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204. 난전(4)
“하아…… 하아…….”
“별것도 아닌 것이 입만 살았구나? 너의 능력으로는 내 단검을 뚫을 수 없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고 강하게 휘둘러도 검은 단검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로 만든 거야?’
단검이 하나도 아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때마다 계속해서 생성된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저 단검을 부술 순 없었다.
이제 끝이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모두 전멸.
‘빌어먹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걸 알았는지 끝내러 달려드는 악마.
검은 단검이 턱 밑을 노린다.
반응할 기력도 없어 눈을 감고 최후를 맞이하려 했지만.
“여기서 죽으면 안 되죠?”
“강수호?”
언제 왔는지 강수호가 달려와 검은 단검을 막아내었다.
몇억을 호가하는 단검으로 막은 게 아니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새하얀 천으로.
“그, 그걸 어떻게……!”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어요. 스승님이 준 거라 할게요.”
테일런의 신성력이 잔뜩 담긴 새하얀 천.
저 검은 단검을 막을 수 있는 이유야 간단했다.
저 단검은 진한 마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기가 아닌, 천이라고 해도 신성력이 묻어 있다면 뚫리지 않는 게 당연했다.
“선물입니다.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으시죠?”
강금찬의 칼날 부분에 새하얀 천을 꽁꽁 묶어 주었다.
“수고해 주세요!”
“…….”
빠르게 사라지는 강수호.
강금찬뿐만 아니라, 검은 단검을 확인하는 악마도 놀라고 있었다.
‘내 단검에 금이 갔다고?’
절대로 부서지지 않던 검은 단검에 금이 가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
“당장 그 천을 내놓거라.”
“싫다면?”
“……목숨을 앗아가 주도록 하지. 네 살점과 내장을 맛있게 탐해 주도록 하마!!”
달려드는 악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전과 같이 당하는 일은 없었다.
캉!!
“……!!”
전보다 단검을 막는 게 몇 배는 편했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보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가능하다.’
날카로움을 잃고 뭉툭해져 버린 단검. 하지만 저 인간을 죽이기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덤벼라.”
“하! 거의 죽어가던 몸이 갑자기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이냐?”
“그래, 아주 잘 살아났다.”
가장 까다롭던 단검을 해결했다.
이 정도 도움을 줬는데, 질 수는 없다.
* * *
쾅! 쾅!
쿠르르릉! 쾅!
항구 한쪽에서 거대한 파육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누구 하나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꽤나 놀란 쪽은 악마였다.
“늙은 노친네인 줄 알았는데, 주먹을 좀 사용하잖아?”
“허허, 노인네가 원래 강하긴 하지. 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
이석현의 재능 덕분에 악마의 힘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더 이상 버티긴 힘들 것 같았다.
‘늙어서 그런지 능력 사용이 더 이상은 힘들군.’
늙어가는 신체.
은퇴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재능을 사용하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이것도 받아내어 보거라!!”
다시 한번 휘둘러지는 주먹.
지금까지와는 격을 달리하는 강하고 빠른 주먹이었다. 저 주먹을 맞는다면 배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겠지만…….
쿵!!
“칫, 이제는 피하는 건가?”
피하면 그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수호가 이석현을 옮겨준 덕분에 피할 수 있었던 거지만.
“자네는 독을 뿜어대는 놈을 상대하러 가지 않았나?”
“끝났습니다.”
“……벌써?”
끝났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탄전에는 불리한 악마라도 간부.
몇 분 만에 처리할 상대가 아닌데, 신기하다.
“그것보다 일단 빨리 처리하고 가야죠.”
한시가 급하다.
시련 던전 앞은 한바탕 난리가 났을 터.
“남자 간의 대결에 누가 끼는 것이냐!”
악마는 당연하게도 그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거대한 몸집으로 달려드는 그.
“이거 드세요.”
“……엘릭서 아닌가?”
“그냥 엘릭서는 아니에요. 스승님이 직접 만드신 도핑용 엘릭서입니다.”
도망치는 것과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꺼냈다.
워낙 급하게 만들어서 부작용은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이석현에게 딱 어울리는 엘릭서일 것이다.
“드세요.”
“고맙군.”
웃으며 망설임 없이 엘릭서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쉴 틈 없이 넘어가는 엘릭서.
“흐읍!”
엘릭서를 몸 안에 들이자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졌다.
근육 같은 건 부풀려지지 않았지만.
“머, 머리가……!!”
머리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엘릭서의 부작용.
하지만 머리만 빠지는 거였으면, 엘릭서를 주지도 않았다.
“잡았다!!”
“꼭 이기세요!”
엘릭서를 복용한 이석현에게 달려드는 악마.
하지만 전과같이 힘겹게 맞받아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쿵!!
“으, 음?”
“후우…… 유일하게 남은 머리가 빠지는 대신에 강한 힘을 얻는다니. 참 엿 같은 부작용이군.”
한 손으로 악마의 주먹을 막아내었다.
힘에 모든 걸 투자한 악마조차 놀랄 힘.
“이제 내 차례군.”
이석현은 핏줄이 터질 정도로 주먹을 강하게 쥐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이제는 이석현 차례였다.
그사이 강수호는 곧장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항구를 벗어났다.
* * *
“저건 또 뭐야?”
가장 앞에 선 sky 길드 마스터, 마일런.
다가오는 마인의 수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퀴벌레의 알을 까고 나온 듯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몇 마리인 거야?’
어림잡아도 1만 마리가 그냥 넘어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욱!
“마스터! 이놈들 시체야! 그냥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고!”
“…….”
고통 따위 느끼지 않은 시체들.
목을 베어야지만 제 기능을 멈춘다.
‘후우…….’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거다.
바다 위를 걷기 시작한 시체들. 그들 사이로 보이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한 남자.
‘저 남자가 저 시체들의 주인인가?’
누가 시체를 조종하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3마리 시체들을 뒤에 세운 남자.
“후우…….”
호흡을 뱉으며 검을 꺼냈다.
마일런 주변엔 그를 대체할 헌터들이 몇 있다. 좀 무리해도 된다는 뜻.
검을 잡고 천천히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대로 바다를 향해 일직선으로 선을 그었다.
스걱!!
바다가 순간적으로 정확히 일자로 갈라져 바닥이 보인다.
“키에에에에!”
“크아아아악!”
갈라짐 틈 안으로 들어가는 시체들.
순식간에 1만 마리가 넘어가는 시체들이 바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호…….”
조한강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천마의 도움으로 모을 수 있었던 정확히 30만 마리의 시체들.
고작 검 한 번 휘둘렀다고 바다가 갈라져 1만 마리의 시체를 무로 돌려보내다니.
“네가 가야겠다. 빠른아.”
“알, 겠, 습, 니, 다.”
“저번처럼 멍청하게 당하지는 마라. 내가 널 특히 개조에 신경 썼으니까.”
“예, 옙.”
간부급 시체를 이동시켰다.
“큰 문제는 없겠지.”
오히려 주목해야 할 건 헌터들이다.
‘분명히 부산 항구도 공격하고 있는데, 이토록 수가 많다라…….’
마인 협회는 부산 항구도 같이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시련의 던전 쪽 헌터 수가 몇 배는 더 많았다.
‘저쪽도 소수 정예가 부산 항구 쪽으로 갔나 보군.’
나쁘지 않았다.
강한 이는 고작 마일런 한 명.
악마 간부들로 인해 대부분의 헌터들을 부산항으로 몰아넣었으니, 천천히 진입해 나가면 되리라 생각했지만…….
“……또 그놈들이네?”
빠르게 사라져 가는 시체들.
누가 움직인 건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나나호와 최서현.
“후우…… 이렇게 3명인가.”
가장 위협이 되는 세 명.
하지만 마인 협회도 만만치 않게 준비를 했다.
“펠론.”
“나한테 맡겨. 최서현이란 여자는 내가 상대하지.”
1위 간부 빼고는 모든 간부가 이곳으로 모였다. 모든 전력을 쥐어짠 것이나 마찬가지.
‘꼭 뚫어낸다.’
목숨까지 걸린 일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뚫어내야 한다.
“나 먼저 가지.”
“…….”
10명의 간부가 빠르게 사라진다.
목표는 시련의 던전.
‘천마 님의 바람을 꼭 이루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조한강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향해 전진했다.
* * *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제 자연 능력으로도 …….”
“방어하는 입장이 유리해요. 천천히 해 보죠.”
수만 많은 게 아니다. 바다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시체를 운영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관없다는 듯이 바다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저번 시체보다 2배는 강해 보였고.
“일단 항구 전투가 끝날 때까지만 최대한 버텨보죠.”
“그래야겠죠. 가요.”
최대한 버텨보기로 하고, 바닷가로 나와 곧장 시체들을 썰어버리기 시작했다.
나나호의 자연 능력 덕분에 바다 위에 있을 수 있어 문제는 없었다.
시체들을 처리하며 조금씩 벅찬 느낌을 받을 때쯤이었다.
쿵!!
지진 같은 충격이 일어났다.
그에 파도가 거칠게 출렁거렸고, 바로 옆에서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
묵직한 뭔가가 휘둘러지는 느낌에 고개를 숙여 피해 내었다.
맞았다면 두개골이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간부?’
이 정도 공격을 구사하는 적은 몇 명 없다.
그렇다는 건 마인 간부.
“오호? 내 주먹을 피하다니?”
“펠론.”
“내 이름을 아나?”
“알고말고. 모르면 바보지. 간부 중에 가장 약한 놈.”
“…….”
펠론이 가장 약한 놈이란 최서현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가장 아픈 구석을 건드린 것이다.
평생 꼴등.
간부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얻은 별명이다.
12위에서 전혀 올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박혀만 있어서 생긴.
“그 입을 찢어 발겨주마.”
“12위가? 내 입을 찢어발긴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몸이 괴상하게 커지기 시작한다.
“찢어발기는 거로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구나!!”
펠론이 괴성을 질러대며 거대해진 몸을 휘둘렀다. 닿기만 해도 몸이 부서질 것 같다.
그건 최서현도 마찬가지였다.
쿵!!
“크윽!”
힘, 하면 최서현. 최서현, 하면 힘 아니겠나.
펠론이 휘두르던 주먹이 최서현의 주먹과 그대로 부딪쳤다.
거대한 파육음과 함께 파도가 충격파로 인해 잠시 출렁거렸다.
‘나보다 힘이 강하다고?’
펠론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12위 간부라 해도 간부는 간부다. 그것도 힘에서는 간부 중에서도 탑이다.
그런데 밀리다니.
‘팔 한 짝 날아갈 수 있겠군.’
팔 한 짝만 날아가면 행운일 터. 잘못하면 목숨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쾅!!
“크윽!”
“집중 안 해? 네가 직접 왔잖아?”
최서현은 펠론에게서 빈틈이 보이자마자 주먹을 휘둘렀다.
목숨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생각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
펠론은 괴성을 지르며 몸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최서현은 놀라기는커녕 웃었다.
“고작 이 정도야?”
“뭐, 뭐?”
모든 힘을 쥐어 짜내어 몸을 최대치로 키워냈다. 압축된 근육으로 뭐든지 부숴낼 수 있을 테지만.
“흐읍!”
최서현에게 그 정도 크기는 별것 아니었다.
최서현이 숨을 들이쉬자 최소 4m는 되어 보이는 크기로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같이 놀아보자고.”
“…….”
헐크보다 거대한 크기.
사람의 몸이라고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런 몸으로 주먹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