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207화 (207/225)

제207화

207. 해방(1)

시련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강수호.

최서현과 나나호는 곧장 한국 협회로 향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그 일을 이행하기 위해서.

시련 위치를 바꿀 필요는 없다.

어차피 옮겨도 똑같이 덤벼 올 테니까.

“……오셨군요.”

“부산 쪽도 상황이 심각했군요.”

“강수호 헌터 덕분에 쉽게 끝낼 수 있긴 했습니다.”

협회 회장실에 들어가자 붕대를 가는 이용욱을 볼 수 있었다. 소파에 앉은 이석현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나는 잠 좀 자겠네.”

“저기 침대 준비해 놓았으니, 저기서 주무십시오.”

붕대를 갈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이석현.

나나호와 최서현이 그런 그를 제치고 이용욱이 앉은 소파 앞에 앉았다.

소파에 앉자 곧바로 들려오는 질문.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거대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유물을 모으실 수 있습니까?”

“……강한 힘이 담긴 유물 말입니까?”

“예, 천마를 상대하려면 있는 유물 모두가 필요합니다.”

“…….”

유물을 모을 수 있냐고 물었지만, 이용욱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건 불가능할 듯합니다.”

이유야 간단했다.

유물은 헌터들이 가진 재산과 같았다. 특히 지금처럼 마인과 악마들이 넘쳐날 때는 더욱.

“내일 전 세계 협회 회의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천마를 죽일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고요.”

“……!!”

하지만 이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천마를 죽일 유일한 방법은 유물밖에 없으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예, 최대한 빨리 모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천마를 죽일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으니, 유물을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각국의 협회 회장들도 천마가 가장 까다로운 적이라 말했다.

그 천마를 죽일 유일한 방법을 강수호가 알고 있다 하니, 전 세계 협회에서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온 김에 도와 드리겠습니다.”

“비서에게 배치할 곳 말해 두겠습니다.”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들이 웃으며 말했다.

천마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오지 못할 터. 이곳에 온 김에 돕는 것이 좋을 거다.

협회 회장 사무실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

이용욱은 조용해진 사무실 의자에 앉아 유물의 위치를 살폈다.

“강수호 헌터께서 들고 있는 것까지 합하면 모두 100개.”

딱 100개에 맞춰진 유물들을 다 모아야 한다니.

천마를 쓰러트릴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모으는 데는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지.”

어떤 바보도 세상이 멸망하는 데 보고만 있지 않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도 힘을 쟁취하려는 자가 문제이긴 하지만…….

‘꼭 해결 해야겠지.’

앞을 가로막는 벽이 있으면 무너트리면 되는 법이다. 한국 협회 회장 자리에 오기까지 매번 그래왔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회의를 잡아야겠군.”

키보드에 손을 올린 이용욱이 빠르게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쓰든 이곳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 * *

“여기가 할튼 스승님의 고향인가.”

시련 안으로 들어가 멍하니 전신 거울을 쳐다봤다. 할튼의 몸이 확실했다. 누군지 확실하게 확인했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빨리 가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어차피 할튼에게는 가족 하나 없었다. 모두 마인과 악마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산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다 보니 친구 또한 없었다.

그렇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심각하네.”

밖은 새하얀 눈보라가 미친 듯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예상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밖을 나섰다.

“몸이 워낙 튼튼해서 추위는 전혀 안 느껴지고.”

다행히도 샬런과 마찬가지로 추위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꺄아아악!”

“악마들이네.”

절벽 바로 밑에 들려오는 비명.

악마들에게 학살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기사로 보이는 철갑에 마법사로 보이는 로브를 입고 있다.

‘악마들한테 습격당한 건가.’

옷에 있는 문양을 보니 어느 나라에 소속된 기사단, 마법사 단인 모양이다.

전처럼 머릿속에 할튼의 기억들이 들어왔지만, 모르는 것도 있었다.

구해 주는 게 가는 길이 편할 것 같기도 하고.

“내려가자.”

절벽 밑으로 몸을 던졌다.

* * *

“막아라! 제대로 막으란 말이야!”

“으아아아! 단장님! 최상급 악마입니다! 도저히 저희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빌어먹을!”

“으하하하! 먹을 거다! 먹을 거!”

악마들을 토벌하던 도중 생긴 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어찌나 강한 건지 전력을 동원하고 있는데도 막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전멸할 것이다.

‘안 된다! 이번 토벌에 실패하면 대륙은 멸망한다.’

사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전멸은 안 된다.

전멸은 대륙의 멸망과 직결된다.

“온 힘을 다해 버터라! 우리의 목숨은 대륙과 직결되어 있다!”

“예!!”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지금 당장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사지는 없어도 되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살아 움직이는 것 보면 말이야.”

“으하하하!!”

악마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덕분에 시간을 끌 수 있는 것뿐이었다.

전멸은 피하지 못한다.

‘젠장……. 누구 하나라도 살아야 한다. 누구 하나라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사실을 알려야 했다. 악마들은 우리가 상대할 만한 놈들이 아니라고.

‘당장 누구 하나를 살려……!!’

단장의 목숨 따위, 대륙을 살리기 위해서는 별거 아니다.

제일 어린 기사를 살리기 위해 마나를 둘러싼 채로 절벽 밑으로 내보려던 그때였다.

“너무 많은 거 아닌가?”

피와 살점으로 빨갛게 물든 눈밭에 나타난 한 남자. 그는 산책 나온 듯 여유롭게 악마들을 쳐다봤다.

‘저, 저 남자는 뭐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생을 산속에서 보낸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당장 도망치십시오!!”

기사를 내려보내는 걸 멈추고 외쳤다.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목숨을 부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음? 맛있는 냄새가 나는 먹잇감이군?”

“별미겠어. 지방도 별로 없어서 튼실튼실한 게 좋아 보이군.”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듯하다.

악마들이 언제 알아차렸는지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살점과 피로 질척거리는 입으로 베어 물려 했다.

‘젠장!’

여기서 더 소리쳐 봤자 시선만 끈다.

미안하지만, 저 남자를 시간 벌기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어서 내려…….”

어린 기사를 내보내려 하자.

후두둑!

“……!!”

기사 단장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피와 살점에 깜짝 놀라 순간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느낌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의 피와 살점이 아니었으니까.

“아, 악마가?”

예상대로 날아온 것들은 모두 악마의 것들이었다.

상처 하나 내지 못했던 악마의 신체에 도대체 누가?

누가 이랬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샬런 스승님 세상에 있었던 악마보다는 약하네.”

“어, 어, 어?”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한 손으로 악마의 얼굴을 우그러트렸다.

예상 밖의 전개라 입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장 강한 나라의 뛰어난 기사를 모두 동원해도 최상급 악마 한 마리 잡기 힘들다. 보스 몬스터를 여러 토벌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보스 몬스터를 고작 한 손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

“모두 달려들어! 맛있게 먹어 치워라!”

“예, 알겠습니다!”

한 마리로는 상대가 안 된다 생각했는지 사람들을 던지며 놀고 있던 악마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저 남자는 단 1분도 견디지 못하고 찢어 발겨질 거다.

하지만 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맛있게 먹어 치워주……. 끄아아악!”

“악마들이 말하는 패턴은 왜 이리 똑같은 거냐.”

두 손의 악력만으로 악마를 찢었다.

악마들도 상황을 눈치챈 것인지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저, 저 인간 뭐야?”

“놀지 말고 제대로 상대해라! 인간 편에 상당히 강한 먹잇감이 있다!”

악마들이 다급하게 뒤로 조금 물러나 숨겨 두었던 날카로운 손톱을 꺼냈다.

스르릉!

“이제 진짜 시작이다!”

이제는 다를 거라고, 이번에는 우리가 이길 거라고 그리 예상하고 달려들었지만…….

푸욱!

“커, 커헉!”

“똑같은데?”

변함없었다.

남자의 주먹이 정확히 악마의 배를 관통하여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악마들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우리 수가 더 많으니 유리하다! 덮쳐!”

온몸을 불살라 남자의 몸에 덮었다.

‘위험해.’

아무리 강한 사람이더라도 짙은 마기에 노출되면 위험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쿵!

“……!!”

산에 울리는 진동.

그 진동에 따라 남자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사, 사람이 저리 커질 수 있나?’

저런 능력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몸집이 마치 산처럼 거대해졌다. 팔 한 번 휘둘러 인간을 으깰 수 있을 정도로.

“도, 도망쳐……!!”

콰직!

“어디를.”

그들을 장난감 취급하던 악마들을 벌레 잡듯 죽여내었다.

한참 학살의 현장이 이어지고 나서야…….

“후우……. 전보다 강해진 건가. 힘드네.”

그의 몸이 천천히 원 상태로 돌아온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기사들은 멍하니 할튼의 몸에 들어온 강수호를 쳐다본다.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사, 사람이 거대해졌어?”

“저거 사람 아니잖아! 거신의 후예다! 거신의 후예!”

“……거신의 후예?”

자신을 거신의 후예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강수호도 처음 들어본 거였다.

‘거신의 후예라고? 그런 게 아닐 텐데.’

할튼의 몸속에 들어온 강수호는 알고 있다. 할튼은 거신의 후예 따위가 아니다. 그저 몸이 커지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오해는 풀어야겠지.’

묻고 싶은 게 많아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기 어느 나라…….”

“거신의 후예다! 당장 체포해라!”

“예! 단장님!”

“……살려준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래도 오해를 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멀쩡한 기사들이 검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온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거신인가, 뭔가 하는 그놈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본 듯하다.

강수호에게는 상관이 없다. 어차피 할튼은 거신의 후예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오해 좀 풀자니까, 바로 무기를 겨누네.”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래도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주먹이 답인 듯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