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214. 마지막 유물(1)
‘드디어 온 건가.’
마인 협회 소파에 앉아 있던 천마가 눈을 떴다.
튼튼했던 방어선이 드디어 뚫렸다.
그럼에도 초조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뚫렸어야 할 방어선.
이 정도로 튼튼한 방어선이 뚫렸다는 건 그 아이가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보다 강해졌어?’
감각을 넓히자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강수호의 인기척은 확실했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조차 전과 다를 바 없었고.
그런데 더 강해졌다. 최소 몇십 배는 더.
‘가능한 일이었나?’
앉은 상태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도 한 달 만에 이 정도로 성장한다는 것은 더욱.
“신기하군. 내 기억과 관련이 있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마왕에게 가도 기억을 찾아낼 순 없었다.
억지로 기억을 기억해 내려 해도 꽤 오래 걸릴 듯하다.
이제 막 일어나려던 찰나, 악마가 다가오며 조심스레 묻는다.
“천마 님. 이건 어디에 둘까요?”
“……마지막 유물인가.”
“예, 이왕 둘 거면 마계에 가져가시는 게…….”
마지막 유물을 어느 곳에 숨길 거냐는 것.
그거야 간단했다.
“주거라. 내가 가지고 있겠다.”
“예? 하지만 이게 마지막 유물인데…….”
“내가 뺏길 거라 생각하나?”
“아닙니다.”
“저런 놈들은 차원의 수만큼 있어도 상대할 수 있다.”
강수호 말고는 저런 오합지졸들은 한 트럭으로 와도 상대할 수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 유물을 가지고 가는 것.
“너는 마계로 가거라.”
“……알겠습니다.”
천마의 말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전 차원이 마계로 변한다. 그렇기에, 시작의 밑거름이 될 천마를 그 누구도 쉽게 대하지 않았다.
허리를 숙이며 사라지는 악마.
‘일어나 볼까.’
그와 동시에 천마도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가 나설 때가 되었다.
* * *
“모두 들어가라!”
“으아아아!!”
헌터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성안으로 달려들었다.
사기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헌터들.
버프 능력을 가진 스승님의 힘으로 능력치의 2배가 상승했다.
지금까지 두 명이서 상대한 악마들이 이제는 한 명이 악마 두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강함.
‘여기는 헌터들한테 맡기면 되겠네.’
마인 협회 안은 이제 헌터들에게 맡기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성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천마인가…….’
이 기운은 천마밖에 없었다.
코코를 들고 성 깊숙이 들어갔다.
‘식탁인가.’
문을 열자 족히 20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식탁이 보였다.
감각을 넓혀 천마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어디 있냐…….’
여기서 천마를 쓰러트릴 수 있으면 큰 행운이다.
마왕이 오기 전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기회. 그 유일한 기회를 놓칠 강수호가 아니다.
감각을 넓혀 한참을 찾고 있던 그때,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
깡!!
“크윽!”
검은 마기로 이루어진 검이 목젖에서 멈췄다. 조금에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목이 베였을 것이다.
깡!
다시 한번 검에 힘을 주고 튕겨내자 익숙한 남자가 보인다.
다시 자세를 잡고 달려드는 천마.
“내 감각이 이상한 게 아니었어.”
“좀 놀랬나 봐?”
천마가 상당히 당황해하는 것 같다.
강수호는 한 달 만에 말도 안 되는 성장을 거쳤다.
천마가 십만 년 동안 고생 끝에 얻은 걸 고작 한 달 만에 성장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을 터.
“고작 그런 힘으로 우쭐 대지 마라.”
“고작 그런 힘이라…… 하!”
스승님 50명의 힘을 ‘고작’이라고 치부하다니,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너도 한두 번 당해 봐서 알 텐데?”
“……한두 번 당했다고? 설마 그때 그자가 스승이란 자였나?”
“알면서 물어보네. 시련 던전뿐만이 아니잖아?”
이미 당해 본 천마는 잘 알 거다. 할튼뿐만이 아니다.
클로운을 직접 죽인 샬런 또한 알 것이다.
“클로운.”
“……뭐?”
죽은 간부의 이름을 읊자 천마의 몸이 멈췄다.
암살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압도적인 힘과 빛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속도.
‘마왕보다 괴물인 그 사람이 저 아이의 스승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전 차원을 뒤져봐도 그 정도로 강한 강자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괴물을 어떻게……. 크윽!”
“……?!”
말을 하던 도중 천마가 갑자기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갑자기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갑자기 왜 쓰러져?’
혈압이 올라서 쓰러지는 건 아닐 테고, 아파서 쓰러지는 건 더욱 아닐 것이다.
하여튼 이때가 기회였다.
“흐읍!”
몸을 크게 부풀렸다. 원래 크기의 두 배나 거대해진 몸.
그 상태로 검을 굳게 잡아 샬런의 힘을 이용하여 목을 노렸다.
‘된다!’
검과 목이 닿는 시간은 고작 0.4초.
천마조차 반응하지 못할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푸욱!
“아쉽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정신이 들었는지 천마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쉽네. 힘 안 들이고 잡을 수 있었는데.”
“크윽. 고작 그따위 실력으로 날 잡을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따위라…… 이제부터 제대로 해 줄게.”
마찬가지로 강수호도 자세를 잡았다.
지금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했다. 스승님의 힘 중 5분의 1조차 발현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강수호가 먼저 달려들었다.
“똑같은 패턴이다!”
샬런과 할튼을 섞은 힘, 이미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졌기에 막는 건 쉬웠다.
하지만 샬런의 힘은 달랐다.
“느려.”
“……!!”
강수호는 순간 천마를 뛰어넘는 속도로 순식간에 품 안으로 파고들어 목을 노렸다.
“그건 안 되지!”
천마는 천마답다.
목을 향해 들어오는 검을 비틀어 흘려냈다.
그 틈을 타 이번에는 천마가 다리를 노려왔다.
천천히 목을 옥죄려는 모양.
하지만 천마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푸욱.
“……!!”
“아퍼라.”
샬런의 단단한 몸. 그뿐만 아니라, 얕은 상처가 난 부위는 어느새 빠르게 치료되었다.
말도 안 되는 몸의 강도와 재생력.
“빌어먹…….”
그 덕분에 생긴 틈.
천마가 몸을 돌려 뒤로 물러났다.
‘뭐지?’
육탄전에 갑자기 뒤로 물러나다니?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라이트닝.”
낮은 서클의 마법.
원래라면 무시하고 갈 만했으나, 그 마법을 시전하는 이가 강수호다.
빛과 같은 속도로 불어닥치는 마법.
파지직! 쾅!
“크아아악!”
천마조차 빛과 같은 속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몸에 온갖 버프 마법을 둘렀다. 하지만,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이것도 버틸 수 있을까 보자.”
포런의 힘으로 직접 제조한 독을 사방에 뿌렸다.
극독답게 순식간에 주변이 보라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쿨럭! 이게 무슨……!!”
마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극독.
그 필드를 강수호는 손쉽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네가 지금껏 무시했던 힘이다.”
그 말과 함께 검에 마법을 잔뜩 불어 넣고 달려들었다.
속도, 힘, 마법. 어느 한 가지도 천마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감각만으로 봤을 때는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느껴지는 압도적인 강함.
‘이대로라면 질 수도 있다.’
상당히 위험하다. 전력을 끌어내지 않으면 질 것이다.
강수호의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마법이 날아오겠지만, 상관없다.
“헬 파이…….”
“천마호흡.”
“……?!”
막 마법을 캐스팅하려 할 때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
갑자기 호흡이라니? 가볍게 무시하고 비어 있는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하자.
쿵!
“……!!”
기세가 달라졌다.
발걸음 한 번만으로 성의 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해야 한다.’
공격할 때가 아니다.
묵직한 공격들을 정말 한 끗 차이로 피해 냈다.
“오호, 잘 피하는구나.”
점점 더 빨라지는 공격.
스승님의 힘을 사용해도 천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얼굴을 향해 들어온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콰직!
“흐읍!”
처음 휘둘렀던 주먹과는 격이 다르다.
한 번 더 맞는 순간 골로 갈 것이다.
‘갑자기 뭐지?’
다시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며 생각에 잠겼다.
충분히 이길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힘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도망가 사는 것 자체가 행운.
‘도대체 뭐 때문에…….’
문제는 사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강해진 힘……. 강하게 만든 저 힘이 도대체 뭐냔 말이냐.
‘설마?’
한참의 생각 끝에 떠오른 생각.
아마 확실할 거다.
‘마지막 유물인가.’
마지막 유물을 사용한 것일 터다.
이 정도 힘으로 봤을 때, 천마가 가지고 있던 유물의 힘은 촌장의 힘일 게 틀림없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살 수 있었지만, 오히려 앞으로 다가갔다.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군.”
“아니, 정신은 아주 멀쩡한데?”
“너는 날 이기지 못한다. 지금 상황에서 더욱.”
천마의 말이 맞다.
저 힘은 스승님 여럿의 힘을 받아들인 강수호조차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저 힘을 모를 경우에만 해당된다.
“내가 시련 던전을 50번이나 넘게 다녀보면서 알게 된 건데, 신기한 게 있더라고.”
시련 던전을 50번이나 다녀 본 결과, 천마에게는 특이한 특징이 있다. 지금껏 그가 수정 구슬에 넣어둔 스승님들을 모른다는 것.
그렇다는 건 촌장님의 힘도 모를 것이다.
그 힘이 말도 안 되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유물은 너무 힘에만 치중되어 있거든.”
강수호는 촌장님의 힘을 직접 본 적이 있으니, 잘 알고 있다.
속도, 몸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힘에 치중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천마는 모를 것이다. 마왕이 죽인 이들 중 천마보다 강한 이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나 끌 계획이군. 마지막 몸부림인가?”
“그냥 알려 주는 것뿐이야.”
그것이 바로 저 유물이다.
무공의 극의에 도달한 진정한 천마.
“네가 천마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거든.”
“헛소리도 그 정도까지만 하거라.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
지금은 이상한 옷이나 입고 다니면서 작은 마을의 촌장이지만, 한 때는 모든 이의 위에 선 괴물. 그것이 바로 마을 촌장이었다.
저 유물은 완전히 힘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강수호는 그 틈을 노릴 거다.
빠르게 배합한 독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독이긴 하나, 나쁜 독만 있는 게 아니다. 몸을 각성시켜 주는 독이었다.
“후우…….”
그 독은 전신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이건 되도록 먹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뭐 하는 짓이지?’
겉으로 볼 때는 미쳤나 싶을 거다.
주변에 뿌리던 독을 입 안에 털어 넣었으니까.
하지만 독의 효과를 느끼자,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보다 더 빨라졌다고?!’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천마는 감각에 집중했다.
‘눈으로 좇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머리가 아직도 아프군.’
계속해서 진행되는 두통을 무시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