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215. 마지막 유물(2)
쾅! 쾅!
그들이 움직일수록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긴다.
육안으로는 그들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더럽게 강하네.’
말로는 이길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천마가 너무 강했다.
‘내가 당할 수도 있겠어.’
종이 한 장 차이로 주먹을 피하며 생각했다.
실수 한 번으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몇천 번의 합을 나눈 끝에 틈을 찾을 수 있었다.
‘끝이다.’
천마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유물도 힘을 다했다.
보이는 틈을 향해 온 힘을 뿜어대며 주먹을 휘둘렀다.
휘이잉!
“……?!”
하지만 그건 페이크에 불과했다.
빗나가는 공격.
그와 동시에 천마의 손이 강수호의 얼굴을 잡았다.
우두둑!
“크윽!”
두개골이 바스러지면서 끔찍한 고통을 자아냈다. 그만큼 강한 악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천마는 공격을 멈췄다.
“아쉽게 됐어. 시간이 다 되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멸망의 시간이라도 된 건가?
다행히도 그 뜻을 알아차리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지.”
“예.”
천마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마기.
지금껏 만난 어떠한 악마와 비교도 되지 않은 마기였다.
‘누구지?’
억지로 고개를 들어 마기의 주인을 살폈다.
은발 머리의 가녀린 몸. 그럼에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최소 상급 악마 이상의 것이었다.
남자는 강수호가 보는 걸 알고 있었는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 아마 너도 며칠 뒤에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슈아아악!
그들은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 * *
70번째 시련을 통과하고 시련 던전 앞에 앉았다.
은발 머리의 사내를 만난 후, 고작 3일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쉬기 위해 들판에 앉은 강수호 앞에 엘프 장로가 다가왔다.
“벌써 70번째군요.”
“그러게요.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네요.”
“그것보다 은발의 남자라고만 말씀하셔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찾았습니다.”
그저 그런 잡담이 아니다. 천마 바로 옆에서 나타난 은색 머리의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혹시 엘프 장로가 알고 있을까 싶어서 물었던 건데, 의외로 장로도 잘 알고 있는 악마였다.
“누굽니까?”
“마계의 통치자라고 하죠. 그곳의 관리자 중 하나입니다.”
“마계…….”
마계의 통치자.
이름까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위협적인 인물인 건 확실했다. 엘프 장로도 잘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4일밖에 안 남았군요.”
“최대한 빨리 끝내셔야 합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
4일 뒤, 마왕이 이곳에 강림한다.
강수호라도 그건 막지 못한다. 최대한 빨리 시련을 클리어하고 나와야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마지막 유물이 없어서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일단 남아 있는 시련만이라도 클리어하기로 했다.
시련 안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강수호.
그런 그를 보다 장로도 자리에서 일어나 던전을 나갔다.
* * *
“괜찮나? 상태를 보아하니,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이미 얕은 상처 몇 곳은 아물었다. 몸에 전혀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문제는 따로 있었다.
‘기억이…… 기억이 돌아왔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돌아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그자였다니.’
왜 이리도 할튼의 얼굴이 밟혔는지 이해가 되었다.
거신의 후예라 오해받는 산의 주인. 제 손으로 직접 죽여 품속에 있는 작은 수정 구슬에 넣었다는 걸…….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해결된 게 아니었다.
‘마왕은 왜 이 기억을 없앤 거지?’
천마가 생각하기엔 악마가 이 기억을 없앨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떤 기억도 남기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쌓여 갔지만, 일단 이 남자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흠…… 괜찮다는 말과 다르게 상당히 안색이 좋지 않군.”
마계의 한 자리를 차지한 가주답게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다.
천마는 별거 아닌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어디를 가는 겁니까?”
“후대 천마의 계승이 끝났다.”
“……느렸군요.”
“천마의 아들답게 끈기가 대단하더라고. 그리고 정신력도 대단하긴 하지만, 이미 끝났다.”
성 앞에 도착해 성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마왕.
전에 봤던 것과 다르게 그는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한 채로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후우…… 여기 음식은 꽤 맛있단 말이야. 음? 왔나?”
“예, 마왕님.”
마왕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마에게 다가갔다.
옆에 있던 은발 남자 또한 천마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거라. 오늘 두 번째로 중요한 날이다.”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두 번째로 중요한 날이니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개하지. 두 번째 천마가 될 몸이다.”
마왕이 한껏 웃으며 옆에 있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과 동시에 악마들이 문을 열었다.
지독한 마기가 공중에 번지면서 익숙한 남자가 나타났다.
“양시훈, 어떻나? 무저갱의 마기를 받아들인 너의 아들이다.”
“…….”
양유혁은 동공이 흐릿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마는 아들을 보고서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반응한다면 안 된다. 저 녀석을 위해서라도.
“별 반응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군.”
아무 반응이 없자 양유혁을 다시 내보냈다.
놀리는 것도 상대방이 표정 변화가 있어야 재밌는 법이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강림의 시간이 일주일 남았나?”
“예, 마왕님.”
은발의 남자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마왕이 직접 현현하는 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차원 전부가 마계로 변하는 시간도.
“드디어 그 시간이 다가왔구나.”
평생을 바라왔었다. 차원 전부가 마계로 변하는 것.
그렇기에 실패할 수가 없다.
지구 차원, 알 수 없는 미지의 차원 빼고는 모든 차원이 마계로 되었다. 그 마계의 악마들조차 모두 이곳에 불러들일 예정.
지구에 마왕과 비슷한 격을 지닌 강자가 있더라도 막지 못할 것이다.
“모두 축배를 들거라.”
어느새 깨끗하게 치워진 테이블 앞에 앉아 잔을 들었다.
질 수가 없는 싸움에서 사기를 위해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전 차원을 점령하기 전의 마지막 만찬.
“으하하하! 이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역시 마왕님께서…….”
어느새 악마들로 가득 채워진 식탁.
그 자리에서 양시훈은 새로 들어온 스테이크를 깨작깨작 입에 넣을 뿐이다.
맛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서.
하루라도 생을 연맹하기 위해서.
한참 만찬이 이어지고 천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허의 공간.
익숙하다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마왕은 왜 기억을 지운 거지?”
옷을 벗어 두고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이유로 기억을 지웠는지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빌어먹을.”
더 이상의 생각을 멈췄다.
물어본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을 터. 어차피 마왕이라면 가르쳐 주지 않을 게 뻔했다.
가르쳐 주기도 전에 마왕의 손이 그의 심장을 터트리겠지.
“준비나 해야겠군.”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일주일 뒷면 마지막 전쟁이 시작된다.
모든 차원의 악마들을 불러내야 했다.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 * *
“99번째.”
6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벌써 마지막 유물 시련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마지막 시련을 클리어하면서도 천마의 약점을 찾지 못했다.
전혀.
“돌아 버리겠네.”
이 정도의 힘을 얻어도 천마와 악마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왕까지도.
“……후우.”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차원 이동 제약이 풀렸다는 거다.
원래 두 달 넘게 능력을 사용 못 했지만, 시스템의 덕이 컸다.
마왕에게 잡히기 전 마지막 힘을 사용했단다. 그 덕분에 시련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마을로 향했다.
“왔구나.”
“…….”
시끌벅적했던 마을에는 정상적인 복장을 갖춘 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마지막 유물은 얻지 못했다.
잘못하면 평생을 여기에 썩을지도 못한 상태임에도, 촌장은 그리 슬퍼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냥 전보다 더 오래 있는 것뿐인데.”
몇십 만년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것이 평생 이어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의외로 주변에 즐길 거리도 많았고.
“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너희 차원이 가장 걱정이지.”
먼저 걱정해야 할 건 촌장이 아니다. 하루 뒤에 마왕이 들이닥칠 차원. 그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후우…… 아무리 방법을 찾아봐도 없더군요.”
촌장 빼고 모든 스승님의 힘을 얻어도 마왕은 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건 강수호의 생각일 뿐이었다.
“원래는 모든 이에게 가르침을 받고 이 기술을 가르쳐 주려 했으나, 시간이 없는 것 같구나.”
촌장의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알 수 없는 언어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뭡니까?”
어떤 힘을 전수받아도 마왕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두루마리로 인해 마왕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못했다.
“잘 보거라.”
“……!!”
촌장이 능력을 직접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양시훈이 쓰던 유물과는 격이 다르다. 직접 무공의 극에 도달한 천마가 완벽하게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걸 배운지 고작 1시간밖에 안 되었지만, 그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잘하면 마왕도 상대할 수 있겠어.’
이 정도 힘이라면 마왕조차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 전쟁을 위한 준비.
원래 마을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왔다. 하지만, 이거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테니, 이 마을에서 준비를 하기로 했다.
“느리게 해도 된다. 하지만 자세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몇 시간걸쳐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고작 몇 시간이란 시간만으로 완벽하게 배울 수는 없다. 그저 절대자의 힘을 잠시 모방하는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왕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이다.
‘할 수 있다.’
무아지경에 빠져 미친 듯이 집중했다.
강수호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왕은 S급, 세계 랭커 헌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오직 강수호만이 상대할 수 있는 강적.
‘꼭 지켜낸다.’
이 두 손으로 직접 지켜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