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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82화 (182/225)

제182화

182. 과거(2)

‘시련…….’

시련 안으로 들어갈 확신이 서지 않는다.

15일을 연속으로 들어가도 버틸 정도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힘은 아직 부족하다 생각 들진 몰라도 다른 건 확실했다.

“시작해야 하나.”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시련을 끝낼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

“다시 가야겠네.”

조금의 고민 결과, 결정했다. 언젠가 부딪힐 거면 최대한 빨리 들어가는 게 나을 거다.

최서현과 나나호도 함께 가는 편이 좋을 터.

-무슨 일이야?

곧장 휴대폰을 들고 최서현에게 전화했다.

한시가 바쁘다.

시스템 관리자가 저렇게까지 다급한 거 보면 조만간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

“서현아, 우리 다시 가자. 나나호 님도 부르고.”

* * *

“어…… 안녕하세요?”

“…….”

결정하자마자 곧장 중국으로 향했다.

던전 안의 엘프들은 그때와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나무로 만든 여러 무기를 들고 던전 입구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저번과 다르게 위협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하는 건가.’

다시 여기 왔다는 건 결정이 났다는 거다. 시련 체험 따위가 아니라 직접 시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방 왔구나.”

“예, 결정했습니다.”

엘프들 사이로 걸어 나오는 장로.

주변 엘프들처럼 두려움이나 걱정 따윈 없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강수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모두 준비들 하고 있겠나.”

잔뜩 긴장하는 엘프들에게 전하고는 시련 앞으로 향했다.

강과 들판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보이는 시련.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네.”

“…….”

그 앞에서 세 명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만약 강수호가 시련 안으로 들어간다면 이들의 목숨은 끝.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모든 기억을 잃을 거다.

“여기까지 왔으면서 다시 걱정하는 건가?”

“…….”

장로가 망설이는 듯한 강수호에게 웃으며 물었다.

“우리 때문에 그런가?”

“예, 아무래도 제가 여길 들어가면 다 돌아가시니까요.”

“그렇지. 자네가 여길 들어가면 엘프 모두가 죽는 거지.”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모든 기억을 잃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망설이는 것이다.

“망설이지 말게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그것이 엘프들의 사명일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도 모두 시스템 덕분.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게. 우린 신경 쓰지 말고.”

“…….”

나무가 가득한 숲에는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적막뿐.

장로의 눈에는 걱정 따위 보이지 않았다. 원망의 눈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얼굴.

“알겠습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장로는 이 순간을 기다려 왔을 거다.

세 명 모두 시련 앞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띠링!

-시련 안에는 선택받은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릴게요.”

“여기 있으면 되지. 빨리 갔다 와라.”

그녀들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은 눈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자.

띠링!

-시련에 입장했습니다.

-당신의 유물에 의해 ‘영웅1’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타일런 행성’.

-당신은 ‘영웅1’에 빙의 되어 그의 과거에 살게 됩니다.

시련 체험할 때와는 다르게 긴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의 시간은 현실 세계에서와 동시에 움직입니다.

시련 체험과는 다르게 바깥과 동 시간대로 흘러간다.

그 시스템 메시지가 끝이라 생각했지만…….

-행운을 빕니다. 부디 해방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AI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방금 막 써 놓은 듯한 메시지.

그 메시지를 끝으로…….

슈아아악!!

새하얀 빛이 얼굴 바로 앞에서 터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샬런, 안 먹어?”

“어, 어?”

“네가 좋아하는 닭이잖아. 설마 안 먹어?”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두근거리는 감정이 말을 대신해 주었다.

‘일렌?’

샬런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감정을 품었던 여자.

앳된 모습의 일렌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 * *

띠링!

-시련이 열렸습니다.

침대 위에 잠을 청하던 도중 떠 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어느새 잠에서 깨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봤다.

“먼저 찾았나 보군.”

전 세계에 발송되는 시스템 메시지는 아니었다. 특정 사람에게만 발송되는 메시지.

허공에 떠 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있으면 연락이 오겠군.”

시련이 열렸으니 그 빌어먹을 놈이 먼저 연락이 올 터.

최소한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거실에 놓아둔 구슬을 품속에 넣었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군.”

현재 시간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시련이 열렸다는 건 이 짓도 거의 끝나간다는 뜻.

멍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자 거실에 파란빛이 터지며 누군가 등장했다.

“마왕께서 당신을 초대했습니다.”

“가도록 하지.”

지성체를 가진 최상급 악마. 사람 팔뚝만 한 검은 뿔 두 개에 평범한 사람의 몸을 지닌 악마.

붉은 피부를 가진 악마의 손을 잡자 순간 주변이 암전되었다.

눈을 한 번 더 깜빡였을 때는.

“…….”

“마왕님.”

거대한 좌에 앉은 마왕이 앞에 있었다.

아까의 시스템 메시지는 선택받은 생명체에게만 보내주는 메시지다.

“시련이 열렸다는구나.”

마왕이 입을 열었다.

모든 영웅이 모여 있는 시련이 열렸다. 유일하게 시스템이 오류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시련을…… 찾았나?”

그렇기에 중요했다. 시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시스템의 힘 또한 달라질 테니.

하지만 천마의 입에서 좋은 소식이 나오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시련은 찾지 못했습니다.”

“시련을 찾지 못했다고?”

“…….”

주변에 순식간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천마조차 닭살이 돋을 만한 지독한 살기.

“천마, 우리가 얼마나 같이 일했지.”

“4만 년 정도 있었습니다.”

“그래, 4만 년…….”

그가 중얼거리며 좌에서 일어났다.

어떤 악마보다 거대한 검은 뿔. 3m 정도의 거대한 몸집이 일어나더니 천마의 목을 쥐었다.

“커, 커헉!”

“이번 일은 똑바로 하지 못했군. 하등 쓸모없는 것.”

핏줄이 도드라지며 얼굴이 붉게 변해 갔다.

천마는 마왕의 거대한 손을 뿌리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커헉! 커헉!”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손이 점점 하늘로 들어 올려질 때쯤.

털썩!

“콜록! 콜록!”

“무릇 생명체란 실수할 수 있는 법이지. 아직 모두 끝나지도 않았으니…….”

거대한 손이 천마의 목을 놓아 주었다.

생명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괴력.

‘죽을 뻔했군.’

천마는 숨통을 옥죄였던 손이 풀어지자 빠르게 숨을 내쉬었다. 재빠르게 몸을 정비하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시련은 시일 내로 빠르게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이 짓만 끝나면 시스템도 내 것이 된다.”

다시 좌에 앉는 마왕.

천마의 말에 흡족한 듯한 웃음을 지은 마왕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악마들의 긴장을 풀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주변에 있던 악마를 벌레처럼 죽여댔으니까.

“한 달을 주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이 들군.”

“이미 부하를 두 명 풀어놨습니다.”

“겨우 그걸로는 안 된다. 그곳 행성에서 만든 협회를 총동원…….”

“두 명으로 충분합니다.”

스르릉!

마왕의 말을 끊자 주변에 도열된 악마들이 마기와 살기를 뿜어대며 날카로운 손톱을 들이밀었다.

“빌어 처먹을 놈. 감히 마왕님의 말을 끊어?”

“4만 년 동안 마왕님 덕분에 살았던 놈이 간이 부었군.”

목에 댄 손톱.

마왕이 명령하면 지금 당장 베어낼 수 있겠지만.

“목을 베어 당장 죽…….”

“멈춰라.”

좌에 앉은 마왕이 말했다. 당장 멈추라고.

하지만 충실한 부하는 멈출 수 없다는 듯 분노했다.

“마왕님의 말을 끊은 자입니다! 엄중히 처벌을…….”

콰직!!

“……시끄럽다. 너는 나의 말을 거역한 쓰레기 같은 놈이구나.”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마왕의 손이 움직였다.

천마의 목에 손을 댄 두 악마가 바닥에 처참히 짓이겨진다.

“…….”

악마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땅한 처벌이었으니까.

“더럽군.”

다시 좌에 앉은 마왕이 손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쓰레기 털어내듯.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마왕.

“요즘 악마들이 겁대가리가 없더구나. 너와 내가 함께한 지 4만 년인데, 그 시간을 몰라보다니.”

탁자에 있던 검은 술이 담긴 잔을 들이켰다. 상급 악마라 해도 천마의 몸엔 손을 댈 수 없었다.

“이것들은 아직도 자신이 우월한 줄 안다. 너의 목은 나만 취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오직 천마를 만든 마왕만이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다.

살기와 압박이 천천히 사라지자 천마도 악마들과 마찬가지로 긴장을 풀었다.

“제일 고생하는 건 넌데 말이야.”

이제는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자네가 가져온 거야. 마기와 인간의 피가 적절히 섞여 맛이 아주 좋아.”

“감사합니다.”

제 기를 세워주기 위한 행동임을 아는 천마가 허리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함을 표하는 것과 동시에 물었다.

“혹시 엘프를 아십니까?”

“……엘프?”

“예, 제 부하 한 명이 엘프를 본 적이 있다 해서 말입니다.”

“엘프라…….”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한 마왕.

마기를 가진 악마와는 전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엘프. 자연 친화적이기도 하며 강하기도 하다.

“엘프는 다 죽였지 않았나? 자네가 직접. 내 말이 틀렸나?”

“아닙니다. 저희 차원으로 넘어온 엘프들과 전 차원에 있던 엘프 종족은 모두 죽였습니다. 멸종이죠.”

“자네도 확신하는데 살아 있다고?”

“예.”

다시 한번 이어지는 대답에 의아함을 표했다.

엘프는 모두 죽였다. 종족의 씨를 말렸다지만, 살아 있다는 건…….

“시스템이 살린 걸까요?”

“그런 것 같군. 시련을 만든 것도 마지막 발악인 것 같아.”

시스템밖에 없었다.

마왕의 확신된 대답에 예측했던 것이 맞았다.

시스템이 마지막 힘을 써 가며 시련과 엘프를 창조해 냈던 것.

“쯧, 귀찮게 됐어. 그것보다 구슬은?”

크게 신경 쓰일 건 아니었다. 천마 정도면 충분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중요한 건 구슬이다.

“여기 있습니다.”

천마가 조심스레 수정 구슬을 내밀었다.

마왕은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수정 구슬을 품에 꽉 안고는 다시 천마에게 주었다.

“너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라. 우리의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니.”

“알고 있습니다.”

“그래, 시간이 오래되었군, 가도 좋다.”

이야기한 지 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

할 일도 있어 이제 가야 할 시간.

“예, 수고하십시오.”

자신을 데리러 왔던 악마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아아악!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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