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213. 양유혁(3)
“허억!”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고 뱉었다.
정신을 몇 번이나 잃었는지, 수를 세기도 힘들었다.
그때 마침 들려오는 악마들의 목소리.
“이놈 뭐냐? 벌써 31번짼데도 정신을 유지하네.”
“아, 몰라. 나 힘들어서 더는 못 해 먹겠어. 너희들끼리 하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 난 좀 쉬련다.”
2명의 악마가 독과 오물들을 내려놓고 맞은편 방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한 번의 환각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유혁의 정신력이 어찌나 강한지 31번째인데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악마조차 질리다 못해 소름 돋는 정신력.
“나도 나도. 진짜 더럽게 힘드네, 이거.”
나머지 악마도 그들과 함께 맞은편 방으로 이동했다.
조용해진 고문방.
‘머리 아파 뒤지겠네.’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온갖 오물로 가득한 바닥.
‘처참하네.’
바로 앞에 걸린 거울을 보고 자신이 흘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독한 환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써 정신을 차리고 몸 상태를 살폈다.
‘다 묶였네.’
사지가 묶여 움직일 수가 없다.
꼼짝도 못 하는 몸.
원래라면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 따윈 없겠지만, 그건 방심을 하지 않았을 때나 되는 말이다.
‘멍청한 놈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앞에 놓인 환각 재료들.
저 재료들로 잘만 조합한다면 아주 멋진 걸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이렇게…….”
발톱 때만큼 남은 마나로 대충 배합했다. 아카데미에서 화학 실습 때 배운 것들이 유용해진 순간이었다.
악마들의 눈치채지 못하게 배합을 모두 끝냈다.
“후우…….”
문제없이 완벽하게 마친 배합.
이제 마나를 배합한 것과 함께 터트리면 되었지만…….
“이야……. 우리 미래 천마 님께서 이런 장난을 치고 계셨네?”
“…….”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목소리.
양유혁의 눈동자가 천천히 목소리 쪽으로 향했다.
“하이~”
악마들이 맞은편 방으로 이동했던 건 환각이었다.
‘빌어먹을.’
31번째면 독에 중독되고도 남은 횟수였다.
점점 다가오는 악마.
“죄를 지었으면 벌은 달게 받아야지?”
환각을 잔뜩 바른 더러운 날붙이를 들었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머리끝까지 천천히 베려 하자.
“멈춰라.”
“마, 마왕님!”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악마 3명이 무릎을 꿇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천마는 하루도 안 되어서 끝났으니 답답하여 온 걸 터.
“왜? 이렇게 안 되니까, 무섭기라도 하나 보지?”
“으하하하하!”
말도 안 된다는 소리인 듯 다시 한번 크게 웃어댔다.
“그래, 솔직히 놀랐다. 31번이나 견딜 줄이야.”
순수한 감탄.
이걸 10번 넘게 견디는 놈은 마왕도 처음 봤으니까. 하지만 고작 그뿐이었다.
“그래서 뭐 달라진 게 있나?”
“…….”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더 정신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악마들이 맞은편 방으로 이동했다는 환상까지 보였으니까.
“으하하하! 그 표정, 아주 좋아. 내 마음에 들었어.”
마왕의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기가 나온다.
물과 같은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
“최대한 빨리 가자고.”
그 말을 끝으로 작은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푸욱!
“…….”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특별한 반응도 오지도 않았다.
“이것도 환각의 일종인 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헛웃음을 내뱉자 밀려 들어오는 고통.
전과 완전히 다른 고통이었다.
“어때? 죽이지?”
“이런 미…… 커헉!”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이 느껴진다.
고통스러워하는 양유혁을 보며 한껏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끝날 것이다. 조금만 참거라. 나의 두 번째 말이여.”
그것을 끝으로 마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여기입니까?”
“예, 여기가 확실합니다.”
아주 깊은 산골에 위치한 마인 협회라 불리는 곳엔 거대한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참하네.’
성 주변에는 사람들의 살점과 피가 난무했다.
마인 협회를 찾을 때마다 마인 협회를 습격했다.
하지만 매번 결과는 대패. 단 한 번도 바리케이드조차 넘어선 적이 없었다.
“조심하십시오. 악마들이 넘쳐납니…….”
“여기 있으시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예, 예?!”
그 입구를 강수호가 뚫겠다고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 달 동안 시련 던전에 박혀 있어서 모르겠지만, 저 바리케이드는 쉽게 부서지는 게 아니다. 악마들을 처치하는 건 더욱 그렇고.
“제가 두 번 다 살아남아서 아는데, 함께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강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 천마가 있더라도 지금의 상태라면 상대할 수 있다.
“신호하면 오십시오.”
강수호가 바리케이드를 뚫기 위해서 문으로 향했다.
* * *
피와 살점으로 질척거리는 성 밖.
바리케이드 바로 위에서 악마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언제 또 오려나. 좀 강한 인간들의 피는 일반 사람보다 맛이 좋던데.”
“여기 피는 맛도 이상하고……. 그 인간 피 생각하니까 또 군침 도네.”
흐르는 침을 닦아내며 다시 주위를 경계했다.
배는 고파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이곳에 천마라는 놈이 중요한 걸 뒀다나, 뭐라나.
그렇게 한참을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를 서고 있던 그때였다.
“음? 야, 저거 사람 아니냐?”
“사람? 벌써 먹을 것들이 왔네. 얼마나 왔냐?! 배고파 죽겠는데.”
저 멀리서 보이는 사람.
마침 출출했던 차다. 또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입술에 침을 발랐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 수다.
맛있는 것도 고작 하나밖에 없으면 싸우기 마련.
최소 1,000명은 오리라 생각하고 막 바리케이드로 내려갔다.
“음? 달려오는데?”
“오오, 먹을 게 달려온다!”
남자 한 명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냄새를 맡아보니 상당한 놈이 확실했다.
‘이번에는 실하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아주 고급진 스테이크가 절로 굴러오는 것과 같은 이치.
달려드는 남자에 맞춰 악마 두 명이 달려갔다.
“먹을 거……!”
입을 쩍 벌리며 날카롭게 뽑아낸 손톱을 내질렀다.
깡-!
“……뭐야?”
하지만 최상급 악마의 단단한 손톱은 파고들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다.
오리하르콘으로 된 갑옷조차 파고들었던 손톱이 인간의 몸뚱어리를 파고들지 못하다니.
어떻게 된 건가 싶어 빠르게 남자를 쳐다봤을 때는 이미…….
툭.
머리가 깨끗하게 잘려 떨어져 있었다.
옆에서 모든 걸 보고 있던 악마가 눈을 크게 떴다.
‘강하다.’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천마와 동급이거나, 그보다 강하다는 뜻. 그 이하는 절대 아니다.
지금 여기서 당장 도망쳐야 했다.
인간을 먹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장에라도 살아서 이 사실을 마왕에게 알려야 했다.
막 도망치려던 찰나 상체를 뚫고 들어오는 검.
“커, 커헉!”
“귀찮게 됐네.”
다시 검을 빼 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놈들은 그냥 경비가 아니다. 죽으면 알람이 발동되는 성가신 경비들.
“인간이다!”
“먹을 거다! 먹을 거!”
침을 질질 흘리며 바리케이드를 넘어오는 악마들. 그 수를 셀 수 없었다.
‘바퀴벌레처럼 넘쳐나네.’
바퀴벌레처럼 넘쳐나는 악마들.
압도적인 수의 악마를 본 헌터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걸 혼자서 상대한다고?”
“우리끼리도 겨우겨우 살아남아 왔는데…….”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
이미 저 악마들을 경험해 본 적 있는 헌터들이 몸을 떨었다.
악마들은 검을 휘둘러 팔을 잘라내도 계속해서 재생한다. 그럼에도 달려드는 건 자살과 다름없는 행위.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악마들은 못 이겨……. 절대 못 이겨!”
패닉에 빠진 헌터들.
대부분의 헌터가 몸을 움츠린 채로 시선을 거두었다. 사람이 찢겨 죽는 모습은 언제나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았으니까.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고개를 숙였지만, 강수호의 비명은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무슨 괴물……. 커헉!”
“한꺼번에 달려들어라! 악마 간부까지 나서니 천천히 해도 된다!”
강수호의 손짓 한 번과 몸짓 한 번에 가볍게 쓰러지는 악마들.
최상급 악마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악마 간부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드디어 내가 나왔…… 커헉!”
“약해.”
하지만 악마들에게는 그 희망도 금방 사라졌다. 악마 간부라고 악마는 등장하자마자 복부에 구멍이 생긴 채로 쓰러졌다.
고작 한 합.
강수호는 육체적으로만 천마와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는 이미 주변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괴, 괴물…….”
“괴물은 너희고.”
악마의 머리를 짓밟으며 성 앞에 섰다.
고작 10분이란 시간 만에 몇천이 넘어가는 악마를 죽였다.
그것도 혼자서.
주변이 조용해지자 고개를 숙였던 헌터들이 고개를 들었다.
“다 죽였어?”
“그 악마들을 전부 다?”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아니, 더 큰 희망이 보인다.
바퀴벌레 같은 악마들을 쓸어 버릴 희망이 말이다.
“신호 안 해도 됐었네요.”
“호, 혼자 다 쓸어 버리신 겁니까?”
“예, 보다시피.”
강수호는 가볍게 웃으며 헌터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먼저 나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헌터들의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아마 이 정도면 금방 털고 일어날 것이다.
“후우…… 우리도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모두 일어나! 우리가 3살 먹은 애야?”
예상대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헌터들이 일어난다.
헌터는 헌터인 모양이다.
한두 마디 내뱉자 벌써부터 무기를 들고 살기를 내뿜는다.
‘먼저 나서길 잘했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입구를 뚫었을 뿐이니까.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강수호를 잔뜩 신뢰하는 헌터들.
그것만으로 이번 싸움의 성공 확률은 더 없이 올라갔다. 악마 간부조차 강수호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
‘무섭네.’
강수호가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제 50번째 힘을 흡수한 상태. 그런 상태에서도 이미 천마의 힘을 뛰어넘었다.
스승님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과연 100개를 전부 흡수하면…….”
말끝을 흐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촌장님까지 흡수하면 과연 어떻게 될지 기대도 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힘 따위가 아니었다.
‘다시는 보지 못하는 건가…….’
한 차원을 위협할 힘을 가진 절대자들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었다.
‘살릴 수 있을까.’
그들보다 더 강해지면, 몇 배는 강해지면 살릴 수 있을까.
지금 강수호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한심했던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꿔준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물론 그전에 마지막 유물부터 받아야겠지만.
“아까보다 많네.”
전보다 몇 배는 많아진 악마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코코를 꺼내 들고 마인 협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