치인들 역시 부담스러운 성명 발표는 이날에 하는 경우가 잦다.
잠시 후, 현수는 도서관 1층 도서 수거함에 이전에 빌린 책들을 모두 넣은 뒤, 이제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갔다.
제1 자료실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 조용한 도서관 정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좌측 안쪽 넓은 데스크, 거기에는 젊은 여자 사서가 조용히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저번에 잠깐 대화를 나눴던 김상희, 바로 그 여자 사서다.
현수는 그 여자의 옆얼굴을 힐끔 쳐다본 뒤, 곧바로 경제 관련 책들만 모아 놓은 코너로 들어갔다.
‘음. 선물·옵션거래··· 그 책들이 여기쯤 있을 텐데···.’
그때부터 현수는 눈에 띄는 책들을 모조리 뽑은 뒤 한 아름 가득 안고서 한쪽 열람실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근데 아침부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실제로 오픈된 열람실에는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제법 모인 상태다. 이어폰을 낀 채 책을 읽고 있는 대학생들. 머리가 희끗희끗한 반백의 중년인들. 또한,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들. 그리고 아직 어린 초등학생과 같이 온 엄마 혹은 아빠들. 그 모습들이 각양각색이다.
곧이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서 앉은 현수는 그때부터 투자 관련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는데, 어느덧 12시쯤 되자, 현수는 책들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내용 파악을 마친 몇 권은 도서 수거대에 반납했고, 개중에 괜찮아 보이는 몇 권의 책들은 대여할 생각이다.
‘그래, 이것들은 좀 더 깊이 봐야 할 책들이니까.’
그래서 총 5권의 책을 대출 데스크로 가져갔고, 그런 현수의 인기척에 도서관 사서 김상희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 아주 짧은 순간. 두 사람의 눈은 서로를 향하며 잠깐 마주쳤다.
“또, 투자 관련 책들이네요?”
“네? 네, 좀···.”
“빌리실 거죠? 카드 주세요.”
“아, 여기.”
현수의 카드를 받은 그녀는 바로 무언가 조회를 하더니, 갑자기 탁탁 소리가 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곧 고개를 들고서 현수를 빤히 쳐다본다.
“음. 그런데 저기, 지지난번 빌려 가신 거 중에··· 연체된 게 있네요.”
“네?”
“공시 관련 책들 총 3권. 이게 3권 다 연체됐는데, 그래서 지금 대출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음. 잠깐만요. 제가 지금 연장 신청을 넣어봤는데··· 아, 이미 연체된 거라 전혀 키가 안 먹히네요. 이거 어쩌죠?”
그 순간, 현수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탁! 쳤다. 깜빡하고 있었던 거.
오늘 「선물·옵션 투자의 필승 전략」 등 총 7권의 책들은 조금 전 반납했지만, 그 이전에 빌린 공시 관련 책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차! 제가 진짜 깜빡했네요. 죄송한데, 혹시 방법이 좀 없을까요? 이 책들 꼭 빌려 가고 싶은데.”
현수는 조심스럽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김상희는 그런 현수의 얼굴을 다시금 빤히 쳐다보다가, 곧이어 탁탁탁! 소리를 내며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잠시 뒤, 고개를 들었다.
“음. 이건 원래 안 되는 건데, 제가 좀 손을 썼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한 5분 정도만 더···.”
그래서 현수는 책들을 그대로 두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대략 5분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데스크로 돌아오자, 그녀는 바로 씩 웃으며 현수에게 책 5권과 현수의 도서대출카드를 함께 내밀었다.
“이제 됐어요. 그치만, 꼭 1주일 내로 공시 책들은 꼭 반납하셔야 돼요. 아니면 한달간 대출 정지가 될 거예요.”
“네? 아, 네! 꼭 반납할게요. 감사합니다.”
현수는 그녀의 친절함과 배려에 무척 고마워하며 바로 감사의 뜻을 전했는데, 그런 현수를 힐끔 쳐다보던 그녀. 그런데 가벼운 웃음 뒤, 곧바로 고개를 숙여 버린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뭐야? 또 대화가 여기서 끊기네.’
뭔가 끈덕지라도 있으면 또 다른 대화를 한번 시도해 보려고 했던 현수. 하지만 전형적인 친절한 도서관 사서의 모습이라, 할 수 없이 그는 도서대출카드를 지갑에 넣었고, 책들을 품에 가득 안은 채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현수가 도서관 도난 방지 검색대를 빠져나가자, 그때서야 여자 사서는 고개를 돌려 현수 쪽을 한번 쳐다본다.
그러고는 그녀는 바로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냈다.
- 야, 박신혜 너 뭐하고 있어?
- 방금 혜정이 전 남친 또 왔어. 확실히 날 못 알아봐.
- 공시 완전 포기한 것 같고, 완죤 불쌍해 보여
그러자 잠시 후 날아온 누군가의 답톡.
- 진짜?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누군가와 정신없이 카톡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
「복합 파생상품 집중 분석」
「헤지펀드의 실체」
「투자 손익 정밀 계산법」
「신용파생상품의 이해와 활용」
「파생상품 통계분석 바이블」
도서관에 빌린 이 책들을 현수는 자신의 책장에 조심스럽게 꽂아 넣었다.
이 책들은 저번에 빌린 책들보다 좀 더 전문적인 지식들이 들어가 있는데, 아까 열람실에서 잠깐 봤을 때, 개중에는 복잡한 수학적 통계 계산법들도 기술되어 있었다.
즉, 현수는 저번 책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좀 더 전문적인 투자 전공서들을 공부할 생각인 것이다.
‘흠. 공부는 앞으로 집중해서 하기로 하고··· 근데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그러고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 무척 가난했고 또 제대로 된 비전도 없었던 자신.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진 상태다.
수중에는 무려 1억 원이 넘는 돈이 생겼다. 물론 그 돈 전부는 주식에 들어가 있지만, 마음은 그렇게 풍족할 수가 없다.
‘흠. 그냥 비싼 거 사 먹을까? 아니지! 저녁에 약속도 있는데. 그냥 간단히?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면서 현수는 자신의 지갑을 한번 열어봤다. 현재 지갑 속에서는 빳빳한 5만 원권 10장, 대략 현금 50만 원 정도가 채워져 있는 상태다. 생활비 조로 떼놓은 돈인데, 즉 현재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최대치의 돈이다.
현수는 곧이어 방에서 나왔다.
근처 순대국밥 집에 들러, 간단히 국밥 한 그릇 먹을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계단을 따라 내려와 곧장 고시원을 나가려는데···. 때마침 고시원 1층의 정적을 깨는 아주 큼직한 목소리가 들려, 현수는 발걸음을 멈추며 뒤돌아봤다.
고시원 1층 입구 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무실.
그곳 벽면의 조그만 창문을 열고서 지금 고함을 지르고 있는 남자. 이때 현수는 바로 그 사람을 알아봤다. 고시원 총무. 그리고 그 사람 뒤쪽으로 화사하게 옷을 입고 있는 중년 아줌마의 모습도 보였다.
“307호 아저씨 맞죠?”
“네? 아, 네··· 맞는데요?”
현수가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건장한 체격의 고시원 총무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쪽 머리가 떡지게 눌러앉은 모습인 고시원 총무. 체육복 차림에 맨발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는 아직 눈곱도 제대로 떼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 총무는 세모 눈을 하고서 현수를 쳐다봤다.
“저기, 다음 달 회비 아직 안 냈죠? 마침 사장님하고 결산하던 중이었는데, 대체 언제 낼 겁니까? 지금껏 꼬박꼬박 잘 줘서 매번 문제없는 줄 알았는데, 설마 빵구 내시는 거 아니겠죠?”
“네? 회비?”
‘아!’
순간, 현수는 아차 싶었다. 요즘 생활패턴이 바뀌다 보니, 자연스레 생활 리듬도 조금 깨진 모양이다. 정말 깜빡한 것이다.
“잠시만요.”
현수는 즉시 지갑에서 5만 원권 7장을 꺼내서 총 35만 원을 건넸다. 사실, 이곳은 시설도 무척 나쁘고, 주방도 무척 지저분해서 도저히 취사를 하는 게 거북스러운 곳인데, 그런데도 한달 방세는 무려 35만 원이 된다.
현수가 보기에는 턱없이 비싼 곳. 하지만 그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나마 이 고시원은 위치상 제법 괜찮은 곳이니까.
“아이씨, 진작에 주시지. 제가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들을 뻔했다니까요. 참,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네?”
“제가 보기엔, 흠. 요즘 낮에 어디 안 나가시죠?”
“······?”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런데, 3층 312호에서 얼마 전 도난 사고가 터졌거든요.”
“네?”
“그러니까 혹시 모르니까, 방에 계시다가 무슨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면, 곧바로 신고 좀 해 줄래요?”
“······?”
“요즘 3층 분위기가 특히 안 좋거든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괜스레 의심받을 짓 절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현수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바로 입을 열었다.
“참, 이건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바로 말할게요. 저 다음 달 말일까지만 여기 있을 겁니다. 다른 데 이사가려고요.”
“네에? 대체 어디로요?”
현수의 갑작스러운 말에 바로 의아해하며 묻고 있는 총무.
“어디 딴 데 좋은 데 가는 겁니까?”
“하하. 좀.”
“아니, 그래도 여기가 가격도 아주 싸고, 또 위치가 얼마나 좋아요? 제가 새벽마다 밥도 얼마나 열심히 해 놓는데요?”
물론 밥 짓는 것은 무척 열심이겠지만, 자기 옷차림마저 저렇게 지저분한 사람이라, 그가 관리하는 주방도 당연히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클레임들이 많이 들어갔을 테지만, 그는 매번 모른 척하고 있었다.
“흠. 암튼, 다음 달 말일에 나가겠습니다. 저 지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는 현수는 곧바로 고시원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수익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상, 더는 이런 답답한 고시원에 머물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좀 더 사람답게 살고 싶고, 또한 좀 더 쾌적한 곳에서 투자 행위를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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