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208. 해방(2)
“가진 유물을 모두 내놓으란 말씀이십니까?”
“천마를 제거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욱은 각국의 협회 회장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전 세계에 있는 유물들을 모아 달라고.
힘을 독차지하려는 건 아니다. 그것이 천마를 유일하게 처치할 방법이었으니까.
“흠…….”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워낙 다급히 건넨 제안이라…….”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인 걸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고민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모든 국가가 위험한 상황. 아니,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 코앞까지 닥쳐왔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멸망을 늦출 수 있을 테니까.
“후우……. 저희는 동의하겠습니다.”
“저도요.”
대부분의 작은 나라가 손을 들어 이용욱의 말에 동의했다.
눈앞의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더 먼 상황을 봐야 한다. 그래야 평소처럼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미국 협회도 동의하겠습니다. 이미 대통령님께서도 허락하셨습니…….”
“저희는 싫습니다.”
미국 협회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모은 유물들을 강수호 헌터에게 준다고.
하지만 단 한 나라의 협회만이 고개를 저었다.
“중국은 왜 반대하는 겁니까?”
“그 유물이 마인과 악마 쪽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안 넘어가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관리하는 겁니다. 유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싫습니다. 중국 헌터들의 유물들은 저희가 관리하죠.”
“후우…….”
별의별 핑계를 다 대가며 거절했다.
모든 나라 중 딱 한 나라만 허락하지 않은 상태.
“알겠습니다. 중국이 모은 유물의 개수는 몇 개죠?”
“20개입니다. 정확히 20.”
“일단 알겠습니다. 이거로 회의를 끝내도록 하죠.”
거절한 사람에게 압박을 줘봤자 이득을 취할 것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거나, 나중에 가서 힘으로 빼앗으면 되는 법이다.
“좋습니다.”
중국 협회 회장은 회의가 의외로 쉽게 끝나 미소가 지어졌다.
“저는 이만 바쁜 관계로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협회 회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용욱은 모두가 빠져나가 빈 회의장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회장님, 안 가십니까?”
옆에 있던 비서가 물었다.
“혹시 몰라서 중국 협회를 샅샅이 조사 해 봤거든.”
빈 회의장에 앉아 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곧 있으면 도착할 헌터들을 기다리기 위함.
“오랜만입니다. 협회 회장님~”
“몸은 괜찮나 보군? 웃으면서 이리 멀쩡하게 오는 거 보면.”
“죽을 뻔하긴 했는데, 다행히 살았죠.”
패왕 길드의 마스터, 이구호.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를 부른 이유가 있었다.
“중국 측 협회 회장이 마인이란 말입니까?”
“그래, 확실하다. 부탁 좀 하지.”
“걱정하지 마세요. 한 명 처리하는 건 금방이니까.”
중국은 이미 마인과 악마들에게 먹혔다 봐도 무방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확실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구호가 가볍게 웃어주고는 곧바로 사라졌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저희는 유물을 받으러 이동하죠.”
“미국은 유물을 가진 헌터들을 모두 소집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면 미국부터 가도록 하죠.”
의자에서 일어났다.
강수호는 아무리 늦어도 이번 주 안에는 올 터. 그 시간 안에 유물을 최대한 많이 모아놔야 한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야겠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 * *
“역시 거신의 후예인가. 크기 또한 줄일 수 있을 줄이야.”
“거참, 거신의 후예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기사들을 집 안에 들여 밧줄을 묶은 채로 1시간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오해는 풀리지 않았다.
‘물어야 할 게 많은데, 왜 이리 입을 안 여는 거야?’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무력을 사용해야 할 듯하다.
상대도 보아하니, 그것을 원하는 듯하고(?).
“거인 주제 인간을…….”
“가만히 있어라. 그래야 덜 아플 테니까.”
“지금 이게 무슨 짓……. 으아아악!!”
기사 단장으로 불리는 이의 손톱을 핀셋으로 빼내었다.
기사 단장이라도 상관없다. 손톱까지 마나를 보내 보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비명을 질러대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
“말할 생각이 드나?”
“헛소리 말고 차라리 죽…….”
“그럼 말고.”
굳이 힘들 길로 간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시 핀셋을 잡고 손톱을 뽑아낸다.
4번째 손톱을 뽑아내려는데…….
“그, 그만!!”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
더 이상 버티지 못했는지 힘겹게 외쳤다.
강수호는 핀셋을 옆에 내려 두고 다시 한번 물었다.
“너희 뭐냐?”
“저, 저희는 대륙의 모든 나라가 합쳐 보낸 엘리트 기사단과 마탑의 마법사들입니다.”
“이번에는 제국이 아니네?”
제국의 엘리트 병사들만 보낸 건 아닌 듯하다.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 이번 악마들을 토벌하러 온 것.
“그런데 정말 거신의 후예가 아닙니까?”
“아니, 그게 뭐냐니까? 거신이란 것도 모르는데 무슨.”
“죄, 죄송합니다.”
“거신이 뭔데? 설명 좀 해 봐.”
아까부터 궁금했다. 거신이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이리도 경악하는지.
“거신은 악마가 오기 전에 존재했던 괴물들입니다.”
“괴물들?”
“예, 저희 인간의 삶을 위협했던 이들이죠.”
왜 할튼이 이런 곳에 사는지 대략 예상이 갔다.
능력만 쓰면 바로 거신의 후예인가 뭔가 하는 취급을 받으니…….
“어쨌든 나는 거신의 후예가 아니야. 그것보다 악마들을 토벌하러 왔다면서?”
“그렇습니다.”
“최상급 악마도 못 상대하면서 무슨 악마 토벌 타령이야?”
“…….”
약점을 쿡쿡 찌르는 대답에 모든 이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들였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라도 토벌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대피 시간을 늦출 수 없을 테니까…….”
“희생을 했다?”
“그래! 우리가 위까지 도달한다 해도 천마에게 잡히겠지.”
“……천마?”
그들의 안부 따위는 큰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죽는 이들. 과거에 연연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그들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천마다.
“어디 있어?”
“무, 무엇을 말이냐?”
“천마 말이야. 빨리 가야 하거든.”
어차피 할튼은 죽게 되어 있다. 죽게 될 거라면 최대한 빨리 천마의 약점을 찾아내고 싶었다.
“저, 저기 위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기 위에?”
할튼이 살던 곳보다 더 위를 가리켰다.
눈보라가 전보다 약해졌다 하더라도 위로 가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어, 어디 가는 거냐?”
“어디 가긴. 천마 만나러 가야지.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하잖아?”
“미친X! 천마가 무슨 장난인 줄 아느냐!”
“넌 몰라도 돼. 이만 간다.”
과거의 그가 상관 쓸 것이 아니다.
강수호는 기사들의 밧줄을 대충 풀어주고 곧장 천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더럽게 피곤하군.”
“시간만 끌면 됩니다.”
“인간 놈들, 어차피 마왕님에게 먹힐 터인데. 뭐 이리 발버둥을 치는 건지.”
중국 헌터 협회 회장이 차에 탄 채로 혀를 찼다.
유물을 모은다는 그 멍청한 계획은 마인 앞에서 무의미해질 테니까.
“참, 이 짓도 힘들군.”
머리를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마인 간부 중에서 유일하게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오랜만에 능력을 사용해서 힘들었는지 금방 잠이 들 것 같았는데.
“끄아악!”
“……?!”
운전기사가 고통을 호소하며 갑자기 쓰러진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뭐야? 갑자기 누가……!!’
중국 협회 회장 주변에는 이미 많은 마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떤 헌터도 모르도록.
유일한 용의자는 이용욱 협회 회장밖에 없었다.
그리 생각하고 눈을 떴을 때는 한 남자가 그와 눈을 마주 하고 있었다.
“정말 마기가 하나도 안 느껴지네?”
“이, 이구호 헌터?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패왕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구호 헌터였다.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
중국 헌터 협회의 회장에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 타박했지만, 이구호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연기 같은 거 안 해도 됩니다.”
“이런 빌어먹을!!”
창문 내리는 곳 바로 옆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연막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마기와 마나까지 주입하여 감각이 뛰어난 헌터라도 그를 찾지 못할 거다.
‘모습까지 다른 사람으로 바꿨으니 절대 못 찾겠지.’
그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모두 바꾸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절대로 찾지 못할 줄 알았지만…….
“뭐해~?”
“……!!”
“혹시 못 찾을 거라 생각했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구호는 어느새 다가와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크윽!”
두개골이 뭉개지면서 피가 사방에 튄다.
몸과 마나를 다루는 계열이 아니다 보니 부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부하도 없고, 몸을 바꿔봤자 소용도 없다.
“아놔, 외통수네.”
죽음이다.
유물만 가지고 있기만 해도 큰 이득이었는데…….
아무래도 이제 끝난 것 같다.
“그만 죽어라.”
쿵!!
“크헉!”
변신에 능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그리 강한 마인 간부는 아니다.
복부에 주먹 한 방을 꽂아 넣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그대로 즉사.
“음? 그거 한 방 맞았다고 죽었어?”
그리 강하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한 방에 죽자 이구호가 꽤 놀랐다.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여튼.
“후우……. 중국 쪽도 해결했네.”
문제 될 만한 사람은 처리했다.
이제 유물만 빼 오면 된다.
휴대폰을 꺼내 이용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간단히 메시지를 하나 보내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거 사고 난 거 아니야?”
“어서 119에 신고……. 아니, 길드에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곳은 한국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봤자 좋은 건 없었다.
그저 마인들이 사고 낸 거로 위장할 수밖에.
마인 간부가 뿌린 자욱한 연기 덕분에 금방 거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 * *
“……누구지?”
“빨리빨리 끝내자. 스승님이랑 빨리 인사하고 가야 하거든.”
“…….”
새하얀 눈보라가 몰아치는데도 외투 하나 걸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
그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강수호는 지금 당장 싸움을 원했으니까.
‘사망 선택지인가 뭔가 하는 건 안 뜨나 보네.’
그 때문인지 시스템 메시지는 떠 오르지 않았다.
천마는 강수호를 미친X 보듯 바라보고 있다.
강수호는 상관하지 않고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왕이면 약점 하나는 알아내고 가야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샬런의 몸에 들어갔을 때도 대마법사, 일렌과 함께 싸워도 이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천마의 약점을 찾아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온 힘을 다해서 천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이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