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221. 강림(6)
“빌어먹을!”
마왕의 잘린 팔을 보며 비속어를 뱉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잘릴 수는 있으나 재생되어야 하는 신체가 여전히 피를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후우…… 어쩔 수 없군.”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무저갱의 마기가 담긴 병을 꺼냈다.
여기서 사용할 줄은 몰랐으나, 어쩔 수 없다.
무저갱의 마기를 잘린 팔에 모조리 들이부었다.
치이익!
살이 익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끔찍한 고통을 자아낸다. 이를 꽉 깨물고 서서히 재생되는 팔을 쳐다봤다.
“됐군.”
어느 정도 무저갱의 마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왕.
마왕은 무저갱의 마기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팔을 재생시킨 후, 단검을 던진 놈을 찾으려 했다.
“쓸데없는 발악하지 마라! 이 전쟁은 나의 승리다!”
“…….”
“나와라!”
끊임없는 외침에도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완전히 힘을 끌어 올려 감각을 넓혀 적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귀찮게 방해를 하다니. 갈기갈기 찢어주마.’
이미 강수호에게 신경을 끊은 지 오래. 고작 단검을 던져 자신의 팔을 절단한 놈을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없어? 아니, 내 감각에 잡히지 않은 건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감각을 넓혀도 잡히는 게 없었다.
전 차원을 통틀어 마왕의 감각을 벗어나는 이가 있다니…….
‘재밌구나.’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침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심심한 참이었다.
“내 직접 숨은 너를 이것으로 상대해 주지.”
아공간에서 거대한 검이 나왔다.
용의 이빨로 만들어 낸 거대한 대검이 나왔다. 그 검은 검격 한 번으로 차원을 가를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랜만에 꺼낸 이 대검으로 상대할 예정.
“드디어 나왔구나!”
예상대로 근처에서 단검을 든 한 여자가 마왕의 틈을 노리고 있었다.
목을 향해 들어오는 단검.
‘이딴 단검 따위!’
용 이빨로 만든 대검에 비해 목으로 들어오는 낡은 단검은 쓰레기에 불과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단검을 가볍게 쳐내고 몸을 베어낼 생각을 했지만.
깡!
‘깡?!’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검에 닿으면 바로 부서질 것 같던 단검이 제 형태를 유지한 채로 오히려 용 이빨로 만든 대검을 쳐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기 힘든 일.
누가 보더라도, 현재의 상황은 믿기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대검을 휘두른 이가 마왕이란 점에서 말이다.
‘우연이다.’
마왕은 이 상황이 그저 작은 우연이라 생각했다.
다시 대검을 잡고 빛과 같은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목을 치려 했다.
깡!
“……?!”
하지만 여자는 또다시 용의 이빨로 만든 대검을 단검으로 막아냈다.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강자다.’
방심하면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다.
마왕조차 진땀을 뺄 정도의 강자의 등장에, 마왕은 눈에 바짝 힘을 주고 단검이 휘둘러지는 궤적을 쳐다봤다.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들.
“으흡!!”
힘겹게 쳐낸다. 힘겹게라도 쳐내는 게 가능해지자, 희망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 대검으로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콰직!
“이게 무슨……?!”
용의 이빨로 가공해서 만든 대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 힘든 일.
‘이 대검을 어떻게?’
차원조차 반으로 가를 수 있는 검의 최후가 너무 허무했다.
하지만 마왕은 고작 용의 이빨로 만든 대검만을 가진 건 아니었다.
“이것까지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군.”
품속에서 꺼낸 작은 구슬.
몸 전체를 각성시키는 효과를 지닌 구슬이다.
부작용이 심한 만큼, 마왕 최대 전력의 힘을 5배 이상 낼 수 있는 힘.
까득!
이로 구슬을 깨부쉈다. 그와 동시에 구슬의 효과가 몸에 스며들며 눈이 붉게 변했다.
“후우…….”
숨을 천천히 뱉으며 감았던 눈을 뜨니 몸 전체가 부풀어져 있었다. 느껴지는 압박감만으로도 죽을 지경.
“크하하하! 어떠냐? 이래도 나를 상대할 수 있느…… 어?”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온 단검이 다시 한번 팔을 베어냈기 때문이다.
끔찍한 고통이 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으아아악!”
이 도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냐.
5배 이상 강해졌는데 날아오는 단검 하나 막지 못했다.
“반드시 잡아낸다!!”
팔이 절단된 건 상관없다는 듯 아무 곳에나 공격을 뿌려댔다.
바다와 산 전체를 베어낼 듯한 공격이 태평양 정 가운데에서 난무했다.
“크윽! 버텨라! 모두 버텨!”
“꽉 잡아!”
보고 있던 헌터들이 덮쳐오는 폭풍을 견뎌내며 말했다.
뒤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 죽음과 삶이 오갈 정도다.
한참이나 공격이 오갔지만, 몇 분 지나자 제풀에 지친 듯 공격이 멈췄다.
“끝인가?”
헌터들이 들었던 머리를 서서히 들어 올리며 물었다.
공격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공격이 뜻일 터다.
문제는 그 주변이다.
“……헉.”
입이 절로 벌어지는 풍경. 태평양 전체가 칼로 난도질하듯 베어졌다.
정말 눈으로 보고 있는 게 맞는가, 누군가에게라도 되묻고 싶은 수준이다.
일단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전쟁의 승패다.
‘끝났나?’
‘제발…… 마왕이 죽었기를!!’
마왕이 죽기를 모두가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간절함과 다르게 마왕이 연기 사이에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모두가 살아있는 마왕을 보며 절망했다. 마왕이 살아 있는 이상, 전쟁은 악마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끝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다시 숙이려던 그때였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둘러봤자 피하면 그만이야. 어차피 맞아도 안 아프겠지만.”
“……너는?!”
마왕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순간 마왕의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녀석이다.’
지금껏 공격해 왔던 이유인 그녀가 바로 옆에 있었다.
다시 힘을 끌어내어 공격하기도 전에…….
스걱!
“으아아악!!”
다시 팔이 깔끔하게 베어졌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공격은 전혀 보이지 않는 기묘한 상황.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끝에 검은 로브를 쓴 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군.’
확실했다.
주변 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죽여주마.’
또다시 무저갱의 마기를 흡수해 잘린 팔을 빠르게 재생시켰다.
생명력을 깎아 억지로 재생시킨 팔로 검은 로브를 쓴 여자의 목을 잡았다.
‘드디어!’
이 전쟁의 종말이 마왕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힘을 주며 머리를 뽑으려 했지만.
“뭐해?”
“……내가 힘에서 밀린다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자의 목이 너무 두껍기 때문이 아니다.
“크윽!”
“이제 보니까 약해 빠졌네.”
상대방의 힘이 마왕보다 몇 배나 강했기 때문이다.
고작 암살자 계열로 보이는 여자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 손으로 방금 막 재생한 팔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팔이 뜯어질 듯한 고통.
“젠장!”
마왕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목을 잡고 있는 팔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의 힘을 풀 생각이 없었다.
“으아아악! 이거 놓거라!”
오히려 더 강하게 팔에 힘을 쥐었다.
꽈드득!
뿌각!
뼈가 부러지며 여러 방향으로 뒤틀린다.
입 밖으로 비명을 내뱉을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고통이 불어닥친다.
“마왕이 저렇게 쉽게 당한다고?”
“저, 저 사람 누구야?”
그 모습에 너도나도 입을 열며 물었다. 마왕을 압도하는 저 괴물이 도대체 누구냐고.
“하…….”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녀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지만, 강수호는 저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방금 막 목소리를 듣고 얼굴도 봤으니까.
“이제부터가 제대로…….”
“제대로 상대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듣는 거냐?”
“……!!”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마왕의 품에 파고든 검은 로브의 그녀.
반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콰직!
들어 올려진 무릎이 그대로 마왕의 턱을 박살 낸다.
간단한 한 동작임에도 피할 수 없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여기서 멍청하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명력을 억지로 갉아먹을 만한 힘을 끌어 올려 간신히 공격을 피해 냈다.
‘틈이다!’
그 덕분에 생긴 틈. 곧장 틈으로 들어가 주먹을 내지르려 했으나…….
“진짜 약하네.”
몸이 빠르게 조각나기 시작했다. 강수호가 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르고 잘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날 기억하려나 모르겠구만.”
“……너는?!”
키가 작은 노인이 거대한 기계를 타고 웃으며 다가왔다.
여자는 검은 로브에 가려져 있어 얼굴이 가려져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 노인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드워프 대장장이 클론? 분명히 천마가 죽였을 텐데?”
“그래, 죽었지. 그놈 때문에.”
마왕을 죽일 무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죽인 드워프 족장.
드워프 족장이 마왕을 죽일 무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제가 보는 앞에서 죽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살아 있다고?’
놀람은 그뿐이 아니었다.
“…….”
“더럽게 오랜만이군.”
수많은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전부 한 차원의 정상에 선 이들이면서 마왕이 죽였던 이들이다.
“어떻게 너희가…….”
두 눈을 뜨고 이 상황을 봐도 믿을 수 없었다. 죽었던 이들이 모두 멀쩡히 살아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설마?’
잠깐의 생각을 끝으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수정 구슬로 들어온 건가?”
깜빡하고 천마에게서 거두지 않은 수정 구슬로 들어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것만으로는 안 되더라고. 저승을 빠져나와서 시스템을 이용했지. 그리고 우리가 계속 연결된 구슬에서 연결이 되었고.”
클론은 여유롭게 설명해 주었다. 어차피 마왕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그들을 이길 수 없으니까.
“으하하하!”
마왕은 검은 로브와 거대한 기계 뒤에 모인 이들을 보며 크게 웃음을 뱉었다.
어떠한 방법을 써도 그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승패는 그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드디어 끝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끝이었군.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푸욱!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샬런의 손이 움직여 단검으로 마왕의 심장을 뚫어내었다.
포런의 독까지 발라냈기에 재생하거나,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대로 끝.
마왕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차가운 시체가 되었다.
“후우……. 대충 끝나긴 했네.”
마계의 최종 보스인 마왕을 죽였다.
그것으로 전쟁의 승패는 그들에게 기울여진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상황을 정리해야 할 때다.
-튜토리얼 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층으로…….
다음 층이 있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스승님들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먼저 해결할 건 점점 무너지고 있는 이 지구였다.
“으흠…… 심각하구나.”
테일런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마왕의 공격으로 인해 주변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바다가 갈라져 용암이 튀어나와 멸망할 낌새가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그 낌새들은 테일런의 손짓 한 번으로 모조리 사라졌다. 세상이 원래 상태로 복구된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99명의 스승님들이 강수호에게 다가갔다.
테일런이 대표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시간을 벌어주어 고맙구나. 조금 늦었다.”
“…….”
해결할 부분이 몇 가지 남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이 끝이 났다.
그뿐만 아니라, 스승님 모두가 살아 있었다.
“나까지 왔네.”
“촌장님.”
촌장님까지.
조용히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오르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끝이기도 하면서 시작이기도 하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헌터부터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마계에 남은 이들은 전부 스승님들에게 맡기고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것으로 전쟁은 완전히 끝이 났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