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218. 강림(3)
“바퀴벌레처럼 넘쳐나네.”
마계의 통치자를 죽이자 또 다른 악마들이 차원 문을 넘어온다.
처음 오던 악마와는 격이 다른 것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헌터들이 점차 밀려난다.
“대열을 갖춰라!”
“여기 힐 더 줘! 물약도 좀 더 주고!”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태평양 바다. 이곳이 바로 전쟁터다.
아무리 강한 강자라 하여도 언제 죽을 줄 모르는 곳.
‘더 나오지는 않는 건가?’
헌터들 뒤에 선 강수호가 거대한 차원 문을 유심히 쳐다봤다.
또 다른 놈이 올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전력은 최대한 아껴 놓아야 한다.
‘혹시 모르니 더 기다려야겠어.’
밀리고 있지만,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다수의 헌터도 잃을 것이라 생각했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최종 보스가 이곳에 올 때까지.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긴장을 풀었다.
아직까지 마왕은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상태다.
힘을 아껴 놓지 않으면 질 수도 있다.
자세를 잡고는 눈을 감은 채 전쟁 한복판에서 명상하고 있자 활을 쏘아대던 궁수가 다급히 외쳤다.
“저기 검은 이상한 건 뭐야?! 빨리 알아봐!”
악마들 사이에서 보이는 검은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진형을 뚫고는 강수호에게로 오고 있었다.
다른 이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오직 강수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 방어 진형을 펼쳐…….”
이곳의 유일한 최종병기라 할 수 있는 강수호.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 차라리 탱커 계열의 헌터 몇 명 죽는 것이 나을 터.
그런 생각으로 주변에 있던 최정예 탱커 계열의 헌터들이 막아서려 했지만.
“나와주십시오. 오히려 방해만 됩니다.”
“……예?”
강수호는 숨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을 필요가 없었다.
“여러분들로 못 막습니다.”
“…….”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막는다면 오히려 더 큰 피해만 날 거다.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이가 누군지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판단.
‘천마?’
처음에 봤을 땐 강수호조차 놀랐다. 마인 협회에서 봤었던 위압감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더 난폭하고 강해진 기세에 본능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코코를 다시 들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단 일주일 만에 강수호조차 상대하기 버거울 만큼 강해졌다.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
“이성을 잃었어.”
초점이 없는 붉은 눈동자. 괴성을 질러대며 무식하게 패턴에 맞춰 달려드는 모습까지.
확실히 이성을 잃었다.
‘왜 이러는 거지?’
천마의 주먹을 코코로 막아내며 의문을 품었다.
힘과 속도는 강하고 빨라졌다고는 하나, 이건 천마가 아니다.
변칙적인 공격과 날카로운 허점을 노려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공격들. 그것이 바로 천마였다.
그런데 이런 무식한 공격들은 뭐란 말인가.
스걱!
“크윽!”
전투에 집중하지 못해 공격이 스쳤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었다.
“방심을……. 커헉!”
피를 닦아내며 다시 재정비를 하는데, 온몸에 고통이 느껴졌다.
‘뭐야?’
그와 동시에 떠 오르는 메시지.
-무저갱의 마기를 소량 흡수하였습니다.
-무저갱의 마기에 중독되기 시작합니다.
-0.001%…….
-0.002%…….
‘무저갱의 마기?’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마기, 독이 든 포런의 힘 덕분에 중독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능력조차 뚫을 마기라니……?
‘위험하다.’
힘과 속도만 있다 생각해 방심한 강수호의 잘못이었다.
이런 무기를 숨겨두고 있었다니.
‘나한테도 통할 정도라면 놓치면 안 된다.’
만약 천마를 놓아준다면 큰일이 발생할 거다. 모두 무저갱의 마기라는 것에 중독되어 죽겠지.
저 검은색 마기가 바다로 들어가도 문제다.
‘내가 꽉 잡아 놓아야 한다.’
차원 문을 보니 다른 강한 놈은 나오지 않는 듯하다.
천마만 상대하면 된다.
‘전력의 반만 사용해야 한다.’
물론 모든 힘을 끌어모아 싸우는 건 절대 안 된다.
공격하는 것 대신 피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천마가 방심한 틈을 타 일격을 노릴 것이다.
“모두 물러나세요!!”
한 방울이라도 닿으면 즉사할 정도로 치명적인 독 때문에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멀리 떨어지라 소리쳤다.
“크아아아아!!”
“흡!”
5km 내외에는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서 공격을 피했다.
결계를 이용하여 무저갱의 독이 바다에 떨어지는 걸 막은 건 덤.
차원의 문에서는 다시금 악마들이 쏟아지듯 오고 있었다.
* * *
“강림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드디어 되었나?”
왕좌에 앉아 있던 마왕이 한 악마의 말에 한껏 미소 지었다.
드디어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시간이 다가왔다.
“가도록 하지.”
“모두 물러나라!”
마왕이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악마들이 모두 벽에 붙었다.
마왕은 지금껏 묶어 놓았던 힘을 풀었다.
쿠르르릉!
“오랜만에 풀어서 그런지 힘을 제어하기 힘들구나.”
“크헉!!”
“쿠, 쿨럭! 쿨럭!”
주변에 있던 악마들조차 지나치게 강한 압박감에 쓰러지고 있었다.
악마는 점점 익숙해지는 힘을 갈무리했다.
“흠흠, 됐군.”
완벽하게 갈마리 된 힘에, 전과같이 거대한 압박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상태로…….
“나만 가지. 너희는 여기서 특별히 끝과 시작을 보거라.”
차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후우……. 그 정도만 해. 아무리 너라도 이 이상은 무리다.”
“크아아아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천마. 그럼에도 난폭함은 가라앉지 않고 계속해서 이를 들이대었다.
하지만 이미 싸움의 승패는 정해졌다.
콰직!
“크헉!”
정확히 얼굴을 가격했고, 천마는 바다에 빠졌다.
퐁당!
“귀찮은 놈은 대충 처리했네.”
강수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천마 몸에 붙어 있던 무저갱의 마기도 결계 안에 모아서 문제 될 천마가 바다에 빠진 건 문제 되지 않는다.
“빨리 가야겠네.”
물약 하나를 입 안에 들이붓고는 차원 문 쪽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지 않고 서로 비슷하게 밀어붙이고 있을 거다.
“우리 뒤에는 힐러가 버티고 있다! 막아라!”
“그쪽 제대로 잡아! 아니면 팔 부러진다고!”
“힐러! 힐 좀 더 줘! 다리 쪽!”
예상대로 조금씩 밀리는가 싶더니, 지금은 점점 익숙해져 사상자도 적어졌다.
바다 위에서 싸운다고 상상도 하지 못할 완벽한 방어 진형.
몇천만 명이 넘어가는 탱커들이 펼치고 있는 방어 진형은 가히 장관이었다.
‘악마들은 문제없겠네.’
최하급 악마부터 시작해서 최상급 악마까지, 모두 헌터들에게 맡겨도 될 것 같다.
여러 곳에서 악마가 튀어나온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고작 저런 잔챙이들을 처리할 방법이 있다고 해서 해결된 건 아니다.
“벌써 시작된 건가.”
차원 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그 압박감에 강수호조차도 숨이 순간 막힌 것 같았다.
‘후우…….’
심호흡하며 정신을 맑게 만들었다.
드디어 최종 보스가 이곳에 온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두 손을 꽉 쥐고는 차원 문을 쳐다봤다.
마왕쯤이야 별거 아니라고 속으로 몇천 번 넘게 되뇌었다.
여기서 질 수는 없다.
먼저 간 스승님들을 위해서라도, 이곳, 지구를 위해서라도. 꼭 이겨야만 한다.
“가자.”
악마들의 진격이 멈추고, 180cm 키의 평범한 모습의 남자가 강수호를 향해 다가온다.
그를 향해 코코를 들고 달려갔다.
* * *
“으흠…….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는 사람 있나?”
“없는데?”
“나도 모르겠어.”
붉은색으로 물든 시스템 방으로 온 이들.
거대하고 복잡한 장치로 가득한 곳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삼도천에서 벗어나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겠다.
“으흠……. 이거는 이렇게 하고, 저거는 이렇게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막 버튼을 눌렀다.
-시스템이 재가동했습…….
“오오!!”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
역시 복잡한 기계일수록 막 누르는 게 국룰이다.
하지만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을 배신이라도 하듯 시스템 메시지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재가동했습……. %$%@$#$$.
“안 되네.”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여기서 몇십만 년 갇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러면 여기를 다 부숴 버리면 되지.”
“아하, 그러면 되겠네.”
물론 지금 당장 나갈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웠다. 힘을 이어받은 제자가 몇 시간 정도는 버티리라 생각했으니까.
“일단 다 때려 부숴 보자고.”
참지 못한 근육질의 남자가 앞에 나서며 말했다.
원래 기계는 두드려야 말을 듣는다.
콰직!
쾅!
주먹이 휘둘러질수록 점점 형태를 잃어가는 시스템 방. 반쯤 부서질 때쯤이었다.
“그, 그만두세요!”
“음? 환청인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먹을 휘두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데?”
“뭐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들었지만, 누가 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의문이 쌓여갈 때쯤, 상반신만 있는 한 여자가 홀로그램 상태로 기어 오며 말했다.
“포기하세요. 얼굴이 가려져 누군진 모르겠으나, 이미 시스템 전부가 마계에 사로잡혔습니다.”
“…….”
포기하라고, 그 누가 와도 이곳을 구할 수 없다고.
시스템조차 그들을 막아내는 데 실패했다.
시스템은 점점 사라지는 제 몸을 보고 절망감에 눈을 감았으나.
“……음? 이제 죽어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한참이 지나도 상반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보자 상반신만 있던 몸이 하반신까지 나타나 있었다.
“이게 무슨…….”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들을 쳐다보자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몸 전부를 치료해 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웃으며 물었다.
“시스템이라고?”
“예, 예!”
“그러면 우리 좀 도와줘야겠다. 마침 복잡했거든. 저승은 나왔는데, 아직 밖은 못 나가서 말이야.”
“그, 그럼요!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인 그녀조차 마계에 감염된 자신의 몸을 복구시키지 못했다. 그런 몸을 단 하나의 부작용도 없이 치료해 주었다.
그것도 종이에 베인 상처를 치료한 것처럼 가볍게.
‘가능할 수도 있어.’
마왕에게 차원 전부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희망을 품고 그 앞에 앉았다.
물론 그전에.
“…….”
“아, 미안. 마공학 배운 놈은 있는데, 정작 기계는 못 다뤄서.”
시스템부터 고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