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220. 강림(5)
‘아프군…….’
무저갱의 마기가 모두 빠진 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천마.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위로 빠져나갈 힘조차 없었다.
‘이대로 끝인 건가…….’
어두워지는 바다를 멍하니 쳐다봤다.
점점 깊게 가라앉아 이제 주변에는 빛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바쳐온 인생이 이렇게 끝이라니.’
이미 예상했으나, 실제로 겪어보니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피곤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더라도 어둠은 언제나 무서운 법.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눈을 감는데, 품 안에서 무언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웅!
‘……뭐지?’
정신을 차리고 품속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뭘 들고 온 기억은 없을 텐데…….
휴대폰이라도 들고 왔나 한참을 뒤적거리고 있자.
‘수정 구슬?’
품에서 발견한 수정 구슬.
조금의 생각 끝에 이 수정 구슬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괴물들을 넣은 구슬이었나?’
마왕이 직접 말해 준 이야기였다. 이 수정 구슬에 괴물들을 넣어 놓았다고.
처음에야 말이 안 된다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이런 걸 지키라고 하는 건지.’
왜 이런 걸 지키라는 건지 전혀 이해 가지 않았다.
‘보물이라도 숨겨두었냔 말이다.’
우웅!
계속해서 울리는 구슬을 만져 대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바다에서 울리는 진동.
‘편하네.’
다시 수정 구슬을 품속으로 집어넣으며 눈을 감았다.
이게 뭔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 안에 살고 있는 괴물들을 끄집어낼 수도 없을 테고.
다시 눈을 감고 정말 끝이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들린다.
“원래 기계는 부숴야 잘…….”
“멈춰요! 아니, X 멈추라고 이 무식한 놈아!”
“으흠……. 기계가 고장이 났군.”
“아악! 부서졌잖아!”
“…….”
진동과는 차원이 다른 시끄러운 목소리들.
마치 시장바닥에 온 것처럼 시끄러웠다.
‘말이라도 걸어 봐야 하나?’
하지만 지금 시끄러운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거면 천마의 목소리도 들릴 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답하기로 했다.
“뿌루룩!”
억지로 숨을 쉬기 위해 손톱 때만큼 남은 힘을 끌어모았다.
“후우…….”
몇 분 정도는 대답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거기 누구 있나?”
* * *
“그만하라고! 적당히 해!”
“으, 으흠……. 미안하군. 완전히 부서졌군.”
“네가 주먹만 휘두르니까 그러잖아!”
시스템이 얼굴이 가려진 남자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멍청해도 주먹을 휘두른다고 기계가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저런 건 도대체 누구한테 배웠는지 궁금하다.
“후우……. 됐습니다. 저기 뒤에서 기다려 주세요.”
시스템은 화를 참아내며 말했다.
목숨을 구해 준 이들에게 너무 화를 낼 수도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몸이 회복되어 충분히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고칠 수 있겠어.’
부서진 기계들을 손으로 옮기며 천천히 조립했다.
“이건 이거고……. 이건 여기……. 여기가 끊어졌구나.”
모든 걸 창조한 시스템.
태어나면서부터 시스템을 계속 만져왔다. 아주 작은 부품이라도 모든 걸 꽤 뚫고 있다는 뜻.
“이 정도면 되려나?”
모든 걸 고치고 만진 끝에야 완벽하게 시스템을 고쳤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톡.
“……음?”
작동이 안 된다.
툭. 툭. 툭. 툭.
“하하하하.”
절로 헛웃음이 뱉어졌다.
빨간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작동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완벽하게 고쳤는데 말이다.
“됐습니까?”
“하하, 잠시만요. 다시 해야될 것 같네요.”
“……아, 예.”
다시 모든 시스템 부품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몇 주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시스템밖에 없는 걸 잘 알기도 하고.
쉬지도 않고 한참 동안 부품을 만진 끝에.
“……드디어 됐다! 유후!”
“오오? 이제 됐습니까?”
졸고 있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스템이 복구되었다.
99명 모두 잔뜩 기대한 눈으로 시스템을 쳐다보았다.
“누릅니다!”
이번에는 정말 완벽했다.
크게 소리치며 자신감 있게 빨간 버튼을 다시 눌렀지만…….
툭.
“…….”
여전히 작동이 되지 않는다.
툭. 툭. 툭. 툭.
“아아아악!!”
계속 눌러도 결과는 똑같았다.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왜 안 되는 거냐고!?’
기억한 매뉴얼대로 정확히 부품을 옮겼다. 부서진 것도 정확히 고쳤고.
도대체 뭐가 문제냔 말인가.
“돌아버리겠네. 어떻게 고치는 거냐……. 아악?!”
돌아버리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99명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스템을 빤히 쳐다봤다.
순간 소름이 돋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러세요?”
“안 됩니까?”
“예……. 죄송해요. 이게 제 한계인가 봐요.”
“…….”
“하하하하.”
순식간에 표정이 썩어버린 사람들.
그래도 뭐 어쩔 수 있겠나. 오랜 시간 동안 고쳐도 전혀 작동하지 않는데.
“포기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방법이 없다.
조심스레 묻자 시스템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남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왜, 왜 그러세요?”
“…….”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남자.
저 거대한 손이 얼굴을 칠 생각을 하니 몸이 경직되었다.
점점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눈을 감자.
쾅!
콰직!
“……?!”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내 얼굴을 때리라고 소리 지르는 게 더 나았을 느낌.
“원래 기계는 부숴야 잘…….”
“멈춰요! 아니, X 멈추라고 이 무식한 놈아!”
“으흠……. 기계가 고장이 났군.”
“아악! 부서졌잖아!”
예상대로 다시 기계를 박살 내고 있었다. 원래 기계는 부숴야 말을 잘 듣는다면서.
이제는 ‘요’자도 나오지 않는다.
소리를 질러대며 남자를 막아섰다.
“안 된……!!”
콰직!
쾅!
“아아…….”
부서지는 시스템.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흐른다.
몇 주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고치는 데만 열중했다.
그 결과를 남자가 처참히 부수고 있었다.
고치는 데 힘을 다 사용해서 막을 수도 없었다.
“아놔.”
포기하고 바닥에 누웠다.
시스템이면 뭐하냐. 이제는 마계에게 뺏겨 그냥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데.
“에라이, 모르겠다.”
또 고쳐봤자 변하는 건 없다.
뭐가 잘못되면 조금의 반응이라도 있을 텐데, 마계에 사로잡혀 있기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만 포기…….”
막 휘두르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안 된다고.
막 말을 이어갈 때쯤.
“뿌루룩!”
“음?”
웬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옮기자 작은 차원이 하나 만들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차원? 여기는 차원을 만들 수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계에 점령당했다고는 하나, 이곳은 시스템 구역. 함부로 차원을 생성할 수 없다.
멍하니 차원이 생성된 곳을 쳐다보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누고 있나?”
“사, 사람?”
정확히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딘간 힘이 빠진 것 같긴 했지만, 확실히 사람이었다.
“여기 구해…….”
다급히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외쳤다.
구해 달라고 외치려던 찰나.
휘이잉!!
“아악!”
바로 뒤에서 불어닥치는 강한 바람에 시스템조차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들.
그 바람을 끝으로…….
“아, 아아…….”
차원도 함께 사라졌다.
멍하니 차원이 있던 허공을 쳐다보다가 소리 질렀다.
“안 돼!!”
* * *
“…….”
“……안 되는 건가.”
허망한 표정으로 수정 구슬을 쳐다봤다.
더 이상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니 확실했다.
“빌어먹을.”
비속어를 내뱉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수정 구슬이 반응이 없어, 빠르게 힘을 뺐다.
희망을 가진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앞을 막는 장애물은 부수며 달려온 인생.
‘드디어 가는군.’
애초에 희망 따위는 없는 듯했으니까.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자.
“우후……. 드디어 나왔네. 수정 구슬에 연결되어 있어서 다행이네.”
“음? 그런데 이 남자 얼굴이 많이 보던 얼굴이다……?”
“…….”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한 남자.
“꾸루룩?”
“꾸루룩? 말을 못 하는 것 같은데? 으흠…….”
검은색으로 도배되어 있던 바다가 어느새 환한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바다 안에는 한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상태가 영 안 좋은데?”
“치료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이 정도는 껌이다.”
“…….”
깊은 바닷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천마를 치료한다.
‘신성력인가. 죽겠군.’
한 남자의 손에서 들어오는 신성력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마기에 몇십 만년 받아들인 몸에게 신성력은 독과 마찬가지였기에, 죽을 거라 생각했지만.
“으, 음?”
“뭘 그런 거 가지고 놀래. 마기쯤이야, 내 신성력이면 충분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전혀 움직이지 않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성력이 내 몸을 회복해?’
불가능에 가까운 치유였다.
휘발유로 운행하는 차를 물로 운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
‘저 괴물들은 도대체……. 크윽!’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 머리가 미친 듯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천마조차 버틸 수 없는 고통.
“끄아아악!”
“이거 왜 이래? 제대로 치료한 거 맞아?”
“맞는데?”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마를 살폈다.
치료는 완벽했다. 아마 정신적인 문제인 듯하다.
치료하면서 걸려 있는 저주 같은 것까지 치료된 것 같다.
“일단은…….”
여기서 정신이 괜찮을 때까지 기다려 줄 시간은 없다. 아마 지금쯤이면 격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을 테니까.
“빨리 가자고.”
발을 한 번 놀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끄아아악!”
밝아진 깊숙한 바다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천마.
지금껏 사라졌던 몇십만 년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있어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
“크아아아…….”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의식을 잃은 상태로 점점 바다 밑으로 향하는 천마.
“…….”
아마 모든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