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69화 (169/225)

제169화

169. 나락(2)

“……사실인 건가? 취이익?”

“사실이니까 제가 이걸 들고 온 거죠.”

“말도 안 되는…… 취이익.”

모든 설명을 들은 고블린 족장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레이스는 다음 고블린 족장, 페일럿에게 죽기 전 모든 걸 물려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몇 만 년 뒤의 후손이 나타나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다니.

“믿을 수 없구나. 취이익.”

아무리 설명을 자세히 들었다 해도 믿을 수 없었다.

깊은 의심을 했으나, 강수호가 보여준 물건에 의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이걸 보여 주시면 확실히 아실 거라 말하더군요.”

“뭘? 취이익.”

지금 당장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천이 스르륵 펴졌다.

그 천에는 누군가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의 그레이스와 똑 닮은 얼굴과 초록색의 몸.

“족장님이네요.”

“…….”

다시 한번 주변이 일동 침묵에 잠겼다.

이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없나 보다. 그림의 형태가 완전하진 않지만,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다.

“전할 건 다 전한 것 같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전할 건 다 전했으니,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마을에 도착하여 차원 이동을 사용했다.

호텔에 돌아가도 훈련 말고는 마땅히 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곧 있으면 올 텐데…….’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강수호는 침대에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기대하면서.

‘정말 말대로 될까?’

그레이스에게 유물을 전해 주고 현실로 돌아온 지 벌써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 된다.

‘밥이나 먼저 먹어야지.’

점심때도 안 오는 것 보면 정말 오지 않으려는 것이거나, 저녁에 올 듯했다.

“라멘 먹어야…….”

식사를 하러 문을 열고 나서자.

“강수호 헌터님.”

“나나호 헌터? 무슨 일입니까?”

어느새 나나호가 강수호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온 걸 보면 전달할 내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점심에 시간 있습니까? 강수호 헌터님.”

“예, 마침 밥 먹으러 갈 예정이었습니다.”

예상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마침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려던 차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밑으로 내려가시면 리무진 한 대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나나호가 허리를 90도로 숙였기에 그의 제안을 따르지 않기도 뭐 했다.

“밥은 그쪽에서 삽니까?”

“아, 예! 총리님께서 헌터님이 원하는 쪽으로 가겠답니다.”

총리까지 직접 온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내려가죠.”

“감사합니다!”

총리가 직접 만나겠다는 것은 당연히 일본의 대표로서 사과하겠다는 것일 터다. 하지만 바보 같이 당하지만은 않을 거다.

‘나락 갈 준비나 해라.’

공격을 당하고 방어만 하는 바보는 없다.

방어에 성공했으면 공격해야 하는 법.

그녀 몰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 * *

딱딱.

다리를 떨고 손톱을 깨문다. 어찌나 긴장되었는지 양손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초, 총리님!”

피를 본 비서가 다급하게 총리의 입에서 손가락을 뺐다. 그러고는 손에 잔뜩 묻은 피에 손수건을 건넸다.

“여기 손수건 있습니다.”

“고맙네. 후우, 총리가 됐을 때보다 더 긴장 되는군.”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고 지혈했다.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물어뜯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텐데.’

A급 솔플 던전이 클리어되던 날, 일본 제국의 날은 우주 끝까지 사라졌다. 지금은 일본을 밑바닥까지 가지 않게 붙잡는 방법밖에 없었다.

‘언제 오냐…… 언제 오냐…….’

손톱을 뜯는 건 멈추었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다리를 계속 떨었다.

“쯧쯧.”

멍청한 그의 모습에 사무실을 나간 비서가 혀를 찼다.

야망과 망상에 가득 차 옛날, 강력했던 일본처럼 만들겠다던 총리.

‘개소리지.’

개소리보다 더할 거다.

일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내세울 게 애니, 만화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망상을 하고 있을 시간에 펜이나 잡지.”

망상에 빠진 총리의 모습에 아쉬울 뿐이었다. 옛날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으니까.

“일이나 하자, 일. 나 살기 바쁜데 지금 누굴 신경 쓰는 거야.”

총리 비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저 대머리만 보면 두통이 왔으니까.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떤 업무가 나를 기다리…….”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 키보드 자판에 손을 올리자.

띠리링!

책상에 있던 비서 공용 전화기가 빠르게 울려댔다.

“여보세요?”

망설임 없이 전화기를 잡았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라고는 그 여자밖에 없다.

-비서님, 나나호입니다.

“나나호 님!”

예상했던 대로 전 세계 10위 헌터, 나나호인 걸 눈치채자 흥분감을 감췄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수호 헌터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멍청한 총리 대신에 그녀가 먼저 강수호를 만나러 갔다. 사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번 일을 만회하기 위해서.

‘만약 그 헌터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본은 완전 나락으로 간다.’

강수호 헌터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가 일본 측에서 사람에게 마탄을 쏘는 걸 알아 버렸으니…….

전화기에서는 한참이나 침묵이 이어지더니.

-다행히 허락하셨습니다.

“저, 정말 다행입니다!”

총리를 만나겠다는 것을 허락했단다. 일본이 나락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다행이다.’

몇 달 전에 힘들게 얻은 일자리를 잃을 뻔했다.

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정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그쪽 가게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총리의 체면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이 건물 주변에는 벌써 기자들이 깔려 있으니, 최대한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쿵!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곧장 총리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아직도 불안감에 휩싸여 다리를 떠는 그가 보인다.

‘이런 놈이 일본의 총리가 돼서는…….’

조금 밉긴 했으나, 지금은 총리의 비서. 그를 향해 방금 전해 들은 내용을 입에 열었다.

“총리님, 정확히 오후 1시에 강수호 헌터가 만나잡니다.”

“……정말인가?”

“예, 방금 강수호 헌터에게 간 나나호 헌터님에게 전달받은 이야기입니다.”

“……!!”

힘이 없던 총리가 눈을 크게 떴다.

불안감이 사라진 듯, 다리의 떨림이 멈추었다.

“역시 일본의 왕은 아직 죽지 않았군.”

“…….”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비서가 혀를 끌끌 찼다.

일본은 죽어가고 있다. 지금 전세계에서 흘러나오는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흐하하! 그럼 기다리도록 하지. 차 한 잔 내어줄 수 있겠나?”

총리는 강수호 헌터가 직접 오는 걸로 알아들었는지, 거만하게 웃어댔다.

비서가 사실을 직시시키기 위해 날카롭게 말했다.

“총리님이 직접 가셔야 합니다.”

“뭐라?”

비서의 말에 총리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아직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나 보다.

“총리님, 일본 언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우리나라를 욕하고 있습니다.”

태블릿을 열어 다양한 언어가 적힌 기사를 보여 주었다.

기사들은 모두 일본을 욕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기사의 수가 너무 많아 자국의 힘으로는 모두 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며칠 전만 해도 총리님이 위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완전히 밑입니다.”

“…….”

그에 총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현실을 피하기 위한 쓸데없는 자존심이 사라졌다.

다시 다리를 떨고 머리를 짚으며 물었다.

“그래서 강수호 헌터가 말한 장소는 어디지?”

꿀꺽.

고인 침을 삼키며 긴장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권력이 높은 사람이 자리를 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몰래 암살할 계획인가?’

그 자신의 안전을 위해. 상대가 정한 약속 장소에 저격수가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으니까.

고층 빌딩일수록 그 확률은 높았다.

조심스레 물어보자.

“어…… 유명한 돈코츠 라멘 집입니다. 한 시간은 줄을 서야 족히 먹을 수 있다고…….”

“…….”

고층 건물이 아니었다.

1층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작은 돈코츠 라멘 집.

그곳이 총리를 만나는 장소로 정해졌다.

* * *

“오오.”

리무진을 타고 도착한 작은 가게 하나.

인터넷으로 봤을 때는 한 시간 넘게 줄 서야 입장할 수 있다는 가게가…….

“닫혀 있는데요?”

굳게 닫혀 있었다.

‘open’이라고 적혀 있어야 하는 가게가 ‘close’로 적혀 있었다.

“배고픈데.”

오늘 총리와의 약속 장소를 바로 여기 돈코츠 라멘 가게로 정했다.

가게가 닫혀 있으니, 다른 데를 알아봐야 하나 싶었는데…….

“강수호 헌터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닫혔는데요?”

“가게를 통째로 빌렸습니다.”

close라고 적힌 이유가 있었다.

유명한 돈코츠 라멘 가게를 빌린 것이다.

물론 가게 주인은 안에 있다.

똑똑.

“문 닫았습니다.”

가게 문을 두드리자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정말 영업을 종료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례합니다. 예약한 사람입니다.”

“가게 통째로 빌리신 분?”

“예, 맞습니다.”

예약한 사람이라 말하자 가게 주인의 태도가 달라졌다.

주인이 가게 밖으로 나와 닫힌 가게 문을 열고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무슨 라멘으로 하겠습니까?”

곧장 질문이 시작되었다.

가게 메뉴판을 보니 라멘은 대표 메뉴 네 가지.

밑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라멘에 추가할 것들.

“일단 미소, 간장, 소금…….”

기본 메뉴들은 모두 시켰다.

라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일.

기다리는 강수호를 향해 나나호가 말했다.

“총리님께서는 금방 도착하실 겁니다.”

“아, 예. 천천히 오라고 하시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총리가 오든 말든 강수호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까. 총리도 그런 것 같고.

“라멘 나왔습니다.”

몇 분 정도 기다리자 종류별로 뜨끈한 라멘이 나왔다.

구수하면서 짭짤한 냄새가 가게 안에 가득 퍼졌다.

‘맛있겠다.’

침이 절로 흘러나왔다.

냄새만 맡아도 꽤나 맛있는 라멘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후루룹!”

나오자마자 미소 라멘 국물부터 맛보았다.

구수한 맛이 입을 타고 넘어와 코끝을 친다.

‘맛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호텔에서 먹던 음식도 맛있었지만, 그와는 격이 다르다.

“나중에 또 와야지.”

계속 생각날 것 같은 맛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먹는 데 집중하고 있자…….

“강수호 헌터님.”

그녀가 조심스레 강수호를 불렀다.

그릇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시선을 주자.

“총리님께서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예상외로 빨리 왔네요.”

일본의 최고 권력을 가진 총리가 도착했단다.

다 먹은 미소 라멘 그릇을 옆으로 두고 간장 라멘을 먹는다.

“들어오시라고 하십시오.”

“아…… 예!”

그와 동시에 총리를 가게 안으로 들이게 했다.

아마 가게를 통째로 빌린 이유도 그 때문일 터.

“총리님, 들어오십시오.”

그녀가 얼굴을 살짝 내놓고 말하자 곧이어 총리라는 이가 들어온다.

손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눈으론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다. 겉으로만 봐도 불안하고 긴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자 먼저 고개를 숙인다.

“그때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저희 자위대가…….”

그리고 이어지는 사과와 이유까지.

한참 설명이 이어지고 있던 그때.

“정식 사과를 위해 저희가 보낸 기자…….”

“밥 좀 먹고 말하죠.”

먹고 있는데, 다른 걸 할 여유는 없다.

총리의 주먹이 꽉 쥐어졌지만, 별수 없었다. 강수호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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