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185. 외진 마을(2)
4일을 걸어 도착한 외진 마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꽤 큰 곳에 숙소를 잡았다.
벌어들인 돈은 많은 터라 겨울 동안은 돈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다.
‘퀘스트 같은 건 없나.’
침대에 앉아 허공을 쳐다봤다.
마을에 오면 시스템 메시지가 떠 오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저 시린 겨울바람만이 그들을 반길 뿐이었다.
‘제국이란 곳보다는 따뜻하지만.’
하여튼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식사를 마치고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악마가 성행하는 시기.
“아이고, 잘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임무라 돈을 받아야 하는데.”
“마을이 워낙 외지에 있어 용병조차 잘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려 1급 용병이 오다니요! 돈을 주더라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돈도 그리 많이 안 받으시지 않습니까?”
마을의 촌장이란 사람이 깍듯이 그들을 대했다.
무려 두 명의 1급 용병.
용병조차 다니지 않은 외진 마을은 항상 마수 때문에 걱정이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마인, 악마도 모여들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1급 용병이 여기서 딱 나타나다니!
하늘이 내려준 보답이라 생각할 터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예! 밖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세요!”
작별 인사와 함께 겨울 산을 올랐다.
외진 마을이라 그런지 산의 상태는 그닥 좋지 않았다.
“샬런.”
“봤어.”
산을 20분 정도 올라가자 발자국 여러 개를 발견했다.
언뜻 보면 동물 발자국 같았다. 지구에 있는 고라니나, 멧돼지처럼 평범한 동물.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다. 겨울에는 특히 추워 동물이 살기 어려워진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말했다.
“마수.”
“마수.”
발자국 크기로 보니 그리 크진 않은 마수였다.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만한.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발자국이 너무 많네. 적어도 10마리는 되겠어.”
수가 꽤 많다는 거다.
물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중급 악마조차 그들에게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니까.
“흔적을 따라가자.”
먼저 앞서 간 일렌이 말했다.
이왕 할 거면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편이 좋다.
이런 외진 마을은 마수만 많은 편이기에 보폭을 크게 벌리며 올라갔다.
푸욱.
푸욱.
어젯밤부터 내린 두꺼운 눈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보폭을 넓혀 걸으니 마수들의 쉼터에 금세 도착했다.
“일렌.”
“응, 난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코가 반응하고 있었다.
짙은 철 냄새.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이상하게 역겨운 냄새.
‘이게 마수인가.’
마수란 걸 난생처음 봐서 그런지 신기하면서도 역겨웠다.
동물도 마기를 이렇게까지 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으니까.
“샬런, 먼저 가.”
그에 일렌 대신 먼저 앞으로 향했다.
근접에서도 나쁘지 않은 효율을 발휘하는 마법사이긴 하나, 원거리가 가장 뛰어난 법이다.
“아이스 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얼음으로 이루어진 방벽을 설치했다.
쿵쿵!
‘내가 사용하는 마법보다 단단하고 질적으로도 높네.’
이게 정말 얼음으로 만든 벽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의 강도였다. 강수호의 마법보다 정밀하고 정교했다.
‘앞으로 가자.’
감탄을 끝내고 마수가 머무는 쉼터를 향해 나아갔다.
뒤에서는 마법을 전개하고 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침묵을 유지한 채로 쉼터로 발을 들이자.
“크르르릉.”
우그적! 콰직!
“…….”
흙을 파고 만들어 낸 쉼터 안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
짙은 피비린내가 나는 걸 보니 갓 잡은 동물을 먹고 있나 보다.
철컥.
샬런의 전용 건틀릿을 착용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겠지만, 힘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련 체험에서도 힘은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먹을 강하게 쥐고 치켜든 후, 곧바로 휘둘렀다.
쾅!!
굉음과 함께 마수들의 쉼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 전체가 흔들릴 만큼 강한 충격.
“깨개갱!”
“크르르릉…….”
놀란 늑대 마수 몇 마리는 도망치고, 쉼터를 지키려는 몇몇 늑대는 이빨을 드러냈다.
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아이스 붐.”
겨울 지역에서 가장 만들기 쉬운 얼음. 그러면서 가장 치명적인 공격.
이빨을 드러낸 늑대 다섯 마리의 몸에 얼음이 피어났다.
늑대들이 빠르게 뒤로 벗어났지만…….
쩌적!
쾅!!
“허…….”
“후우! 이 맛에 마법 사용하지!”
마수 몸 전체에 얼음이 피어나며 몸 안에서 얼음이 터졌다. 안쪽에서 얼음이 터진 것이기에 늑대의 시체는 토막 나 있었다.
‘7서클? 아니, 그 이상이네.’
최소 8서클에 위치한 일렌의 마법 실력.
샬런만큼이나 일렌도 강했다. 이 세계의 마법사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어디 보자…….”
두꺼운 외투를 걸친 엘린이 마수의 시체를 치웠다.
마수들이 뭘 먹고 있는지 보기 위함.
“고라니네.”
먼저 확인한 강수호가 말했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라니였다.
대충 보니 이곳에 나오는 동물들은 지구와 별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추가된 것 빼고는.
“처리하고 가자.”
마수 시체를 한곳에 모았다.
눈을 치우고 고라니까지 안에 넣고 나서야.
“파이어볼~”
불 마법을 사용하여 시체를 모두 태웠다.
마수의 피 냄새를 평범한 인간이 맡으면 정신이 이상해진다. 마기에 오염되어 죽을 수도 있고, 마인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먹던 것까지 전부 처리하고 나서야.
“올라가자.”
다시 산을 등산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일주일은 넘게 걸리는 일이기에 둘러보기만 할 생각으로.
* * *
“으으, 추워.”
온몸이 시리고 춥다.
제국보다는 덜하지만, 춥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바람이 덜 차가운 것뿐이지.
촌장 집 앞에서 기다리자 얼마 안 가 촌장이 돈주머니를 들고 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도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전해진 돈주머니의 내용물을 확인하니 무려 골드 2개. 평민의 두 달 생활 값이다.
1급 용병치고는 적은 값이지만, 외진 마을치고는 상당한 값을 지불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곧장 식당을 향했다.
“오! 1급 커플 용병 샬런, 일렌 아닌가?”
“저를 아세요?”
“그럼! 특히 자네는 모든 원소를 다룰 줄 아는 대마법사라 유명하지?”
그들은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한다. 한 곳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닌, 여러 곳을 돌아다니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 덕분에 식당에서 시킨 음식 외의 것들이 꽤나 놓여 있었다.
그것들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5분도 안 돼서 비운 그릇.
“후우, 진짜 배부르다.”
“여기 음식 잘하네. 그치?”
“어…….”
일렌도 샬런처럼 먹어댄다.
배를 가득 채우고 이제 숙소를 올라가기 위해 디저트를 시키려 하자.
“어휴, 이번에 제국에서 토벌대 형성한다면서?”
“천마 그놈 있잖아. 그놈 때문에 황제도 쫀 것 같아.”
“그놈이 있으면 토벌대는 전멸 아닌가?”
황제가 보낸 토벌대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강수호가 원래 가려 했던 곳이 바로 토벌대였으니까.
“토벌대는 어떻게 구성됐는데?”
“황제 기사단이 1조, 마탑 마법사들이 2초, 그리고 용병으로 구성된 3조. 이렇게 있더라고.”
“3조나 있다고?”
“어, 말했잖아. 황제도 쫀 것 같다고. 이번에는 이례적인 경우니까.”
시련 체험에서 봤던 조는 3조인 것 같았다. 장비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실력은 뛰어난.
“너희는 누가 살 것 같냐?”
맥주를 원샷한 사내가 물었다.
마탑에서 예측한 결과, 이번 겨울이 특히 혹독할 거라 했다. 특히 악마들이 집단으로 나타나 상당히 골치가 아프리라고…….
3조 중 한 조만 살아도 기적에 가까운 일.
질문에 한참 고민하더니.
“그래도 기사단이랑 마탑 놈들이 살아나지 않을까?”
황제가 직접 보낸 이들. 그만큼 실력이 검증된 이들이기에 살아남기에 유력한 가능성은 그들이었다.
“그렇겠지. 용병 중에 뛰어난 놈들이 많긴 하지만, 단합이 없으니.”
“나도 동의.”
용병 중에 기사단장보다 강한 이들은 넘쳐났다.
황제 옆에 있는 게 아닌, 매일 돌아다니며 마주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문제점은 그들의 성격이었다.
혼자 다니는 걸 특히 좋아하는 용병들. 같이 다니는 걸 잘 못 해서 같이 다니다가는 싸움만 일어난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고.
“예외의 경우도 있지 않아?”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저번 악마 토벌.
“용병 한 명밖에 사상자가 안 나왔잖아. 고작 용병 100명밖에 안 갔고.”
“그건 그렇지. 기대해 볼 만해.”
용병 100명밖에 안 갔는데, 토벌은 어렵지 않게 끝났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 놓은 기사단과 마법사들은 전부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때 용병 대장이 누구였어?”
“내가 알기로는…….”
대답을 망설이며 주변을 둘러보다 눈을 크게 떴다.
저번에도 특히 악마들이 넘쳐났는데, 그런 사이에서 활약한 두 대장.
“저분들이야.”
“……?!”
대답에 두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었는지도 몰랐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다 맞는 말인데요.”
두 남자가 일어나 허리 숙여 사과했다.
용병들은 이런 소문 자체를 별로 싫어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별거 아닌 듯 손을 휘저으며 숙소로 향했다.
“너 좀 대박인 듯?”
“나?”
“그래, 사실 그때는 네가 다 지휘했잖아.”
일렌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겉으로 보면 바보 같이 보여도 실력 하나는 끝내주었다. 그 실력을 1년 전에 증명하기도 하였고.
“별거 아니야. 하던 대로 했을 뿐이지.”
사랑하는 이에게 칭찬을 받아서 그런지 왠지 부끄러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을 때쯤.
쾅!!
“……!!”
갑작스레 열리는 숙소의 문.
예의도 없이 열린 문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요, 용병님들!”
“무슨 일이세요?”
문을 연 이가 누군지 확인하자 그 생각은 사라졌다. 오늘도 봤었던 노인이 있었으니까.
“촌장님 아니세요?”
이 마을의 촌장.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중급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이 마을에 악마가 나타났다는 말에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