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200. 재정비(2)
“그래도 다행이네요.”
“다른 나라는 벌써 반이 마인이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를 들은 강수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다행히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상황이 좋았다.
‘처음부터 마인들을 잡아 놔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초반부터 좀 빡빡하게 잡아 놓은 성과만이 아니었다.
“밤을 새우셨나 보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거의 3~4일 밤을 새웠지요.”
그들의 노력이 드러난 것이다.
아마 마인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처리하러 나갔을 것이다.
몸도 지저분한 거 보면 거의 확실했다.
“아, 그리고 최서현 님께서 말씀하신 곳에 지원 병력을 보내놨습니다.”
“어느 정도 병력입니까?”
“10개의 대형 길드 전력 30%가 갔습니다.”
10개의 대형 길드 전력의 30%가 간 거라면 며칠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중요한 곳이라고 말하여 튼튼하게 넣어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듣기 위해서 굳이 늦은 밤에 협회에 들른 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
“혹시 유물을 모으실 수 있겠습니까?”
“……유물 말입니까?”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옛 강자들의 힘. 그것에 관심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강수호 헌터께서 가지고 계신 것까지 해서 100개가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희가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흠…….”
하지만 아쉽게도 협회는 유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의 길드 몇 곳에서 가지고 있을 뿐.
“전부 모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워낙 중요한 힘이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강수호를 잘 알던 길드라도 반발할 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에는 상황이 바뀔 것 같군요.”
물론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이 유물들을 협회에게 바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빠르면 며칠 뒤에 악마가 움직일 겁니다.”
“……악마.”
“예, 그리고 그것들이 들어올 때면 알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거다.
그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마 시련의 던전 앞에서도 불만을 뱉어내고 있을 테니까.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할 이야기는 모두 끝났다.
들을 만한 정보도 모두 들었고. 큰일을 치르기 전에 하루 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겠나.
‘머리가 깨질 것 같네.’
빙의 후유증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협회 회장의 방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 * *
[강수호]
레벨 : ???
체력 – ??? 민첩 – ??? 힘 – ??? 마나 – ??? 감각 – ???
재능 : 차원 이동 (SSS급)
힘 : [샬런]
“변함이 없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들판에 털썩 앉았다.
하루 만에 스승님 두 명의 힘을 배웠지만 상태창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후우…….”
숨을 내뱉으며 들판에 완전히 누웠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땀을 식혀 주었다.
눈을 감고 있자 잠이 와 숙면을 취하려던 찰나.
“급한가 보구나.”
“아, 촌장님.”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요즘 들어 촌장이 정상적인 복장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익숙해졌다 해도 여전히 그때 복장은 무서웠으니까.
“샬런이 죽었다고…….”
“예, 시련을 클리어하니까 건틀릿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군.”
촌장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비치지 않았다. 아마 슬픔을 나타낸 것일 터.
“진짜 죽었군…….”
허공을 쳐다봤다.
엘프들은 죽음을 바라도 죽지 않은 불로불사 같은 존재들.
하지만 정작 죽어 없으니 뭔가 허전하고 눈물이 나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죽음이란 감정.
“좋은 곳에 갔을 거다.”
몇만 년을 바라 왔던 소원을 드디어 이뤄냈다. 슬픔보다는 기쁨이란 감정이 느껴져야 하지 않겠나.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래, 가거라. 내일도 올 건가?”
“예, 빨리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유물을 모으는 대로 시련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최대한 빨리 클리어 내어 천마의 약점을 찾아내야 한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작별 인사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언제나 한정적이니까.
* * *
마을을 나오자마자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
전화를 받자마자 협회 회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마가 왔습니다.
“……빠르군요.”
강수호는 푹 잔 듯 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인 협회는 마인으로만은 상대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이제부터 악마까지 쳐들어올 것이다.
물론 그 수는 소수일 터.
“어디로 들어오고 있습니까?”
-부산 항구 쪽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미 레이더에 걸렸다고 하고요.
“부산 항구…….”
움직일 때가 되었다. 이번 일을 처리하고 나서 다시 시련으로 갈 생각이다.
“가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 * *
한국 헌터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헌터가 지원을 왔다.
새파란 빛이 온몸을 감싸자 얼마 안 가서 비린내가 느껴졌다.
‘바다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바다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전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펜스와 여러 헌터로 가득 차 있는 주변.
“오랜만이네, 강수호 헌터.”
“저도 반갑습니다. 이석현 님.”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쯤 들려오는 목소리.
얼굴을 알아 보고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석현 헌터였으니까.
“참 오랜만이네요. 첫 던전에 들어갈 때 데려다주셨잖아요.”
“허허, 그렇지.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런데…….”
이석현 헌터의 눈이 강수호를 훑어볼수록 커지고 있었다. 예상보다 더욱 강해졌으니까.
“정말 강해졌구나. 예상보다 몇 배는 더.”
“스승님들 덕분이죠.”
무엇에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몸.
몸 안에 도는 거대하고 충만한 마나 양.
‘대단해.’
그저 대단했다.
이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데도 기세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힘을 사용할수록 기세가 날카롭고 난폭적으로 변해야 했다. 모든 기세가 나타나야 했고.
하지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기세를 잘 숨겼다는 거겠지.’
컨트롤 능력이 말도 안 된다는 것.
또 하나 신기한 건…….
‘유물의 힘이 몸에서 느껴지는구나. 소문과는 더 강하게.’
유물의 힘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자 익숙한 남자가 강수호에게 인사했다.
“강수호!”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카데미에서 1위라는 타이틀을 강수호에게 뺏긴 남자.
“음? 조시현?”
조시현이었다.
길드 헌터 전력 대부분이 온다고 하더니, 조시현까지 온 듯하다.
그러고 보니 양유혁이 보이지 않는다.
‘그놈은 또 어디로 간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은 조시현을 반갑게 맞이하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니까.
* * *
“아직도 말이 없는 것이냐.”
“…….”
“계속 말이 없구나. 이번에는 쉽게 갈 수 없을 것이야.”
“…….”
양유혁 앞에 선 천마.
마기로 만든 결계를 통해 그의 행동을 막았다. ‘네’라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여기서 떠날 수 없게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너는 나를 이어야만 한다.”
“……싫습니다.”
“왜 싫다는 것이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모두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고, 모든 걸 움켜쥘 수 있는…….”
“싫다고!”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마기로 만들어 낸 채찍처럼 날렵하게 생긴 무기로 천마를 향해 휘둘렀다.
휘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채찍. S급 헌터조차 쉽게 막을 수 없는 힘이었지만…….
“약하다.”
“으아아아아!”
천마는 별것 아니라는 듯 채찍을 맨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양유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껏 강해지면서 얻은 모든 스킬로 채찍을 휘둘렀다.
한참이 지난 뒤, 숨이 찬 건 오직 양유혁뿐이었다.
“빌어먹을.”
“너는 안 된다. 그저 받아들여라.”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든지 천마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강수호라면 모를까.
“어쩔 수 없구나.”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자신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어쩔 수 없이 손을 움직이기로 했다.
“이런 미친…….”
마기를 주변에 흩뿌렸다.
양유혁조차 숨이 턱턱 막히는 짙은 마기가 빠르게 양유혁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헉!”
“아들을 이렇게 만드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겠구나.”
서서히 정신을 잃어간다.
숨통이 점점 목을 조여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됐군.”
아무리 천마의 아들이라지만, 천마를 이길 수는 없다.
천마는 양유혁을 안고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파란빛이 물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곳에 도착했다.
* * *
“왔느냐.”
“예, 왔습니다.”
“오호, 저 아이가 네 아들이냐?”
마왕이 있는 곳.
이전과 같이 마왕 주변에는 상급 악마가 줄 서 있었다.
천마는 마왕 앞에 양유혁을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왕이 양유혁의 몸을 살폈다.
“자네처럼 아들 몸 상태가 아주 좋구나.”
“감사합니다.”
“천마가 될 재목이 충분해.”
마왕이 만족스러운 눈으로 양유혁을 쳐다봤다.
다음 천마가 되기에 완벽한 몸.
‘행동대장은 필요 없지만, 굳이 있어도 나쁠 거 없지.’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필요 하진 않았다. 이 차원만 차지하면 악마와 마인으로 가득할 테니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행동대장을 만들기로 했다.
‘아주 좋은 말이 되겠어.’
대놓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드디어 이 짓도 끝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 짓도 얼마나 했는지 셀 수조차 없구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꿈 하나를 이루기 위해 달려왔다.
그 길은 피, 땀, 시간으로 질척거려 더 이상 되돌아 가지 못 하게 되었지만, 후회 따윈 없었다.
“이제 시련을 차지하는 일만 남았구나.”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전력을 그쪽으로 보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네 말이니 그래야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시련조차 조만간 끝이 날 거다.
“저는 시련 때문에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거라.”
마왕의 말에 양유혁을 남기고 사라지는 천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너는 꼭 살 거라.’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두 물러가거라.”
“예, 마왕님.”
마왕은 양유혁만 남긴 채 악마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아마 정신을 차리면 깜짝 놀라게 될 거다.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체감하게 될 테니까.
“그때의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겠구나.”
마왕이 술을 입 안에 들이부으며 옛 천마의 모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