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84화 (184/225)

제184화

184. 외진 마을(1)

눈을 감고 다시 뜨자 아침이 밝아왔다.

시련 체험 때처럼 바로 시간이 바뀌진 않았다.

‘어제 너무 피곤했나.’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느라 몸이 피곤했나 본다.

밖을 보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오래도 잤나 보네.”

최소 12시간은 넘게 잤을 거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숙소를 내려가던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

“샬런! 밥 먹자!”

순간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숙소 밑에 있는 식당에 내려가니 어제 먹다 남기고 아깝다고 포장해 뒀던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샬런과 일런은 금방 먹어 치우고는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강수호는 조용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이 세계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것보다 그저 조용히 따라나서는 것이 좋을 터.

“저희 왔어요!”

“샬런, 일렌? 잘 왔네. 마침 일손이 필요했거든.”

얼마 안 가 도착한 작은 집.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용병 중계인.’

이름은 모르지만, 머리에 들어간 정보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의 용병 중계인.

용병 계에서는 일렌과 샬런이 상당히 유명하기에 들어오자마자 임무를 주었다.

“여기 있네.”

“평범한 퀘스트가 아닌데요? 이 문양…….”

“그래.”

그것도 평범한 임무와는 격이 다른 임무.

일렌이 눈치챈 듯 말하자 중계인이 문양을 짚고 말했다.

“황제가 낸 임무지.”

“…….”

그 순간 주변이 싸해졌다.

의자에 앉아 임무를 기다리고 있던 용병도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낸 임무라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악마의 시즌이 돌아온 건가요?”

“그려, 황실 기사와 마법사로도 무리일 테지. 그래도 1급 용병들은 자네들을 포함해 5명밖에 없지 않나.”

“흠…….”

겨울이 혹독해질수록 악마와 마인은 늘어난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로 마기에 잠식당한 곳.

마인 퇴치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위험한 만큼 성공하면 상당한 보상이 쥐어진다.

“샬런, 어떻게 할래?”

고민하던 일렌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당연히 당장은 힘들다.

불가능하다 입을 열려던 찰나.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 세상 전체가 멈췄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시 떠 오르는 메시지.

-임무를 수행한다.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

허공에 떠오른 단 두 개의 메시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방법인지 고민에 빠졌다.

‘임무를 수행하면 그때 본 숲으로 가는 건가.’

시련 체험에서 봤던…… 임무를 수행하면 그때 갔던 숲으로 갈 것 같다.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여기서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숲으로 가지 않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평소처럼 생활한다.

‘목숨은 하나뿐이야.’

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어도 목숨은 무제한이 아니다.

게임처럼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샬런이란 몸을 살릴 수 있을지 한참 고민을 마친 끝에…….

‘수행하지 않는다.’

목숨은 단 하나뿐이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싶으나, 목숨이 먼저다.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수행하지 않는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두 개의 메시지가 지워지며 허공에 떠 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그와 동시에 다시 떠 오르는 메시지.

-사명 변수를 피하셨습니다.

-시련 시간이 늘어납니다.

“……!!”

사망 변수.

이 임무를 받아들였으면 죽는다는 뜻일 터다.

‘죽음을 피해라는 건가.’

정확한 건 아니지만, 숲에 가면 죽는다.

아무래 이 선택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다.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멈춰 있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번에는 가지 않았나?”

“이번 겨울은 더 추울 것이라 예상된다 하더군요. 악마가 더 몰려올 것이란 뜻이죠.”

“흠…… 아쉽군. 황제께서 자네들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이번 겨울은 힘들 것 같군요.”

거절.

다른 임무가 없는지 둘러보다가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을 빠져나올 때 동안 조용하던 일렌이 입을 열어 물었다.

“이번에는 왜 빠진 거야?”

마차에 오른 그녀는 상당히 궁금할 거다.

악마 토벌은 예전에도 여러 번 진행했었다.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1급 용병인 그들이라면 거의 피해 없으 토벌할 수 있는 일.

목숨이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보상은 어마어마한.

그런 임무를 거절했으니 그녀로서는 의아할 터.

“위험해서.”

그 물음에 간단히 대답했다.

사망변수를 피했다는 건 갔다면 죽는다는 뜻이다.

“제국 안에 악마들이 터를 잡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제, 제국 안에?”

“믿을 수 있는 정보원이야.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지.”

겉으로 행동하는 거 보면 먹는 거 좋아하는 동네 바보형이지만 샬런은 의외로 철저한 부분이 많다.

특히 악마에 대해서는 더욱.

이야기가 끝에 도달하자 보이는 표지판.

‘여기서 어디를 갈지 정해야 한다.’

오른쪽은 제단이란 곳 근처에 있어서 상당히 위험한 곳.

왼쪽은 도착하는 데 오래 걸리지만, 외곽에 위치한 마을.

‘왼쪽이 낫겠지.’

시련의 목표는 정확히 모른다.

시스템 관리자와 장로가 알려주는 해방이라는 단어.

‘구원자가 도대체 뭔 뜻일까.’

아직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하나 있었다.

‘일단 살아야 해.’

목숨을 유지해야 했다. 여기서의 죽음은 현실과의 죽음과 같은 뜻을 지녔으니까.

“왼쪽으로 가자.”

“음? 일감도 많이 없어서 돈도 못 벌 텐데.”

“겨울이 지나고 다시 오자. 위험하잖아.”

“네가 별일이네. 악마는 다 죽어야 마땅한 놈들이라면서 그러더만…….”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용병 일은 항상 위험에 처한다. 어디서,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런 용병에게 외곽 마을에 가겠다는 건 너무 좋은 일이다.

“가자~ 우리도 이제 쉴 때가 된 것 같네!”

해맑게 웃는 일렌.

그 모습에 왠지 겨울바람이 따스한 봄바람이 된 것만 같았다.

* * *

“엘프분들!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

“저기…… 엘프분들?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

“하하하하.”

엘프 던전에서는 나나호와 최서현이 열심히 일손을 돕고 있었다.

나나호는 장로와 일을 해서 크게 부딪힘이 없었지만…….

“꺼져! 더러운 인간 같으니.”

“…….”

최서현은 아니었다.

미국에 가면 받는 인종차별처럼 엘프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가오는 것도 싫어했다. 마치 벌레 보듯 자연스레 자리를 피했다.

저렇게 욕만 하면 다행이다. 문제는 자신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무시만 한다는 것.

“밥이나 먹어야지.”

그 차별은 점심까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근처 들판에 앉아 도시락을 깠다.

“김치볶음밥~”

점심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볶음밥.

“최서현 님~ 저도 같이 먹어요~”

“나나호 님!”

어느새 그녀 근처로 온 나나호. 대충 들판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장로님이랑 일은 할 만하세요?”

“네, 통나무는 별로 무겁지는 않아서 힘들진 않아요.”

“다행이네요…….”

다행하게도 그녀의 일은 힘들지 않나 보다. 나무도 전혀 무겁지 않다 하니.

“서현 님은 어떠세요?”

“……하루밖에 안 했는데, 힘들 긴 하네요. 아무도 말을 안 걸어서요.”

최서현은 달랐다.

차라리 엘프 중 누가 욕이라도 해 주길 원했다. 원래 악플보다 더 슬픈 것이 무플이니까.

“하아…… 한숨만 나오네요.”

난생처음 겪어보는 불친절이었다.

대기업 회장 딸이라는 호칭 덕분에 평소 무시당할 일은 없었다.

“이런 건 처음 겪어보시죠?”

“네, 당황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 나름 밖에서는 회장 딸이라고 찬사받는데.”

“이제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해요. 사회는 언제나 잔인하거든요.”

“…….”

“아! 훈수 같은 건 아니에요. 제가 보육원 출신이어서 사람은 잘 알거든요.”

“……예? 보육원 출신요?”

최서현은 나나호에게서 출신 이야기가 나올지도 몰랐고, 고아인지도 몰랐다.

“워낙 평소에 열악한 환경을 살다 보니 사람을 잘 알거든요.”

“사람요?”

“예, 돈이 부족한 사람, 사랑이 부족한 사람 다양하게요.”

길거리를 전전할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특히 그런 사람 대부분이 절벽에 서 있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 왔기에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최서현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것까지.

“선배로서 말해 드릴까요?”

“…….”

나나호의 물음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최서현은 상대방의 마음을 다뤄본 적 없기에 가르침이 필요했다.

“일단 천천히 다가가세요. 같이 음식을 먹는다든지, 아니면 말이라도 계속 먼저 하면 기회가 올 거예요.”

“그렇군요!”

확실한 방법이었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엘프분들은 밥을 안 드시던데요?”

“그러면 먼저 말을……!”

“계속 말을 걸었는데 욕도 한 번밖에 못 들었어요.”

“…….”

사람을 대하는 것과 엘프를 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이걸 어떻게…….’

고민에 빠졌다.

엘프는 도대체 어떻게 대할 것인지.

유일한 방법은…….

“자연!!”

그녀의 능력.

엘프들이 인간을 미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어색하고 신경질적일 뿐이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그렇기에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갔다. 마치 자연처럼.

“제 능력을 배워 보실래요?”

“배울 수 있는 능력이에요? 재능 아닌가요?”

“아니에요! 배울 수 있어요! 저처럼 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요!”

천천히 배우면 되는 법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럼 저를 따라 이리로 오세요!”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나호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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