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209화 (209/225)

제209화

209. 해방(3)

“멍청한 놈이군.”

“허억! 허억!”

숨을 힘들게 내뱉는 강수호 앞에서 천마가 한심한 듯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주먹만 휘둘렀으니까.

하지만 천마는 할튼에 빙의한 강수호가 강하다는 걸 느꼈다.

“이 피를 마시면 마인이 될 수 있다. 마시고 나와 함께…….”

그때와 같은 레퍼토리다.

그에 대답하기보다는 물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의 천마도 대답해 줄 수 있을 터.

“샬런을 기억하냐?”

“……그게 누구지?”

“…….”

그게 누구냐는 천마의 물음에 눈살을 좁혔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천마.

‘정말 모르는 건가.’

정확한 건 아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천마의 기억 속에는 샬런은 없었다.

“다시 한번 묻지. 나와 함께 하겠는가?”

“아니, 절대로.”

그리고 천마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확실했다.

“아쉽게 됐군. 너와는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친구는 지나가는 똥개한테나 줘라.”

“이만 죽어라.”

천마의 손이 빙의된 할튼의 심장에 천천히 들어왔다.

그것이 두 번째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 * *

쉴 새 없이 유물을 모았다.

5일 동안 한숨도 쉬지 않고 말이다.

그 결과, 한국 협회 회장 사무실에는 80개가 넘어가는 유물이 모였다.

힘들긴 했지만, 어찌어찌하여 모았다.

“후우…….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몸이 남아나질 않아.”

이석현과 이용욱이 소파에 힘없이 누웠다.

이러다가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

“코…….”

“…….”

그렇게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로 한참을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였다.

벌컥!

“흐읍……?!”

“누군가?”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 놀란 이용욱이 침을 닦으며 일어났고, 이석현이 침착하게 눈을 뜨며 물었다.

기운으로 봐서는 익숙한 사람인 듯했으니까.

“유물은 다 모으셨습니까?”

“거의 다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9개 정도는 모으지 못했다네.”

강수호 헌터가 하루 만에 시련을 끝내고 온 것이다.

“벌써 시련을 끝내고 왔나? 그때보다 빠르군.”

“3개 클리어했습니다.”

“……3개나?”

5일 만에 3개.

5일 동안 시련에 들어가길 반복했다.

“일단 유물부터 살펴보죠.”

생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유물을 살피고 다시 시련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 있다네.”

이용욱이 잠에서 깬 채로 일어나 유물들을 보여주었다.

책상에 놓인 80개가 넘어가는 유물들.

“확실하군요.”

강수호는 유물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확실히 유물이 맞다. 무엇 하나 잘못된 유물이 없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유물의 수였다.

강수호가 소유한 유물의 수까지 합쳐 봤자 90개가 좀 넘어가는 수.

“제걸 다 합쳐 봤자 90개 조금 넘어가는군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물이 정확히 100개인 건 확실한데, 누가 몰래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몰래…….”

이용욱은 ‘몰래’란 단어를 강조하며 말끝을 흐렸다.

5일 안에 전 세계를 뒤지며 말했다. 모든 유물을 내놓으라고.

강압성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천마의 약점을 알기 위한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100개를 모으진 못했다.

그렇다는 건 누가 몰래 가지고 있어서거나,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일 터.

‘후자는 아니야.’

확실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후자는 아니다.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최소 A급 헌터가 보장된다. 전문적으로 찾는 기간도 있었으니까.

“누가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헌터들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철저히 검사…….”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인 협회 쪽에 있는 거죠.”

“……마인 협회 말입니까?”

“예, 전에도 그들이 가진 유물을 몇 번 봤습니다.”

확실하다. 그들이 유물을 가지고 있을 거다.

“하지만 알아도 마인 협회에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전 세계의 헌터를 모아도, 그건 너무 출혈이 큽니다.”

“그렇죠. 그건 저도 압니다. 여기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유물의 위치를 안다고 해서 지금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인 협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위치를 안다고 해도 바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결정 한 번으로 전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전 세계 협회 회장을 불러 회의를…….”

“아니요.”

강수호가 이용욱의 말을 끊었다.

전 세계 협회 회장을 모아 회의를 다시 해야 하긴 한다. 하지만 헌터들을 모아 마인 협회를 습격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오히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제가 혼자 가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자살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자살하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없다.

멍청하게 돌진만 하지도 않을 거고.

“너무 무모한 선택입니다! 아무리 강수호 헌터라도 마인 협회를 단신으로 뚫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요, 가능할 겁니다.”

강수호는 유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에야 단신으로 마인 협회를 뚫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저것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버텨 주십시오.”

“후우……. 도박과 같은 계획이군요.”

강수호가 시간을 지체하면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지구는 멸망하고 다시는 맑은 하늘을 보지 못할 터.

“그 도박을 꼭 성공시킬 겁니다.”

말과 동시에 유물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다.

강수호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없다.

꼭 성공시킬 거다.

말로만 이리 말하는 게 아니다.

“전보다 몇 배는 강해졌거든요.”

스승님들을 정확히 세 번 흡수했다.

슬퍼할 틈도 없이 하늘로 사라진 스승님들.

스승님들이 사라지자 스승님들의 존재가 몸속을 충만히 채워주었다.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들의 힘을 모두 경험한 건 아니었다. 모두 배우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인 협회를 단신으로 무너트릴 수 있다는 것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제부터 바쁜 시간이 될 터라.”

“……알겠습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이용욱의 질문에 조금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빠르면 2달, 늦으면 3달 안으로 뵙죠.”

“알겠습니다. 최대한 막아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수호는 곧장 시련 던전으로 텔레포트했다.

* * *

“천마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치료사를 불러…….”

천마의 안색이 워낙 좋지 않았다. 전보다 상태는 나아졌지만, 이상했다.

치료사를 부를 생각으로 한예림이 집을 나가려 하자.

“앉거라.”

“예? 하지만 천마 님의 상태가 심각…….”

“닥치고 앉거라!!”

“……옙!”

살기와 마기가 동시에 퍼지자 한예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따라 특히 천마의 상태가 이상했다.

‘왜 이러시는 거지.’

한예림은 그저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지금 상태로서는 어떠한 약으로도 천마를 치료할 수 없을 듯하다.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단은 시련 던전에 마인들과 악마들을…….”

그전에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시련 던전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부숴야 했다. 인간들의 전력이 약한 지금이 기회.

당장에라도 병력을 보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천마도 허락할 것이기에 명령만 기다리고 있자.

“멈추거라. 당분간은 병력을 이동시키지 말거라.”

“……!!”

예상외의 답이 흘러나왔다.

한예림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누구보다 빨리 시련 던전을 차지하고 싶어 하던 그였다.

‘정신을 차리실 때 동안 계속 옆에 있어야겠군.’

한숨을 집어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천마는 그 사태 이후로 변한 것 같았다. 거의 비슷하긴 했지만.

“도대체 그 기억은 무엇이냔 말이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도대체…….”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기억이 삭제된 것 같았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올려지지 않는다.’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한참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마왕.”

머리를 감싸 안던 손을 소파 위에 올린 채로 말했다.

마왕이라면, 그자라면 이 사람에 대해서 알 터.

“어디 가십니까?”

“따라오지 말거라. 마왕에게 갈 것이니. 너는 여기서 나를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한예림에게 통보하듯 말하며 마왕에게로 이동했다.

* * *

곧바로 마왕이 자리한 만찬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으하하……. 음? 저놈은 천마 아닌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오는 것이냐!”

여러 최상급 악마들의 가주가 있는 자리. 만찬회 자리의 모두가 천마를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여기가 어떤 곳이길래 천한 것이 오냐고.

하지만 누군가의 단 한 마디에 살기와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 닥쳐라. 입 찢어버리기 전에.”

“……으, 으흠. 알겠습니다.”

“마왕님의 말이라면 다, 닥치고 있어야죠. 암, 그렇고말고.”

그들을 가볍게 찢을 수 있는 존재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닫고 천마에게 집중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천마, 무엇 때문에 이리도 중요한 자리에 온 건가?”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알아보고 싶은 사람?”

“예.”

간단했다.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년이란 시간을 산다. 그보다 더 오래 살아도 고작해야 100년 내외.

하지만 천마는 다르다. 몇십만 년을 살았다. 너무 오래 살아 가물가물한 기억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충분히 물을 수 있는 물음이었다.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지?”

“할튼이란 사람입니다.”

“……할튼?”

할튼이란 이름에 모두가 마왕을 쳐다봤다.

천마는 기억이 잘 안 나겠지만, 마왕은 누구보다 잘 기억나는 이름이었으니까.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얼마 전에 저와 겨루었습니다.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았습니다.”

“…….”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천마 빼고는 모두가 아는 이름이었으니까.

“그자를 봤다?”

마왕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예상외의 질문.

“후우……. 알 필요 없다.”

“알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알 필요 없다.”

마왕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 필요 없다고.

그럴수록 천마의 의문은 더욱 깊어져 갔지만…….

“알겠습니다.”

마왕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답과 함께 사라지는 천마.

마왕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만찬은 끝이다. 내가 직접 그곳에 가도록 하지.”

지구라는 곳에 직접 간다고.

그 말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시스템을 뚫을 만한 강한 존재가 간다는 말은 거대한 힘을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거고.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옆에서 마왕을 도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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