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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70화 (170/225)

제170화

170. 나락(3)

“후루룹! 후루룹! 크으…….”

“…….”

셋만 있는 가게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후루룩 소리.

강수호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강수호가 라멘을 먹는 걸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후우, 다 먹었다.”

텅 빈 그릇을 내려놓고 숨을 뱉었다.

드디어 세 번째 라멘을 해치웠다.

이제 막 마지막 라멘을 해치우려 하자.

“……왜 다들 쳐다보시죠?”

드디어 느껴지는 시선. 배가 좀 불러서 그런지 이제야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자신을 바라보는지 생각하는데…….

“아, 배고프시구나.”

자신만 라멘을 먹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멍하니 강수호를 쳐다보고 있는 걸 보니 라멘을 먹고 싶은 게 분명했다.

“여기 미소 라멘 하나 추가요!”

“예, 손님.”

곧바로 미소 라멘을 시켜 총리에게 전해 주었다.

“드세요, 배고프신 것 같은데.”

“…….”

하지만 강수호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안 드세요?”

“아, 아닙니다. 먹어야죠.”

다시 묻는 질문에 어쩔 수 없이 입 안으로 라멘을 넣는다.

뜨끈한 국물과 탱탱한 면발이 누가 먹어도 맛있었지만.

‘빨리…… 빨리…….’

맛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입에 구겨 넣는다.

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배고파서 먹는 밥과 살기 위해 먹는 눈칫밥.

숨 쉴 틈 없이 입 안에 욱여넣어 얼마 안 가 라멘을 깨끗하게 비웠다.

“크으! 잘 먹었다.”

“…….”

강수호도 그에 맞춰 그릇을 내려놓았다.

국물까지 깨끗하게 마셔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제 이야기해 볼까요?”

강수호가 휴지로 입을 닦고 말했다.

가게에서 음식을 먹느라 꽤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

내일이면 일본을 떠나기에 전에 관광을 즐기고 싶다.

“좋습니다.”

“일단 첫 번째, 제가 분명히 클리어하고 나왔는데 마탄을 쏜 이유부터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전에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만.

강수호의 첫 번째 질문에 앉아 있던 총리와 나나호는 식은땀을 흘렸다.

“왜 다들 벙어리가 되셨어요. 오늘 그 이유 말하러 오신 거 아니었나?”

“…….”

누구 하나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던전을 클리어해 사람이 나올 걸 알고 있으면서 마탄을 쐈다.

“총리님이 시키신 거 아니었어요? 말 좀 해 보세요.”

그릇을 치우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러다가는 평생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다.

“흠흠, 처음에는 실수였습니다. 정말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다음은 고의라는 거잖아?”

“…….”

고의가 확실했다.

문제는 왜 강수호를 죽이려고 했는지에 관한 것.

“왜 절 죽이려고 한 겁니까?”

총리는 강수호의 질문에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가장 강한 헌터를 잃으면 한국에 큰 피해가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큰 피해?”

“예, 아무래도 강수호 헌터가 죽으면 한국에 큰 피해가 가지 않을까…….”

마탄을 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헌터 중 강한 헌터를 없애기 위함.

“그게 끝입니까?”

“예?”

“저한테 마탄을 퍼부은 이유가 그게 다냐고요.”

“…….”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그것이 아니었다. 일본을 다시 옛날로 되돌리기 위한 작은 목표일 뿐.

‘그건 말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칼에 목이 들어와도 이 목표는 말할 수 없다. 차라리 자결을 택하는 게 나을 거다.

“…….”

“왜 말이 없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의 목표가 강수호, 자기 자신 하나만을 죽이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 뒤에는 거대한 목표가 자리 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말하지 않으실 겁니까?”

“그게 아니라…….”

총리가 빠르게 주변 눈치를 살폈다. 말을 하려고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고,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싸우기는 싫은데.’

강수호가 다시 자리에 앉아 인상을 구겼다. 총리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대충 알아낸 것 같다.

스으윽.

그림자 하나가 강수호에게로 빠르게 다가온다.

마치 사람이 조종하듯 강수호 뒤에 위치한 그림자가 단검을 들고 목을 찌르려 했지만…….

스걱!

“크윽!”

단검 끝이 목을 향해 닿기도 전에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림자가 뜯기며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

“데크루.”

“전보다 더 강해졌잖아? 너 뭐 하는 놈이냐?”

‘암살의 대가’라는 재능을 가진 일본의 헌터. 입을 벌려 무어라 말하려는 총리를 보니 대강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것 같았다.

“절 죽이려고 하셨군요?”

“단체로 덤벼!”

강수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리가 도망치며 외쳤다.

가게 전체가 그림자로 뒤덮였다.

‘일을 왜 크게 만드냐고.’

어느새 강수호의 몸 전체를 덮는 그림자들.

원래라면 몇몇 공격을 맞고 반격해야겠지만.

“너무 느리다.”

“……!!”

당황하지 않고 그림자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마탄을 튕겨 낼 때도 이것보다 몇 배는 쉬웠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그림자 팔을 모두 베어내고 몸에 있던 마지막 그림자를 떼어냈다.

“저도 돕죠.”

“괜찮습니다. 혼자로도 충분할 것 같군요.”

예상외로 나나호는 강수호를 공격하긴커녕 도우려 했다.

혼자서도 이 정도의 숫자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기에 사양하고 검을 움직였다.

“코코.”

“응!”

짧은 기간이지만, 오크 대장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사라지지 않던 망설임.

‘여기다.’

망설이지 않는 건 약점을 아는 것과는 달랐다.

전에는 어디를 베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를 베야 상대방이 당황할지, 무서워할지 알게 되었다.

스걱!

“끄아아악!”

그림자를 베어내고 나온 팔을 베어냈다. 피가 터져 나오면서 팔이 떨어진다.

그것이 살육의 첫 시작이었다.

“흐윽!”

“내, 내 팔!”

굳이 죽일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처음 공격해 온 데크루 빼고는 그다지 강한 놈들도 아니었다.

“하윽…….”

“이걸로 만족하셨습니까?”

“가, 강수호 헌터. 그 검부터 내려놓고 진정을…….”

문이 잠겨 있어서 그런지 총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바닥에 앉아 몸을 떨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오줌도 지린 것 같다.

“검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총리의 말대로 검을 검집에 넣었다. 어차피 검을 쓸 필요도 없다.

총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만남은 여기서 끝이니까.

“오늘 제가 하려던 제안은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강수호 헌터!”

총리는 손을 건넨 강수호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었다.

여기서 제안은 끝이다.

“잘 먹었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인사하며 가게를 나왔다.

일본엔 볼 게 많다.

일본 중요 관광지를 다 보려면 내일 저녁 비행기가 오를 때쯤까지 관광해야 할 것 같다.

‘한심한 놈들.’

강수호가 나간 라멘집 가게는 피와 잘린 팔로 처참했다. 가게 주인이 불쌍해질 정도로.

바지 주변에 오줌을 지린 총리를 보며 나나호가 고개를 저었다.

암살자가 들이닥칠 거라는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 오로지 총리 혼자 생각해 낸 계획.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 나나호 헌터! 나를 좀 일으켜 세워주시게! 다리가 풀려서 몸이 움직여지질 않아!”

“데크루에게 부탁하십시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의 계획을 거들 생각은 없다.

오늘의 총리 행동에 일본 자체를 떠날 계획이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다리를 절뚝거리며 방으로 들어오는 총리.

노란 물에 젖은 바지를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꼭 죽여야 한다.’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머릿속에는 강수호를 죽여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의 발전을 위해서는 꼭 없애야 할 인물이었으니까.

“협회 회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전화기로 일본 협회 회장, 류헤이를 불렀다.

모든 걸 총동원하기로 했다. 비판 따위 받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테니까.

“총리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1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류헤이.

전과 같이 굽신굽신하는 모습은 없었지만, 그저 총리의 착각이라 생각하고 전처럼 명령했다.

“강수호 헌터 위치 알아내고 모든 일본의 헌터를 보내거라.”

“……예?”

“다시 한번 말해야 알아듣나? 모든 헌터를 보내 강수호를 죽이라고!”

“…….”

총리가 얼굴을 잔뜩 붉혔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계속 물어보니 짜증 날 수밖에.

머리를 식히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죄송합니다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뭐? 지금 당장 죽고 싶나?”

류헤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개처럼 자신을 믿고 따르던 협회 회장의 거절에 눈을 크게 떴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군.’

총리의 말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거절해서도 안 되고.

그것이 총리가 류헤이를 일본 협회 회장으로 만들어 주면서 받아낸 약속.

그걸 어겼으니 일본 협회 회장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바뀔 것이다.

‘기사 보도는 지나가던 각성자 괴인에게 칼 맞고 죽은 일본 협회 회장이 좋겠군.’

기사의 제목까지 정하고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네. 기사를 하나 내줬으면 좋겠는……?!”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끊겼다. 실수인가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도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거지?’

총리가 되기 전부터 친했던 기자가 일부로 전화를 끊고 있었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셨습니까?”

“뭣이?”

당황해하는 총리를 향해 점차 다가오는 류헤이. 총리를 쳐다보며 차근차근하게 설명해 주었다.

“당신의 시대는 끝입니다.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

류헤이가 방금 막 보도된 따끈따끈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오늘 가게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

강수호가 검을 휘두르는 장면은 없고 그림자가 검을 들고 강수호를 위협하는 장면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 조작이다! 조작이란 말이다!”

“조작이더라도 당신은 이미 모든 걸 잃었습니다.”

조작이더라도 상관없다. 총리는 이미 일본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잃었다.

여기서 다시 그의 세력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다. 이미 똥 밭에 구르다가 잔뜩 굳어 씻어낼 수도 없으니까.

“당신과 함께해서 영광이었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안 된다. 제발!!”

류헤이가 마나가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권총을 꺼냈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 총리 정도면 권총 하나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편히 주무십시오.”

소음기를 낀 권총에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았다.

타앙!

털썩!

“…….”

총리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힘없이 쓰러졌다.

모든 힘을 잃고 ‘총리’라는 겉 권력만 남은 남자의 죽음을 사고로 처리하는 것쯤은 쉽다.

“처리해라.”

“예, 회장님.”

어느새 다가온 직원들이 총리의 시체를 처리했다.

바닥에 뿌려진 피까지 처리하고 나서야 직원 한 명이 물었다.

“강수호 헌터와 나나호 헌터는 어떻게 할까요?”

“애초에 그들은 우리가 상대할 사람이 아니었어. 내버려 둬.”

“알겠습니다.”

강수호 헌터를 더 괴롭힐 생각은 없다. 일본을 떠난 나나호 헌터도 잡을 생각이 없고.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면 복구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들어진다.

‘총리처럼 될 수는 없지.’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써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류헤이는 정리가 끝난 텅 빈 총리실을 쳐다보다가 방을 빠져나왔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쌓으려면 바빠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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