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95화 (195/225)

제195화

195. 천마(1)

‘귀찮게 됐군.’

수정 구슬을 부순 천마가 인상을 구겼다.

이왕이면 귀찮은 놈들은 지하 벙커에서 함께 죽길 원했는데.

‘너무 큰 바람이었나.’

배에 덧난 상처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도 곧 있으면 끝난다.

매번 하던 토벌은 실패하고 악마, 마수, 마인들이 전부 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만 죽이면 된다.’

마지막만 남았다.

몸을 서서히 일으켜 창문 밖을 쳐다봤다.

눈보라가 불어닥치던 도시는 처음과 다르게 햇빛이 쨍쨍했다.

“저기 있군.”

여러 집 사이의 길을 올라오는 두 남녀.

“밥부터 먹자.”

“바비큐 어때? 샬런,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거잖아.”

“바비큐!”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별거 아니라는 듯 점심 이야기를 한다.

그답지 않게 멍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참이나 들었다.

‘바비큐……. 부럽군.’

평범한 생활.

천마라는 작자가 평생을 원하던 것이었다.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왔는데, 완전히 썩었군.’

하지만 지금 천마의 모습은 완전히 썩어 버렸다.

겉만 보면 평범한 사람일지 모르나, 속은 완전히 썩어 구더기로 가득했다. 손에는 검붉은 피와 살점이 질척거렸고, 그의 주변에는 사람 뼈와 피로 가득했다.

‘너무 늦어 버린 건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것일 터.

가장 위에 위치할 것 같은 그가 가장 앞에 있는 행복을 잡지 못하다니.

그것만으로 그는 가장 불행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괜한 걸 봤군.”

감정이 벅차오르는 걸 느끼자 커튼을 쳐 버렸다.

풍경을 바꾸고 다시 커튼을 걷었다.

“예쁘군.”

하늘에 수 놓인 오로라.

저 오로라는 살인마가 봐도, 평범한 사람이 봐도 모두 똑같이 아름다웠다.

그건 천마도 마찬가지.

가지각색의 오로라를 바라보다가 다시 커튼을 쳤다.

똑똑.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할 때다.

끼이익.

허락 없이 문이 문이 열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모든 준비가 끝마쳤습니다.”

“…….”

샬런과 일렌이 봤던 검은 뿔 두 개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천마는 멍한 표정으로 뒤를 쳐다봤다.

“……다 준비되었군.”

“예, 이제 마지막만 남았습니다.”

매번 하던 짓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천천히 악마 간부를 지나치며 문으로 향했다.

스윽.

천마가 지나가니, 자동문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비켜주었다.

많은 이들을 지나쳐 가장 앞에 선 천마.

“드디어 끝이군.”

그 앞에서 입을 열었다.

드디어 이 고생도 끝이라고.

“오늘의 고생이 끝난다면 한동안 편안히 즐길 수 있을 거다.”

몇백 년 동안 소소한 공격만 하길 반복했던 이곳.

하지만 이제 진짜가 시작될 예정이다.

터벅. 터벅.

다시 조용히 울리는 천마의 발걸음.

또 다른 문 앞에 서며 말했다.

“마왕을 위하여.”

“마왕님을 위하여!!”

“우아아아아!!”

부하들의 함성과 함께.

“제국으로 향한다.”

최종 목적지, 제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향해 빠르게 진격하는 부하들.

천마는 모두 나가는 걸 보고는 문을 닫았다.

“가야겠군.”

그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으니까.

* * *

“우어……. 배부르다.”

“진짜 잘 먹었다. 그렇지?”

“지하 벙커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어.”

따뜻한 방 안에서 배를 두드리며 누운 그들.

배 터질 정도로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간식은 무리다.

“그것보다 계속 날씨가 맑네.”

창밖을 보던 일렌이 신기한 듯 말했다.

이곳에 무려 일주일 동안 눈보라와 마나 폭풍이 머물렀다.

하루만 머물러 있어도 며칠간 눈이 내리는데, 신기하게 눈보라와 마나 폭풍이 사그라들자마자 밖이 쨍쨍해졌다.

“다행이지. 그런데 이제 옮겨야 하지 않을까?”

강수호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하 벙커에서 나온 지 이제 하루밖에 안 지났다지만, 바쁘다.

‘제국에서 직접 꾸린 토벌단이 모두 죽었다 그랬으니까.’

제국에서 꾸린 토벌단이 모두 죽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곳에 1급 용병 세 명도 함께 죽은 거로 안다.

이제 마족에게 위협이 될 만한 건 제국과 일렌과 샬런밖에 없었다.

‘도망치든가, 방비를 갖추든가 해야겠지.’

여기서 느긋하게 따뜻한 침대에 누워서 배를 두드릴 때가 아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 오르며 시간이 멈췄다.

-도망.

-결투.

“…….”

두 개의 메시지밖에 떠 오르지 않았다.

처음 이 메시지를 봤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의 생각 끝에 금방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망 변수.”

이때까지 골라온 사망 변수.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떠 오르지 않았지만, 확실했다.

‘도망과 결투…….’

세상이 멈춘 상태에서 시스템 메시지를 살폈다.

도망과 결투라니.

딱 봐도 상상이 된다.

‘천마인가.’

천마와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라는 뜻이겠지.

‘당연히 정해져 있지.’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이미 정해진 답변.

손가락으로 ‘도망’이라고 적힌 시스템 메시지를 클릭했다.

원래라면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야 하지만.

-선택지를 고를 수 없습니다.

“……?!”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졌다.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단다.

다시 클릭해 봤지만, 똑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올랐다.

‘뭐야…….’

이해할 수 없었다.

선택지를 골랐는데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도망간다니까?”

-선택지를 고를 수 없습니다.

-선택지를 고를 수 없습니다.

-선택지를 고를 수 없습니다.

…….

…….

…….

될 때까지 눌러 보기로 했다.

10분이 넘게 ‘도망’이란 선택지를 누르길 반복했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선택지를 고를 수 없습니다.

“…….”

이 선택지는 고를 수 없었다.

몇 분, 몇십 분, 몇 시간을 넘어가도 똑같을 거다.

“목적이 사는 거 아니었어?”

분명히 이곳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거로 안다. 그런데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다니.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다시 떠 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결투.

“사라졌어.”

이번엔 아예 도망이란 선택지가 사라지고 오직 ‘결투’라는 선택지만이 남아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반복했다.

시스템이 일부러 자신을 죽이기 위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한다면 시스템에게 피해가 갈 것이다.

시스템이 이런 선택지를 준 건 충분한 이유가 있을 터.

하지만 이유가 있더라도 당사자는 바로 고를 수는 없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해 봤지만, 역시 고를 수 없었다.

멈춘 세상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렇게나 누워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스템이 이런 선택지를 주었을까?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들려오는 목소리.

-강수호 님.

“……음? 누구야?”

세상 전부가 멈춰 있었다. 대마법사, 뛰어난 검사라도 여기서 말을 거는 건 불가능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없어?’

뭔 이런 상황이 있나 싶었다.

귀신이라도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한참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자 소리쳤다.

“누구야?!”

누구냐고.

샬런에 빙의된 강수호의 이름을 묻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접니다.

“……?”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 어떤 사람이 강수호를 향해 오고 있었다.

“누구야?”

-그 질문은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수호 님.

그런 질문은 불필요하다 대답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게 무슨…….”

얼굴이 모자이크된 것처럼 뿌옇다.

여자로 보이는 이가 다가오더니 강수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 행동이 뭔가 익숙하면서 소름이 끼쳤다.

‘이 여자…….’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생각난 듯 말했다.

“시스템?”

-맞습니다. 금방 알 줄 아셨습니다.

“하…….”

태연한 그 반응에 헛웃음이 터졌다.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시스템 관리자가 아닌 시스템이 직접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여기서 살아야 현실에서도 살 수 있는데, 맞아?”

-강수호 님이 이해하신 것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선택이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시스템은 강수호를 쳐다보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고민한 끝에 시스템이 답해 주었다.

-이곳은 이미 진행되었던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했다. 이곳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정은 선택 때문에 변할 수 있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당연히 이곳의 죽음은 현실과 직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시선이 조용히 샬런의 허리춤에 있던 건틀릿으로 향했다.

“이게 왜?”

샬런이 싸울 때 애용하던 건틀릿.

-강수호 님이 빙의한 몸은 다르죠.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죽는다고?”

-예, 하지만 제가 이들의 과거를 보여주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시스템이 다시 강수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마를 죽이는 겁니다.

“천마를 죽이라고?”

-예, 이곳의 천마가 아닌, 현실 세계의 천마를요.

천마를 죽이는 것. 그 뜻을 늦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싸우라는 거야?”

-예,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지금 당장 해결하는 게 저는 옳다고 봅니다.

“…….”

스승님 100명 모두를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같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마기를 지닌 자에게 죽었다는 걸.

-그들의 죽음을 보시고 천마의 약점을 알아내 주십시오. 아무리 그들의 힘을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강해질 수는 없을 겁니다.

“…….”

시스템이 스승님의 과거를 보여주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을 소모하는 대신에 천마의 약점을 알아내는 것. 시스템이 원하는 건 그거였다.

“스승님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질문했다. 스승님이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시스템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영원히 소멸됩니다.

“…….”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만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진 않았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준 특별한 존재들이 죽는다니.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있습니다.

물론 그 방법밖에 있는 건 아니었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강수호 님이 천마보다 강해지는 겁니다.

“에라이…….”

욕이 나오려던 걸 참았다.

말이 안 되는 소리.

지금부터 스승님의 힘을 받는다 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차라리 스승님이 직접 싸우는 게 나을 정도…….

“어?”

생각하던 도중 떠오른 방법 하나.

“스승님이 싸우면 안 돼? 시스템이 건 제안을 풀면 되잖아?”

간단하다. 바로 앞에 시스템이 있으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

-마왕이란 존재가 그걸 막고 있고, 그렇게 되면 시스템 자체도 위험해집니다.

되는 일이 없다.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알겠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바닥에서 일어나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쳐다봤다.

-결투.

“후우…….”

심호흡과 함께.

툭.

‘결투’라는 버튼을 눌렀다.

멈추었던 주변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샬런을 찾고 있을 것 같은 일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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