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163. 유물(3)
‘강수호 헌터?’
저녁 먹고 곧바로 훈련을 시작했던 나나호. 훈련에 집중한 나머지 시간을 보지 못했지만, 의외의 이득을 불러왔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강수호 헌터를 보게 된 것.
‘물어볼 게 많았는데, 마침 잘 됐다!’
그녀는 일본 협회 측에서 강수호를 죽이려 한다는 걸 모르고 있다.
같이 훈련하는 게 어떻냐고 물으려 하자.
“대련할 수 있으십니까?”
“예? 대련이요?”
강수호가 일본 말로 대련할 수 있냐고 물었다.
뜬금없는 대련에 당황하긴 했지만.
“좋습니다!”
거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훈련보다 몇 배는 좋았다.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거든.’
얼마나 강한지 알기 위함이다.
과연 세계 10위 헌터를 이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상대해 주겠어.’
나나호는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두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에 바람부터 시작해서 얼음, 불, 물까지 다양한 자연들이 떠 올랐다.
‘신기하네. 동영상에서만 보던 건데.’
강수호는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해했다.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동영상에서도 봤었고, 엘프 스승님에게서 배운 적도 있었다.
‘정령의 힘이랑 비슷하네.’
하지만,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일단 집중하자.’
검을 꺼내 들며 집중했다.
상대방의 힘이 궁금한 건 좋으나, 지금은 대련의 시간.
아무도 없는 훈련장 가운데 서자 긴장이 고조 되었다.
“…….”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나나호가 바람으로 날아오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다양한 자연을 다루는 그녀. 희귀한 재능답게 공격도 변칙적이었다.
“윈드 브레스!”
바람과 불을 섞어 두 손에 합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이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졌다.
“기본 보법.”
보법을 이용하는 것과 동시에 몇 배는 더 정교해진 검을 휘둘러 불길을 베어내고 뒤로 빠져나왔다.
‘음? 안 와?’
그 모습에 그녀가 상당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보통 불길을 뚫고 나가면 바로 카운터를 노리게 마련. 그렇기에 발에 얼음 송곳니까지 준비했었는데.
‘눈치가 빠른 건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로 얼음을 흡수했다.
이번에는 물과 얼음을 꺼냈다. 훈련장 허공에 물을 뿌렸다.
“얼어라.”
그리고 곧장 얼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윈드.”
바람까지 이용하자 날카로운 얼음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걸 버틸 수 있을까?’
나나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강수호가 과연 이걸 버틸 수 있을까.
얼음 공격은 S급 헌터의 공격과 비등했다. 혹시 몰라 바람을 가속 시켜 날려 보내자.
“발검.”
“발검? 갑자기?”
강수호가 평범한 검술을 펼쳤다.
조금 달라진 것 같아 기대했는데, 변함없는 모습에 조금은 안타까워했으나.
핑.
“……?!”
그 안타까움은 곧이어 사라졌다.
후두둑.
“이게 왜?”
조각 얼음들이 모두 떨어졌다.
그것도 모두 반으로 갈라진 상태로.
‘뭐야?’
더군다나 강수호에게서 헌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유물의 힘이 느껴졌다.
‘저 검이 유물인가?’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저 무기가 유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소 차고 다니던 전용 무기뿐.
‘잘못 느꼈겠지.’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저 잘못 느꼈다고 생각하고 얼음과 물을 동시에 소환했다.
푸화화화!!
순간적으로 수증기가 낀 훈련장.
불과 물이 닿아 생긴 수증기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헌터의 눈으로도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고작.
‘나는 아니지.’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주변이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이고 있었다.
강수호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천천히 목을 조여야겠어.’
나나호가 계획했던 대로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시야를 뺏었으니 이제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파아악!
발에서 생성되는 거대한 얼음 송곳니.
얼음 송곳니를 훈련장 천장에 닿고.
쾅!!
“떨어져라.”
그대로 얼음 송곳니의 연결 부분을 내려쳤다.
그에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작은 얼음 송곳니들.
콰직!
콰직!
얼음 송곳니를 떨어트려 공격도 하고, 떨어지는 소리로 인해 그의 청력도 앗아갔다.
마지막에는 몸까지.
“윈드.”
휘이이잉!
태풍보다 몇 배는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균형 감각까지 앗아가서 이제 끝이라 생각했다.
‘별거 아니네. 그래도 이 정도쯤은 벗어날 거라 생각했는……!!’
쩌적.
그를 가두었던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갈라져 나나호는 그의 공격을 받아칠 준비할 새도 없었다.
“……!!”
“너무 뻔합니다.”
여러 감각을 앗아가는, 뻔한 패턴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강수호는 이미 숙달되어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모두 지옥 같이 훈련해 준 스승님들 덕분.
얼음 방벽을 뚫었다.
‘음속의 발걸음, 기본 보법.’
보법을 사용하여 바람 공격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얼음 송곳니가 날아와 움직임이 둔해졌지만.
‘됐다.’
크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 앞까지 다가왔다.
코코를 휘두르려 하자.
‘얼음 방벽인가?’
튼튼한 얼음 방벽이 생성되어 있었다.
쉽게 뚫을 수 없는, 그런 방벽을.
“약점 파쇄.”
-약점을 찾았습니다.
-약점이 파쇄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뚫었다.
얼음 방벽이 아닌, 두꺼운 두부를 써는 것처럼.
“이런……!!”
얼음 방벽을 뚫을 진 몰랐는지 당황한 그녀.
얼음과 불을 이용하여 증기를 내보내 떨쳐낼 생각이었지만.
“멈추십시오.”
“…….”
이미 코코의 검날이 그녀의 목에 닿아 있었다. 움직인다면 날카로운 검날에 몸이 그대로 베일 것이다.
“져, 졌습니다.”
나나호가 두 손을 들고 항복의 표시를 했다. 완벽하게 패배했다고.
스르릉.
그 모습에 빠르게 코코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선을 넘는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훈련장이 난장판이 됐군요.”
난장판이 된 훈련장.
벽 곳곳에 금이 가 있었고, 관객석은 완전히 파손되어 있었다.
“나나호 님! 무슨 일입니까!?”
“습격인가? 다 확인했는데?”
호텔 전체가 울릴 듯한 진동에 모인 협회 직원들. 아마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
먼저 나서려던 찰나.
“제가 해결할게요.”
“괜찮겠습니까? 이렇게나 부쉈으면 징계가 강하게 들어 올 텐데.”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정도야 약과죠.”
나나호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다 책임을 지겠다면서.
말리지는 않았다.
‘잘됐네.’
이런 걸로 일본 협회에 시비가 걸리면 골치만 아프다.
“잠시 대련을 한다는 게 진심으로 해 버려…….”
“정말 다행입니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 보니.”
일본 협회 직원에게 설명하는 나나호.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하암~ 씻고 자야겠네. 피곤하다.”
강수호는 내일을 위해서 먼저 호텔 방에 올라갔다.
‘……강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강수호를 보는 나나호.
입은 변명 거리를 늘어놓고 있었지만, 눈은 강수호에게 가 있었다.
마지막 목에 검을 대었을 때의 느낌. 던전, 협회 임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일을 겪어왔다.
목숨을 거는 일이 대다수이기에 목에 날붙이가 지나갔던 경우도 많았지만.
‘오싹했어.’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날붙이에 목이 닿았을 때 크게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능으로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그건.
‘막을 수 없었어.’
가만히 있지 않았더라면 주변 공간이 절단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움직이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나중에 또 대련 신청해야지. 재밌네.’
올라가는 강수호를 본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녀도 꽤나 뜻깊은 경험을 했으니까.
* * *
띠리링!!
“으아아아!”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 괴성을 내지르며 알람을 끈 것과 동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전혀 찌뿌둥하지 않았다.
“컨디션도 좋네.”
활발하게 움직이는 몸.
솔로 던전을 토벌하는 데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띠리링.
그때 마침 걸려 오는 전화.
초록색 버튼을 끌어당겨 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었다.
“예, 류헤이 님.”
-반갑습니다. 강수호 헌터님.
일본 협회 회장, 류헤이. 그가 아침부터 전화를 걸었다.
그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조식을 드시고 바로 협회 건물에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곳에서 만나겠습니다.”
오늘 드디어 한 달이 지나 솔로 던전 클리어 날이 왔다.
걱정되긴 하나, 긴장되지는 않았다. 충분히 클리어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준비하자.”
던전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을 입고 장비를 정비했다.
인벤토리까지 모두 확인한 후에.
“밥 먹고 바로 가자.”
간단한 식사와 함께 곧장 협회 건물로 향했다.
* * *
끼이익.
회의실 문을 열자, 한 달 전에 봤던 유명한 사람들이 그때와 똑같이 앉아 있었다.
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뭐 이리 긴장감이 없어?’
긴장감이 회의장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회사 회의장에 온 기분.
그런 그들 중에서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한 명이 있었다.
‘나나호?’
세계 랭커 10위, 나나호.
어제 대련을 한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짚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강수호 헌터님.”
조금은 신경 쓰였지만, 회의에 집중하기로 했다.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전과 비슷한 걸 설명해 주더니.
“여기입니다.”
텔레포트 주문서를 찢더니 곧이어 거대한 던전 게이트 앞으로 이동됐다. 미국에서 보던 S급 던전과 비슷한 크기.
“크군요.”
“이제 던전 브레이크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고작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점.
“클리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총리가 강수호 앞에서 고개 숙여 부탁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웃음기를 보았다.
‘웃어?’
그 모습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한국의 전력을 깎아 먹으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웃을 줄이야.’
독 발린 사과라는 걸 알고 있지만, 독이야 견뎌내면 되는 법이다. 그리 독한 독도 아니었고.
“들어가겠습니다.”
허리춤에 찬 무기를 확인하고 던전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슈아아악!
순식간에 던전 게이트 안에 사라지는 강수호.
그런 그를 보던 일본 유명 정치가들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
“정말 멍청한 조선 놈이군요!”
“이렇게 멍청한 놈처럼 안으로 들어가다니!”
“역시 총리님이십니다! 이런 똑똑한 방법을 사용하시다니!”
모두 총리를 칭찬하기 바빴다.
그 말에 뿌듯해하는 총리.
조금 걸리는 게 몇 가지 있다면.
‘한 달 동안 뭘 했냐는 건데…….’
협회 회장에게 보고 받은 내용.
일본 전체를 뒤져도, 방 안에 마나 감지기를 사용해도 한 달 동안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잘하면 안에서 죽을 거고, 못하면 입구에서 죽겠지.’
“흐흐.”
클리어 가능성은 제로.
그렇기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일본 헌터들을 모두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총리의 말에 대답하는 이들.
“…….”
그리고 그 모든 걸 보고 있던 최서현.
‘……젠장.’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강수호가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기만을 빌 수밖에.