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203. 난전(3)
“허억! 해치웠나?”
악마의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항구.
다친 헌터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악마들이 크게 강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제 끝인가?”
“후우…… 드디어 끝인가 보군. 정말 죽을…….”
푸욱!
검은 단검이 날아와 머리에 박혀 숨이 끊어져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고작 조무래기들 상대한 것 같고 끝났다 말하면 우리는 뭐가 되지?”
“여기에 온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강한 사람은 없나?”
“…….”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긴장이 풀렸던 헌터들이 다시 병장기를 잡고 악마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악마 간부들.
“내 방패만 있으면 그 누구도 뚫을 수 없…….”
푸욱!
“커, 커헉!”
“그거 종이 방패야?”
수백 마리의 악마를 막았던 방패가 너무 쉽게 뚫려 버린다. 악마 간부는 고작 3마리밖에 안 되지만, 그 누구보다 강했다.
“츄르릅! 학살의 시작이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검은 단검을 생성한 한 악마 간부가 사람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약점만 베어내며 검은 단검에 묻은 피를 핥아냈다.
‘3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다.’
그들을 보며 강수호가 인상을 구겼다.
한예림을 상대할 만큼 강해졌긴 하나, 3마리는 무리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캉!!
“오호? 내 단검을 막아내? 넌 누구냐?”
거칠게 울리는 쇳소리.
암살 길드 부 마스터, 강금찬이 뻗은 단검에서 난 소리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름 알려줄 필요는 없지.”
“하! 인간, 패기는 좋다. 하지만 고작 인간이 날 상대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
캉!!
강금찬은 악마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검은 단검을 강하게 쳐냈다.
그런 시간에 단검 한 번을 더 휘두르리라.
“정말 예의도 없는 인간이군. 말하고 있는 도중 공격하지 말라고 배우지 않았나?”
“여기가 무슨 아동용 애니메이션인 줄 아냐?”
죽어서도 그런 말을 한다면 이해해 주겠다.
‘뭐 이리 단단해.’
말과는 다르게 강금찬의 마음속은 꽤나 심각했다.
저 검은 단검을 도대체 뭐로 만들었는지, 검을 맞댈 때마다 손이 울릴 정도로 단단했으니까.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보니 내 단검이 궁금한가 보구…….”
“하나도 안 궁금하다!”
캉!!
간부 한 마리는 강금찬이 상대하고 있다지만, 두 마리나 남아 있었다.
“웩!”
“저, 저건 또 뭔가! 이상한 걸 토해내고 있다!”
“당장 막…… 우웩!”
“저것부터 해결해야겠네.”
특히 초록색의 오물을 뿜어대는 저 악마.
‘저건 내가 상대해야겠네.’
주변 상태를 보아하니, 저 독에 면역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악마 간부는 하나.
“저놈은…….”
휘이잉!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달려가는 신영.
거대한 맷집의 악마가 헌터를 짓뭉개기 전에.
쾅!!
“으음? 누가 내 주먹을 막은 거지?”
한 노인이 악마의 주먹을 막아내었다.
악마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고작 인간이 주먹을 막아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늙어빠진 것이 쓸모는 있는가 보구나?”
“늙어빠진 것이라…….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하는군.”
이석현이 악마의 주먹을 막아내었다.
‘남은 악마도 대충 해결했네.’
강수호는 더러운 오물을 뱉어내는 악마를 향해 달려갔다.
* * *
“저쪽은 심각하네요.”
“그러게요. 저희도 가야 하지 않을까요?”
최서현과 나나호가 캠을 통해 부산의 상황을 지켜봤다.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항구.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마 간부까지 왔다고?’
마인 간부는 들어봤어도 악마 간부는 들어보지 못했다.
캠으로만 봐도 마기의 기운이 강한 게 느껴졌다.
‘우리가 갔더라도 크게 변함이 없었겠지.’
시련의 던전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 어차피 가 봤자 큰 도움도 되지 않을 터.
“보초도 설 겸, 바다 보면서 밥 먹을까요?”
“그거 좋죠.”
마침 다가온 아침 식사 시간.
보초도 설 겸 해서 시련 던전 밖을 나와 식사를 시작했다.
“예쁘다.”
점점 떠오르는 태양.
이런 풍경 속에서 밥을 먹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입 안에 음식을 넣고 있던 그때였다.
찰랑~
“…….”
“음? 어묵 싫어하세요? 그러면 저가…….”
입에 넣으려던 어묵을 다시 그릇에 놓는 나나호.
어묵을 싫어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다.
“어묵 좋아해요.”
“아, 죄송해요.”
“괜찮아요. 식사는 더 이상 못할 것 같거든요.”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자연 재능 덕분에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파도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모두 준비해 주세요!!”
나나호가 일어나자마자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부산 항구에서부터 공격이 시작되었으니, 금방 올 거라고는 예상하긴 했다.
문제는 그 수였다.
‘느껴지는 수만 해도 족히 1만 명이 넘어간다.’
느껴지는 생명만 해도 1만 명. 생명이 아닌 것들까지 합친다면 10만은 가볍게 웃돌았다.
“빨리 준비해요.”
나나호가 빠르게 시련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최서현은 당황해하는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처음 만난 터라 합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거기, 빨리 결계 쳐라!”
“기다려! 거의 다 했으니까!”
“바리케이드 제대로 설치해!”
하지만 다행히도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이미 여러 길드 마스터들이 그들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었다.
강수호가 이쪽으로 병력을 집중하라더니.
‘충분히 막을 수 있겠어.’
큰 걱정은 덜었다.
일단 시련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 *
“머,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숨쉬기가…… 커헉!”
푸욱!
“아주 더러워졌구나.”
초록색 피를 토해내는 헌터의 배에 구멍을 뚫는 실벤.
독 계열의 능력자답게 주변에는 그녀가 뱉어낸 오물들로 가득했다.
그것에 한 번이라도 닿는다면 몸이 녹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쓰레기들 천지구나. 이런 독 하나를 버티지 못하다니.”
고개를 저으며 점점 더 앞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한참을 오물을 뱉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우웩! 내 오물을 마음껏 마시 거…….”
“네 거는 줘도 안 마신다. 그만 좀 뱉어.”
“……어떤 놈이지?”
모욕적인 발언이 들려왔다.
아주 익숙한 기운과 함께 강수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예림이란 마인이 상대한다고 하였는데, 그 여자는 어디 갔지?”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던데?”
“쯧, 하찮은 것.”
중급 악마 두 마리 이겼다고 잘난 체할 때부터 알아봤다. 고작 이런 인간 남자 하나 못 이기다니.
하지만 강수호와 가까워질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독되지 않는 건가?”
“뭘? 아, 이 독 말이야? 좀 더럽긴 하네.”
바다에 뱉어냈던 독보다 몇 배는 독한 독. 천마가 와도 어지러울 만큼의 독인데…….
‘전혀 효과가 없어?’
강수호에겐 어떠한 효과도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몇 배나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어떻게 한 거지?”
“뭘?”
“내 독을 어떻게 이리도 잘 아는 거냔 말이다!”
“그거 별거 아니야.”
흥분한 실벤이 소리를 질렀다.
이 정도의 독을 버텨낼 방법은 독의 종류를 알아내는 것밖에 없었다.
독의 성분을 알아내어 중화시키는 법.
그렇기에 흥분해대며 소리쳤지만.
“무슨 소리야? 그냥 계속하다 보니까 내성 생기던데?”
“말도 안 되는…….”
“진짜야.”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강수호는 무식한 방법으로 그녀의 독을 뚫어내었다.
고통과 따뜻함의 무한 반복.
‘지옥이었지.’
그 과정에서 정신을 몇 번 잃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렇기에 이런 더러운 오물들은 독 같지도 않다.
“이런 건 독이 아니야, 그냥 더러운 오물이지.”
“오, 오물! 지금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독을 모욕하는 것이냐!”
“우욱. 미안. 입 냄새가 너무 심해서 못 들었다. 뭐라고?”
“…….”
코를 막았다. 독을 입으로 뱉어내다 보니 입 냄새가 상상을 초월한다.
악마 간부는 너무 화가 났는지 입을 쩍 벌리고 있다가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네 몸에 내 독들을 가득 채워주마!!”
“으…… 그건 좀.”
살벌한 말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 더러운 오물로 몸을 가득 채운다니…….
‘우웩.’
상상만 해도 더러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물론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될 것이다.
“네 독 덕분에 강해졌다 해도 너는 악마 간부라 상대가 힘들거든?”
육탄전으로 가는 건 안 된다.
능력이 봉인 당해도 악마 간부. 한예림과 싸울 때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혹시 몰라 받아온 포런 스승님이 직접 만드신 독을 사용할 것이다.
“우욱! 후우…… 완전히 감싼 것 같은데, 구역질이 올라오네.”
테일런 스승님이 직접 제작한 신성력이 잔뜩 담긴 천으로 입과 코를 완전히 꽁꽁 덮어도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 그건 무엇이냐!”
오물을 뱉어내는 실벤조차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
“이게 진짜 독이거든. 네가 뱉어내는 오물이랑은 다르게.”
지금껏 보았던 어떠한 독보다 지독한 독.
뚜껑을 조심스레 열자 아까보다 진하게 풍겨오는 지독한 독 내.
“우욱!”
“이, 이게 무슨…….”
1mL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의 독.
하지만 그 정도 양만 하더라도 주변을 빠르게 장악해 갔다.
“흐읍!!”
-원인을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
…….
…….
실벤의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
말도 안 된다.
모든 차원을 뒤져도 자신이 다뤄본 적 없는 독은 거의 없을 터인데.
‘독에 중독되었다고? 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호잇.”
“……!!”
신성력을 잔뜩 담은 천으로 시험관을 잡고 그녀를 향해 독을 던졌다.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나오면서 그녀의 어깨에 살짝 묻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 정도 독의 양으로는…….’
신경 쓰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무리 독한 독이라도 이 몸은 버텨낼 수 있을 테니까.
그리 생각하고 강수호를 상대하려 했지만.
“어, 어?”
“어우야…….”
“으아아악!!”
어깨부터 시작해서 한 방울이라도 닿은 부분이 전부 녹아내리고 있었다.
처참한 그녀의 모습.
‘말도 안 되는!!’
점점 녹아내리는 자신의 몸을 보고 경악했다.
모든 독을 정복했는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구…….’
생각을 다 끝내지 못한 채 몸이 전부 녹아버렸다.
끔찍한 모습.
강수호는 뼈조차 남지 않은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무언가를 녹였는데도 멀쩡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독.
‘얼마나 강한 독을 준 거지.’
천을 이용하여 조심스레 다시 시험관에 넣었다.
악마 간부 한 마리는 해결되었으니, 나머지를 해결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