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81화 (181/225)

제181화

181. 과거(1)

‘배고프다고?’

전화가 끊기기 전 스승님이 내뱉은 한마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기껏 배고프다는 것이었으니까.

‘밥을 안 주셨나…….’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밥 문제였다.

스승님은 밥을 잘 챙겨 드시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마을 단체로 몇 달 놀러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기에는 스승님이 아기가 아니라는 건데…….’

배고프다는 말의 의미를 탐정처럼 풀어내고 있을 때.

‘설마?’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불안한 직감.

얼마 전, 시련의 던전에서 그의 과거를 직접 체험했다. 그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한 거라면?

아니면 마을에서 사라져 이곳으로 온 것처럼, 이곳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기사님!”

“아, 예. 강수호 헌터.”

“빨리 가주세요! 전속력으로!!”

“옙!”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놨기에, 유일한 이동 수단인 자동차를 타고 3시간은 걸릴 거리를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샬런 스승님!”

도착하자마자 달려가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곳저곳을 뒤졌다.

“제, 제자……야…….”

“……!!”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마을 회관 쪽이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발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재빠르게 달려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제자야!!”

“스승님!”

멀쩡한 모습의 샬런을 볼 수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와락 안기는 순간.

“그런데 치킨은 어디 있느냐?”

“……예?”

“흠……. 센스가 부족하구나. 분명히 내가 배고프다 말했을 텐데.”

“…….”

샬런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괜히 급하게 온 듯하다.

“후우, 스승님. 장난치시는 겁니까?”

“흐하하하! 이런 맛에 또 제자 키우는 거지! 그리고 안 본지도 워낙 오래됐고.”

그러고 보니 시간이 거의 없어서 마을에 들어간 지도 꽤 오래됐다.

샬런을 만난 것도 오랜만이고.

‘그래서 부른 건가.’

장난삼아 부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치킨은?”

“못 샀습니다.”

“크으……. 오랜만에 바삭한 통닭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치킨을 들고 올 거라는 생각은 진심인 것 같았지만.

* * *

“흐어어. 배부르구나.”

“…….”

접시 가득 쌓인 닭 뼈.

치킨을 사 올 데가 없어 시장에서 닭을 10마리 정도 사와 삶아 먹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식탐은 전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오랜만에 제자를 보니 행복하구나.”

“배불러서 행복하신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마을 주민분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아하, 그분들?”

샬런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마을 주변을 둘러봤다.

50채도 되지 않은 마을을 아무리 둘러봐도 마을에는 사람이 없었다.

샬런의 대답에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체로 여행 갔느니라.”

“여행요?”

“그래, 제주도에 간다고 하더구나. 나는 여행 같은 건 옛날에 너무 많이 해봐서 여기 있는다 했지. 혹시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도 하고.”

제주도로 단체 여행을 갔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샬런의 몸을 살폈다.

‘다친 곳도 없고. 이상한 곳도 없는 것 같은데…….’

모두 처음 봤을 그때처럼 여전했다.

“뭘 그리 보는 것이냐?”

“좀 큰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몇 만 년 전의 샬런의 과거에서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동료들을 봤다고 말이다.

한참을 고민한 결과.

“뭘 그리 고민…….”

“스승님, 저 과거를 봤습니다.”

“과거?”

“예, 샬런 스승님의 과거를요.”

“…….”

입을 열었다.

언젠가 알려지게 될 이야기였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몇십 배는 나을 터.

“흐하하하! 내 과거를 봤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제자야! 나도 이제 가물가물해지는 과거를 네가 어떻게 보았느냐?”

“…….”

하지만 샬런은 고개를 저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였으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이제는 샬런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좋다, 그럼 거기에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질문을 던졌다. 정말 과거를 보지 않았다면 모를 질문.

조금 고민하는 눈빛을 보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보거라! 대답을 못 하지…….”

“있었습니다.”

“…….”

주변이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있다고 대답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이, 이름을 말해라.”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를 봤으면 이름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대답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닭이나 더 먹으려던 찰나.

“일렌.”

“하! 어디서 지어낸 이름…… 일렌?!”

제대로 부른 이름에 샬런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과거를 보지 않으면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가 사랑했었던, 사랑받았던 사람.

“정말 과거를 봤나 보구나.”

샬런의 과거를 본 것이 확실했다.

“예, 시련 체험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시련 체험?”

“예, 엘프 장로가 시련 전에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해서…….”

샬런도 시스템 관리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봤기에 알 수 있었다.

시련을 클리어해야지만, 이 층이란 걸 클리어할 수 있다고.

“……그렇군.”

밝아졌었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변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나 보다.

“어느 때였는지 알려줄 수 있나?”

“과거에는 하루 정도 있었는데, 숲이었습니다.”

“숲…….”

“그리고 동료들이 100명 조금 넘게 있었고요.”

몇만 년이 지났다지만, 그때 그 기억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여 행복만 남아 있는 끝.

“마지막이었나 보군.”

그 한 마디로 무슨 말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마왕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마지막 여정. 샬런의 동료들은 악마도 너무 쉽게 잡았기에 마왕도 어렵지 않게 잡으리라 생각했다.

“마지막 모습은 어땠나?”

“…….”

과거를 본 제자에게 물었다.

사랑했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냐고.

“어…… 그게…….”

“두려워했나? 슬퍼했나? 아니면 그것도 보지 못하고 죽었나?”

강인했던 샬런이 처음으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강수호는 아쉽게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시련 체험이라 보지는 못했어요. 사람들이 강한 건 알겠는…… 아! 맞다!”

말하던 도중 생각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15번을 체험해도 마지막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과거의 그 자리에 있었던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바로 샬런이다.

“스승님, 혹시 저녁쯤에 악마보다 더 강한 마기를 풍겨대는 놈…… 누군지 아세요?”

“악마보다 더 강한 마기를 풍겨대는 놈?”

“예, 목소리가 두껍고 그때 스승님도 상대하기 힘들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마치 너무 가까이 있는데 목소리에 모자이크 되어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흠……. 모르겠구나.”

“모르겠다고요?”

“이상하게 그때만 기억이 가물가물해. 마치 그 기억만 빼놓은 것처럼 말이야.”

처음부터 모든 것이 기억나는데 그 기억만 나지 않았다.

“어쨌든 마지막 모습은 보지 못했구나.”

“예, 시련 체험이라 그런 것 같아요.”

닭 뼈에 남아 있던 살을 쪽쪽 빨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도중 강수호의 몸이 눈에 띄었다.

“강해졌네.”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스킬이나 몸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육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벽을 뛰어넘었구나.”

“예, 저번에 말했었던 오크들 덕분이었습니다.”

벽을 뛰어넘었다는 걸.

“그때 말한 오크 말이냐? 고블린들의 후손이라 하는?”

물론 생각해 보면 오크 덕분인 것처럼 보일 거다.

“그 오크 덕분에 벽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고 좋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자가 그동안 열심히 훈련한 덕분이지.”

더 높이 올라갈 기회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기회를 강수호가 잘 잡은 것뿐.

오크 덕분만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옛날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곳에서 나는 어떠했지?”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물었다.

부분적인 기억 빼고는 모든 것이 기억났지만,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겉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 같았어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 힘이 좀 강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옛것을 그리워하게 된다.

과거 샬런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더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가나 싶어 자세를 잡고 물었지만…….

“그런데 사랑하신 분이랑은 어떻게 만나신 거…….”

“커어…… 커어…….”

샬런은 배가 볼록 튀어나온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어찌나 빨리 잠이 들었는지, 빨고 있던 뼈를 뱉지도 않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더 이야기는 안 될 것 같네.”

이야기할 게 더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원래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사랑 이야기로 풀어야 되는 법인데…….

“이야기 다 끝났어?”

“어, 대충은. 스승님은 무사하신 것 같아. 밥 드시고 잘 주무시네.”

기다리고 있던 최서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크게 문제 될 건 없었기에 메모지 한 장을 붙이고 집으로 향했다.

* * *

“시련은 언제 시작하실 거예요?”

“그것도 정해야 해?”

“그런 건 아닌데요. 빨리하면 좋지 않을까요?”

“…….”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스템 관리자에게 초대받았다.

그녀의 행동이 뭔가 다급해 보였다.

“싫다면?”

“으아아아아. 부탁이에요!!”

처음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갑과 을의 관계.

“만약 마인이랑 악마 놈들이 그걸 먼저 발견하면 큰일 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먼저 발견했잖아.”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작은 몸으로 무릎을 꿇고 계속 머리를 숙였다.

급하긴 한가 보다.

일단 이야기부터 듣기로 했다.

“그 엘프들은 뭐 하는 사람…… 아니, 엘프야?”

도대체 왜 엘프가 그곳에 있는지, 처음 봤을 때부터 쭉 궁금했다.

“그게…….”

관리자는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금방 입을 열었다.

“시스템님이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거든요.”

“마지막 기회를 줬다고?”

“예, 정확한 건 말씀 못 드리지만, 악마 때문에 전 차원 모든 엘프의 씨가 말랐어요.”

드워프는 악마, 마인들의 공격도 제작한 무기로 막아낼 수 있단다. 그들이 만든 무기는 신조차 베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엘프는 그와 정반대였다.

“엘프 종족은 모두 강한 편에 속해요. 그런데 워낙 상성에 취약한지라…….”

자연에 가장 취약한 마기. 그 때문에 몇 년 버티지도 못하고 금방 멸종한 거다.

그걸 시스템이 제안해 살려 준 거고.

“다 죽는다는데?”

“그렇죠. 하지만 저들의 죽음은 의미 있는 죽음이에요.”

“의미 있는 죽음?”

“새로운 꽃이 피어나거든요. 악마가 없는 곳에서.”

시스템이 제안한 것이 바로 시련을 지키는 거다.

시스템이 마지막 힘을 짜내서 유일하게 만든 던전.

“제발 부탁드려요! 마인들이 찾기 전에 하나라도 더 클리어해 주세요!”

“…….”

갑과 을 관계만은 아니었다.

강수호도 목숨이 걸린 일.

잔뜩 한숨을 내쉬고는 일단 그녀에게서 빠져나왔다.

생각할 일이 꽤나 많았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