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194. 침입(2)
쩌적!
얼음 방벽을 나나호가 직접 깨부수고 공기를 얼려 공격했다.
바닥에서 날카롭게 튀어나오는 얼음 가시. 공기를 얼린 만큼 얼음 가시가 튀어나오는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빨랐다.
하지만 속도와 상관없이 새로이 등장한 시체는 썩은 손으로 얼음송곳을 막아내었다.
“키에에에에.”
썩은 시체가 씨익 웃는 모습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놈들,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말을 제대로 못 할 뿐이지, 명령이 아닌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콰직!
얼음송곳을 부서트리고 나나호에게 달려드는 시체.
머리를 향해 손을 내뻗는 걸 확인하고는 피하려 했지만, 늦었다.
‘잡힌다!’
급하게 공격하긴 했지만, 손으로 막을 정도의 공격은 아니다.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아 피해라도 감소하기 위해 바람을 이용하려 하자.
콰직!!
“크, 크, 헉!!”
최서현의 주먹이 정확히 시체의 머리통에 꽂아 버렸다.
괴상망측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시체.
“더러운 것들이 까불고 있어.”
썩은 살점과 피가 묻은 주먹을 털어내었다.
태연하게 서 있었지만, 주먹에 피해가 상당하다.
‘분명히 썩었는데, 왜 이리 단단한 거야?’
주먹이 아리다.
이 경지까지 올라오면서 난생처음 느껴보는 주먹의 고통.
“조심하세요!”
주먹을 털어내고 있을 때쯤 들려오는 나나호의 목소리.
어느새 나타난 다른 시체의 손에서 검은 마나가 튀어나왔다.
저게 뭔진 모르겠으나, 위험하다는 건 확실했다.
휘이잉!
쾅!!
다행히 나나호가 바람을 이용하여 공격을 흘려냈다.
“빈, 틈, 발, 견.”
그와 동시에 빈틈을 타고 들어오는 남은 시체 한 명.
육체를 사용하고, 마법 비슷한 걸 사용한 이와 달리 이 시체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근접전과 민첩에 유리한 단검.
스걱!
스걱!
“……!!”
녹슨 단검으로 빈틈을 찾아 베어내기 시작했다.
단검에 베여 피가 지저분하게 튀면서 풀이 무성한 숲을 붉은색으로 칠해 놓았다.
공격이 멈추었을 때는 온몸이 짜릿했다.
-마비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마비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마비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
…….
…….
그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단검에 바른 것이 마비 독이었나 보다.
그것도 최서현에게 영향이 있을 만큼 지독한 독.
“괜찮으세요?”
“후우……. 예, 독이 좀 독하긴 한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나나호가 조금 힘든 기색이 보인다.
자연으로 독을 어느 정도 제거했다지만, 한계가 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질질 끌 수 없는 법이다.
지금도 시체들은 이곳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5분 안에는 이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빨리 끝내죠. 그래야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야죠. 후우…….”
심호흡하며 억지로 허리를 세우는 나나호.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이사벨라가 이곳에 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흐읍!”
먼저 앞으로 나선 최서현이 숨을 들이켰다.
점점 몸 전체를 거대하게 만들더니, 최소 4m 정도의 거인으로 변했다.
덩치 또한 사람이라 칭하기 힘들 정도의 크기.
‘와…….’
옆에 있던 나나호조차 감탄할 모습이었다.
크기뿐만 아니라, 기세 또한 강했다.
“보조 좀 부탁드릴게요.”
“예!”
나나호도 전력을 다할 준비를 했다.
몸 전체에 마나를 불어 넣는다. 쇠에 불을 달구듯 몸이 뜨겁게 변했다.
‘며칠 앓아누워야겠네요.’
이 상태로 변했다는 건 나나호도 꽤나 긴장했다는 뜻이다.
물, 얼음, 불같은 평범한 자연 능력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어둠…….”
나나호가 낮게 읊조리자 주변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힘을 개방한 상태에서는 어둠과 빛을 사용할 수 있다.
잘못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어느 정도 익숙한 상태에서는 그녀에게 강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이, 게, 뭐, 지?”
“모, 른, 다. 쓸, 데, 없, 는, 잔, 재, 주, 를, 부, 리, 는, 군.”
시체들의 인상이 구겨졌다.
어둠으로 숲 전체를 가려 육안으론 그녀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각을 포기하고 감각으로 싸우면 된다.
“최, 대, 한, 빨, 리, 찾, 는…….”
푸욱!!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무언가 시체 하나를 찔렀다.
최서현의 주먹을 맨손으로 받아치던 시체.
그 시체의 몸에 송곳이 박히는 개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푸욱!
푸욱!
푸욱!
“이, 게, 무, 슨…….”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었다.
어떤 감각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서 공격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공격을 하는지도……. 오리무중이다.
‘됐다.’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나나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평소에는 사용하기 힘든 어둠인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다.
감각을 완전히 무지하게 만들 수 있을뿐더러, 주변에 가득한 어둠은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거의 다 죽였다.’
마나를 끌어 올려 어둠 송곳의 개수를 늘렸다.
순식간에 박히는 어둠의 송곳.
푸욱!
푸욱!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몇 분 정도는 이곳에 묶어 둘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시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저, 여, 자, 다.”
마법 비스름한 걸 사용하는 시체가 집중하는 나나호를 가리켰다.
단검을 가진 시체가 빠르게 달려가 나나호의 목을 취하기 전에 최서현이 달려왔다.
콰직!!
“커, 헉!”
시체의 몸이 강한 건 아니었는지 최서현의 주먹을 맞자마자 멀리 날아간다.
‘내, 속, 도, 를, 어, 떻, 게?’
놀란 모습을 보인다.
주변이 어둠으로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이 정도 환경은 숱하게 겪어봤다.
공격을 한 번 봤기에 충분히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속도부터 파괴력까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위, 험, 하, 다.’
단검을 든 시체가 인상을 구겼다.
상당히 위험한 존재들, 여기서 죽여야지 주인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다.
“간, 다.”
최서현의 공격으로 인해 부서진 몸을 재생한다. 그와 동시에 자세를 낮춰 곧장 최서현에게로 향했다.
“나, 도, 도, 운, 다.”
마법사도 마찬가지.
2대1인 상황에서 지는 건 말도 안 된다.
단검을 든 시체에게 버프를 건 시체가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려 하자.
“그건 안 되죠.”
“젠, 장.”
나나호가 어둠의 송곳을 흩뿌렸다.
캐스팅이 실패하면서 몸에 타격이 왔다.
‘귀, 찮, 게.’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체는 버프를 두르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4m 거인의 덩치를 가진 이가 시체의 속도를 읽는 건 말이 안 되었지만…….
‘읽, 었, 어?’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리려는 패턴을 읽었다.
최서현은 거대한 몸집으로도 시체가 휘두르는 단검을 모두 가볍게 피해 버렸다.
‘괴, 물.’
버프를 두른 이 시체의 공격들을 피해 내다니.
놀라는 것과 동시에 기대가 되었다.
‘제, 대, 로, 싸, 워, 볼, 수, 있, 겠, 다.’
주인에게서 받은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입꼬리를 올리는 것과 동시에 힘을 개방하려 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최서현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쿵!!
“……!!”
최서현은 애초에 그를 상대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녀들의 임무는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최서현은 발을 강하게 굴려 다가오던 시체들을 죽였다.
나나호의 어둠으로 대부분의 감각을 지울 수 있었다.
‘빌, 어, 먹, 을.’
그 상태로 5분이 더 지나자.
“오십시오!”
장로로 보이는 이가 그녀들을 다급히 불렀다. 엘프들은 이사벨라가 설치한 결계를 해체하고 이동시킬 준비를 모두 마쳤다.
“다음에 또 보자, 시체 친구들.”
날카로운 눈빛을 빛낸 최서현이 시체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며칠 뒤면 또 만날 테니까.
“안, 돼!!”
단검을 들고 장로에게 달려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던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뒤.
‘아…….’
허무하게 사라진 던전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허헉!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그러게요. 맨날 연습한다고 사용했는데, 실전에서 사용하니까 온몸이 쑤시네요.”
들판에 드러누워서 그대로 퍼졌다.
강한 시체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몸이 완전 녹초 상태다. 오랜만에 완전히 전력을 뽑아내기도 했고.
“오늘은 일하지 말고 완전 쉬어야겠네요.”
“어둠의 리스크가 크긴 하네요. 벌써 잠이 오네…….”
들판에 눕자 어느새 잠이 든 나나호.
눈앞에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니 확실히 잠이 들었다.
‘어둠은 사용하면 바로 잠이 드는 건가.’
이런 리스크는 또 처음 봤다.
어느 정도 들판에 누워 있다가 힘차게 일어났다.
몸은 크게 쓰지 않아 리스크가 크지 않다.
밥이라도 다시 먹기 위해 식탁에 앉고 다시 컵라면을 꺼내 먹으려 하자.
툭.
“음?”
식탁 바로 앞에서 누군가 사과를 던졌다.
상태창을 확인해 봤지만, 평범한 사과다.
뭔가 싶어 던진 쪽을 보니.
“먹어라.”
“……?”
여태까지 그녀를 무시하던 엘프가 사과를 던져주었다.
그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지는 엘프.
사과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능력치 상승이나, 스탯 상승 같은 효과는 없었지만…….
‘된 건가.’
엘프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사과는 어떤 과일보다 달콤하고 탐스러웠다.
* * *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천마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두 남녀.
화 대신 천마는 그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다,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용서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는 안 된다.
모든 일에는 거대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까.
콰직!
“크윽!”
“크읍…….”
잡고 있던 어깨가 괴상하게 구겨졌다.
작은 신음을 내자 천마가 손을 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감사합니다.”
인상 한 번 구겨지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죽이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차피 아직 2주간의 시간이 더 남아 있다.
‘급할 필요 없지.’
그들을 죽여봤자 전력만 잃을 뿐이니, 몇 번의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이만 돌아가라.”
“예.”
그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다시 시련의 던전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터.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예림이 들어왔다.
“천마님.”
“무슨 일이지?”
“말씀하신 것들을 지금 이행 중입니다.”
“중국은?”
천마가 이행하라 했던 것들을 이행 중이란 말에 곧바로 물었다.
“한국 빼고는 다른 나라의 마인들을 모두 들여온 상태입니다.”
“중국은?”
“죄송합니다, 이번에 중국이 워낙 튼튼해졌습니다.”
“……귀찮아졌군.”
인상을 구겼다.
한국과 중국이 몇 번 타격을 받더니 아예 작정하고 막는 듯하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그쪽은 내가 해결하도록 하지.”
“예? 제가 가도 되는데,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
“괜찮다.”
직접 천마가 나서기로 했다.
한예림도 충분하긴 하지만, 직접 나서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밖을 나갈 준비를 하지. 중국부터 가겠다.”
“알겠습니다. 이동 수단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마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중국으로 가기 위한 이동 수단을 준비했다.
요즘 따라 나라 전체 방비가 튼튼한 덕에 텔레포트는 안 된다.
문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공항의 모습.
천마와 한예림은 얼굴을 가린 채로 공항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