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173. 추격(3)
“배부르다.”
통통해진 배를 두드렸다. 위장이 중국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주변에 가득한 빈 그릇.
“원래 이렇게 많이 드시는 편인가요?”
나나호가 수북이 쌓여 있는 빈 그릇을 보며 물었다.
그냥 많은 수준이 아니었다.
식탁 한자리를 가득 채운 빈 그릇.
“이 정도는 원래 먹는 편입니다.”
빵빵하게 배도 채웠겠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중국에 온 목적은 시련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헌터들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함.
“나나호님, 저랑 한 판 하실래요?”
“좋죠. 밥도 먹었으니까 소화를 좀 시켜야겠죠?”
경기가 시작되려면 최소 일주일은 남았다.
계속되는 대련을 통해 강해지는 것도 좋을 터.
식당을 나가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다.
특별히 많은 돈을 주고 대여한 거대한 훈련장.
“시작하겠습니다.”
자리를 잡고 각자 무기를 꺼내 대련하려던 그때.
“잠시만!”
“……?”
최서현이 대련을 중지했다.
“저랑 먼저 대련해요! 그래도 되죠?”
“아, 예. 저번에는 강수호 헌터랑 싸워 봤으니까요.”
나나호와 먼저 대련해 보고 싶다고 한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강수호도 최서현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눈으로 보지 못했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오직 육체 계열만 사용하는 그녀. 배울 점이 분명히 있을 거다.
관람석에 앉자 얼마 안 가 대련이 시작되었다.
“조심하세요.”
전보다 더 세밀해진 자연을 다루는 힘.
공기를 날카로운 얼음으로 만들어 쏘아 보냈다.
헌터라 해도 저 얼음에 닿기만 하면 살갗이 찢어질 정도의 상처가 생긴다.
깡!
“……!!”
하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목과 배를 향해 날아가던 얼음 파편이 몸에 부딪히자 가볍게 사라졌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죠? 스킬 하나는 사용해야 했을 텐데…….”
아무리 몸이 단단하다고는 하나,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신기하죠?”
“네, 정말 신기하네요. 한국으로 국적을 옮기길 잘한 것 같네요.”
최서현은 당황하는 나나호의 모습에 미소를 띠었다.
당연하게도 아직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기술이었다. 보여준다고 해도 눈치채기 어려울 테고.
“스승님한테 배웠거든요. 후우…….”
심호흡하며 말했다.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며 몸을 진정시켰다.
겉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강수호와 나나호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마나를 압축한 건가.’
‘이게 압축형 근육인가요.’
근육에 마나를 차곡차곡 쌓아 겉으로 보면 헬스를 많이 한, 평범한 근육질 몸으로 보인다. 하지만 힘은 헬스한 사람의 몇천 배를 넘어섰다.
“이제부터 제대로 하죠.”
쿵!
발을 굴러 큰 소리를 내더니 금방 나나호 앞에 섰다.
깜짝 놀란 그녀가 곧장 얼음 방벽을 세웠다.
쿠콰콰쾅!
“으윽!”
하지만 최서현은 세 겹을 넘게 세운 얼음 방벽을 가볍게 뚫어내었다.
나나호가 바람을 이용하여 충격을 버텨내었다. 그와 동시에 얼음과 불을 합쳐 수증기를 만들었다.
푸스스스!!
천천히 바람을 일으켜 수증기를 넓혀 시야를 가렸다.
그 상태로 바닥을 얼음으로 가득 메꾸었다.
“……?!”
얼음으로 가득해진 바닥.
이동이 제한되어 움직이기 버거워졌다.
최서현과 반대로 나나호는 얼음을 이용하여 가속도를 높여 달려들었다.
“흡!”
오른쪽 주먹에 얼음을 뭉치고, 바람을 강하게 일으켜 속도를 높여 그대로 최서현 몸을 쳤다.
쾅!
자연을 다루는 나나호와 육체파인 최서현.
당연히 육탄전은 최서현이 유리하다 생각하겠지만…….
쩌적!
“……!!”
나나호의 주먹을 막은 어깨에서 얼음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온몸을 뒤덮기 전에…….
“흡!”
마나를 소모하며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에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거대화.”
나나호가 도망가기 전에 오른쪽 팔을 거대화시켜 휘둘렀다.
콰르르릉!!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효과음.
아까보다 몇 배는 강한 공격이었지만, 나나호는 얼음 방벽 하나만 사용했다.
‘눈 가리기용인가.’
공격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주변이 얼음으로 가득해 나나호에게 유리한 필드가 됐으니까.
“흡!!”
이대로만 당할 최서현이 아니다.
숨을 크게 들이켜며 오른쪽 주먹에 마나를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얼음으로 가득해진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이거 잘못하면 훈련장이 무너지겠는데.’
훈련장 전체가 무너질 듯이 울려댔다.
조금 조절은 하였는지 바닥이 움푹 파이는 것으로 끝났다. 그 덕분에 두껍게 깔려 있던 모든 얼음이 부서졌다.
수증기가 충격으로 인해 사라지면서 나나호가 시야에 들었다.
발에 가득 힘을 주어 달려갔다.
쿵!
지면을 박살 내며 나나호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첫 유효타.
콰직!
“으윽!”
팔을 얼음으로 둘러 최서현의 주먹을 막았지만, 충격이 상당한가 보다.
뒤로 물러난 나나호가 재빨리 주변에 물을 뿌렸다.
금방이라도 얼 정도의 차가운 물.
“얼어라.”
그대로 물방울을 얼렸다.
샐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얼음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바람을 일으켰다.
깡! 깡!
“움직임을 방해하네.”
무한적으로 만들어 내는 자연의 힘.
얼음 조각들이 시야를 방해하고 공격을 방어했다.
그뿐만 아니라.
쩌적!
‘몸까지 얼려?’
얼음 조각이 몸에 부딪히자 빠르게 물로 변하였다.
몸에 묻은 물은 다시 얼음으로 변해 몸 주변을 덮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다 막아낼 수도 없었다.
‘끝인가.’
마나의 열을 통해 얼음을 녹여내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라간다. 마나가 남아도는 나나호에 비해 소량의 마나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끝을 봐야 할 때.
“거대화. 철갑.”
남은 마나를 전부 쥐어짜서 몸을 강화시켰다. 열을 최대로 내고 주변에 있던 얼음을 녹아내었다.
‘여기서 끝낸다.’
모든 힘을 쥐어짜 뒤로 어깨를 뻗어 휘둘렀다.
피할 수 없단 생각에 나나호가 빠르게 얼음 방벽을 세웠다.
10겹이 넘어 보이는 얼음 방벽.
콰콰콰콰콰쾅!
“와우.”
10겹이 넘어가는 얼음 방벽을 전부 부숴버렸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강수호조차 뼈도 못 추렸겠지만…….
“죄송해요. 아직 부족하네요.”
“언제 거기에 갔어요?”
나나호는 어느새 최서현의 뒤로 가 가볍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손을 대고 몸을 얼리기 시작했다.
쩌적.
몸이 반쯤 얼다 멈췄다.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닌, 평범한 대련.
“제가 졌네요.”
얼지 않은 다른 팔로 항복 표시를 내었다.
마나도 없어서 몸에 더 이상 열을 낼 수도 없었다.
“후우, 잘못하면 제가 질 뻔했네요.”
나나호는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얼음 방벽으로 페이크를 주지 않았으면 승리자는 바뀌었을 거다.
“그다음은 나인 것 같은데…….”
경기가 끝났으니 다음은 강수호 차례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할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좀 힘드네요.”
“아놔.”
진지한 싸움 때문에 하루는 쉬어야 할 듯하다.
‘나도 해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로 향했다.
* * *
“한국 마인은 해결했나?”
“예, 하지만 단체를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그 정도면 된다. 이사벨라는 어떻게 됐지?”
“강수호의 일행을 계속 쫓고 있습니다.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그렇군.”
급한 일은 대략적으로 해결되었다. 시련만 찾으면 끝.
“천마 님.”
“아직 가지 않았나?”
보고가 끝나 갔다고 생각했는데 한예림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뭔가 궁금한 게 있는 듯하다.
“예, 여쭤볼 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실례가 안 된다면 평소에 가지고 계신 구슬에 대해 알 수 있습니까?”
수정 구슬을 말한 것일 터.
궁금하기도 할 거다. 이게 도대체 무엇일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천마도 그건 잘 모른다. 마왕에게 받아 그의 명령대로 잘 보관만 하고 있을 뿐.
“그렇습니까…….”
“아쉬워하지 마라. 100개의 유물을 다 모으고 시련을 클리어하면 이 수정 구슬의 유무를 알 수 있을 거다.”
충고하듯 말했다.
이제 이 짓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간부 훈련은 거의 다 끝났나?”
“예, 죽었던 간부 한 명의 몫 이상은 해 낼 것입니다.”
“좋아.”
그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간부 육성. 다행히 훈련은 끝났나 보다.
‘시련을 발견하기 전에 훈련을 마치다니. 좋다.’
쓴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마음 깊숙이는 그다지 내키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만 쉬겠다.”
“예, 쉬십시오.”
되도록 집에는 혼자 있고 싶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또 그때 그 빌어먹을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테니까.
“너부터 처리해야겠지.”
침대에 누워 이사벨라가 찍은 강수호의 사진을 들었다.
중국 음식을 크게 한 입 먹으려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쫘아악!
찢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 말할 수 있는 이.
하지만 시련을 발견하자마자 죽일 작정이다.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간부 1위를 이기지는 못할 터.
“여기 날씨는 항상 춥군.”
오늘 잠을 자기엔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했다.
소파에 앉아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눈으로 가득 덮인 밖을 보며 멍하니 커피를 들이켰다.
* * *
“드디어 오늘이네.”
“그러게요. 세계 등급을 결정하는 날은 매번 긴장이 되네요.”
일주일이 지난 이른 아침.
다행히 일주일 동안 중국에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중국에 헌터 협회장이 생긴 것? 그게 전부였다.
“후우……. 후우…….”
최서현은 긴장이 되었는지 열심히 쇠를 들었다. 나나호에게 진 것이 분한 것도 있는 듯하다.
“나나호님은 세계 랭커 몇 위 하실 것 같아요?”
“일본에 박혀 있을 때는 훈련을 하지 못해서……. 그래도 20위 안에 들지 않을까요?”
“난 100위 안에만 들었으면 좋겠는데.”
나나호의 목표는 20위.
최서현은 100위 안에만 들었으면 좋겠단다. 그건 강수호도 마찬가지였다.
‘100위 안에는 들겠지.’
10위였을 때와는 다르게 나나호가 약해졌다 한들 그녀를 이긴 적이 있으니, 적어도 그녀처럼 20위 안에는 들 것이다.
간단한 잡담을 끝내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코코만 챙기면 되니까…….’
챙길 건 그닥 많지 않았다. 코코와 여권이 든 가방이 전부.
“갑시다.”
호텔 방을 빠져나와 곧장 경기장으로 향했다.
“히히. 간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이사벨라.
‘공허의 망토’를 사용해서 강수호의 감각으로도 미세한 마기조차 눈치챌 수 없었다.
그런 아이템을 이용하여 그들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