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224화 (224/225)

제224화

외전 3. End(3)

“으에베에베. 나쁜 시키야! 왜 빨리 데리러 안 와?!”

“천천히 좀 와. 넘어진다.”

잔뜩 술에 취한 최서현이 비틀거리며 강수호에게 다가갔다.

어찌나 많이 마신 건지 온몸에 술 냄새가 진동한다.

스킬들로 충분히 알코올 기운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오늘은 제대로 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행…… 우리 수호다!”

최서현이 강수호를 발견하고 한껏 웃으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품에 안긴. 아니, 품에 안겼다기보다는 거대한 추 하나가 강수호를 덮쳤다.

쾅! 콰직!

“커, 커헉!”

“어? 아, 미안. 깜빡하고 또 힘 조절을 못 했네.”

몸은 평범한 여성과 다를 바 없지만, 속은 평범하지 않았다. 압축 근육이 그녀의 온몸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부러진 갈비뼈를 재생시키고는 그녀와 함께 일으켜 세웠다.

“후우…… 괜찮아. 일단 집부터 가자.”

술을 먹지 않아도 일어나던 일이었기에 익숙한 듯 허리를 붙잡고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당장 날아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가고 싶었다.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

“웅! 당연히 잘 놀았지! 그런데 우리 수호는 별로 안 취해 보이네?”

“너 데리러 오는데 취한 상태로 갈 수는 없잖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유혁과 조시현 때문이지만, 굳이 그들의 이름을 꺼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역시 우리 여보야, 그것보다 아린이는?”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그녀가 아린이를 찾았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 사이에서 낳은 소중한 생명이니.

걱정 말라는 듯 도착한 집 문을 열어주며 대답했다.

“앨런 스승님이 봐 주시고 계실 거야.”

“다행이네. 전처럼 마법은 안 가르쳐 줘서. 가르쳐 줘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르쳐 주지. 애한테 무슨 마법을…….”

잔뜩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아무리 마법 천재에, 마법이란 것에 흥미를 느껴도 고작해야 3살 여자아이. 마법을 배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부드럽게 문이 열리고 들어간 집에는 달달하고 매콤한 냄새가 가득했다.

“우와. 맛있는 냄…… 커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소파에서 잠드는 최서현.

그녀를 소파 위에 눕혀 두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앨런 님이 다 만드신 겁니까?”

“집에 있던 재료로 실력 발휘해 봤죠. 꽤 괜찮습니까?”

“꽤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분명히 분식인데, 호텔에서 먹는 것 같습니다.”

향뿐만 아니라 데코레이션도 장난 아니다. 당연하게도 맛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 증거로 떡볶이에 손이 갈수록 아린이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지워지질 않았으니까.

“헤헤, 맛이써.”

“그렇게 맛있어?”

“웅! 앨런 삼촌이 만든 떡볶이도 맛있고, 순대도 맛있고…… 그냥 다 맛있어!”

떡볶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식들이 아린이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나도 먹어 볼까나.’

고인 침을 삼키며 포크를 집었다.

입이 까다로운 아린이조차 맛있다고 말할 정도니, 맛이 궁금한 건 당연한 일. 얼마나 맛있는지 보기 위해 떡볶이를 집으려 하던 그때였다.

“먹어볼…….”

“으흠, 그 포크 잠시 멈추거라.”

“예?”

“아린이를 위해서 만든 건데, 자네가 왜 먹나? 너는 이거나 먹거라.”

앨런의 젓가락이 강수호의 포크를 완벽히 막았다.

그러고는 성대하게 차려진 식탁과는 다르게 작은 접시에 담긴 떡튀순을 건네주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접시.

앨런이 만들어 맛은 훌륭할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아니었다.

“맛은…… 있네요. 참.”

“당연하지.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 으, 으흠…….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는 말게나. 모두 아린이를 위한 것이니.”

접시만큼이나 마음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아린이를 위한 거라고 하니 딱히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다른 스승님들과 다르게 앨런은 그나마 믿을 만도 하고.

“음. 맛있네. 그것보다 다른 분들은 전부 잘 지내고 계시죠?”

“절대자들을 말하는 건가?”

“예, 잭 님처럼 많이 본 분들도 계시는 반면에 갇힐 때 빼고는 한 번도 못 본 분도 계시잖아요.”

절대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절대자 한 명은 차원 하나를 전부 삼키다 못해 차원을 만들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이들이 한 명이라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 촌장이랑 내가 계속 보고 있거든.”

“정말요?”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자유를 고작 몇 명 때문에 망칠 수 없는 법이잖아?”

5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하다.

애초에 강수호와 최서현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봐주기도 했고.

걱정할 건 촌장뿐이다.

“저번 년에 뵙고 못 뵌 것 같은데, 촌장님은 잘 계십니까?”

바쁜 탓에 촌장을 보러 가지 못했다.

핑계가 아니다. 육아와 샬런이 클리어하고 있는 ‘층’이라는 것을 관리하니 바쁜 것이 당연했다.

“잘 지내고 있지.”

“저번 달에 이사하셨다고 했는데, 어디로 이사하셨나요?”

떡튀순을 동시에 포크에 찍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마침 아린이를 데리고 갈까, 생각했던 참이었다.

어디로 이사했는지 묻자 예상한 대답이 들려왔다.

“에베레스트산.”

“역시 그쪽이네요.”

“알고 있었어?”

“아니요, 알고 있는 건 아닌데 촌장님이라면 거기 갈 거 같아서요. 워낙 시원한 걸 좋아하기도 하시고, 거기는 몬스터가 많잖아요?”

에베레스트산.

촌장은 튜토리얼이 끝나고 던전과 몬스터들로 가득해진 에베레스트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웬만한 S급 헌터들도 상대하지 못하는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촌장에게 그런 놈들은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에 불과하니까.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벌써 밤이 되었다.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으니, 난 가 보도록 하지. 아린이가 좋아하는 반찬은 전부 냉장고 안에 넣어뒀으니, 꼬박꼬박 먹이고.”

“아, 예. 들어가세요.”

앨런을 보내고 드디어 조용해진 집.

그 안에서 가장 조용한 건 다름 아닌 아린이였다.

“음냐……. 음냐…….”

“귀여워.”

포크로 떡볶이를 찍은 채 고개를 까딱거리며 조는 강아린.

10분 전부터 이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빨리 침대로 옮겨야 할 것 같다.

“쉿…….”

“음냐.”

염동을 통해 조심히 아린이와 최서현을 들어 올렸다.

클린 마법으로 깔끔하게 만든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침대로 옮겼다.

“됐네.”

마지막으로 집 정리까지 끝내자 강수호도 코를 골며 자는 그들 옆에 누웠다.

5년 동안 이런 평화를 겪어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시 이전처럼 변할까 봐.

하지만 그런 걱정은 불필요하다.

“나도 자야겠네.”

시스템도 더 이상 말릴 수 없는 괴물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눈을 감고 강수호도 그들과 함께 금방 잠이 들었다.

* * *

“어후. 빨리 잠이나 자…….”

“왔나.”

힘겹게 몸을 움직여 침대로 가던 도중,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이면서도 듣기 싫었던 목소리였기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돌아봤다.

어느새 술기운은 다 날아갔다.

“왜 오셨습니까? 아버지.”

뾰족한 말투.

그도 그럴 것이 양유헉은 저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을 너무 싫어했다.

예전에는 천마, 지금은 양시훈이라는 양유혁의 아버지.

양시훈을 보자 인상을 잔뜩 구겼다.

“분명히 오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세상이 변했다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었다.

양시훈은 테일런 덕분에 마기를 모두 몰아내고 살 수 있었지만, 양유혁은 그가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으면 했다.

세상 사람뿐만 아니라, 자식에게까지 지옥을 선사했으니까.

“…….”

“지금이라도 가십시오. 취하고 싶어서 먹은 술인데, 아버지 덕분에 벌써 다 깼네요.”

날카로운 말과 함께 방문을 닫았다.

어떤 경우가 오든 양시훈을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다.

“하아…….”

“괜찮니?”

방문을 강하게 닫고 들어가자 안에서 들려오는 가는 목소리.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에 옷도 갈아입지 않고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

“그래, 우리 아들~”

가는 목소리에 비견되는 가는 몸.

조심스레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왜 사랑하십니까?”

너무 오랜 시간 캡슐에 갇혀 있던 바람에 쇠약해진 몸.

테일런과 레릴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존재한다. 지금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았기에 이 정도지,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어서 격하게 움직일 순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왜 사랑하는 것인지 물었다.

그 물음에 그녀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주 많이 사랑했거든.”

이유야 너무 간단했다.

사랑.

양시훈이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이가 잘못한 건 맞지만, 모든 사람이 욕해도 가족만큼은 편이 돼야 하지 않을까?”

“편이요?”

“그래,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건 당연히 잘못된 행위지. 하지만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아버지가 슬퍼하지 않겠니?”

그들을 위해서 온몸을 깎았다. 오직 마왕을 위해서 산 것이 그 증거. 그러니, 어머니는 가족만큼은 그를 감싸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유혁은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동의할 만큼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 말하자 당연하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그건 그이가 해결할 문제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해결해 줄 거란다.”

“시간이 지나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사람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갈 수도 있고, 느리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갈 것 같다. 달콤함과 쓰디쓴 맛이 동시에 나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렴. 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까.”

“…….”

확신에 가득 찬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으니.

대답을 포옹으로 대신하며 그녀를 꽉 안을 뿐이었다.

* * *

새하얀 눈보라가 끊임없이 내리는 산.

세상에서 제일 높이인 산답게 온갖 자연재해와 몬스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런 지옥과 같은 산속을 한 남자가 너무나도 태평하게 그 속을 걷고 있었다.

“오늘은 좀 쌀쌀하군.”

팬티 하나만 걸친 채 눈보라 속을 걷는 그.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전혀 추워하지 않는 모습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몬스터들조차 그를 피해 간다.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라도 되는 것처럼.

“하암~ 대충 던전 위치도 다 살폈고, 이제 가야…….”

지잉!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바지에서 울리는 진동.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주변에 눈보라를 막는 방어막을 쳐 조용히 만든 후 전화를 받았다.

“우리 아린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앙칼진 목소리에 반갑게 대답하는 사람. 바로 촌장, 천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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