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167. A급 솔플 던전(4)
‘언제쯤 끝나려나…….’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쪼르륵 마셨다.
벌써 2주나 지났지만, 강수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던전도 사라지지 않았고.
“케이크라도 먹어야지.”
카운터에 가 작은 조각 초코케이크를 시켰다.
‘맛있겠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초코케이크가 오길 기다렸다.
진동벨이 울리길 기다리고 있는데…….
띠리링!
“음?”
바지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싶어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자.
“누구지?”
알 수 없는 번호였다. 휴대폰도 바꾸지 않아 웬만한 번호는 모두 저장되어 있는데.
“진짜 누구지.”
일단 초록색 버튼을 당겨 전화를 받아보기로 했다.
가끔 중요한 사람인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가 있다.
“누구세요?”
한국말로 물었다. 전화의 주인이 누구냐고.
그러자 곧장 답장이 들려왔다. 일본어로.
-반갑습니다, 일본 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류헤이라고 합니다.
“일본 협회 회장?”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목소리, 이름. 확실히 일본 협회장이 맞았다.
“무슨 일이시죠. 이렇게 전화한 거 보면 중요한 일일 텐데.”
개인 전화로 전화하는 것 보면 중요한 일이 생긴 게 확실했다.
헛기침 소리가 들려오더니 대답이 돌아왔다.
-실례가 안 되신다면 이성 그룹 회장님의 딸이 맞으십니까?
“예, 제가 최서현입니다.”
-혹시 이성 그룹에서 일본에 아이템 공급을 멈춘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이템 공급을 멈춘 이유. 그걸 알고 싶은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가.’
그거라면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아빠에게 이미 들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본 측에서 물약을 걸고 협박을 해 왔더군요.”
-하하, 저희도 워낙 급했던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최서현은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솔플 던전이라 일본의 전력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하.
“…….”
한참 침묵으로 일관하자 일본 협회 회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혹시 아이템을 공급해 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아이템을 공급해 달라는 말. 아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음에도…….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좋은 선택…… 예?
“힘들 것 같다고요.”
최서현은 협회 회장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거절.
‘어째서?’
거물의 딸이기에 알 것이다.
협회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그녀에게도 상당한 이득이 떨어질 거라는 걸.
‘멍청한 거 아니야, 우리가 싫은 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설득하기 위해 말을 이으려던 찰나…….
띠띠띠.
“……빌어먹을.”
전화가 끊겼다.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만 갈 뿐이었다.
“할 수 없군.”
이 사실을 총리님에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결할 수 있는 이가 그밖에 없으니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띠리링.
띠리링.
“음? 뭐야?”
자위대와 거의 모든 준비를 마칠 때쯤 걸려오는 전화.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으나, 전화 주인을 확인한 후, 무시할 수 없었다.
“협회 회장이 갑자기 웬 전화질이지?”
뭔가 싶어 초록색 버튼을 끌어당겼다. 또 어떤 걸 전달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야?”
A급 솔플 던전 주변을 둘러싼 자위대.
민간인들에게는 이미 설명이 모두 끝난 상황. 클리어되거나, 던전화가 되면 바로 발포할 생각이다.
궁금함과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묻자.
-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뭐? 다른 나라가 우리 일본에 마석, 아이템 공급을 끊기라도 했다는 건가?”
-아, 알고 계셨습니까?
“……뭐?”
당황스러워하는 류헤이.
그 말투에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그래서?”
-예, 예?
“그래서 어떤 나라가 우리 일본 제국의 공급을 끊었냔 말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 빌어먹을 나라가 어디냐고. 당장 물약 공급을 끊을 계획이었다.
-한국입니다.
“뭐?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한국이라고?”
-예, 맞습니다.
일본이 지배하려 했던 한국이란 나라. 그 나라에서 아이템 공급을 완전히 끊었단다.
“이유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최서현 헌터와 관련 있어 보이는데…….
“최서현 헌터?”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2주 전에 카페에서 직접 만난 것이 기억났으니까.
“전화는?”
-해 봤습니다. 하지만 통화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제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더군요.
“젠장.”
아무도 없는 구석진 곳에 박혀 머리를 짚었다.
귀찮아진 정도가 아니었다.
‘상당히 피곤한 일이 생겼군. 애용하던 아이템 공급이 끊기다니.’
일본 던전 토벌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렇다면 그들도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그렇다면 우리도 물약 공급을 끊겠다 전해라.”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 계획을 진행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괜찮아, 그쪽이 먼저 들어왔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나?”
물약 공급을 하지 않는 것.
인과응보.
바보가 되는 건 싫다.
-알겠습니다. 물약 공급 기업들에게 전달해 놓겠습니다.
“그래, 이만 끊도록 하지. 언제 강수호 헌터가 나올지 모르거든.”
곧장 전화를 끊었다.
정확히 1시간 뒤면 던전화가 진행된다.
“모두 마탄을 장전해라!”
총리가 뒤에서 눈치를 보내자 자위대 병사들이 마탄을 장전했다.
S급 헌터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탄환. 물론 흔한 건 아니었다.
‘힘들게 개발한 보람이 있군.’
마탄 하나 만드는 데 한국 돈으로 약 1억 원이 든다. 큰 출혈이 예상되지만, 더 큰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다.
‘강수호 헌터라도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던전 내에서 죽었으면 더 좋고.
혹시 몰라 자위대의 총에 마탄을 넣은 거니까.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있어야겠군.”
아직 던전화가 이루어지려면 멀었다.
담배를 태우려 얇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 하자.
슈아아악!
“으읍!”
자위대가 있던 쪽에서 순간적으로 파란빛이 터졌다.
솔플 던전 옆에 있던 자위대도 거기서 발생한 충격파로 인해 넘어졌다.
“으으……. 뭐야?”
류헤이는 쓰러진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쑤시긴 하지만, 일어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켜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쓰러진 자위대 병사들.
‘던전이?’
어느새 사라진 던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봐도 솔플 던전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던전화가 진행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자.
“어우, 힘들어.”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플 던전을 떠맡긴 남자. 강수호 헌터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뭐, 뭐야?”
“뭐긴 뭡니까? 솔플 던전 직접 클리어했잖아요.”
질문에 대답하며 한껏 미소를 지었다.
강수호는 놀란 총리를 무시하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음? 자위대?’
주변에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 자위대. 쓰러진 모습을 보니 던전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던 것 같다.
대충 둘러본 것으로도 느낌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오면 바로 쏘려고 했었나? 마탄 같은데…….’
총 안에 장전된 총알에서 희미한 마나가 느껴졌다.
멀리서 볼 때는 희미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강한 마나가 느껴진다.
‘마탄이네.’
확실히 마탄이다. 그것도 뛰어난 사람이 만들어 낸 마탄.
‘위험할 뻔했어.’
차원 이동할 때의 파동이 없었더라면 벌집이 될 뻔했다.
2주나 던전에 있어서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듯하다.
원래라면 지금 당장 총리에게 다가가 지금 상황에 대해 따져 물어야 했지만.
“하암, 피곤하네.”
눈이 서서히 감긴다.
2주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일단 호텔로 돌아야겠네.”
힘이 빠진 두 다리를 움직여 호텔로 가려 하자.
“모, 몬스터다! 쏴라!”
“……??”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노리쇠를 당기는 자위대 병사들. 그리고 곧장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투쾅!!
투쾅!!
평범한 총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대포를 쏜 듯한 소리가 일본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탄을 맞고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까 궁금할 정도의 거대한 소리.
투쾅!!
“괴물을 죽여라!”
“흐흐흐흐.”
총리가 자위대의 모습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맞추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게 해결되었다.
“드디어 죽겠군. 다행이야.”
S급 헌터, 강수호조차 마탄을 맞고 살아남지 못할 거다. 솔플 던전 안에서 몇 배는 더 강해지지 않는 이상은.
‘일단 귀찮은 것 두 개는 해결했구나.’
기뻐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일본이 골치 아파했던 A급 솔플 던전과 한국의 괴물.
두 개를 동시에 잡아냈으니까.
‘조선놈 기업들이 좀 귀찮긴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무리하게 두 칸씩 계단을 걸을 필요는 없었다.
조심스레, 천천히, 안전하게 걷는다면 늦는다고 해도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어 있었다.
“후우……. 오늘 날씨가 정말 맑군.”
하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방긋 웃었다.
옛날의 일본 제국이 드디어 명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늘은 묵혀 두었던 술을 진탕으로 마셔야겠…….”
한참 행복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끄아아악!”
“뭐, 뭐야? 일점사 하지 말고 막 뿌려대! 상대는 A급 솔플 몬스터다!”
“……??”
상상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탄을 쏘는 방향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피하고 있어?’
마탄을 모두 피하고 있다는 걸.
‘뭔 이런 괴물이…….’
신기하다 못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총알보다 몇십 배는 빠른 속도의 마탄을 가뿐하게 피해 낸다. 그와 동시에 검으로 병사들을 차분하게 베어낸다.
‘이제는 안 보여.’
더군다나 점점 속도가 빨라져 이제는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바닥에 털썩 앉았다.
“하하하하.”
그러고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죽여! 몬스터가 시민들에게 가기 전에 잡아…… 커헉!”
“몬스터 아닌데 왜 계속 몬스터라고 하는 거냐?”
마지막 남아 있던 일본의 자위대 대장까지 목숨을 거두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여 잔혹해 보일 수 있었다.
사람을 학살하는 강수호를 봤다면 그런 말이 나왔겠지만…….
“마, 마탄?”
“저걸 몬스터라고 생각했다고? 미친 거 아니야?”
“……젠장.”
경찰이 주변에 펜스를 치고 막고 있다고는 하나 일본 시민들 또한 이곳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골칫거리였던 A급 솔플 던전을 클리어해 준 헌터를 향해 마탄을 쏘아대던 그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