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199. 재정비(1)
-시련이 종료되었습니다.
허공에 뜬 시스템 메시지.
시련이 종료되면서 시련의 던전으로 나왔다.
“…….”
멍한 표정을 지은 채로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천마에게 뚫린 부분이 멀쩡한지, 상태창 또한 멀쩡한지 살폈다.
한참 몸을 뒤져 본 결과 뭔가 많은 것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수호]
레벨 : ???
체력 – ??? 민첩 – ??? 힘 – ??? 마나 – ??? 감각 – ???
재능 : 차원 이동 (SSS급)
힘 : [샬런]
“상태창이 왜 이래?”
스탯, 스킬이 전부 사라졌다.
스탯은 ‘???’로 변해 있었고, 스킬이 있어야 할 부분에 ‘힘’이란 것이 적혀 있었다.
저 힘이 의미하는 바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스승님?”
샬런 스승님의 힘이 완전히 강수호의 몸에 귀속되었다는 걸.
정확한 확인을 위해 당장 던전을 벗어나기로 했다.
“어? 수호야! 잠시 기다려!”
“수호 님!”
원래라면 인사라도 하고 가겠지만, 시간이 없다.
다급히 던전 출구를 향해 나아가 몸을 던지자…….
“어, 어?”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원래라면 있어야 할 조금은 무성한 풀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산이 있어야 할 곳에 웬 드넓은 바다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퐁당!
뭘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바다에 퐁당 빠져 버렸다.
* * *
“어으……. 추워.”
“그러니까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태평양 정중앙으로 옮겨서 던전에서 내려가면 바로 바다야.”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 그것보다, 다들 괜찮아?”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봤던 풍경과는 다르게 잔뜩 쳐진 나무 바리게이트. 그리고 잔뜩 날이 선 채로 경계를 서는 엘프들.
저 모습에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찾아냈어?”
“어떻게 찾아냈는지 모르겠는데, 찾아냈더라고.”
“몇 번?”
“총 두 번. 깊숙이 들어와서 그런지 이제는 좀 잠잠해.”
시련에 있을 동안 이곳에도 꽤나 큰일이 여러 번 일어났다.
마인 간부 두 명에서 침입한 거대한 두 사건.
아마 세 번째 들이닥칠 때는 간부 전부가 올 가능성이 있었다.
두 번은 잘 막았다지만, 세 번째도 잘 막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한 시련 던전.
엘프들을 도와야 하겠지만,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
“미안, 지금 일만 빨리 해결하고 올게.”
“걱정하지 마. 협회랑 길드들한테도 요청해 놨거든.”
“벌써?”
다행히 지원 요청이 있었다.
큰 걱정은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금방 갔다 올게.”
“괜찮아요, 천천히 갔다 오세요. 여기는 저희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나나호 님도 고생해 주세요!”
강수호는 작별 인사를 건네고 곧장 던전을 빠져나왔다.
던전을 나오자 전과 같은 끝도 없는 바다가 이어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젖을 일은 없을 거다.
“텔레포트.”
스킬 칸은 없어졌지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건 확실했다.
조금 긴장한 채로 샬런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 했다.
* * *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역에 와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협회에 마나 등록도 해 놓은 상태라 제재가 들어오지 않을 거다.
오히려 이곳으로 달려오며 반길 것이다. 드디어 왔냐면서.
일단 그들보다 중요한 것이 샬런 스승님이다.
“어디 계신 거지? 어디……. 도대체 어디…….”
마을을 한참이나 뒤적거렸다. 샬런 스승님 한 명을 찾기 위해서.
감각을 잔뜩 넓혀 샬런 스승님이 있을 만한 곳을 찾는데.
“후루룹! 허~ 뜨거워!”
“…….”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뭔가 엄청 뜨거운 걸 먹는 듯한 목소리.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샬런을 찾을 수 있었다.
“스승님!”
“후루루……. 음? 벌써 왔느냐?”
샬런은 가마솥 통째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발견하자마자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변화가 시작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금 라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음? 이제 막 먹고 있는데, 라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
곧바로 샬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 지금 뭐 하는 건가!”
“잠시만요!”
웃통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모두 벗겼을 때.
“차, 찾았다.”
“뭘 찾았다는 건가?”
찾을 수 있었다. 그때처럼 그의 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이거 안 보이세요?”
“아, 아하. 이거 말이냐? 천천히 진행되고 있더구나.”
“스승님!”
태연하게 말하는 저 말투에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이렇게 화내 봐야 변하는 건 없겠지만, 뭔가는 해 봐야지 않겠나.
“라면 좀 그만 먹고 어서 일어나세요!”
“왜?”
“그야 당연히 방법이라도 찾으실 수 있…….”
“그냥 라면이나 먹을래.”
“…….”
하지만 샬런은 그런 발버둥 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처음과 다르게 조용히 가는 걸 원했다. 어차피 방법이 없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라면이나 먹자. 10개 끓였으니까 너 먹을 것도 있을 거야.”
“…….”
샬런은 그저 라면이나 먹길 원했다. 마침 방금 다 끓였으니 먹기만 하면 된다.
“후우…….”
젓가락질 한 번으로 한 봉지의 양을 집은 샬런.
강수호는 그대로 입 안에 들이밀어 넣는 그를 보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어차피 사라질 거면 즐기는 편이 낫지 않냐는 그 말에 강수호도 근처 자리에 앉았다.
“저도 젓가락 주세요.”
몇 주 동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다. 빙의해서 먹었지만, 이곳에서의 배는 채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허겁지겁 푸드파이터 대회라도 나온 것처럼 면을 들이켠다.
고작 1분 만에 10인분이 넘어가는 라면이 사라진다.
“더?”
“당연하죠.”
샬런의 물음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20인분이 넘어가는 라면 사리와 스프를 몽땅 때려 부었고, 면을 넣자마자 마법을 사용하여 빠르게 익혔다.
“먹자.”
10초도 안 되어서 익힌 면.
다시 그대로 젓가락을 들고 면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20인분을 다시 3분 만에 먹어 치웠을 때는.
“…….”
“밥도 먹을래? 아니면 라죽 해서 먹을래?”
샬런의 다리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샬런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식은 밥을 들고 와 라면 국물에 말았다.
“크으, 죽인다. 그치?”
“……그러네요. 라죽 해 먹어요. 달걀도 같이 넣어서.”
“오케이!”
국물 반을 버리고 그대로 밥과 달걀을 넣었다.
만드는 사이, 허리까지 사라진 몸.
신경 쓰지 않고 잘 만들어진 라죽을 한 숟가락 떴다.
“허허! 뜨거워.”
“오호, 비주얼은 좀 그래도 맛이 좋구나.”
5공기를 넣었던 라죽마저도 금방 해치워 버렸다.
샬런도 배가 꽉 찰 정도로 먹었다.
“피곤하구나.”
“…….”
이제는 머리만 남게 되었다.
강수호는 샬런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무슨 수를 사용하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수호야.”
“예, 스승님.”
샬런이 진지한 얼굴로 강수호의 이름을 불렀다.
얼굴만 남은 그가 말했다.
“꼭 성공해라.”
“편히 가세요.”
“……그래.”
실패할 일은 없을 거다.
꼭 저 괴물들을 죽이고 스승님들을 구할 것이다.
이제는 입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샬런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배부르게 죽었으니, 귀신으로 만나면 때깔도 곱겠구…….”
“…….”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한 채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사라진 샬런의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볼 뿐이었다.
* * *
“후우……. 며칠 밤을 새우는 건지……. 머리가 어지럽군.”
낮과 밤이 반복된 지 벌써 세 번째.
마인이 늘어날수록 밤을 새워야 할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용욱이 숙면을 취할수록 한국에 마인이 늘어날 것이므로.
“초재생이 있다지만, 하루라도 자보고 싶군.”
“허허, 자네.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것 아닌가?”
“엄살이라뇨. 이석현 님. 3일 밤을 새워서 헛것이 보일 지경입니다.”
“나는 4일 밤을 새웠네만?”
이석현도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잠을 자도 5분에 불과했다. 중요한 연락이 오면 바로 나갈 수 있게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까.
“그래도 5분은 주무시면서.”
“예끼, 이놈아. 안 그래도 허리 아파 죽겠는데,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하지 않겠는가?”
어쩔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그라도 이제는 S급 헌터, 할아버지에 불과하다는 뜻.
조금이라도 자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하암~ 그것보다 오늘은 좀 잠잠한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야. 정말 다행인 일이지.”
그래도 오늘은 좀 쉽게 넘어가는 눈치였다. 아직 한 번밖에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까.
연락해 오는 이들도 강수호의 보디가드들.
“저 이제 더는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만.”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누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시체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파에 눕자 눈이 저절로 감긴다.
‘오늘 비서가 밤을 새운다고 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급한 일이 있으면 비서가 그들을 깨울 터.
점점 잠이 들기 시작할 때였다.
똑똑.
“회장님.”
“어, 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급한 일인가 싶어 문을 열었지만, 다행히 비서는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후우……. 무슨 일이지?”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이 늦은 시간에 손님이라니.
몸이 너무 피곤하다.
‘중요한 손님이라도 내일 만나야지. 몸이 남아 돌지가 않을 것 같군.’
오늘은 무리다.
그런 생각으로 비서에게 말하려 하자 기다리고 있던 답변이 들려왔다.
“중요한 손님이더라도 오늘만 돌려 보내줘. 3일 밤을 새워서…….”
“강수호 헌터입니다.”
“……!!”
강수호 헌터라는 말에 두 눈이 커졌다.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강수호 헌터.
“회장님께서 힘들어하시니, 내일 뵙는다고 말씀…….”
“안 돼!”
“예?”
“지금 당장 오시라고 해 줘!”
“아, 알겠습니다!”
그간 소식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받은 소식이라고는 최서현과 나나호의 소식이 전부.
그가 직접 왔으니, 큰 문제는 해결될 터다.
이석현은 소파에서 일어나 강수호 헌터가 오길 기다렸다.
다리를 덜덜 떨며 몇 분 정도 기다리자 문이 열린다.
끼이익.
“강수호 헌……!!”
저번처럼 반갑게 웃으며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썩은 시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
입을 꾹 다물고 소파에 앉는 그를 쳐다봤다.
겉으로 제 기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 때문에 이런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리 슬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후우, 지금 한국 상황은 어떱니까?”
“……아, 예. 강수호 헌터분이 안 계시는 동안 마인들이…….”
지금은 일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