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177. 스토킹(2)
“웁웁웁웁!!”
“끝.”
여섯 명의 마인 모두 깔끔하게 단단한 밧줄로 묶었다.
화장실 문에 설치한 마나를 잔뜩 담은 실. 간단한 방법이면서도 은신한 그들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여섯 명이 전부인 것 같죠?”
“예,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간부가 한 명 있는 것 같긴 한데…….”
마인을 전부 잡았지만, 끝난 건 아니었다. 마인들을 관리하는 간부, 이사벨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기 전에 가죠.”
“그게 좋을 것 같죠? 그 마법사는 저도 어쩔 수가 없거든요.”
“그게 좋을 것 같네. 나도 동의.”
이사벨라가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빠져나가는 것이 좋으리란 판단을 내렸다.
* * *
“흠? 어떻게 된 거죠?”
모두가 호텔을 빠져나간 후에야 도착한 이사벨라. 그녀는 마나 밧줄에 꽁꽁 묶인 마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질문과 함께 그들의 입을 막고 있던 철판과 비슷한 내구성을 지닌 청테이프를 뜯었다.
촤아악!
“눈치챘습니다.”
“……눈치를 챘다고요? 실수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있다는 듯 함정을 세워두었습니다.”
“알고 있다라……. 공허를 어떻게 눈치챈 거지?”
분노보다 의문이 먼저 들었다.
공허는 그녀가 만들어 낸 깊숙한 어둠. 인간인 이상, 절대로 눈치챌 수 없는 수준의 어둠이었다.
“아마 자연을 다루는 나나호 헌터 때문인 듯합니다.”
“아, 그 여자?”
“예, 바람으로 저희의 위치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귀찮게 됐네.”
공허의 장막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상당히 큰 출혈.
“다른 건 없었나요?”
“사일런스를 사용해서 뭔가를 이야기 했습니다.”
“사일런스요?”
턱을 쓰다듬었다.
처음부터 눈치챈 건 아닐 터. 아마 엘프들이 있었던 이상한 던전에서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 던전은 또 신기하게 없단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던전의 털끝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찾아봐야겠어.’
하지만 던전을 찾기 전에 일단 강수호의 위치부터 찾아내야 한다. 천마가 준 임무는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
여기서 더 뒤처질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 일어나세요. 여기서 가만히 있을 시간 없어요.”
“으으…….”
대충 밧줄을 풀어주고 곧장 강수호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마나의 흔적을 찾기만 하면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 * *
“이 정도면 됐겠죠?”
“텔레포트도 안 사용했으니까 흔적을 찾아오지는 못할 겁니다.”
“오랜만에 힘들게 달려보네.”
한참을 달린 끝에 먼 거리에 도달한 그들. 마나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 들킬 염려는 없을 거다.
“다시 숙소 잡고 던전을 찾아보도록 하죠.”
근처에 숙소를 다시 잡고 던전을 찾기로 했다.
간부가 강수호를 스토킹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시련 때문인가.’
그들도 시련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유물이란 걸 모으고 있는 거고.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게 좋겠어.’
마인들보다 빠르게 시련을 찾아내야 했다. 다행히도 마인들은 쉽게 던전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일단 숙소부터 잡기 위해 근처 호텔에 들렀다.
* * *
강수호와 그의 일행히 먼저 향한 곳은 원래 던전이 있던 장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게요. 그때 봤던 던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요.”
“피는 바닥에 남아 있는데…….”
바닥에 굳어 있는 피.
어제만 해도 던전이 여기 있던 건 확실했다. 하지만 언제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동한 건가.”
아마 수준 높은 마법사에게 의심을 살 수 있기에 바로 옮겼을 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다 뒤져봐야겠네.”
엘프들이 지키는 던전이라고 기사는 한 개밖에 내지 않았다.
인터넷 기사도 여기에 위치해 있을 때의 기사일 것이다.
“다 뒤져봐야겠네.”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마땅한 힌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락책 또한 연결이 안 되니…….
“흩어져서 찾아보자.”
같이 다니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눈치채지 못하도록 변장까지 했기에 다른 마인들이 알아차릴 리 없다.
“좋아요.”
“나 먼저 찾고 있을게. 찾으면 전화하고.”
전부 흩어져서 찾기로 했다. 시간이 무한적이지는 않을 테니까.
* * *
“마나의 흔적…….”
그녀들이 사라지고 눈을 감고 마나를 집중했다.
일반 던전과는 다르게 특유의 신선한 마나가 풍겨왔다.
‘엘프 냄새.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엘프의 마나 냄새는 아직도 주변에 잔뜩 풍겨오고 있었다. 마치 주변에 자리 잡은 듯이.
육안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여긴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감각을 높여 봐도 던전은 없다. 엘프들의 마나 냄새만 짙게 풍겨올 뿐.
‘더 짙은 냄새를 찾아야겠어.’
이보다 더 짙은 엘프들의 마나 냄새를 찾아야 했다.
최대한 코의 감각에 집중하여 마나 냄새가 짙어지는 방향을 향해 몸을 천천히 이동했다.
2시간 정도 코에 감각을 맡긴 채로 걸었다.
“여기다.”
정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맡았던 냄새보다 몇 배는 짙기에, 이곳이 거의 90% 확실했다.
“산인가.”
거대한 산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엘프들의 냄새.
여기에서부터 찾으면 금방 찾을 듯하다.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네.”
산을 천천히 올라갔다.
계단조차 만들어지지 않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산. 풀이 무성하게 자라 올라가는 데 방해가 되었다.
“일부러 여기에 자리 잡은 건가.”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저 올라가는 데 살짝 불편한 것뿐.
30분 정도 산을 올라가자 금방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혀 관리 되지 않은 산이라서 정상도 절벽에 가까웠다.
‘일반 사람이 떨어지면 바로 죽겠네.’
펜스조차 설치되지 않은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이 근처에 있다는 건데…….’
산 밑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짙어진 마나.
무성한 풀과 잔가지를 베어내며 나아가자.
“찾았다.”
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프들은 없었지만, 일반적인 던전이 아니란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상태창이 안 떠. 역시…….’
보통 던전 게이트는 상태를 나타내는 상태창이 뜬다. 하지만 이 던전은 상태창이 떠 오르지 않았다.
시련이 있는 던전이란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흐읍~ 도착이다.”
다행히 별 무리 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던전에 들어오자 따뜻한 마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 따뜻한 이불을 덮는 느낌.
‘좋네, 좋아.’
그저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다. 자연 친화적인 엘프들의 습성 때문인 듯하다.
그렇게 숨을 한참 동안 들이켜며 편안함을 느끼고 있자.
톡톡.
“……?”
누가 톡톡 치는 느낌에 감았던 눈을 떴다.
장로 엘프가 반갑게 인사해 주는 건가, 생각했지만…….
“손 들어라.”
“…….”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
무기로 강수호를 겨누는 엘프들.
“워워, 다들 진정하세요. 저 강수호예요. 저번에도 왔잖아요?”
“시끄럽다.”
엘프들은 그를 잘 알고 있음에도 무기를 겨누어 위협했다. 던전 안에 있던 엘프 모두가 강수호를 둘러싸고 있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
그런 이들 와중에 울먹이며 엘프가 소리치며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뭔 일이래……?’
분노로 가득한 엘프들의 모습에도 뭔 상황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주변 상태를 보았지만,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이사벨라가 먼저 발견하지는 않았을 텐데.’
마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마을.
한참을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입을 열려던 그때.
“다들 왜…….”
“나를 따라오게. 구원자여.”
“……장로님?”
때마침 엘프들 사이에서 나타난 엘프 장로.
엘프들이 길을 터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안에 들어와서 가르쳐 주지. 빨리 따라오게나.”
“아, 예…….”
엘프들의 지독한 살기가 몸을 찌른다.
그런 그들을 지나쳐 장로의 집에 들어왔다.
찰칵.
문을 굳게 닫고 자물쇠를 잠갔다. 장로는 창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하며 주변에 사일런스를 씌웠다.
의자에 먼저 앉더니 잔뜩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미안하네.”
엘프 장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다름 아닌 사과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하고는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의 생명이 자네보다 몇천 배 긴 걸 알고 있나?”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런 세월을 지내오면서 평온하게 지냈어. 아무런 위협 없이. 그런데 자네가 나타난 거야.”
“아…….”
그 몇 마디로 그들이 왜 무기를 들고 위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긴 세월 동안 그들의 임무는 시련을 지키는 거였다. 시련에 들어갈 사람이 왔으니 그들의 임무가 끝난 것이다.
“그러면…….”
“자네가 생각한 것이 맞을 거야. 우린 깊은 잠에 빠지겠지.”
“…….”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이다.
시련이 시작되면 그들의 역할은 끝이다. 행복했던 나날은 사라지고 죽는다는 뜻.
“살아갈 방법은 없습니까?”
“없네. 있었으면 저렇게 날 서 있지도 않았겠지.”
“……그렇군요.”
방법은 없다.
애초에 방법이 있었더라면 무기를 들고 위협하지도 않았을 터.
“대충 이야기도 끝났으니 날 따라오게나.”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며 시련이다. 장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강수호를 시련의 장소로 데리고 왔다.
시련이 위치한 장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강과 들판의 아름다운 조화.
‘여전히 예쁘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풍경도 오래 보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이 시련 안으로 들어가면 엘프들은 전부 사라질 테니까.
“지금 시련에 들어가겠나?”
“…….”
장로가 시련의 던전 앞에 서서 당장 시련 안으로 들어가겠냐 물었다.
세 번째 구슬은 장로가 가지고 있기에 원한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겠지만…….
“아직요.”
“그렇군.”
이사벨라가 이곳을 금방 찾진 않을 테니, 급한 상황도 아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
아직도 찾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동료들에게 시련의 던전 입구를 찾았다 전달한 후,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잠시 기다려 보게나. 시련 한 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예? 시련을 시작하면 다 죽는다고…….”
“허허, 그건 정말로 시작했을 때고.”
의문이 가득 담긴 이야기.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이해를 못 하자.
“어, 어?”
장로가 세 번째 구슬을 시련의 던전 안으로 던져 버렸다.
-시련이 열립니다.
“……!?”
알 수 없는 그의 행동.
말을 더듬으며 장로를 보는데, 떠 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시련을 체험하시겠습니까?
“…….”
시련을 체험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장로가 강수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유물 하나를 줘보게.”
“아, 예.”
가지고 있던 건틀릿을 장로에게 건넸다.
장로는 그 유물을 시련의 던전 입구 안으로 던졌다.
“잘 갔다 오게나.”
그 말의 끝으로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