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191. 숭배자(2)
“후우……. 피곤하군.”
주민들과 다를 바 없는 영주의 거처. 5평 정도 되는 작은 방 하나에 작은 화장실 하나가 딸린, 대도시의 영주의 방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방이었다.
영주도 동의했기에 이런 방이 주어졌다 생각했겠지만, 속으로는 전혀 아니었다.
“퉤, 이런 하층민이나 사는 더러운 방에 한 달간 머물러 있어야 하다니.”
영주는 주민들과 같은 방을 쓰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지하 벙커에 머물러야 할 시간은 대략 한 달.
‘그놈들만 안 나타났으면 이런 곳에 있지도 않겠지.’
상당히 귀찮게 되었다.
작은 마을이 얼어붙은 일 때문에 여기까지 도망쳐 오다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후우……. 돗대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다 탄 꽁초를 쳐다봤다. 스트레스 때문에 한 갑을 한 꺼번에 피워 버렸다.
‘담배도 떨어져 가는데, 최대한 아껴야겠어.’
마음속으로 투덜대며 꽁초를 재떨이 안으로 넣었다.
방 안에 가득한 담배 연기를 환기시키며 잘 준비를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
“음? 누군가?”
시간은 밤 11시. 이리도 늦은 시간에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묻자 곧바로 들려오는 대답.
“1급 용병, 샬런입니다.”
“샬런? 이 시간에 무슨 일일인가?”
영주는 질문과 함께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채로 문을 열었다.
그 외에 아무도 없는 걸 보면 문제가 생겨 방문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샬런을 안으로 들인 채로 의자에 앉혔다.
“빈약한 자리지만, 편안히 있게나.”
“감사합니다.”
예의상의 인사치레가 오가고 영주가 먼저 물었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중요 일력은 잘 먹고 잘 자는 게 임무일 터인데.”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떤 궁금한 점이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에서는 크게 문제 될 만한 건 없었다.
작은 컵에 따른 물을 입 안에 흘려 넣고 있는데, 샬런의 질문이 들려온다.
“왜 마력 폭풍과 눈보라가 지하 벙커 바로 위에 머물러 있는 걸까요?”
“……마력 폭풍 말입니까?”
“예.”
“…….”
영주는 지하 벙커 바로 위에 머물러 있는 눈보라에 대한 질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예상과는 다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대식가에 바보라고 들었는데…….’
주변인들에게 듣기로, 샬런은 멍청한 놈에 불과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런 날카로운 질문도 할 줄 알다니.
‘아마 소문이 잘못됐나 보군.’
소문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거나. 그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였다.
‘소문이 잘못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저 초롱초롱한 얼굴을 보니, 소문이 잘못된 건 아닌 듯하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그 악마가 밖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소문대로 멍청하군. 숭배자의 말을 믿다니.’
애초에 영주의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천마라 하더라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정도 수준의 눈보라를 발생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질문이 끝나셨으면, 저는 이만 자야 해서 나가주시면 감사…….”
“그런데 있잖습니까.”
영주가 적당히 얼버무리며 상황을 끝내려 하자 순간적으로 샬런의 눈빛이 변했다.
‘……!!’
방 전체의 공기가 뒤바뀌었다.
순진하게만 보이던 샬런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군.’
금방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샬런은 영주 본인을 의심하고 있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군.’
마음속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귀족 나부랭이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곧이어 이어지는 이야기.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렌이 말하더군요.”
“역시 8서클이나 되는 대마법사이십니다. 한낱 영주보다 식견이 높으시군요.”
“예, 일주일 동안 이 정도 눈보라를 일으키려면 최소 최상급 마력석 10개가 필요하더군요.”
이 정도 눈보라를 계속 일으키기 위해서 수준 높은 실력을 가진 악마라 해도 최소 마력석 10개가 필요하다.
그것도 평범한 마력석이 아닌, 광산에서 제일 회귀한 최상급.
“그들이라 해도 최상급 마력석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적당히 말을 받아주었다.
여기서 괜한 이야기를 하다가 꼬투리를 잡히는 수가 있기에, 그저 조용히 샬런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이곳 안에 숭배자가 있을지 검사했습니다. 마력석을 사용하지 않고 이곳에 눈보라만 머물게 하는 장비가 있는지까지도요.”
“……!!”
‘숭배자’라는 말에 샬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을 크게 떴다.
샬런은 영주의 몸을 흠칫 떨리는 걸 봤지만, 모르는 척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렌의 도움으로 악마의 숭배자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는데…….”
바닥을 쳐다보던 시선이 순간적으로 영주의 눈동자로 이동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한 샬런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12시부터 찾기 시작했지만, 단 한 명도 숭배자가 아니더군요.”
“혹시 기사들은 검사해 보셨습니까? 제가 믿고 맡기는 기사단이라지만, 혹시 모를…….”
“검사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를 검사했다. 하지만 악마의 숭배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기사단에서조차도.
“허허, 그렇군요.”
영주는 긴장한 모습을 감추고는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원래라면 영주조차도 검사받아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냥 검사 결과를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혹시 영주님께서 걱정하실까 봐요.”
“아, 아하!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샬런은 웃으며 영주를 검사할 이유는 없으며, 검사 결과만을 알려주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샬런이 이곳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영주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 * *
“검사했어?”
“아니, 안 했어.”
일렌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일렌은 예상외의 답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왜 검사를 안 했는데?”
“숭배자가 그냥 숭배자가 아니더라고.”
“그냥 숭배자가 아니라니?”
“교황이야.”
“……뭐?”
검사를 하지 않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영주는 그저 그런 평범한 숭배자가 아니었다.
숭배자 수천 명을 데리고 있는 교황.
“일단 교황부터 잡으면 안 돼? 몰래 잡으면 되잖아.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텐데.”
“당연하지. 가능해. 문제는 그놈이 뭘 숨기고 있다는 거야.”
샬런 정도의 힘이라면 가능하고도 남았다.
문제는 작은 방 안에 들어 있는 의자 두 개와 책상 하나.
“책상 밑에 버튼이 하나 있었어. 자폭 버튼.”
“……자폭 버튼?”
자폭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다는 거다.
그저 평범한 자폭 버튼이었으면 샬런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벙커를 통째로 날릴 만한 자폭 버튼.”
일렌과 샬런은 이 정도 폭파에도 괜찮겠지만, 주민들은 아니었다.
지하 벙커에 머물고 있는 몇십만 명의 주민이 죽을 거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모두.
“귀찮게 됐네.”
이야기를 들은 일렌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기사들한테는 전했어?”
“눈치챘더라고. 그러면 일단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 방 안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밖에.
여기서 하루라도 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이곳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간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클리어하고 나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하냐는 건데…….’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5평밖에 안 되는 작은 방이긴 하나, 기본적인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음식 같은 것도 모두 비서를 시켜서 평생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네.”
유일하게 생각해 낸 방법.
조금 무모할 수도 있으나, 이곳에 있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선 이 방법밖엔 없다.
대충 계획을 설명하자 일렌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를. 교황을 잡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무리한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한 효과를 가진 방법이었다.
* * *
“……빌어먹을 용병들. 하마터면 들킬 뻔했군.”
떨리는 손을 붙잡은 채로 간이침대에 누웠다.
바보 둔탱이 같이 보이던 샬런. 하지만 소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어찌나 떨리든지…….
“교황인 걸 들키면 안 되지. 절대 안 돼.”
지하 벙커를 굳이 큰돈 들여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었다.
천마라는 작자가 모든 일을 끝낼 때까지 1급 용병 두 명을 붙잡아야 둬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 한 번 편히 못 자는 게 참 아쉽군.”
침대에 누워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뜨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불편한 의자에 앉았다.
“이런 의자에 도대체 어떻게 계속 앉아 있는지, 원.”
투덜대는 것과 동시에 작은 책상에 숨겨둔 수정 구슬을 꺼냈다.
천마와 통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정 구슬. 그뿐만 아니라, 어떤 마법으로도 간섭당하지 않을 유일한 소통 창구.
톡.
수정 구슬을 건드리자 하얀색 구슬이 점점 파랗게 물들어 간다.
파란색 물결이 수정 구슬 전체를 회전하더니…….
-무슨 일이지.
“천마 님!!”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교황이 되기 위해 가끔 한 번씩 뵙던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1급 용병, 일렌과 샬런을 잡아 놓은 교황!”
-그렇군. 그쪽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천마 님의 말씀대로 계속 이곳에 가두고 있습니다.”
-잘했다. 되도록 한 달 정도는 시간을 벌어줬으면 좋겠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천마 님의 말씀대로…….”
-이만 끊지.
툭.
천마는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로 수정 구슬을 꺼버렸다.
잔뜩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순간적으로 기괴하게 변했다.
“제가 천마면 단 줄 아나. 꼴에 높은 놈이라고 치켜세워주는데도 무시하네.”
어차피 이번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일렌과 샬런이 왔다는 보고를 했을 때도 ‘나중에 보상이 따른다’라는 말만 남긴 채 끊어 버렸으니까.
“그냥 여기서 확 자폭 버튼 누르고 싶은데…….”
책상 바로 밑에 있는 빨간색 버튼은 지하 벙커만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 이 도시 전체를 날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폭탄이다.
“그래도 보상은 받아야지~”
버튼에 손을 떼었다.
이대로 바보 같이 자폭할 수는 없는 법.
이왕 누를 거면 보상은 다 받고 누르는 편이 낫지 않은가.
“이놈의 빌어먹을 불면증. 잠이나 자자~ 잠이나~”
억지로 눈을 붙였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생활 패턴을 무너트리면 안 되기에 눈을 감자 불면증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3분 만에 잠이 들었다.
“일렌, 잠들었어?”
“어, 방금 막 잠들었는데?”
일렌의 마법을 통해 영주가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하고는 곧장 벙커 입구로 향했다.
‘나도 쉽게 부술 수 없겠는데.’
굳게 닫혀 있는 문.
모든 힘을 쥐어짜면 가능할까 싶은 문을 쳐다보다 열쇠를 꺼냈다.
“크아아아아!”
“시작할게.”
“응.”
열쇠를 구멍에 꽂는 것과 동시에 들려오는 괴성.
기사 단장에게서 받은 열쇠를 통해 벙커의 문을 열었다.
철컥.
끼이익.
벙커의 문이 열리면서 지독한 한기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보이는 악마와 마수들.
‘계획대로다.’
그들은 그대로 전투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