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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약대 대학원 신약합성 연구실.
실험용 초자들, 실험 기구들, 액체 시약, 고체 시약 등.
무척 생소한 모습의 연구실 풍경에 현수는 잠시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간단히 서명석으로부터 연구실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잠시 후 그는 대학원생실로 들어갔다.
이때, 현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좌우 벽면을 바라보며 일렬로 이어진 양쪽의 책상들.
그리고 그들 책상 위로는 긴 삼단 책장이 놓여있는데, 전공 서적들이 거기에 가득 꽂혀 있는 모습이다.
정돈된 모습이라기보다는 약간 어수선한 모습들.
“현수야. 넌 내 옆에 앉아. 야, 여기, 내 친군데, 잠깐 여기 있다가 갈 거거든. 홍서영! 넌 애랑 인사 좀 해. 나랑 가장 친한 친구, 부랄친구, 김현수.”
이때, 서명석은 대학원생 후배들에게 현수를 간단히 소개했고···.
그런데 멀뚱멀뚱 계속 쳐다보고 있는 한 여학생한테는 좀 짓궂게 현수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현수.
“부? 부랄? 야, 너 진짜 왜 그러냐?”
바로 현수는 작은 목소리를 반발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그 여학생은 눈빛을 반짝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긴 생머리에 안경을 끼고, 또 하얀 실험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서명석. 이 분이 네 친구?”
“응. 처음 보지? 내 고향 친구는?”
“그래! 진짜 처음이다! 아, 안녕하세요?”
잠깐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곧 고개를 돌려 현수를 쳐다보며 인사하는 여학생.
그 바람에 현수는 바로 일어나, 그 여학생을 마주 보며 자세를 갖춰 인사했다.
조금 전에는 이곳 대학원생들에게 간단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지만, 지금은 제대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네··· 안녕하세요?”
“근데 혹시, 우리 학교 학생이세요?”
“아, 아뇨. 아닙니다.”
“그럼?”
“현재 투자 일 쪽을 좀 하고 있고··· 이미 대학은 졸업했습니다.”
“아!”
혹시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감탄사를 날린 것인지 그 사정을 알 수 없지만, 홍서영의 그런 반응 때문에 현수는 바로 화제를 돌릴 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명석이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어쩌다가 실험실까지 왔습니다. 불편하지 않게 조용히 있다가 갈게요.”
혹시나 자신 때문에 부담감이 있을까 봐, 현수는 곧바로 그렇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홍서영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바로 두 손을 젓는다.
“괜찮아요. 편안하게 있으셔도 돼요. 저희 교수님은 오늘 일찍 퇴근하셨고, 여기 오래 있으셔도 누가 뭐라 안 해요.”
“그래요?”
현수는 자신을 배려해 주는 홍서영의 그런 말투에 약간 기분이 좋아졌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서명석은 다시 고개를 돌리며 홍서영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고 있다.
“야, 그럼 그러지 말고, 서영아. 네가 현수 데리고 가서 커피 좀 마시고 올래? 내가 지금 이 녀석 때문에 Clinical Cancer Research 쪽 논문들을 좀 뽑아서 읽어야 할 게 있거든. 부탁 좀 하자. 대충 놀다가 와. 현수야, 너 지금 갔다 와. 내가 그동안 후딱 끝내 놓을게.”
그렇듯 서명석이 갑자기 이상한 제안을 해 오자 현수는 바로 좀 당황했다.
여자라면 젬병인 서명석. 그가 아주 편안하게 홍서영과 대화하는 모습은 아주 색달랐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 홍서영과 단둘이서 커피를 마시고 오라는 서명석의 제안. 그건 약간 깨는 것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여학생은 의외로 아주 털털한 모습이다.
“커피? 하긴 뭐, 마침 커피가 땅겼는데. 대신에 네 카드는 줘야 하는 거 아냐? 네 고향 친구라며?”
“그래. 알았어. 가져가. 대신에 너무 비싼 거는 먹지 마라.”
“그래. 아주 비싼 것만 먹을게.”
그렇듯 말을 짓궂게 받아친 그녀는 명석의 손에서 신용카드를 가볍게 낚아챘다.
“그럼 나가죠. 현수씨. 야! 너희들! 같이 나갈래?”
이때 홍서영은 고개를 돌리며 실험실 후배들에게도 커피 의향을 물어봤는데, 다들 머리를 마구 흔들어댄다.
“저 바빠요. 지금.”
“선배님. 다녀오세요. 저 좀 바빠서···.”
“교수님께 보낼 보고서 써야 하거든요.”
이때, 자신의 하얀 실험 가운 양쪽 주머니에 양손을 쑥 집어넣는 그녀. 그러고는 양쪽 어깨를 빳빳하게 세운 그녀는 그들을 잠시 흘겨보다가 이내 앞장을 선다.
“가요. 현수씨. 우리끼리 가죠. 쟤넨 아무리 봐도, 딱 해충이라니까요. 공부 해충···.”
그 바람에 멋쩍은 표정이 된 현수.
할 수 없이 홍서영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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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일을 하신다고요?”
“네.”
“그럼 은행? 아니면 벤처캐피탈, 아니면 그냥 일반 증권회사 다니세요?”
“아, 그건 아닙니다. 그냥 지금은 혼자서···.”
“네?”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신에 대해서 묻고 있는 홍서영. 그런데 이게 참 곤란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볼 때, 젊은 사람이 주식 투자 일만 한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저 백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럼 음. 프리랜서 투자자?”
아주 듣기 좋은 표현 방법이었지만, 사실상 이보다 더 적당한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현수는 다행히 바로 동의했다.
“네. 뭐, 그런 셈이죠.”
“아, 그래서 인상이 좋았나 보네요?”
“네?”
“명석이 성격이 칼 같잖아요? 아주 꼬질꼬질한 게 어떤 때는 진짜 미칠 정도로 답답하고. 자신은 자수성가해야 한다고, 정말 미친 듯이 실험만 해요. 아! 저랑 명석이는 학부 때 같은 스터디 멤버였고, 실험실까지 같이 오게 된 케이스죠. 근데 현수씨! 현수씨는 전공이 뭐예요?”
한참 서명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고 있는 홍서영.
다행히 현수는 바로 답변할 수 있었다.
“전공요? 아, 저는 영어영문학과 출신인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풉!”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입 밖으로 뿜을 뻔한 홍서영.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얼른 입을 가리고 있던 그녀는 약간 민망한 표정을 띠면서 다시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근데 괜찮으세요?”
“그게, 실은··· 아까 Clinical Cancer Research 논문들 이야기하셨죠? 그래서 현수씨가 약학이나 화학 쪽 전공자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인문계 쪽에서 왜 그걸?”
그러니까 그녀로서는 좀 황당했던 것이다.
“아, 그게 제가 좀 분석할 부분들이 있어서···.”
“분석이라면?”
현수는 이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한편으로는 홍서영도 약대 대학원생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현수는 간단히 LK바이오닉스에 대해서 언급했고, 그걸 들은 홍서영의 두 눈은 약간 반짝이고 있었다.
“음, LK바이오닉스라면? 그러고 보니까 저도 LK 쪽 신약 논문을 본 적이 있는데···. 참! 이것도 봤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하더니 현수에게 보여줬다.
어느 국제학회 사이트.
거기에는 영어로 쓰인 학술 논문 제목과 논문초록이 게재되어 있었다.
“이건, 작년 미국 화학회 신약 섹션에서 발표된··· LK바이오닉스 신약 물질에 대한 발표 초록이거든요. 그때, 제가 저희 지도교수님을 따라서 보스턴 학회에 갔고, 그 발표도 유심히 들었어요.”
뜻밖의 말이었다.
“어땠습니까?”
갑자기 호기심이 동한 현수. 그는 허겁지겁 물어봤다.
그런데 홍서영은 은근히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였다.
“그러니까 지금 LK바이오닉스 투자를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잖아요?”
“네??”
“······?”
“아, 뭐 그런 셈이죠. LK바이오닉스 종목은 제 고려 대상 중의 하나이고···.”
“근데 개인 투자라고 하시면, 혹시 주식 투자?”
“네···. 정확히 잘 보셨습니다. 맞습니다.”
“좀 신기하네요. 주식 투자는 원래 이렇게 해야 하나 보죠?”
“네?”
“이렇게 찾아다니면서 정보 분석도 해야 하고?”
그러나 사실은 이런 식의 정보 분석은 주식 초짜나 다름없는 현수로서는 생전 처음 하는 일이었다.
즉, 좋은 투자 물건을 투자 시작점에서 정확하게 발굴해서, 제대로 한 방을 먹기 위한 일종의 노력인 셈이다.
다행히 친구 서명석이 기억이 나서 이 일을 시작한 것뿐인데···.
물론 현수는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신약 분석을 할 생각은 없다.
딱 하루만!
오늘 딱 하루만 데이터 분석에 집중할 생각이다.
특히, 이런 지식이 있다면, 주가가 꿈틀거리기 전, 다시 말해서 종목 매수를 하기 전, 남들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볼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보름 뒤 LK바이오닉스의 임상 2상 시험 결과가 언론에 발표될 예정이라 저가 매수 타이밍을 정확히 봐야 한다(물론 파토가 나면 바로 물량을 버리면 되겠지만).
특히, 이런 시기를 앞두고 LK바이오닉스 종토방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다. 임상 실패 의견과 임상 성공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럼 제가 아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대신에 그 투자가 잘 되면··· 저랑 명석이한테 근사하게 밥 한번 사요.”
“네! 당연하죠! 서영씨! 전문가 의견을 듣는 건데, 당연히 그래야죠.”
“하긴··· 저희도 전문가가 맞아요. 약사 자격증도 있으니까요.”
약간 아줌마틱하면서도 눈빛이 밝고 아주 영리해 보이는 아가씨 홍서영.
그녀는 드디어 LK바이오닉스 신약 물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그녀의 친절한 설명이 거의 끝이 났을 때, 현수의 두 눈은 흡사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아주 강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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