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66. A급 솔플 던전(3)
“그래도 괜찮겠어?”
“괜찮다. 취이익.”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오크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겉으로 보면 식량이 넘쳐날 것 같은 숲.
“이 차원도 점점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다. 취이익.”
“생명력?”
“모르고 있는 건가? 모든 차원에는 생명력이 존재하지. 취이익.”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차원 수명이 얼마인데?”
“대략 일만 년이지. 지키는 종족마다 다르긴 하지만. 취이익.”
“…….”
차원의 수명이 대략 일만 년이란 소리에 놀랐다.
‘일만 년이 넘었다고 했는데?’
스승님들이 살고 계신 그 차원이 최소 일만 년이 넘은 것으로 들었으니까.
차원에 있는 존재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최소 일만 년.
“일만 년이 지난 차원은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 되냐고? 취이익.”
예상이 되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조심스레 물었다.
“조각조각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취이익.”
“…….”
차원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죽고 가루가 된다.
그렇기에 오크들도 급하게 차원을 옮기려고 하는 것.
“그렇구나……. 뭐 도와줄 거 있어? 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도와줄까 싶은데.”
지금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먼저 신경 쓰기로 했다.
오크 대장의 말대로라면 던전을 지키는 이들이 차원을 옮기면 던전도 사라진다고 한단다.
“도움은 괜찮다. 도움받아야 할 건 우리가 아니라 넌 것 같은데? 취이익.”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무슨 소리야?”
오크 대장이 뜬금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오히려 도움받아야 할 대상이 강수호라니.
처음에는 의문을 가졌다.
‘뭔 소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
강수호의 목을 향해 단단하고 거대한 도끼가 휘둘러졌다.
목이 베일 뻔했지만.
깡!
“깜짝이야.”
어찌어찌 코코를 꺼내 막아냈다.
깜짝 놀란 감정을 뒤로 하고 곧장 화를 냈다.
“뭐하는 짓이지?”
습격은 했지만, 더 이상의 화를 부르지 않기로 약속했다. 서로 그것이 이득인 걸 잘 아는 상황.
오크 대장의 행동이 의아하면서도 잔뜩 화가 났다.
그 질문에 오크 대장이 곧장 도끼를 수거하며 대답했다.
“자네의 검은 힘, 정확도, 세밀함. 무엇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지. 취이익.”
힘에 관한 내용이었다.
잠시 말을 끊은 오크 대장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망설임이 보이더군. 취이익.”
“망설임?”
벼룩만큼 작은 크기였지만, 얼핏 보이는 망설임.
“스승님한테 직접 훈련받았는데, 망설임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오크 몇천 마리를 불러와도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쓸어 버릴 수 있는 괴물 같은 오크 대장이 그런 말을 하니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승님들이 꽤나 강한가 보군. 취이익.”
“강한 수준이 아니야. 절대적이지.”
오크 대장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이란 경험, 강함과 직결되지 않는다.
“망설임이란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서서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
하지만 강수호에게는 작은 망설임이 보였다.
“아마 그것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겠지? 취이익.”
“후우, 그래. 스승님들도 이건 도와줄 수는 없는 부분이란다.”
코코를 검집에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뼈를 때려 버렸다.
강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크 대장이 이번에는 천천히 도끼를 건넨다.
“그걸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다. 취이익.”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자신이 직접 해결해 줄 수 있다며 말이다.
스승님조차 자기 힘으로 넘어야 하는 벽을…….
‘거짓말인 건가? 뒤통수에 도끼를 박으려고?’
거짓일 거라 예상했다.
오크 대장은 스승님보다 한참이나 약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앓고 있는 부분을 해결해 주리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르쳐주는 건 아니네. 취이익.”
“그러면?”
“운동을 해 봤으면 알 테지만, 자네 단백질이란 개념을 알고 있나? 취이익.”
“그럼, 당연한 말씀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근육을 키우려면 근육을 찢고 쉬어줘야 하지. 하지만 여기서 ‘단백질’이란 보충제가 없어서는 안 되네. 취이익.”
“아하…….”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오크 대장은 강수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려는 게 아닌 단백질처럼 가는 길을 보충만 해 주겠다는 거다.
“그런 방법이 있어?”
“당연하지. 오크란 모름지기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종족의 한계지. 취이익.”
“종족의 한계…….”
들어본 적 있었고, 본 적도 있었다.
스승님이 키웠던 말하는 고블린들의 한계를.
“그 길을 내가 인도해 주지. 취이익.”
“…….”
오크 대장이 깨워준단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밑의 백성 오크들이 증거였다.
잠시 고민하던 강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기 전에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 *
“흠……. 신기하군. 벌써 2주가 흘렀는데, 던전이 클리어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어.”
“죄송합니다. 뭐라 들일 말씀이 없습니다.”
“어휴, 싹 다 갈아 치우든가 해야지. 잘하는 게 도대체 뭐가 있냐?”
연기를 잔뜩 내뱉은 총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무리 늦어도 하루. 그 안엔 던전이 원상태로 돌아와야 한다.
원래는 던전 내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어야 했으니까.
‘뭐지……. 왜 성안에 있는 거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뛰어난 연구원들과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낸 던전 위치 추적기가 2주가 지난 지금도 성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너희의 생각은 어떻지? 이 조선 노예가 클리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클리어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돌겠군.”
예상대로 답변이 나왔다.
이전에 던전에 들어갔던 130명의 헌터들은 하루도 채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강수호는 던전 내로 들어간 지 하루는커녕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으니까.
“흠…….”
연기를 길게 뿜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가면 클리어 가능성은 99.9%.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자위대를 부르는 게 났겠군.”
일본의 군사 조직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고.
“하지만 상대방은 S급 헌터입니다. 총알은 소용없을 텐데…….”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헌터한테 총알 따위 안 통한다는 것.”
하지만 헌터에게 총알은 그저 빠른 쇠일 뿐.
그건 총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헌터에게만 통하는 무기.
“마탄을 사용하는 게 좋겠구나.”
“이번에 만든 마력 탄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이놈아. 저번 년도에 개발한 무기.”
자위대를 사용할 거다.
헌터들에게 통할 만한 무기를 들고 던전 주변을 둘러싸도록 하려는 계획이다.
“마탄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던전 주위에 둘러싼 거지. 일반인들이 던전이 던전화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두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입으로 ‘타앙!’ 소리를 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쏘는 거지. 만약 던전화가 이루어졌다면, 바로 헌터들을 투입하고.”
“대단하시군요. 곧장 협회 회장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되도록 빠르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총리의 말에 곧장 일본 협회 회장에게 달려갔다. 이 사실을 빠르게 알려야 했으니까.
‘일본 제국의 번영을 위해서!’
곧장 차에 올라 협회 건물로 향했다.
비서의 허락을 받고 협회 회장실로 들어오자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류헤이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생각할 일이 많아 좀 쉬고 싶은데.”
“총리님께서 드릴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초, 총리님께서?”
총리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그의 손이 작게 떨렸다.
S급 헌터의 힘 따위, 총리의 말 한 마디에 모두 무너질 테니까.
“무슨 말이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자신이 죽인 전 회장처럼 자신 또한 눈앞의 부하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잔뜩 긴장감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총리님께서 자위대를 동원하신다고 합니다.”
“자위대? 일반 화약 무기로는 상대가 안 될 텐데?”
“당연하죠! 그래서 이번에 제작한 마력 탄(마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오호, 그거 꽤 좋은 방법이군.”
2주 동안 계속 고민만 하던 그보다 몇 배는 좋은 방법에 감탄사를 내뱉자 부하의 표정이 밝아진다.
“자위대와는 연락을 취했나?”
“예! 한 시간 전부터 연락을 취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총리님이군.”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했다.
“언제쯤 배치한다고 말씀했나?”
“아마 바로 오늘 배치할 예정인 것 같습니다. 나오면 바로 쏴야 하니까요.”
“좋군. 알겠다. 이만 가 보거라.”
“옙! 쉬십시오!”
쿵!
곧이어 문이 굳게 닫힌다.
다시 조용해진 협회 회장실.
“귀찮은 일을 하나 해결했군. 다행이야.”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은 기미가 보이니까.
“마탄으로도 안 되면 헌터들이 나서면 되니…….”
자위대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에 강수호에 대한 걱정을 미뤄두기로 했다.
“이게 문제인데…….”
컴퓨터 책상에 앉은 그가 머리를 짚었다.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익숙한 문양.
‘이성 그룹이랑 대한 그룹이 왜 갑자기 끊는다는 거지?’
이성 그룹과 대한 그룹은 작은 나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명한 기업.
그 기업이 자기들이 만든 아이템들을 모두 수출하지 않겠다는 거다.
‘빌어먹을.’
입술을 잘근 씹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약은 일본이 최고라지만, 아이템은 한국이 최고라고.
그렇기에 S급 헌터가 없어도 크게 무시 받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아이템 공급을 끊은 거야?’
한국 기업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이렇다고 해서 두 기업 측에서 이득 보는 건 전혀 없을 터.
‘이걸 알렸다가는 총리님에게 된통 깨지겠군. 아니, 잘하면…….’
좋지 않은 상상이 들었다.
친한 부하 한 명이 목에 검을 박아 넣는. 자신이 했던 만행과 같은 끔찍한 일이 상상됐다.
“으으, 안 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다.
부하의 손에 죽을 수는 없을 테니까.
“비서.”
“예, 류헤이 협회 회장님.”
곧장 비서를 불렀다.
이성 그룹의 본사로 가려던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조금 더 편하면서 효율적인 방법을 실행할 것이다.
“이번에 일본으로 관광 온 이성 그룹 딸 있지?”
“예, 그렇습니다. 2주 전부터 와 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총리와 카페에 있을 때 만난 이성 그룹의 딸.
여자와 술 같은 일방적인 접대는 먹히지 않겠지만.
“그분한테 내가 좀 뵙고 싶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
이번에 일본이 직접 개발 중인 뛰어난 물약.
‘기업가 딸이면 그 샘플이 얼마나 좋은지 알겠지.’
엘릭서와 맞먹을 정도의 물약. 아마 그 물약을 본다면 강남에서 팔렸던 SSS급 최상급 물약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터.
‘소설이나 보면서 기다려야겠군.’
그는 그저 연락이 오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으며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