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210. 해방(4)
“이제 5명이 갔구나.”
마을에는 벌써 스승님 5명이 사라졌다.
100명 중 5명이 사라졌는데도 마을이 휑해진 것 같았다.
촌장이 천천히 다가와 물었다.
“벌써 가는 거냐?”
“예.”
조금은 놀다가 웃다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가도 모자라다. 지금도 거의 억지로 안에 들어온 것이니.
슈아아악!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강수호.
촌장은 들판에 누워 뻥 뚫린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해방의 시간이.
‘너무 오랜 시간 이 자리에 있었지.’
그냥 오랜 시간도 아니다.
셀 수도 없이 긴 시간. 인간의 수천만 명이 죽을 만큼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오직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오랜 시간을 버텨내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영원한 잠을.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구나.”
하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과연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까.
“후우……. 이걸 전해 줘야겠지.”
품에서 낡은 종이를 꺼냈다. 원래라면 모든 이의 능력을 배운 뒤에 주려 했던 기술이 적힌 종이였다.
“이걸 줘야겠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뉴비가 다시 오면 이것을 줄 것이다.
“피곤하군.”
다시 종이를 품속에 넣고 들판에 누워 눈을 붙였다.
오늘 2명의 사람을 보내서 그런지 너무 피곤하다.
눈을 감고는 금방 잠이 들었다.
* * *
“우리끼리라도 나설 수밖에 없겠군.”
간부 3위, 조한강이 한예림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천마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남은 간부 몇 명이라도 나서야 금방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벨라와 남은 간부끼리 가도록 하지.”
간부 몇이 병력을 모아 시련의 던전에 가려 한다.
차마 한예림도 막아내지 못했다. 지금 천마의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한예림이 말리지도 못하고 소파에 앉은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슈아아악!
새파란 빛이 집 안에 퍼졌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새파란 빛에 나오는 한 사람을 바라봤다.
“천마 님?”
“다들 뭐 하는 짓이지?”
“…….”
인상을 구기며 주위를 둘러보는 천마.
망설이던 조한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시련 던전으로 가려던 차입니다.”
“……그런 명령은 없었을 텐데?”
“이미 상대 전력이 큰 피해를 겪었습니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 전력을 쉬게 만드는 것과 다름 없…….”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천마의 손이 움직였다.
정확히 심장을 뚫고 지나간 손.
“커, 커헉!”
“……!!”
“……!!”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천마의 처분.
정확히 심장을 뚫고 들어간 손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털썩!
“…….”
조한강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의 시선이 땅바닥으로 향했다.
한예림 빼고는.
“뭐 하시는 겁니까? 지금 간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 알 바 아니다.”
천마가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알 바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게 무슨…….”
“마왕이 이곳에 온다.”
“……예?!”
이들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마왕이 이곳에 현연하니까.
개미들이 모여 봤자, 인간에게 상대가 안 되는 것처럼 마왕은 강하다.
“너희는 여기서 처리돼야 한다.”
“…….”
온몸이 피로 칠갑 된 채로 천천히 다가오는 천마.
조한강이 죽었다. 그때부터 이들은 재빠르게 정신을 차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 마인이 됐다고는 하나, 가장 큰 목적은 삶이다. 살아나기 위해서 마인이 되었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도망쳐라!!”
간부 중 유일하게 산 이사벨라가 소리쳤다.
도망쳐야지 살 수 있다.
몇만 명 중 한 명만이라도 살아야 한다.
푸욱!
“커헉!”
하지만 애석하게도 천마에게서 도망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털썩
푸욱!
살갗이 뚫리는 소리와 비명으로 가득해진 집.
‘텔레포트!’
부상을 입었음에도 마인들을 미끼로 사용하여 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원래라면 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콰직!
“……!!”
텔레포트를 향해 흐르던 마나 줄기를 선으로 끊어버렸다.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이사벨라의 마나 흐름을 읽은 것.
단거리 텔레포트라도 사용하려 했으나…….
푸욱.
“……커, 커헉!”
단거리 텔레포트를 캐스팅도 못 하고 심장에 들어오는 천마의 손. 그대로 심장을 뽑아내, 이사벨라의 숨이 끊어졌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학살이 시작되었다.
스걱!
툭!
마인의 목이 가차 없이 베였고, 살갗과 핏물이 사방에 튀었다.
고작 몇 분 만에 마인이 모두 죽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마, 말도 안 돼…….’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예림은 도망갈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천마에게서 도망가다가 어떻게 죽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그저 소파에 앉아 몸을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천마.
피로 칠갑 된 손이 한예림의 목을 향해 움직이던 그때였다.
슈아아악!
갑자기 터진 파란빛. 그 파란빛에서 최상급 악마 하나가 나타나며 말했다.
“마왕님께서 부르십니다. 당신 아들의 주입 과정이 끝났습니다.”
“……그런가.”
최상급 악마의 말에 손이 멈췄다.
한예림을 처리해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피와 살점으로 칠갑 된 손을 거두고 악마에게 다가갔다.
“가지.”
“……저 여자는 처리하지 않습니까? 귀찮아질 수도 있습니다.”
“괜찮다. 살려 둘 것이다.”
살려 둘 거란 말에 악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이만 가시죠.”
“그래.”
천마와 최상급 악마가 그녀에게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 당장 아들의 모습을 보러 가야 했다.
“이동하겠습니다.”
악마의 말과 함께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천마.
“허억!!”
한예림은 참고 있던 숨을 들이쉬었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믿었던 이의 배신.
‘…….’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천마는 그들을 그저 체스판 위의 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믿고 맡기는 동료가 아니라.
“하, 하아…….”
한예림은 얼굴과 옷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그녀를 살리려고 한다는 것.
‘씨, 씻자.’
피 묻은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많은 것을 도와주었던 동료들의 피.
그것들을 씻어내기 위해서 피부가 벗겨질 때까지 박박 긁어내었다.
* * *
슈아아악!
파란빛이 터지며 천마와 악마가 나타났다.
“절 따라오시죠.”
최상급 악마가 먼저 앞장서 그를 안내했다.
그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자 칠흑 같은 어둠이 들이닥쳤다.
그 어둠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곳까지 들어가자.
“……이건가.”
사람이 들어 있는 3개의 캡슐이 보인다.
그 캡슐 한 칸을 차지한 한 남자.
‘아들아…….’
양유혁이었다.
보라색 액체로 가득 찬 캡슐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이제 마지막 과정만이 남아 있었다.
“대량의 마기만 주입하면 당신의 대를 이은 천마가 됩니다.”
“…….”
거대한 양의 마기를 넣으면 천마가 된다.
그 일만 처리하면 끝.
이제 드디어 평온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대로 진행해 주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양유혁에게 마기를 넣는 것을 허락했다. 어차피 자신이 허락하지 않아도 그들은 억지로 진행할 것이다.
천마는 양유혁에게서 시선을 떼고 첫 번째 캡슐의 여자를 쳐다봤다.
아름답다 못해 한 송이의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가 보라색 액체 안에 들어가 있었다.
“드디어 해방이군요.”
“…….”
아련하게 쳐다보는 천마를 보며 악마가 말했다.
드디어 해방이라고.
하지만 천마는 웃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강수호, 그놈은 어떻게 해결할 거지?”
세계 1위, 마일런보다 몇 배나 문제가 되는 남자. 그 남자를 처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마왕이 오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당연하다는 듯 천마를 쳐다보며 악마가 말했다.
“천마, 당신이 처리해야 합니다.”
“…….”
당연한 이야기였다.
존재하는 이들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천마.
악마들의 가주도 내려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천마가 직접 처리할 수밖에.
“그때 그 남자의 힘만 아니면 모든 일이 쉽게 끝날 겁니다.”
문제는 강수호와의 전투 중 뜬금없이 튀어나온 남자였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마왕조차 찍어 누를 듯한 강함.
정말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강함.
“흠……. 그렇긴 하죠. 그러면 악마와 함께 가셔도 되겠습니까?”
“……악마?”
“예, 쓰다 버릴 말들은 한참이나 남아 있습니다. 다 죽어도 그다지 큰 피해도 없고요.”
체스 위에서는 여러 말을 이용하면 되는 법이다. 지금 당장 버려도 문제 되지 않은 것들을.
“그러도록 하지.”
“지더라도 어차피 마왕님이 온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보다 마왕님이 오다니, 이례적인 일 아닙니까?”
악마는 강수호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바로 천마를 이긴 남자.
‘무엇 때문에 마왕님이 오시는 거지.’
그렇기에 미친 듯이 궁금했다.
천마를 이긴 남자가 얼마나 강한 거지.
“이만 가도록 하지. 있고 싶으면 있어도 된다.”
“……알겠다.”
3개의 캡슐 중 가장 앞에 있던 캡슐 앞에 섰다.
최상급 악마가 사라진 자리에서 캡슐을 조심스레 만졌다.
“오랜만이네…….”
천마가 되기 전에. 사람일 때 만난 유일한 사람.
그의 모든 것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
“곧 있으면 이 짓도 끝나 갑니다.”
사랑하는 여자였다. 양유혁을 있게 한 여자였고.
“다행이야.”
드디어 마지막이다.
이 짓도 이걸로 끝이다. 이제는 행복한 일만이 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수호를 죽여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서 꺼내 주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그때 싸움 이후로 10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만 가겠소.”
아쉽지만 오늘은 빨리 가야 할 듯하다. 천마로서 마지막 전쟁을 준비해야 했으니까.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깊숙한 어둠을 빠져나와 곧장 악마들을 향해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