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216. 강림(1)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구나.”
정확히 하루가 지나서야 촌장에게 들은 대답이었다.
한숨도 쉬지 않고 촌장의 말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 결과, 미약하지만, 진정한 천마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천마 힘(원본<일부분>)을 획득했습니다.
일부분밖에 안 되지만, 이 정도로도 마왕을 상대할 충분한 힘이니까.
‘이렇게 되면 할 수 있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이 점점 가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촌장에게 허리 숙여 마지막 인사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꼭 성공하길 기원하네.”
“……옙.”
이건 게임 따위가 아니다.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세상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
힘없이 대답하고는 마을에서 나왔다.
작별 인사를 몇 시간 동안 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 3일밖에 남지 않은 날을 멍청하게 보낼 생각도 없었고.
마을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시련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 *
“드디어…….”
왕좌에 앉은 마왕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마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계의 모두가 기대하고 고대하던 그 순간이 다가왔다. 모든 차원을 마계로 만들겠다는 소원이 곧 있으면 이루어진다.
“모두 고생했다. 이런 시간도 오는군.”
“축하드립니다. 마왕님.”
“축하드립니다! 마왕님!”
통치자의 축하 말에 악마들이 동시에 똑같이 외쳤다.
이 순간만을 위해 셀 수도 없는 많은 시간을 피땀 흘려가며 싸웠다. 그리고 결국에는 도달한 마지막.
왕좌에서 일어난 마왕이 은발 머리의 통치자에게 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느냐?”
“예, 모든 차원의 악마들을 이곳에 불러들였습니다. 마왕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
그 대답에 마왕이 조용히 천장을 쳐다봤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흥분이 몸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흥분감을 느낀 끝에 다시 악마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마지막을 향해…… 진격한다.”
“우와와와!!”
악마들의 함성과 함께 차원의 문이 열렸다.
그곳을 향해 모든 차원의 악마가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하아…….”
강수호는 시련 던전에서 나와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시련을 클리어했다.
이제 마지막 전쟁만이 남은 셈.
‘곧 있으면 오겠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와 마기가 느껴졌다. 여러 번 사용해 보았던 것이었기에 저 기운이 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차원 이동.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오고 있습니다.”
헌터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강수호에게 말했다.
세계의 모든 헌터가 모였다. 그 수는 대략 5억.
나라를 대표할 정도로 강한 헌터부터 시작해서 큰 힘을 가지지 않은 헌터까지.
많은 헌터들이 모여서 그런지 사기는 만땅이었다.
“악마는 우리가 바르면 되지. 안 그래?”
“저번에 악마랑 한 번 싸워봤는데 말이지…….”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저 사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꺾일 거다.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최하급 악마도 B급 헌터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이 최상급 악마인 만큼, 아마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유일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왕을 먼저 친다.’
천마가 조금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의 힘으로는 한 손으로도 상대 가능하다.
제일 위에 있는 놈만 치면 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가죠.”
생각을 끝낸 강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대한 마나가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로 다 오나 보네.’
멀리서 느껴지는 마나는 마기와는 격이 달랐다.
마왕까지 이곳으로 올 모양이다.
“모두 전투 준비해 주십시오.”
시간이 얼마 없다.
강수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사라지는 헌터들.
‘나도 준비해야겠어.’
그와 마찬가지로 강수호도 준비를 시작했다.
“코코, 잘 부탁한다.”
“웅!”
코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얻은 스승님의 힘까지, 모두 정비를 마친 순간, 거대한 차원 문 하나가 열리기 시작했다.
쿵-!
세상 전체가 진동한다.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검은 뿔을 가진 악마들.
“공격해라!”
악마들이 보이자 원거리 헌터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늘을 뒤덮은 원거리 공격들이 차원을 열고 들어온 모든 악마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푸욱!
콰직!
쾅!
“크아아아아!!”
“막아라!”
악마들의 몸을 뚫고, 박살 냈다.
지금 나온 악마 중에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되, 된 건가?”
한 헌터가 조금은 놀란 투로 물음표를 띄웠다.
1억 명이 넘어가는 헌터의 공격이긴 하나, 악마는 악마.
악마들이 강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저 차원 문을 통해 나온 모든 악마를 쓸어 버릴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끝인가?’
대부분의 헌터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거대한 차원 문을 바라봤다. 이대로 전쟁이 끝나길 바라며.
하지만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쓰레기들은 쓰레기들이군. 진격해라!”
“……!!”
처음 나온 악마들은 쓰레기들에 불과했다. 최하급보다 낮은 쓰레기들.
진정한 악마들이 바닷물처럼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퍼부어라! 마나가 동이 날 때까지 계속 퍼부어라!”
원거리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마나가 동이 나도 상관없다. 뒤에는 수많은 질 좋은 물약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후우…….”
뒤에서 강수호도 마찬가지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을 전부 모아도 비교할 수 없는 마법을 발현해 하늘에 거대한 검은 구름을 모이게 했다.
“저건 도대체…….”
진격하던 악마들이 하늘에 수놓은 검은 구름을 보며 멍하니 입을 쩍 벌렸다.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피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피하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
“뇌격.”
콰르르르릉!!
마법을 캐스팅하자마자 마나가 뭉텅 빠져나가면서 샛노란 번개가 바닥에 내려쳤다. 그 벼락에 맞은 최상급 악마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허허…….”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엘프 장로가 조용히 헛웃음을 뱉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가히 장관이 따로 없었다.
무수히 많은 벼락이 떨어지며 악마들의 피와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돌…… 크아악!”
“커헉!”
대부분의 악마가 차원에서 나오자마자 깊은 바다에 빠져 들어갔다.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다. 원거리 공격에 맞고 대부분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계속 퍼부으면 돼! 계속!!’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약은 5억 명이 몇백 번이나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넘쳐난다. 마나에 상관없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단 한 치의 진격 없이 몇 시간 동안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졌다.
“다 죽어라!”
“으하하하하!!”
원래 방어하는 쪽이 유리하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악마들이 이 정도로 약한 놈들도 아니었고.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악마들이 봐줬다는 게 된다.
‘나는 여기까지 해야겠네.’
강수호는 더 이상의 기력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1시간이 더 지나자 신기하게도 더 이상 악마들은 나오지 않았다.
끝난 게 아니다.
“좀 놀아주니, 너무 기어오르는 것 같구나.”
“……!!”
은발 머리의 한 악마가 나왔다.
고작 한 마리.
나타나자마자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모두 공격……!!”
“멈춰!”
막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쯤 강수호가 그들을 막아섰다. 지금껏 상대하던 최상급 악마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걱!
“어, 어?”
“젠장…….”
은발의 악마의 움직임을 막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그는 어느새 몸을 움직여 헌터들의 목을 긋고 뒤로 빠져 있었다.
단 한 번의 피해도 없던 헌터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네.’
악마들을 계속 보낸 이유는 상대방의 기력을 소모하기 위함.
마나는 물약 덕분에 무제한이더라도 기력은 아니었다. 엘릭서를 섭취하지 않는 이상, 조금이라도 쉬어주어야 한다.
“멍청한 놈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쿵!!
은발 머리의 악마가 바다를 향해 발을 굴렸다.
그에, 바다 전체가 술렁거리더니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내었다.
‘그때 만났던 놈이네.’
간부와는 격을 달리하는 놈이다.
원래라면 헌터 전력의 반을 잃으면서까지 상대해야 할 정도로 강한 놈. 하지만 지금의 강수호라면 혼자서라도 충분했다.
“뒤로 빠지십시오. 제가 나서겠습니다.”
“예? 저런 괴물을 강수호 헌터 혼자 상대하시겠다는 말씀……. 자, 잠시만요!”
말을 끝까지 다 들을 시간은 없다.
바다를 박차고 나가 은발 머리의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으하하하! 천마한테도 지는 녀석이 나에게는 될 거라 생각…… 커헉!”
정확히 얼굴에 직격한 주먹. 그와 동시에 코코로 머리 쪽을 향해 횡으로 그었다.
“크윽!”
그에, 악마의 몸뚱어리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지만, 마계의 통치자인 만큼 쉽게 당하지 않는다.
“멍청한 놈! 내 영역에 제 발로 들어오다니!”
악마의 반으로 잘린 허리가 다시 재생되어 온전한 상태로 손을 하늘 위로 펼쳤다.
하늘 위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졌다.
‘능력인가.’
언뜻 봐도 느껴지는 거대한 위압감. 그래도 상관없다.
주먹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그걸 맨손으로 막는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천마조차 그 검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이 없다!”
악마는 맨손으로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계속 뛰어넘은 이가 바로 강수호다.
“후읍!”
악마는 검을 쥔 채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강수호의 반격을 가만히 보기만 할 악마가 아니다.
“모두 진격해라!”
악마들을 다시 진격시키며 자신 또한 강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멍청한 놈! 틈을 보이다니!”
목을 노리며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건 강수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방비는 이미 세워놓았다.
“먹을 거!!”
“이게 무슨……!!”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식물.
바로 뽀삐다.
마계의 통치자조차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의 거대한 크기.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쾅!!
“크헉!”
힘 또한 은발 머리의 악마를 뛰어넘고 있었다.
아쉽게도 용용이는 엄마를 지키느라 참여하지 못했지만, 뽀삐로도 충분하다.
“이거 놔라! 빌어먹을!”
“고작 뽀삐 하나로 고전하면 어떻게? 이제 시작인데.”
뽀삐가 시간을 벌어준 덕에 하늘에서 떨어진 검의 통제권을 쥘 수 있었다.
바다 전체를 반으로 가를 정도로 거대한 검이 강수호의 손에 잡혔다.
그 검을 그대로 은발 머리의 마계 통치자에게 던졌다.
“이거 놓아라! 이거 놓으란 말이다!”
뽀삐 때문에 털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몇 초 정도면 충분했다.
거대한 검이 몸으로 향하더니.
콰직!
몸 전체가 완전히 양분되며 바다에 떨어졌다.
그것이 마계의 통치자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