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212. 양유혁(2)
마왕과 함께 지하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마침내 다시 도달할 수 있는 출구.
끼이익.
기름칠 되지 않은 문이 열리자 괴랄한 풍경이 드러났다.
맑거나 흐려야 할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보지도 못했던 이상한 괴물들이 득실거렸다.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이곳이 마계니까.”
“…….”
이곳이 마계.
지옥과 다를 바 없는 곳.
여기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강해진다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독해.’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무저갱의 마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확실히 독하다. 양유혁조차 코를 막을 정도였으니까.
“따라오거라.”
여기서 도망칠 방법 따윈 없었다. 도망친다 해도 금방 잡힐 테고.
마왕의 뒤를 따랐다.
길고 긴 낭떠러지에 괴물들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살려……!!”
소름 끼치는 절규들.
애써 그런 절규를 무시하고 마왕을 따라 이동하자 곧 거대한 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열어라.”
쿵!
마왕의 말에 곧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거대한 대문이 열리자 보이는 식탁에 놓인 진수성찬들.
“들지.”
“…….”
마왕은 입에 모터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해치운다.
1분도 안 되어서 거대한 식탁에는 빈 접시만이 가득했다.
“후우……. 잘 먹었군. 그것보다 너는 안 먹나?”
“괜찮습니다. 여기 왜 데려온 겁니까?”
음식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계에 데려온 이유. 지금 양유혁은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네 아비를 닮아 성격이 참으로 급하구나.”
마왕은 양유혁의 질문에 인상을 구겼다.
요즘 들어 바빠서 먹지 못했던 진귀한 음식들. 오랜만의 진수성찬이었는데, 바로 옆에서 불평 섞인 말을 쫑알거렸으니까.
양유혁도 그의 아비와 똑같다.
“밥도 다 먹었으니, 알려 주도록 하지.”
이쑤시개를 버리고 맞은편에 앉은 양유혁에게 다가갔다.
마왕이 생각하기에, 양유혁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식 따윈 버려두고 말해 주지. 너는 나의 두 번째 말이 될 예정이다.”
양유혁의 아버지인 천마는 이곳에서 필연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 과거에 얽매인 멍청이는 이곳에 필요 없다.
“다행인 줄 알거라. 내가 몇십 만년 함께 한 부하의 약속 정도는 들어 줄 의향이 있거든.”
약속도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양유혁에게는 쓸모 있는 부분이 더 많았다.
“아니.”
양유혁은 마왕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저 말이 성립되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완전히 잘못되었다.
“뭐가 아니라는 소리지?”
“여기를 나를 차지해야 내가 말이 되든, 네 똥 닦아주는 노예가 되든 하지.”
“흐하하하하!!”
양유혁의 이야기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마계를 통치하는 왕에게 저런 식으로 답변을 하다니.
‘역시 재밌군.’
다른 이라면 저 혀를 당장에라도 뽑았을 터.
하지만 양유혁에게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으니까.
“너는 지금 내가 질 거라 말한 거 아니었나?”
“근데?”
“나는 질 거라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양유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역겨운 숨소리조차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마왕.
“지구보다 몇 배는 거대한 차원을 지배했을 때가 생각나는군.”
마왕은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지구보다 몇 배는 더 큰 차원. 그 차원을 일주일 안에 차치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
자신이 꺼낸 이야기임에도 개연성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때는 그리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마왕과 가주 몇 명이 전부.
그럼에도 지구보다 거대하고 강한 차원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데 소수의 우리가 차원에 있는 그놈들보다 강했거든.”
소수 정예.
마왕과 마계 가주들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차원 하나를 가볍게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때는 시스템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 덕분에 고작 일주일 만에 차원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약했지. 네 아비 10명 정도 있다 생각하면 되겠구나.”
“……!!”
옛날 마왕의 힘을 듣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금의 천마도 전 차원을 통틀어 상대할 대상이 없다. 지금 천마의 힘의 10배라니.
꿀꺽.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거만한 이유가 있을 압도적인 강함.
하지만 금방 두려움은 사라졌다.
“아니, 그래도 넌 못 해.”
“하! 받아들이기 싫은가 보구나?”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정답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지.”
두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고.
무엇이 양유혁을 이리 용기 있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나보다 강한 이라도 있다는 것이냐? 이미 시스템조차 우리 것이 됐다. 이래도 우리가 질 거라 생각하나?”
“어. 완전히.”
변함없는 답변에 결국 마왕의 손이 움직여 우악스럽게 양유혁의 목을 낚아챘다.
“커헉!”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머리가 터질 정도로 강한 악력.
무저갱의 마기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흠…… 아직 그리 강하지 않군.”
마왕은 잡았던 목을 풀어주었다. 약자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다시 제자리로 가 이에 낀 음식을 손톱으로 제거하며 말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거라.”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길 거다. 무조건.”
현현하는 이유도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다.
이제 막 끝에 도달했으니, 작은 틈이라도 허용하지 않기 위함.
실패할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너도 받아들여라. 그것이 편할 테니까.”
“이거나 먹어.”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적어도 자의로 마왕 밑에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다.
“으하하하! 그래, 니네 아비도 이런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왕은 웃는 것과 동시에 밖에 있던 악마들을 불러들였다.
순식간에 양유혁의 양팔을 잡은 악마들.
“이거 놓아라!”
“힘이 있을 때나 벗어날 수 있을 때다.”
마왕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성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외통수였다. 도망칠 수 있는 곳 따윈 없다.
“그곳으로 끌고 가거라.”
“알겠습니다.”
양팔을 잡아 제압하고는 다시 지하 깊숙이 들어간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지 않다. 짙은 마기만 느껴지는 게 아니다.
‘독이다.’
무저갱의 마기를 받아들인 양유혁조차 독은 버텨내기 힘들다.
양유혁의 표정이 썩어가는 걸 본 마왕이 흥분한 듯 웃었다.
“이제라도 마음이 변했나?”
“설마.”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안으로 끌고 가.”
천마조차 저 지하에 들어가서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과 환각이 지속될 거다.
지하 깊숙이 들어가는 양유혁.
그런 그를 뒤로 하고, 마왕도 준비를 시작했다.
“얼마나 남았지?”
“한 달 정도면 완성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알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왕은 한껏 미소 지으며 성 위로 올라갔다.
* * *
“으윽…….”
따뜻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몸의 피로가 완전히 풀렸는지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어우, 잘 잤다.”
한 달간 1시간만 숙면을 취하며 마라톤을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강수호]
레벨 : ???
체력 – ??? 민첩 – ??? 힘 – ??? 마나 – ??? 감각 – ???
재능 : 차원 이동 (SSS급)
힘 : [샬런] [할튼] [아힐런] [세린] [레릴] [릴레아] [슬론]……. (너무 많은 영혼을 흡수하여 접기 상태로 들어갑니다. <언제든지 열 수 있습니다.>)
어느새 늘어난 힘의 영혼.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펴 봤다.
처음 샬런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힘이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보다 몇 시간이나 잔 거지.”
상태창을 치워두고 던전을 나왔다.
얼마나 오래 잔지 전혀 모르는 상황.
정신을 차리고 던전 밖으로 나가자 검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밤이네.’
그뿐만이 아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부족해 보였던 경비가 많이 강화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천마가 쳐들어 와도 10분 정도는 견뎌낼 수 있을 거다.
‘시간 확인해야 하는데.’
요새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나?’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감각을 넓혀 찾던 끝에 익숙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나호 님.”
“어?! 벌써 일어나셨어요?”
주변을 순찰 중이었던 나나호였다.
강수호를 보자 반갑게 미소 짓는 나나호.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이다.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후우……. 덕분에 잘 잤습니다. 그나저나 이건 뭡니까?”
“혹시 몰라서 만들어 놓은 바리케이드 같은 거예요. 얼굴을 보아하니, 잘 주무신 것 같네요.”
전과 다르게 상당히 좋아진 얼굴.
눈 밑에 가득했던 다크서클이 잤다고 모두 사라졌다.
그것보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나호를 찾은 것이 아니다.
“제가 몇 시간이나 잤죠?”
“장로님이 나왔을 때 주무신 거니까…… 거의 이틀이나 주무셨죠.”
“……이, 이틀이나요?”
몇 시간의 수준이 아니다. 이틀이란 시간을 오로지 잠에 투자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너무 오래 잤다.’
이틀이란 시간을 낭비했다.
당장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나나호가 팔을 잡았다.
“잠시만요.”
“나나호 님. 제가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이거 놓아 주시…….”
“더 급한 일이 있어요.”
“……예?”
더 급한 일이라니. 지금 이 상황보다 급한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 나나호의 팔을 뿌리치려 했다.
“마지막 유물이 필요합니다.”
“장로님?”
나나호 바로 옆에서 나온 장로가 말했다.
많은 싸움으로 인해서 유물 대부분을 획득했다.
문제는 마지막 유물을 찾지 못했다는 점.
“어디 있습니까?”
“천마에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마.”
천마의 손에 있다고 한다.
위치를 알고 있음에도 찾아오지 못한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뺏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두 번 정도 마인 협회를 습격했지만…….”
나나호의 안색이 좋지 않다.
끝까지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실패했군요.”
천마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
스승님의 힘을 흡수한 강수호조차 지금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못했다.
“모두 흡수할 동안 가만히 있지도 않을 테고…….”
천마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원래는 앞장 서서 시련 던전을 습격하던 그였는데, 요즘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천마보다 더 위의 인물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일 터다.
‘아마 마왕이겠지.’
시스템이 말했던 그 녀석이 올 가능성이 높았다.
유물 시련을 모두 클리어할 동안 가만히 있지 않을 터.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천마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지닌 강수호가 공격대와 같이 가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